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과 번식
9월 18일부터 12월 20일까지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이수경 작가의 전시가 열린다. 전통적 소재를 현대적 조형 감각으로 해석한 작품을 선보여온 그녀의 새 전시다.
‘그림자 춤’, 2015
이수경의 작품은 늘 마음을 빼앗는다. 옹이 장이가 버린 도자기의 깨진 조각을 모아 전통적 도자기 보수 방식으로 이어 붙인 ‘번역된 도자기’ 시리즈나, 거울처럼 촉감이 매끌매끌한 붉은 돌인 경면주사를 재료로 탱화나 부적에서 빌려온 듯한 이미지를 복잡하게 풀어놓은 ‘불꽃’ 시리즈 같은 작품만 해도 가슴을 후벼 파는 황홀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간 그녀가 작품을 선보인 방식은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가 맞물려 있어 대체로 이질적이었다. 심지어 최근엔 전통 음악이나 전통 무용 같은 분야까지 넘나들며, 다단한 구분과 차이를 무차별적으로 허물기도 했다. 이렇듯 시각적이고 개념적 측면에서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을 뿜어내는 그녀의 작품은 지금 가장 주목받고 있는 국내 현대미술 작가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모두 잠든’(2015년) 시리즈 중 바리공주
이번에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리는 그녀의 새 전시도 독특하다. 그녀의 또 다른 시도를 예고하듯 제목 또한 ‘믿음의 번식’이다. ‘번식’이란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번 전시는 하나의 작업이 다음 작업으로, 그 작업이 다시 그다음 작업으로 그녀의 ‘의식 흐름’에 따라 회화와 조각,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구현된다.
전시엔 물론 볼만한 작품이 많다. 그중 ‘모두 잠든(All Asleep)’(2015년) 시리즈는 ‘바리공주’와 ‘서왕모’ 같은 민담이나 신화 속 인물들이 각자 힘들고 고단한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깜박 잠들어버린 순간을 포착한 작품으로 그 발상 자체가 독보적이다. 또 대만의 타이난과 일본의 니가타, 전남 강진에서 열린 전통적·지역적·종교적 행사를 방문해 촬영한 영상 작품 ‘흰 그늘(White Shadow)’(2015년)은 다큐멘터리 필름이 하나의 설치 작품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유의미한 지점을 확보한다. 한편 작품 ‘그곳에 있었다(You were There)’(2015년)는 전시 제목 ‘믿음의 번식’을 강하게 떠올리게 하는 새로운 프로젝트. 그녀는 이 작품을 위해 2개의 돌에 금박을 입혀 그중 하나는 자신이 보관하고, 다른 하나는 강진에 있는 백련사 주지 스님을 통해 사찰에 봉헌한 뒤 주지 스님에게 또 다른 2개의 돌을 받았다 한다. 이후 그 2개의 돌에 다시 금박을 입인 후 그중 하나를 자신이 보관하고, 나머지 하나는 백련사 주지 스님의 지인에게 전달했다. 이후 금박을 입힌 돌을 받은 백련사 주지 스님의 지인은 그 돌을 자신의 사찰에 봉헌했고, 그녀에게 2개의 돌과 함께 지인을 추천했다고 한다. 작가에게서 비롯되어 작가의 지인과 그 지인의 지인, 그 지인의 지인의 지인으로 이어지는 이러한 돌의 교환은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가 생성되고 그 관계가 확장되어가는 과정을 은유한다.
흰 그늘’, 2015

‘그곳에 있었다’, 2015

‘전생 역행 그림’, 2015
‘전생 역행 그림(Past Life Regression Painting)’ 시리즈(2015년)도 인상적이다. 그녀는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실제로 최면에 빠졌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전생과 그 전생의 전생, 그 전생의 전생의 전생으로 역행을 거듭해 무의식 속으로 깊이, 더 깊이 들어가며 마주한 장면들을 회화로 재현하는 기이함을 택했다. 그녀는 2014년 1월부터 실제로 매달 한 번 심리학을 전공한 전문 최면 상담사의 도움으로 전생 퇴행을 실행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기록하고 그 내용을 그림으로 그렸다. “3~4년 전 갑자기 캔버스에 페인팅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섣불리 시작하지 못했죠.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게 오히려 캔버스에 그림을 자유롭게 그리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아닐까 생각도 했고요. 그러다 한국 전통 춤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페인팅에서 가장 중요한 건 획을 긋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춤동작에서 그 해답을 얻고자 한 거죠. 그런데 춤 배우기를 2~3년 하고 나니 그다음은 그림 내용이 고민이었어요. 근데 그때 마침 제 무의식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엄청나게 자유롭고 창의적인 서사와 상징이 가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면서 최면을 시작한 거예요.” 실제로 그렇게 완성한 그녀의 회화 작품은 이전 작품과 다소 달라 보이지만, 여전히 눈과 마음을 홀리는 매력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궁금해했을 전생이라는 것이 그 태생부터 사람의 귀와 눈을 홀리는 장치인 이야기와 회화를 통해 펼쳐지는데, 당최 그 매혹에 빠져들지 않을 재간이 없다.
<믿음의 번식> 전시 전경
전시 <믿음의 번식>은 그간 이수경이 천착한 관심사를 연장하는 동시에 그것들을 또 다른 방식으로 변주(變奏)해나가는 독특한 광경을 보여준다.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한 그녀 자신의 몸과 호흡에 대해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예술의 언어로 구현하는 방식에 대해 다시 사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믿음의 번식>에서 믿음이란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깊이 연결돼 있다. 믿음으로 어떤 것을 존재하게 할 수도,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은 설득력이 있거나 어떤 논리의 틀을 갖추기 어렵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작업에 모티브가 되는 많은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그리고 무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이렇게 이젠 한결 친숙해진 ‘번역된 도자기’ 시리즈나 ‘불꽃’ 시리즈를 통해 구축해놓은 맥락에 또다시 거리를 두려는 듯 보이는 그녀의 전시를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 올가을,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이수경 작가의 다양한 ‘번식’을 직접 경험해보자.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제공 아뜰리에 에르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