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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람의 소리

LIFESTYLE

못하는 것 빼고 다 잘하는 만능 예술인 이자람과 나눈 <정년이> 이야기.

이자람의 별명은 ‘이잘함’이다. 그렇게 불릴 만한 것이, 정말 다 잘한다. 우선 그녀는 스무 살에 판소리 <춘향가>를 최연소로 완창해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떡잎부터 다른 소리꾼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사천의 선인>,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을 모티브로 만든 창작 판소리 <사천가>, <억척가>가 국내외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작창가로서 역량도 인정받았다. 10년 넘게 뮤지컬 <서편제> 주인공 송화 역으로 활약했으며, 록 밴드 아마도이자람밴드에선 리드 보컬이자 작사·작곡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해 출간한 에세이 <오늘도 자람>에선 탁월한 글솜씨를 뽐내기까지. 별명을 하나 더 붙여주고 싶다. 한 분야를 넘어 다양한 곳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르네상스형 인간’으로.
여기에 하나 더. 이자람은 2017년 <흥보씨>를 시작으로 <소녀가>, <패왕별희>, <나무, 물고기, 달> 등 국립창극단의 창극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소리꾼들, 그러니까 창극 단원과 작업하는 것을 좋아해요. 타지에서 한국 사람을 보면 반가운 것처럼, 종족을 만난 느낌이랄까. 1인극인 판소리와 달리 소리꾼 여럿이 역할을 맡아 노래와 연기를 펼치는 창극은 여러 빛깔을 내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죠. 비유하자면 판소리는 수묵화, 창극은 수묵담채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자람은 국립창극단의 신작이자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정년이>(3월 17일~29일)의 작창과 작곡, 음악감독을 맡았다. 1950년대 서울의 여성 국극단을 배경으로 창극 배우가 되고 싶은 목포 소녀 정년이와 소리꾼의 성장을 그린 작품. “특별한 이야기인 만큼 원작은 진작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는데, <정년이>를 대하는 단원들의 남다른 태도에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모두가 이 작품에 ‘진심’인 이유는 한 명 한 명이 작품 속 주인공 윤정년이기 때문이다. “단원 대부분 지방에서 소리를 배웠고, 큰 무대에 서기 위해 상경했어요. 정년이를 잘 이해할 수밖에요. 그리고 창극이 조명받은 건 2000년대 초부터입니다. 지금도 뮤지컬 등 인기 장르에 비하면 규모가 작죠. 여기서 오는 열등감 또는 자괴감,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박수 소리에 다시금 힘을 얻고. <정년이>의 시대 배경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래서 이 작품은 2023년을 살아가는 모든 소리꾼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번 작업에서 가장 공들인 부분은 음악의 다양성이다. “원작 팬이 공연장을 찾을 거라고 예상했어요. 그중 창극을 처음 접하는 분이 적지 않을 테니, 창극 음악의 베이스인 판소리 악조를 따르면서도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했습니다. 창극의 사운드는 관현악 반주, 신시사이저 반주가 두 축을 이루는데요. <정년이>에선 익숙하면서도 다채로운 사운드를 구현하는 신시사이저의 비중이 큰 편입니다. 소리(창)를 들어내면 창극 반주인지 모를 곡이 많으니, 기존 창극 팬에게도 신선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위쪽 <나무, 물고기, 달> 공연 모습. 아래쪽 <정년이> 연습 현장.

<정년이>는 캐스팅을 발표하기도 전에 티켓이 매진됐고, 3회 공연을 추가했지만 이마저 동이 난 상황이다. 창극을 응원하는 1인으로서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한편으론 원작의 인기가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도 사실. 그렇다면 <정년이>를 계기로 인기 IP를 활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사람들에게 창극의 매력을 널리 알리려면 말이다. “새로운 시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소리꾼이 많아요. 젊은 단원뿐 아니라 관록을 담당하는 선생님들까지요. <정년이> 이전에도 현대적 만남이 있었고, 멋진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음을 알거든요.” 확실히 그렇다. 지난 몇 년 사이 창극은 시대와 국경을 넘나들며 다양한 소재로 확장을 꾀하고 있으니. 동명의 그리스 비극을 바탕으로 한 <트로이의 여인들>, 판소리 <수궁가> 이야기가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되는 <귀토> 등이 대표적 예다.
창극의 모체인 판소리의 새로운 시도도 돋보인다. 당장 판소리를 현대 팝으로 재해석한 ‘범 내려온다’의 이날치 밴드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정명섭의 <추물>부터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까지 동서양의 이야기를 현대적 판소리로 빚어온 이자람이 있다. “양적 팽창이 있어야 질적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판소리는 노래·연기·춤을 아우르는 복합 장르고, 어떤 요소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결과물이 나옵니다. 그 과정에서 품위를 잃을 수 있겠지만, 동시에 뭔가 ‘툭’ 올라오기도 하고요.” 모두 새로움만 좇으면 옛것은 누가 지키는지 되물을 수도 있겠다. “과거 소리꾼들은 당시 가장 현대적 사고로 무장한 채 동시대 언어로 판소리를 만들었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판소리의 전통적 어법을 따르되, 그것을 21세기에 맞게 변용하고 확장하는 거죠.” 이런 관점에서 ‘힙’을 입은 오늘날 판소리와 창극이야말로 진짜 전통이 아닐는지.
이자람은 오는 4월 창작 판소리 <노인과 바다>의 소리꾼으로, 5월엔 연극 <오셀로>의 배우로 무대에 오른다. 이후 가무극 제작에 참여하며, 아마도이자람밴드 3집 앨범도 준비 중이다. 어제는 소리꾼, 오늘은 배우, 내일은 뮤지션. 쉴 틈이 없다. “평생 뭔가를 성취해야 하는 삶을 살아서인지 몸이 편하면 불안해요.(웃음) 다만 과거엔 자신을 증명하겠다는 마음이 컸다면, 요새는 주어진 역할에 집중하려 합니다. 지치지 않는 나름의 방법을 터득한 거죠.” 그녀의 바람은 심플하다. 계속 창작 판소리를 만들어가는 것. “여기엔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 ‘소리꾼 이자람’이 있거든요.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놀 때 가장 즐거워요. 훗날 누군가 제 작품을 보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정말 재밌게 살았군’ 하고 감탄하면 좋겠어요. 제가 과거 소리꾼에게 느낀 것처럼.”

웹툰 <정년이>. 사진 제공 네이버웹툰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JK(인물)
헤어 & 메이크업 강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