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국도 아트 펀드
지난 10여 년간 세계 부호들은 투자 포트폴리오를 미술품으로 확대해 큰돈을 벌었고, 여기에는 미술품 투자 헤지펀드의 역할이 컸다. 이제는 한국도 그 흐름을 탔다.

서울옥션 홍콩 세일 전경.
아트 펀드는 예술 작품을 수집하고 매매하면서 수익 창출에 전념하는, 사적으로 제공하는 투자 기금을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예술 투자 펀드라고 부르는 이 형식을 공식적으로 채택한 건 영국 레일펜션펀드(BRPF)인데, 1974년부터 6년에 걸쳐 2500점이 넘는 예술 작품에 일부 자본을 투자하며 이후 생겨난 다양한 아트 펀드의 시조가 됐다고 할 수 있다.
아트 펀드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크리스티의 전 임원인 필립 호프먼(Phillip Hoffman)이 설립한 파인아트그룹(The Fine Art Group)을 들 수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예술 투자사 중 하나인 이 그룹은 포스트워, 컨템퍼러리, 모던, 인상주의, 올드 마스터 등 여느 전문 예술 기관 못지않게 세분화한 펀드를 보유 하고 있다. 단기 펀드도 많고, 길게는 5년, 10년까지 펀드 기간이 설정돼 있어 선택 가능하며, 아트 어드바이저와 딜러, 뱅커 등 전문가가 대거 포진해 있다.
한국은 2000년대에 잠시 아트 펀드 붐이 일어났다가 이내 경기 침체와 함께 사그라졌다. 하지만 이제 한국도 다시 아트 펀드 시대를 맞이할 태세를 갖춘 듯하다. 최근 헤지펀드가 점차 투자 영역을 넓히면서 예술품이 그 대상으로 뜨고 있기 때문이다. 헤지펀드는 쉽게 말해 품목을 사고팔면서 위험이나 손실을 피하는 펀드로, 1949년 미국에서 호주 출신 앨프리드 윈슬로 존스(Alfred Winslow Jones)가 처음 용어를 정립한 이래 1980년대 후반 금융 자유화의 확산으로 급속히 성장했다. 미술품 헤지펀드는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는 헤지펀드 중 미술품에 실물 투자해 수익을 낸다고 이해하면 된다. 작품에 여러 명이 투자해 높은 가격에 팔리면 같이 돈을 버는 시스템으로, 미술품이 워낙 특화 품목이다 보니 전문 예술 투자 관리사나 자문 회사가 관리하며 수수료와 펀드 수익 일부를 받는다. 소장가가 컬렉션을 구축하고 작품을 거래하면서 수익을 내는 것이 전통적 미술 투자 방식이지만, 그 이상의 장기간 재정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미술품 헤지펀드의 목적이다. 예술 투자 펀드도 다른 펀드와 마찬가지로 기존 매수 전략을 활용하지만, 그 종류에 따라 규모와 기간, 투자 초점, 전략과 포트폴리오 제약이 각기 다르다.

1 국내외 마켓에서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작가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Pumpkin’. 2 2007년 이후 10년 만에 작가 레코드를 경신한 백남준의 ‘Stag’.
