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에서 서도호
현대미술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관람객의 해석이라는 의견에 큰 불만은 없으나, 그래도 작품 해석의 1차적 주체는 작가에게 있음을 굳게 믿는 1인으로서 서도호를 만나야 했다. 지난해 리움 개인전에서 10만 명의 관람객이 마치 유령 같은 모습의 ‘집 속의 집’ 앞에 섰고, 지금도 여전히 지구 반대편의 갤러리 한 벽면에서 그의 작품이 새로운 관람객과 마주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현대미술은 원래 그런 거야’라고 해도 이쯤에서 서도호의 진짜 목소리를 한 번은 들어야 한다. 당신이 서도호의 팬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작가 서도호는 누구? 본인은 무척 쑥스러워하나 누가 뭐래도 그가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사실을 부인할 순 없다. 카리스마와 장난기가 어우러진 그의 눈빛과 열 살은 어려 보이는 마스크 덕분에 그렇지 않아도 팬이 많았는데, 지난 3월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집 속의 집>에 미술관 개관 이래 최다 관객 수인 10만 명 이상이 몰려들어 작가도 아이돌 스타 못지않게 인기를 끌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했다. 한국에서 동양화를, 로드아일랜드에서 회화를, 예일 대학교에서 조각을 공부하며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고, 보란 듯이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로 선정되어 전 세계에 서도호라는 이름 석 자를 알렸다. 그가 제일 잘하는 건 ‘스튜디오에서 놀기’, 제일 못하는 건 ‘사교’. 그렇다고 앞으로 특별히 사교에 노력을 기울일 생각도 없어 보인다. 서도호 작가는 현재 런던에 거주하며 세 살배기와 백일이 갓지난 딸들을 위해 돌 하우스를 디자인하는 멋쟁이 아빠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주관한 ‘2013 올해의 혁신가상’에 선정되신 걸 축하드려요. 각각 미술과 건축, 디자인, 패션 등 7개 부문에서 7명을 선정했던데 선정 배경이 뭔가요? 선정 배경이라…. 저도 그게 참 궁금해요. 제 수상 소감 첫마디가 오죽하면 “왜 나를 뽑았는가?”였으니까요. 아무래도 제가 움직일 수 없는 것들을 움직이도록 시도한다거나, 태평양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디자인하는 등 일반적인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작업을 해왔기 때문이 아닐까요? 시상식 때문에 뉴욕에 다녀왔는데 그렇게 사진을 많이 찍힌 건 처음이에요. 기억에 남는 건 트로피가 무척 무거웠다는 거죠.(웃음)
현재 런던에 살고 계시죠? 뉴욕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스피치만 하고 바로 한국행 비행기를 타셨다고 들었어요. 아이돌 스케줄과 맞먹는 것 같아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 준비와 광주폴리 프로젝트(광주 곳곳에 작은 조형물을 설치해 시민의 참여로 완성도를 높여가는 인문학적 도시계획)에 선보일 ‘틈새 호텔’ 작업으로 조금 바빴어요. 고국에서의 두 전시를 열고 다시 홍콩으로 가요. 고국의 전시일정이 공교롭게 몰렸기 때문에 홍콩의 전시일정을 비슷한 시기에 잡은 것뿐입니다.
지난해에 아시아 브랜치를 확장한 리먼 머핀 갤러리 홍콩에서 1월 18일까지 개인전이 열리고 있죠? 홍콩 전시장에 가면 어떤 작품을 볼 수 있나요? 리움미술관의 <집 속의 집>전에서 뉴욕 아파트를 천으로 만든 작품을 선보였는데, 그 안에 설치한 가구 집기들을 따로 떼어 전시하는 거예요. 리움 전시가 아파트라는 큰 맥락에서 접근했다면 이번 전시는 냉장고와 라디에이터, 약 상자, 스토브 등을 아파트 안에서 떼어내 하나의 조각 작품처럼 설치했죠.
디스플레이 방법도 다르겠네요? 소품을 하나의 오브제처럼 좌대 위에 올려놓고 작품 뒤에 라이트 박스를 설치해 작품이 뒤쪽에서 빛을 받도록 했어요. 이 작업은 개념적으로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것과 많이 달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제 방을 보다 큰 집에서 전치시킨 것처럼 방의 물건을 또다시 전치시켰다는 점에서 연장 선상에 있습니다.
