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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선택

ARTNOW

작가들이 풀어놓은, 남다른 재료를 사용한 이유. 충분하고도 넘쳤다. 그들의 이야기와 함께 독특한 작품을 감상해보시라.

인세인 박, Feminist, 2016

인세인 박의 ‘침과 오줌’
‘청춘’은 남녀가 서로 침을 입에 뱉는 행위를 반복하는 영상 작업이다. 남녀 간의 연애 감정이 지속되는 시간을 비유하기도 하고, 시간에 따라 추억이 쌓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타액을 교환하는 행위는 매우 친밀해 보이지만, 생물학적 유기체의 기계적 활동처럼 공허하다. ‘FEMINIST’는 네온으로 만든 알파벳 ‘FEMINIST’라는 텍스트 사이로 오줌이 순환하는 작품이다.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남성 의존적인 일부 여성을 비판적 시각으로 미러링한 작품으로, 남성과 여성의 성 정체성의 모호성과 이원적 분절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선, 검은 그림, 2015

최선의 ‘폐유’
유조선의 기름 유출 사고 당시 서해는 악취 나는 기름으로 뒤덮였다. 바다에 천을 담갔다 빼는 족족 그림이 되었다. 바로 한국적 모더니즘 작품. 그렇게 그려진 그림은 끈적거렸고 두통이 날 만큼 냄새가 났으며 바닥으로 기름이 줄줄 떨어졌다. 서해안 앞바다에 퍼진 기름은 한국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모두 갖춘 것처럼 보여 그것을 물감 삼아 한국적인 그림을 그려보았다.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 같은 그림을.

두눈, 상징적 가치로서의 전환, 현재 작업 중

두눈(변득수)의 ‘손톱’
‘현시대에 순수가 처한 상황은 아무 거리낌 없이 잘려 버려지는 손톱과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두눈 프로젝트의 출발이다. 진솔한 것이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세상을 함께 상상하고 실현하고자 현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손톱을 기부받아 작업한다. 손톱은 인간이 성장하면서 속세의 때가 묻고 명을 다하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의 이치를 담고 있다. 우리가 진정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마음에 낀 때’다. 삶의 부산물이 낀 손톱이 혐오스럽다면, 그것이 인간으로서 감추고 싶은 치부를 상징해서가 아닐까?

이동재, 자화상, 2004

이동재의 ‘쌀’
대학원 재학 시절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끼니마다 사진을 찍어 날짜와 시간을 기록하는 작업을 한 적이 있다. 100일 동안 진행한 이 프로젝트는 먹고사는 것에 대한 진솔한 기록이었다. 이때 거의 매번 빠지지 않고 등장한 것이 쌀밥이었다. 이후 농산물을 소재로 한 기획전에 참여하면서 쌀을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중요한 화두가 깃든 오브제로 재인식하는 계기가 됐고, 캔버스에 물감 대신 얼굴을 표현하는 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내 몸을 지탱하고 이루는 식량이자 캔버스에 내 모습을 재현해내는 쌀은 그만큼 나의 정체성을 오롯이 드러내는 알갱이다.

허명욱, 무제, 2016

허명욱의 ‘옻칠과 시간’
내게 표현하는 행위와 사물의 시간성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돼 있다. 비가 만들어낸 철의 녹, 빛과 바람이 만들어낸 갈라짐과 긁힘, 벗겨짐의 흔적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자연의 색을 느낄 수 있고, 그것은 내 작업의 중요한 재료가 된다. 이번에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 전시하는 설치 작품은 사물이 인간의 손길과 자연의 시간성을 거친 뒤 소멸되는 과정을 기록한 결과물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채도가 높아지고 깊은 색을 내는 옻칠은 재료 그 자체로 내가 표현하려 하는 ‘시간성’을 지니고 있고 수천 년을 견딜 수 있는 견고함까지 갖췄다. 비싼 재료지만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배, 숯, 2000~2016

이배의 ‘숯’
1989년 파리에서 작업을 시작할 무렵 화실 앞 건재상에서 숯을 잔뜩 쌓아놓은 것을 우연히 보고 한 봉지 구입해 작업했다. 당시 재료비가 부담스러운 경제적 이유도 있었지만 숯은 먹의 문화권인 동양에서 시골의 자연과 더불어 자라온 내 배경과 감성을 반영할 수 있는 재료이기도 했다. 이후 나는 한국에서는 한국의 숯, 파리에서는 파리의 숯을 사용해 작업해왔다. 모든 물질의 마지막은 숯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한편으론 죽은 물질로 보이지만 에너지를 품고 있는 재료라는 점에서 매력을 느낀다. 내게 예술은 하나의 감성 여행이다. 내 감성을 어디까지 보낼 수 있을까? 자연으로 보내 자연에서 답을 듣는다는 생각으로 작업한다.

