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청아, 그리고 배우 이청아

MEN

스타에서 배우가 된 이청아의 그늘과 배우의 삶에 대하여.

시퀸 장식 셔츠와 그레이 재킷 Bottega Veneta, 와이드 팬츠 Dries Van Noten, 스틸레토 펌프스 Stuart Weitzman.

하이틴 문화가 있었다. 10대와 20대의 사랑과 꿈 같은 걸 그린 서사였다. 주로 풋풋한 로맨스를 그렸는데, 그 백미는 당연히 여주인공이었다. 귀엽고 예쁜, 그리고 어딘가 엉뚱한 그녀의 사랑 이야기는 온전히 그들의 언어로 채워졌다. 주류 문화는 아니어서 근근이 제작하고 소소히 소비됐다. 2002년에 개봉한 <늑대의 유혹>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소수의 문화가 뉴스에 보도될 만큼 대세로 떠올랐다. 강남과 종로 일대 영화관은 주말이면 여고생과 대학교 신입생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 영화의 히로인이 이청아였다. 강동원과 조한선이란 당대의 청춘 스타 사이에서 그녀는 안쓰럽지만 귀엽고, 밝은 정한경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스타가 됐다. 시스템이 만들었건, 시대가 발견했건 그녀는 스타로 배우 인생을 시작했다(물론 그것에도 재능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그런 기회가 주어지는 건 아니니까). 여기까지가 흔한 스타의 탄생 스토리다. 정작 흥미로운 건 그 이후다. 그녀에게 쏠린 이목의 온도는 금세 식었다. 팬들도 성인이 되며 환호를 멈췄다. 그래도 그녀는 계속 연기를 했다. 첫 작품부터 받은 스포트라이트가 희미해질수록 열망은 더해갔다. 그 빛이 온전히 자신이 이룬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한국의 대중문화 산업은 세계적이다. 특히 ‘스타를 배출하는 능력’은 탁월하다. 그 기획의 주연들은 대체로 시대가 변하며 자연스레 소멸된다. 대체로 대중에게 깊이 각인된 이미지를 넘어서지 못해서다(물론 성장할 환경조차 주어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녀는 데뷔부터 주연을 맡았다. 그리고 배우 인생 중간중간에 단역과 조연을 오갔다. 작은 규모의 작품에 출연하고 연극 무대에 올랐다. 그런 선택이 어렵지는 않았다. 이청아는 ‘연예인’이 아니라 ‘배우’가 되고 싶었으니까. 국내에서 스타로 시작해 배우로 성장한 배우는 흔치 않다. 대체로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희미해진 빛을 못 견뎌 무관한 삶을 택한다. 이청아는 자신을 둘러싼 선입견과 각인된 이미지를 벗으려 무던히 노력했다. 작품마다 이전보다 나은 자신을 꿈꿨다. 그러한 성장통이 그녀에게 그늘을 만들었다. 그리고 배우가 됐다. 전처럼 화려하거나 구름 떼 같은 군중은 없어도, 지금의 스포트라이트는 온전히 그녀가 일군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이청아가 더욱 궁금하다.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이뤄낼 연기가 기대되는 이유다.

블랙 니트와 팬츠 Yohji Yamamoto, 스퀘어 시계 Hamilton.

드라마 를 막바지 촬영 중이다.방송이 코앞이라 정신이 없다. 원래는 사전 제작이 아니었다. 방영이 밀리다 100% 사전 제작이 됐다. 늘 피드백을 받으며 연기했는데 그게 없으니 긴장된다. 내 손을 떠난 뒤에 반응이 올 테니까. 좋은 것도 있다. 눈치 보지 않고 밀고 나갈 수 있는 것.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을 마치고 바로 다음 작품을 시작했다. 강행군이다.요새 현장 환경이 좋아져서 무리는 없다. 드라마 막바지에 잠을 못 자는 건 다반사였다. 지금은 스태프들의 작업 시간이 정해져 있어 여유롭다. 한 주에 평균 2일 정도 휴일도 있다. 건강이나 집중력 유지 측면에선 좋다. 말로만 듣던 할리우드 시스템과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대신 책임감이 늘었다. 이젠 기다리면서 준비할 시간이 없으니까. 완벽한 상태로 현장에 도착해야 한다.

조민수 씨가 예전에 인터뷰에서 “NG 때마다 돈 나가는 소리가 들린 필름 시대, 그땐 모두가 프로였다”는 말을 했다. 대선배만큼은 아니지만, 현장에 오래 있었다. 변해서 아쉬운 것도 있을 거다. 배우 인생 중 반은 필름 작업이었다. 당시 경험은 배우로서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다른 얘긴데, 장비가 좋아져서 아쉬운 게 있다. 내가 현장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밤 신을 준비할 때다. 전엔 조명을 설치하는 데에만 2시간 이상 걸렸다. 해가 지고 조명빛이 공간을 쪼개는 걸 보면 배우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모두 빠르다. 그런 걸 느낄 시간이 없다. 그게 아쉽다.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드라마 두 편과 영화, 거기에 예능까지. 쉼표가 필요할 때인 것 같다.지난 작품이 끝나고 회사에서 꽃을 선물했는데 카드에 “앞으로 더 고생합시다”라고 적혀 있었다. 너무 화가 나서 보관 중이다.(웃음) 난 내가 일중독이라고 생각했는데 더한 게 있더라. 지금은 블랙홀에 빠진 느낌이다. 그래도 얻은 게 있겠지. 성장도 했을 거고. 그거면 됐다. 의도치 않게 드라마가 사전 제작돼서 방영 땐 느슨하다. 그때 쉬면 된다.