서울관에 전시한 작품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자꾸 리움 전시와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이번 작품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은 리움미술관 공중에 건 작품보다 훨씬 큰 것 같아요. 15m라고 들었어요. 리움 전시에선 ‘집 속의 집’이라는 작품을 선보였어요.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살던 집 안에 제가 자란 한옥을 배치한 1:11의 모형작품이죠. 그걸 1:1 스케일로 만들었어요.
작품을 설치한 전시장 ‘서울박스’가 서울관에서 제일 큰 공간이죠? 네. 그 공간에 작품을 설치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어요. 사실 이 작품을 옛날부터 꼭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그걸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서울박스라면 충분히 해볼 만했죠.
제목에서 집을 다섯 번이나 반복한 이유는 뭔가요? 첫 번째는 한옥, 두 번째는 미국 집, 세 번째는 미술관, 네 번째는 미술관 밖으로 보이는 경복궁터, 다섯 번째는 경복궁이 있는 서울이에요. 서울박스에 들어오면 창문을 통해 그 뒤 종친부 건물이 보여요. 어떤 앵글에서 보면 제가 만든 작품 뒤로 실제 건물들의 레이어가 한 번에 쫙 보이는 순간이 있어요. 제목에 집이 다섯 번이나 들어가는 이유죠.
작품의 컬러를 선정하는 기준도 궁금해요. 집마다 색깔이 다르잖아요. 몇 개의 예외를 제외하곤 특별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천 작업을 처음 시작하며 서울 한옥집을 만들었어요. 한옥집 천장의 도배지 색깔을 작품에 썼죠. 두 번째는 뉴욕 아파트 작품인데 그건 회색조의 청색계열을 사용했어요. 뉴욕이라는 큰 도시를 연상하는 색깔이 그거였으니까. 그런 식으로 하다 보니 여러 가지 색을 쓰게 되었어요.
여러 인터뷰에서 부친이신 서세옥 선생님이 아름답게 가꾼 한옥에 얽힌 추억과 자긍심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걸 봤어요. 만약 창덕궁 연경당을 본뜬 성북동 한옥이 아닌 대치동 재건축 아파트에서 자랐다면 지금의 서도호는 없었을까요? 아니요. 당연히 지금과 같은 작업을 하고 있을 거예요. 다만 한옥은 아니었겠죠. 물론 이런 점은 있어요. 제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노매디즘, 글로벌리즘이 제 작품을 이야기할 때 따라붙게 된 건 한옥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그러나 중요한 건 한옥이었기 때문에 ‘집 속의 집’ 같은 작품을 만든 것이 아니라, 제가 자란 집이 우연히 한옥이었던 것뿐이에요.
베니스 비엔날레(2001년) 한국관에 전시한 ‘공인들’ 같은 남성적인 작품을 하면서 ‘서울 집’ 같은 여성적인 천 작업도 동시에 하셨죠. 이렇게 동시에 두 가지 모습을 보이는 건 작가에게 흔치 않은 일 같아요.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어요. 30대 초반에 뉴욕 그룹전에서 천 작업을 처음 선보였어요. <뉴욕타임스>의 한 기자가 전시 리뷰를 하면서 제 작품을 언급했는데, 저를 계속 ‘She’라고 쓴 거예요. 굉장히 유명한 평론가였는데, 천을 재봉한 것을 보고 그런 실수를 했더라고요.
