이미지의 신, 어윈 올라프
어윈 올라프는 동시대적인 유행을 경계한다. 이를 복제하려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럼 그를 그답게 만드는 영감은 어디서 오는가. 바로 모국 예술의 황금 시대인 17세기 회화 작업이다.

1 Vogue_Vogue NL 06_2013 2 Fall_Still-life 05_2008 3 Moooi_Still 03_2008
세계적 포토그래퍼 어윈 올라프(Erwin Olaf)가 지난 6월 24일부터 국내의 대표적 사진 전문 갤러리 공근혜갤러리에서 한 달간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2012년 처음 한국에 작품을 소개하고 2016년 두 번째 전시회를 열었으니 이번이 벌써 세 번째 개인전이다. 2017년 전시회의 테마는 ‘휴먼 앤 네이처(Human & Nature)’. 사람과 자연을 다룬 2000년대 사진 작품 14점과 영상 작품 1점을 전시했다. ‘이미지의 신’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그는 화려하고 기괴한 사진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빛과 그림자의 기품 있는 대조를 선보인 렘브란트,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등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시대에 활약한 예술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조형과 색감을 뽑아내 한 편의 명징한 회화 작품을 연상시키는 사진으로 세계적 명성을 떨치고 있다. 작품 스타일도 상업사진과 예술사진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지라 매우 폭이 넓어 관람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이번에도 <보그> 네덜란드판 표지 작업을 비롯해 스타 디자이너 마르셀 반더스의 디자인 브랜드 모오이(Moooi)를 위한 액세서리 광고 같은 상업광고 사진과 ‘최신 유행(Le Demier Cri)’, ‘가을(Fall)’ 등 개인 프로젝트를 함께 가져왔지만 언뜻 봐서는 이 둘의 차이점을 전혀 파악할 수 없다. 하긴 요즘처럼 경계 없는 세상에서 이런 걸 굳이 따지려고 하는 게 부질없는 관람법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손꼽는 것들이 공교롭게도 모두 상업사진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공근혜갤러리에 들어서자마자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이 있다. 페르메이르가 남긴 최상의 걸작으로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영화로 제작되기도 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모티브 삼아 2013년 10월 <보그> 네덜란드판 표지를 위해 만든 ‘거장과 소녀(Master and the Girl)’다. 실제 네덜란드 여인 특유의 고전미가 풍기는 모델을 선별해 네덜란드 남부의 어부와 농부들 아내가 착용했을 법한 전통 의상을 입히고 소박한 니트 모자를 씌웠다.

4 Le Dernier Cri_Double Portrait_2006 5 Fall_Suus_2008 6 Le Dernier Cri_#005_2006
하지만 그와 상반되는 커다란 진주 귀고리가 그 고상한 품위로 여인의 분위기를 단번에 바꿔놓는다. 이런 부조화가 만들어낸 특별한 캐릭터는 페르메이르의 원작에서 풍기는 네덜란드 회화의 정수를 명확히 잡고, 이를 현대 카메라로 재창조한 작품으로 무척이나 예외적인 매력을 남긴다. 모오이 액세서리 광고 작업도 살펴보자. 딱 봐도 17세기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유행한 바니타스 정물화를 연상시킨다. 아득하고 깊은 그림자와 쨍그랑 소리가 날 것 같은 날카로운 빛의 대조, 그리고 사물들의 완벽한 구성이 만들어내는 완성도란! 비록 실제 바니타스처럼 숨은 의미의 조합으로 그림을 해석할 수는 없더라도 모오이의 액서서리로 만든 정물의 한 장면은 네덜란드의 숨결을 그대로 담고 있다. 반면 ‘최신 유행’이나 ‘가을’이 선사하는 분위기는 상징적이다. 2019년 파리를 배경으로 인위적 성형수술과 기괴할 정도로 완벽을 기한 실내의 모습을 통해 현실을 풍자한 ‘최신 유행’은 끔찍한 외모의 여인들과 함께 영영 시들지 않을 것 같은 각종 화초가 대조되는 괴리감이 인상적인 시리즈다. ‘가을’ 시리즈는 여기서 좀 더 나아간다. 실제 ‘최신 유행’과 같은 화초라는 오브제를 기존과 유사한 세팅으로 촬영했지만, 미묘하게 정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 시들 일만 남은 불안정한 몰락의 예감이 느껴진다. 평온하지만 어긋나 있고, 완벽한 구도에서 낌새를 보이는 연약함이 인상적인 ‘가을’ 시리즈에서 인물과 화초는 모두 아름다움의 짧은 정점을 암시한다. 봄과 여름을 지나 겨울을 맞이해야 하는 가을의 문턱에 서는 것이 자연의 순리인 것처럼. 이번에 소개하는 15점의 사진과 영상 작품은 어윈 올라프가 2000년대에 들어 제작한 시리즈 중 인물과 정물 사진만 모은 것이다. 패션·광고사진부터 예술사진, 영상, 조각, 설치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능력을 다양한 장르에서 폭넓게 표출하는 그의 작업을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전시는 7월 23일까지. 매주 월요일 휴관, 저녁 6시까지 관람 가능하다. 관람료는 없다.
에디터 전종현(harry.jun@noblesse.com) 디자인 장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