지금이 이청아의 제2의 전성기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그 전성기라는 게 사람 참 헷갈리게 한다.(웃음)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레슨 2>나 < 해빙 >을 할 때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저 내 페이스에 맞춰 스텝을 밟고 있다. 그걸 그렇게 평가해주면 감사하다. 우리 일이라는 게 많은 사람에게 닿았을 때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이번 드라마가 방영되고 제2의 전성기라는 말을 듣는다면 기쁠 거다.

대중이나 업계에서 찾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 감사한 일이다. 누군가 배우 이청아를 찾아준다는 건 내게 중요한 일이다. 힘들어 포기하고 싶다가도 그게 날 버티게 한다. 아직 쓰임이 있는 것엔 이유가 있겠지. 연기 잘하고 멋진 배우가 많은데도 날 선택한 데엔 이유가 있겠지. 그럼 내가 밥값을 해야지. 그런 마음으로 연기한다.

내 또래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이청아 브로마이드나 사진이 인쇄된 부채 같은 것도 있었다.아직 그런 게 팔릴 때였다. 많은 남자가 여자친구 손에 이끌려 <늑대의 유혹>을 보러 갔다.(웃음) 영화 속에서 남자 관객이 감정이입 할 게 나밖에 없었으니까. 미안한 마음이다.

나도 여자친구 손에 이끌려 간 남자 중 한 명이었다. 코엑스 메가박스 앞은 늘 난리였다. 영화 상영 도중 소리를 지르는 관객도 있었다. 멋모르고 데뷔했다. 무서운 것도 없고 떨어져도 아픈지 모를 때다. 그땐 모든 영화가 그렇게 잘되는 줄 알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있다. 부산의 시사회 현장에 갔는데, 극장앞에 팬들이 구름 떼처럼 모여 있었다. 수영하듯 사람들을 헤치며 무대로 갔다. 그래서 영화 시사회는 원래 사람이 그렇게 많은 줄 알았다.(웃음) 그게 참 어려운 일인데, 그땐 몰랐다.

이청아가 아마 한국 영화의 마지막 하이틴 스타 아닐까?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그땐 하이틴 로맨스 영화가 많았거든. 교복 입은 학생들이 영화관에 많이 왔다. 세상이 변한 거겠지. 관객도 변했고. 한동안 로맨틱 코미디도 뜸했다. 요샌 그런 수요를 웹 드라마가 메우더라.

배우 이청아에게 <늑대의 유혹>은 여러 의미를 지닌다. 며칠 전 현장에 놀러온 다른 배우의 동생도 그 이야기를 꺼냈다. 또래였다. 내겐 정말 여러 의미가 있다. 이청아라는 이름을 알렸으니까. 아직도 명절이면 김태균 감독님에게 ‘내가 지금까지 배우로 살게 해주신 감사한 감독님’이라고 인사한다. 사실 난 그 이후 대단한 히트작이 없는 배우가 아닌가. 가끔 내 인생에서 <늑대의 유혹>이 최고 히트작으로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조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도 괜찮다.

매번 새로운 역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에겐 또렷한 이미지가 부담일 수 있다.그 고민은 5년 전에 끝났다. 내 이름 위에 다른 걸 덮고 싶다는 생각. 그거 오만이더라. 나 혼자서 되는 일도 아니다. 좋은 인연을 만나야 한다. 물론 나도 잘해야 되고. 배우는 결국 대중에게 기억되기 위해 연기한다. 그걸 이뤄준 작품이라 사족을 붙이기 싫다. 다만, 그걸 그때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은 한다. 영화가 개봉하고 인생이 변했다. 세상에 알려졌으니까. 그것도 또래들 위주로. 삶에 많은 영향을 줬다. 만약 어떤 절차를 밟았더라면 더 좋았을 거다. 난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늑대의 유혹> 이후 1년 6개월을 쉬었다.

한동안 주목받는 배우가 아니었다. 데뷔 때를 생각하면 심적으로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항상 다음 작품은 터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괜찮았다.(웃음) 내가 날 버티는 건 할 수 있는데, 다른 부분이 어려웠다. 나는 주인공 타이틀을 일찍 받았다. 연기는 물론 흥행까지 책임져야 하는 자리다. 특히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레슨 2>가 벅찼다. 상대 배우도 신인이고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지독히 열심히 했다. 연기든 뭐든. 영화 홍보 사진도 잘 찍고 싶었다. 그래서 매달 해외 잡지를 여섯 권씩 봤다. 영화에 누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초조할 땐 되레 잘 안 되더라. 그냥 그런 시기가 있는 것 같다.

