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가고 만들어가는
젊은 국악인의 행보를 조명하는 트래디션 시리즈 첫 번째 주인공은 단단히 자리한 전통 위에 새로운 시도를 서슴지 않는 소리꾼 이서희다.

지난 11월 광주시립창극단 창단 35주년 기획 작품 <여울물 소리>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황석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창극으로, 1894년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의 삶과 사랑 이야기가 황호준 연출의 작곡과 각색, 박승희 예술감독의 국악 관현악 지휘 아래 새롭게 태어났다. 창극단 상임 단원이자 소리꾼 이서희는 주인공 정연옥 역으로 분해 깊은 서사를 무대 위에 펼쳐 보였다. “몇 개월간 공들여 준비한 작품인 만큼 잠시간 여운을 음미하고 있어요. 또 판소리와 뮤지컬 발성을 섞는 등 특별한 점이 많았던 작품인지라 아티스트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소리꾼이 아닌 아티스트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 도전의 연속인 그녀의 커리어에서 힌트를 얻었다. 국립국악중학교에서 가야금을 공부했는데, 판소리 전공으로 국립국악고등학교를 졸업한 것부터 심상치 않다. “중학생 시절 전공 선생님이 제 목소리를 듣고 ‘소리를 해도 되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소리꾼과 고수가 관객과 호흡하며 긴 시간 무대를 이끌어가는 모습에 반해 전과를 선택했습니다. 어릴 적 가야금을 공부했기에 이점이 많아요. 소리를 이해하고 연주자와 소통하는 것은 물론 창작 활동에도 도움이 됩니다.”
이서희를 설명하는 데 전북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수궁가 예능 보유자이자 스승인 왕기석 명창의 가르침을 빼놓을 수 없다. “선생님은 항상 먼저 인성을 갖추라고 강조하세요. 기술은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체득되지만, 인성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죠.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공연에 임하고, 함께 작품을 만드는 동료와 좋은 에너지를 나누려 합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의 배움은 예술에 관한 시야를 넓히는 계기로 작용했다. “여러 분야의 예술 인재를 양성하는 기관인 만큼 다른 장르와 협업할 기회가 많았어요. 필드에서 활동하는 교수님들의 현장 수업, 전통 예술을 시대에 녹이는 방법을 제시한 수업 등은 저만의 예술을 고민하게 했습니다.”

지난 2017년 국립국악원과 안숙선 명창이 함께한 작은 창극 <그네를 탄 춘향>, 2020년 광주시립창극단 제55회 정기 공연 <꽃도졌다 다시피고 효(孝) 심청>, 2021년 뮤지컬 <심청> 등 다양한 무대에서 활약한 그녀는 2022년 <씨어터조이 이서희 × 아티스트 단독콘서트>를 직접 기획하고 연출했다. “아티스트로서 제 한계를 살피는 한편 판소리, 나아가 국악의 또 다른 면모를 제시하기 위해 만든 공연입니다. 일주일간 창작 음악 그룹 버드, 벌룬 아티스트 깡샘 등 타 장르 아티스트와 매일 다른 협업으로 새로운 무대를 꾸몄죠. 무대를 아우르는 공통점이 있다면 관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자 토크 콘서트 형식을 취한 것입니다. 언뜻 독특한 시도 같지만, 그렇지 않기도 해요. 관객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판을 벌이고 소리를 하는 것이야말로 판소리의 전통성이니까요.”
수궁가 이수자 이서희는 새로운 전통을 만드는 일만큼 오랜 전통을 이어가는 일에도 남다른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전통이 깊숙이 뿌리내려야 색다른 시도도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판소리 형식을 차용할 뿐 가사와 음률에 본연의 의미를 충분히 담지 못할 수도 있거든요. 전통 판소리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고, 한국예술영재교육원과 광주예술중고등학교에 출강해 미래 소리꾼을 양성하는 데에도 힘을 쏟는 이유입니다.” 이는 그녀가 꾸준히 전통 무대에 오르는 까닭이기도 하다. “현대화된 무대에 반해 전통 무대는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서암문화재단에서 매년 주최하는 음악회 등 전통을 지키려는 노력이 더욱 소중하고 반갑습니다.”
2025년에도 그녀의 시계는 바쁘게 돌아간다. “전통 판소리 <심청가>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근 뜻을 함께하는 아티스트들과 ‘TThe:돌이’라는 국악 재즈팀을 결성했는데, 판소리와 재즈의 결합뿐 아니라 팀원들과 전통 예술을 새롭게 바라보는 방도를 모색 중입니다. 하반기에는 모녀의 연대를 주제로 한 일인극도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서희가 보여줄 현대적 판소리 공연을, 세월의 정수가 담긴 전통 무대를 어떻게 즐기면 좋을까. “판소리는 스크린이 아닌 현장에서 마주했을 때 비로소 그 에너지가 와닿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호기심이 생겼다면, 과감하게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옮길 것을 권합니다. 판소리에 익숙지 않은 분이라면 오히려 전통 무대가 신선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다음으로 현대성을 가미한 작품을 만나면 판소리 안에 담긴 기쁨과 위로를, 국악이 내포한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신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