김범수, 100 Kinds of Love, 2008

김범수의 ‘영화필름 조각’
1990년대 중반 뉴욕 유학 시절, 맨해튼에서 종종 플리마켓을 구경하곤 했다. 어느 날 오래된 물건들에 묻힌 영화필름을 구입했는데, 작업실에 와서 펼쳐보니 놀랍게도 당시 가장 핫한 인물인 마이클 조든이 코카콜라를 선전하는 커머셜 필름과 오래된 흑백 다큐멘터리 필름,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필름이 있었다. 수많은 이야기, 화려한 색감, 여러 배우의 모습이 작업실의 조명과 어우러지면서 마치 영화 <시네마 천국>의 한 장면이 오버랩되듯 벅차게 다가왔다. 내 영감의 원천인 영화의 여러 요소가 나의 상상력과 경험, 미술적 조형성과 결합해 작품으로 발전했다.

황란, Becoming Again, 2014

황란의 ‘단추’
단추와 실, 비즈와 핀을 이용해 실험적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오래전 뉴욕의 자수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할 때 버려진 단추가 매력적인 작품 재료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 그 출발점이다. 단추 하나하나가 마치 사람의 얼굴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 개별적 소중함을 인간의 존엄성과 연결해 삶의 순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인간과 사회의 정치적 관계 등으로 발전시켰다. 내가 작품에 사용하는 단추는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 직접 개발해 만든 나만의 단추다. 그 외에도 플라스틱, 금속, 한지 등으로 영상과 결합한 설치 작업을 탐구하고 있다.

강인구, 춤을 추다, 2008

강인구의 ‘돌멩이’
내가 작품에 사용하는 돌멩이는 예쁜 것이 아니라 주차장이나 기차 선로에 깔린 검은색의 모나고 부서진 돌이다. 선박의 바닥에서 선체의 밸런스를 맞추는 ‘밸러스트’로도 사용된다. 재료와 작가의 만남은 우연히 이뤄지며,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닮아간다. 수년 전 버몬트 스튜디오 센터(Vermont Studio Center)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그곳에 도착한 첫날 주차장에 넓게 깔린 돌멩이들이 살아 있는 유기체가 움직이는 듯해 몸의 중심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현기증을 느낀 기억이 생생하다. 내 발에 밟히고 내 무게를 감당하는 이 돌멩이들도 한때는 큰 바위였을 거라는 생각에 돌멩이를 이용한 작업을 시작했다. 지금 그 재료와 나는 많이 닮았다. 무게를 극복하고 작품 안에서 춤추며 살아 움직이고 있다.

권순왕, 클래스, 2010

권순왕의 ‘자동차 유리’
고속도로에서 자동차 유리 파편을 볼 때가 있다. 유리의 파편을 도심의 도로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것을 붙여 무언가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폐차장을 찾아가 깨진 자동차 유리를 가져왔다. 내가 받아온 교육,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책과 텍스트, 파편화된 차 유리를 몽타주하기로 했다. 자동차 유리는 현대성, 세계화, 포장재를 떠올리게 하는 오브제다. 은폐하거나 부서져서 위험한 것,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비추고 있는 것은 유리 같은 텍스트다.

김남표, Instant Landscape – Traveler#7, 2013

김남표의 ‘인조털’
내 그림은 사전 계획이나 밑그림이 없다. 즉흥성을 담보로 한 드로잉으로 시작해 갑자기 끝난다. 어느 한 부분에서 시작해 연상되는 것을 따라가는 우연적·즉흥적 형식이기 때문에 재료 역시 이런 속성을 반영한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빠르게 재현하기 위해서는 손으로 직접 그릴 수 있는 파스텔, 콩테, 목탄을 사용한다. 특히 동물의 털과 흡사한 인조털을 이용한 오브제는 연상 작용을 극대화해 초현실적 구상을 다시 현실로 환원시키는 역할을 한다.

에디터 안미영(myah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