당신 속에 내재된 여성성과 남성성은 어떤 모습으로 표출되나요? 일단 저는 아티스트다 보니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섬세한 남자겠죠. 예민한 남자고. 그러나 의사 결정을 할 때 단호하다거나, 아주 큰 스케일을 좋아하는 것, 과격한 운동을 좋아하는 면에선 꽤 남성적이죠. 그런 점만 빼면 아마 섬세한 쪽에 가깝지 않을까 싶네요. 근데 잘 모르지 뭐, 이런 건 아내에게 물어봐야 하는데.(웃음)
1 Some/One, 1998 Stainless steel military dog tags, Nickel plated coppersheets, Glass fiber reinforced resin, Rubber sheets 378¼ x 281½ x 85¼ inches
2 Floor, 1997-2000 PVC Figures, Glass plates, Phenolic sheets, Polyurethane resin Variable dimensions; Each module: 100 x 100 x 8cm (39.37 x 39.37 x 3.15 inches)
3 그의 천 작업은 색상과 재질이 하나로 통일된 까닭에 물질감과 무게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명상적이며, “마치 고스트 같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혹시 사람들이 당신의 작품에 대해 오해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네. 가장 흔히 하는 오해는 제가 지금 선보이는 작품들이 제 머릿속에서 방금 나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미 수년 전에 구상이 끝난 것인데 말이죠. 구상은 오래전부터 하되, 작품의 스케일이나 장소 등이 맞아떨어져야 작업을 진행할 수 있죠. 그런 면에서 오해가 상당히 많죠. 그렇지만 오해가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누군가가 말했어요. 현대미술 감상은 오해로부터 시작한다고.
그럼 이건요? 많은 언론이 한옥이 아파트에 추락한 작품 ‘별똥별-1/5’를 보고 “미대 유학을 위해 미국 땅에 첫발을 내딛은 순간을 하늘에서 뚝 떨어진 충격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기사를 썼어요. 그걸 보면서 정말 드라마틱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거 아니거든요.(웃음) 아니라고 항상 이야기해도 언론의 속성인지 실재보다 드라마틱하게들 표현하세요. 하늘에서 떨어져서 낯선 사람의 몸에 들어간 것 같은 어색한 느낌을 경험한적이 있다고 한 적은 있었어요. 그렇지만 미국 땅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에 그런 경험을 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왜 정정해달라고 하지 않으세요? 잘 아시잖아요? 한 번 인쇄되어서 세상에 나가면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아무리 설명해도 사람들이 계속 그렇게 써요. 그래서 ‘그럼, OK! 문화적 충격이 있다고 치고!’ 이러고 넘어가요. 전혀 없진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사실 ‘별똥별-1/5’를 잘 보면 한옥이 뉴욕의 아파트에 부딪힌 그 옆으로 쪼그라진 낙하산이 놓여 있어요. 낙하산은 연착륙을 위한 디바이스잖아요. 만약 제가 그 작품에 문화적 충격을 표현하고 싶었으면 그 디바이스를 왜 썼겠어요. 오히려 한옥을 더 파손시켰겠죠.
그렇지만 분명 집을 작품에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집, 나아가서 공간에 대한 관심의 씨앗은 한국에서 뿌렸어요. 다만 발아할 때 그 자양분을 미국의 교육 환경에서 기른 거죠. 굳이 집 작품에 관한 구체적인 계기를 찾는다면, 1960년대에 성북동 한옥 대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갈 때, 집 안과 밖의 서로 다른 풍경과 문화적 차이에서 온 충격이라고 할 수 있죠. 물론 미국에서의 삶도 작품에 영향을 끼친 건 사실이고요.
대부분의 작업이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겠지만 올해 세 살과 백일 된 딸들을 보면서 새롭게 영감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딸들의 탄생, 새로운 충격이라고 봐도 되는 걸까요? 어떤 면에서는요. 사실 지금 딸을 위한 돌(doll) 하우스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걸 작품이라고 해야 할지, 딸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재는요? 딱딱한 종이에요. 펼쳤다 접었다 할 수 있는 디자인을 구상 중이에요. 지금 살고 있는 런던의 아파트를 작은 스케일로 재현하는 거죠. 저는 그것도 집 속의 집이라고 생각해요. 딸이 집에서 그걸 펼쳐놓고 인형 놀이를 한다고 하면, 그거야말로 집 속의 집이니까요.
발표하실 건가요? 음, 만약 발표한다면 작품이 아니라 상품처럼 발표하지 않을까 싶어요.
영국에서 태어나 자라는 딸들에게 아빠로서 어떤 걸 가장 가르쳐주고 싶나요? 한국의 문화와 언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이 많아요. 그런 고민은 천 작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과도 비슷한 것 같아요. 제 작품은 새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상황에 적응하고 생존해야 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 많아요. 어떤 의미에선 도전이죠. 딸들에 대한 고민 또한 저에게는 새로운 형태의 도전이에요.