한국에 아트 펀드 바람을 다시 몰고 올 주역은 더블유 자산운용과 서울옥션이 각각 운용과 자문을 맡아 출시한 국내 첫 미술품 헤지펀드인 ‘W아트전문투자형사 모투자신탁 제1호’다. 일반적 공모펀드와 달리 비공개로 소수 투자자의 자금을 모아 운용하는 방식인 ‘사모’ 펀드다. 운용사가 투자자에게 제안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며 그 수를 49명으로 제한한다. 판매사는 우리은행, 삼성증권, NH투자증권이며, 이미 모집을 완료하고 지난 2월 말부터 운용을 시작한 터라 아쉽게도 지금은 가입할 수 없지만, 펀드가 성공한다면 앞으로 새 사례가 많이 생겨날 테니 주시하자. 그동안 아트 펀드가 간접 운용 방식이었던 것과 달리, 국내 최초로 운용사가 직접 운용하는 펀드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이 펀드에서 투자할 수 있는 작품은 20점 내외다. 작품은 수익성과 안정성을 고려해 선정하는데, 리스트는 공개하기 어렵다. 내부에서 협의한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작품을 선정하고, 블루칩 작품의 비중이 높다는 정도만 알아두자. 국내외 작품을 모두 커버하고 펀드 제안서에 따르면 자산 중 약 60%는 외국 작품에, 40%는 국내 작품에 할당한다. 펀드 가입 후 작품은 최고 조건의 수장고에 보관하며, 작품의 보험, 운송, 보관에 대한 기준을 철저하게 두므로 신뢰해도 좋다. 개별 작품에 따라 투자 기간에 차이가 있지만, 설계상으로는 3년 만기 상품이다. 또 중도 환매가 불가능한 폐쇄형으로, 총 모집 금액은 350억 원에 달한다. 현재 진행 중인 상품이기 때문에 펀드 수익을 성급히 논할 수는 없지만, 기존 외국 아트 펀드 중에서 연 20% 이상 상당히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상품이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런 미술품 헤지펀드는 몇 가지 독특한 이점으로 투자자에게 어필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메리트는 다른 금융 상품 대비 기대 수익률이 높다는 점이다. 투자에서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보다 더한 끌림이 있을까? 미술품 펀드는 전형적으로 고가 종목에서 그 가치를 유지하며 일관된 수익을 낸다. 투자자가 미술품 헤지펀드에 매력을 느끼는 것도 그 덕분일 거다. 미술 가치는 일반적으로 전통 금융시장과는 큰 관련이 없어 경제 상황에 따른 타격이 적고,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할 수 있다. 실물 자산이라 안전 자산으로 분류될 뿐 아니라, 투자 대상이 미술품이기 때문에 정서적 풍요와 만족감은 덤으로 따라온다.
그렇다고 자산을 투자하는데 무조건 장점만 생각할 수는 없는 법. 펀드 투자자 사이에는 미술품 가치 판단 기준이 주관적이고 그만큼 시장이 불투명하다는 점을 들어 미술 투자 펀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미술을 위험한 자산 클래스로 표시해 투자 손실 잠재성을 경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술 투자 펀드 전문가의 생각은 반대다. 노련한 미술 전문 인력과 협력하면 시장에서 상당한 차익 거래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국내 1호 미술품 헤지펀드는 서울옥션이 자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마켓 리서치와 매물 리스트를 확보해 적정 가격과 판매 방법을 자문할 뿐 아니라, 작가에 대한 심층 자료를 제공하며 펀드 활성화를 돕는다.
기준점에 따라 다를 테지만 투자 대상으로서 미술품의 수익률과 리스크에 대해 간략히 덧붙이면, 미술 시장 수익률은 주식시장과 비슷하고 채권보다는 높다고 보면 된다. 리스크 면에서는 채권보다 변동 폭이 크지만, 주식보다는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모던아트는 미술 시장에서 검증된 기간이 긴 만큼 변동 폭이 작고, 컨템퍼러리 아트는 상대적으로 크다.
세계 미술 시장 규모가 약 64조 원에 이르는 현시점이지만, 한국은 외국보다 미술품 투자에 대한 인식이 낮은 실정이다. 그래서 더욱 국내 미술품 헤지펀드 출시 소식이 반갑다. “아트 펀드를 운용하는 주된 이유는 전반적인 시장 확대를 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트 펀드가 활발하면 아무래도 그만큼 자본이 미술 시장으로 유입되기에 마켓 규모 확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 외국 미술 시장은 기업의 참여율이 높지만, 국내는 대부분 개인 컬렉터에게 의존하기 때문에 시장 확대가 쉽지 않다. 펀드를 통해 일반인의 쉽고 안전한 미술 시장 유입을 장려할 수 있다”라는 서울옥션 관계자의 말에 동의한다. 그래서 더욱 올해 출시한 한국 첫 미술품 헤지펀드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길 바란다. 미술품 헤지펀드가 아트 마켓 확장과 발전에 기여할 거라는, 나아가 모두가 예술을 가까이 누리며 살 수 있을 거라는 더 큰 그림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
사진 제공 서울옥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