고민이 빠른 시간 내에 해결될 것 같은가요? 저는 어떤 것에 빨리 반응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이 해결책도 금방 나오진 않을 것 같아요.
이제 소위 미술관급 작가로 분류되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운도 따랐다고 생각하세요? 운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꽤 계셔서 그 부분도 생각해보긴 했어요. 그런데 운이 좋다는 게 무슨 의미예요?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졌다, 이런 거? 시대를 잘못 태어나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된 작가가 많잖아요. 그런 논지라면, 운이라기보다 사주나 운명에 가까운 것 같은데요.(웃음) 사실 운이 좋다고 말하기엔 저도 놓친 기회가 너무 많아요. 제가 사교성이 참 부족한 사람이거든요. 제가 하도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니 오죽하면 화랑 주인도 제게 농담으로 ‘네가 사교성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지금보다 잘되었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근데 저는 파티장보다 스튜디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좋은데 어떡해요.
시기상조지만 미술가에게도 은퇴가 있을까요?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더 이상 아이디어가 없다”며 은퇴를 이야기해서 화제가 됐죠. 물론 다시 작업을 하고 있지만. 하지만 당시 그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안타깝지만 작가가 작품으로 더 할 말이 없으면 그만두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어요. 아이디어의 부재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아이디어가 고갈되어 작품을 못할 정도라면 그렇게 선언할 만하죠. 근데 그게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작품을 왜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그 시점에서 던져봐야 할 것 같아요. 제 작품 활동은 제 존재와 직접적으로 결부되어 있어서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회사에서 때가 되어 은퇴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죠.
아직 아이디어의 고갈을 느껴본 적은 없죠? 당연히 있죠. 그런데 작품을 구상하다 보면 아이디어는 있으나 실현하지 못하는 작품이 너무 많아요. 어떻게 보면 그것도 고갈 아닌가요? 결국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데. 저는 오히려 아이디어의 고갈보다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없는 것에서 오는 괴로움이 더 견디기 힘들 때가 많아요.
당신의 작품은 갤러리에서, 아트 페어에서 결코 싸지 않은 가격으로 팔리고 있죠. 삶은 풍요로운가요? 물질적으론 안 풍요로워요. 대학원 다닐 때 거장 프랭크 스텔라와 만난 적이 있어요. 비싼 재료를 사용해 큰 스케일의 작품을 하는 작가였죠. 그가 말했어요. 작품 활동을 하는 데 학생 때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고. 지금에서야 그 말을 이해하게 됐어요. 학생 때에 비해 지금 많은 돈을 벌었지만 새로운 작품을 하는 데 그만큼 돈을 쓰기 때문에 같은 구조예요. 수입과 지출의 규모만 커졌지, 허덕이는 건 똑같아요.(웃음)
미술계를 떠나 제2의 직업을 갖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미술계를 떠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굳이 제2의 직업을 가져야 한다면 장난감을 만들 것 같아요. 아! 의상디자인이나 애니메이션, 영상 제작도 할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요.
리먼 머핀 홍콩 개인전 이후 잡힌 스케줄이 있나요? 9월에 리먼 머핀 뉴욕에서 개인전을 해요. 뉴욕은 9월에 아트 시즌이 시작되기 때문에 9월 전시가 갤러리엔 매우 중요해요. 이번엔 드로잉에 중점을 둔 전시를 준비 중이고, 드로잉만 모은 책도 같이 출간할 계획이에요. 개인적으로 굉장히 의미 있는 전시가 될 것 같아요. 그리고 같은 9월에 텍사스 오스틴에서도 큰 개인전이 있어요. 2014년은 미국에서의 전시와 프로젝트가 많죠.
혹시 그 외에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색다른 프로젝트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지금 막 시작한 프로젝트가 있어요. 진짜 집을 디자인하는 프로젝트예요. 사람이 사는 집, 건축이죠. 초기 단계라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어서 미안해요. 대신 장소는 말씀드릴게요. 런던이에요.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사진 이주연(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