데뷔한 지 20년이 다 되어간다. 그 긴 시간을 버티게 해준 건 무엇인가? 난 연기 말곤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사업 같은 것도 안 하고 여유가 없어 투자도 안 한다. 금융 일을 하는 동생과 어제 대화를 나눴는데, 난 정말 주변머리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거 말곤 할 줄 아는 게 없다. 일을 쉴 땐 책 보는 게 다다. 그때도 ‘아, 이 인물의 감정이 그때 대본에서 그거였구나’라는 식으로 일과 연관된다. 내 삶의 모든 건 연기와 이어져 있다. 그래서 딴짓하지 않은 것, 그게 내가 아직까지 이 일을 할 수 있는 힘이다.

가죽 테일러드 재킷과 악어 가죽 패턴 와이드 팬츠 8 by YOOX, 포인티 토 펌프스 Stuart Weitzman.

직업으로서 배우는 어떤가? 내가 재능 있는 배우인진 모르겠다. 만약 내게 ‘기술적으로 훌륭한 연기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편차가 큰 불안정한 기술자’라고 답할 거다. 대신 잘하는 게 있을 거다. 가령 난 내 것만 생각하지 않는다. 작품 전체를 보려 한다. 책 보는 걸 좋아해 또래보다 서사를 보는 눈이 있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연기가 아닌 연출을 전공했다. 내 연기라는 파편적 부분보단 전체의 흐름 속에 녹아들려 한다. 그래서 감독님과 직접 대화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배역을 따낼 자신은 있다. <해빙>의 미연 역은 신인이 하면 너무 좋은 캐릭터란 생각을 했다. 그래서 감독님을 만난 자리에서 왜 나를 선택했는지 물었다. 감독님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고 했다. 제작자 의견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럼 제가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었다. 감독님은 대본을 보며 캐릭터 이야기나 하자고 했다. 나를 배우가 아닌 그냥 연예인으로 본거다. 그 선입견이 싫어서 더 악착같이 했다. 배우 생활하며 하고 싶은 작품이면 엎어져도 그냥 포기한 적은 없다. 난 배우가 천직이라고 하기엔 갖추지 못한 게 너무 많다. 그래서 집중하고 인내한다. 그리고 상당히 끈질기다.(웃음)

끈기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자신감이나 가능성 혹은 이청아만의 무기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아니면 이 일을 너무 사랑한다든지. 이 일을 끔찍이 사랑하지는 않는다. 어떨 땐 너무 싫다. 이런 오기는 있다. ‘그래도 끝내주는 대표작 하나는 만들어놓고 떠나야지.’ 그게 배우로서 자존심이라고 본다. 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인지하고 있다. 남의 말을 잘 이해하고 영민한 구석이 있다는 것. 그래서 내가 부족한 걸 정확히 짚어주는 사람을 만나면 내 구멍이 메워지겠지. 그러니까 내 장점과 단점을 정확히 아는 감독을 만나서 좋은 대본으로 연기한다면, 어쩌면 한 번쯤 아까 말한 전성기라는 걸 누려볼 수 있지 않을까? 그 아쉬움과 열망이 나로 하여금 지금도 연기하게 한다.

내공도 꽤 쌓였겠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오라가 있다.그거 쌓였다 싶다가도 다시 보면 제로다. 현장은 늘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배우로 오래 살았다. 그 삶은 어떤가?배우로 살아간다는 건 유명세를 견디는 거다. 남을 의식할 때, 본인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지는지 알고 있나? 남들이 나를 지켜보는 것, 그건 좀처럼 내가 나로 있을 수 없게 한다. 그리고 느끼지 않아도 되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모든 면에서 평가받는 삶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적당한 거리감이 중요하다. 휩쓸리지 않는 것. 나는 스물여덟 살때까지 차가 없었다. 편한 게 좋아 트레이닝복을 자주 입었다. 그래선지 사람들이 잘 못 알아봤다. 20대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아마 “여배우가 그러면 안 된다”와 “이청아 씨 닮았어요”일 거다.(웃음) 배우도 그냥 한 명의 사람이다. 그걸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 그냥 직업 속 한 부분에 그런 화려해 보이는 것이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SNS를 보면 대중과의 소통이 자연스럽다. 아주 공식적인 계정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 봐서 부담스럽지 않을 것들을 올린다.

요새 SNS하기 무섭지 않나? 소통의 창이 되레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꼭 SNS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사회가 격앙되고 기괴해지는 것 같다. 그런 생각도 한다. 이게 앞으로 나올 세대의 특징이라면 어떻게 하지? 그때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래서 젊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한다. 가능하다면 얕게나마 그들을 이해하고 싶다.

아티스트를 지향하나? 그렇다. 우린 모두 아티스트다. 물론 상품이기도 하지만, 예술 분야에 포함된 상품 아닌가? 아티스트라 말할 수 있으려면 자신이 생산할 수 있는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재해석이건 완전한 생산이건 자신의 것이 중요하다. 오퍼레이터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얼굴이 변했다.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해야 할까? 성숙해진 것 같다.전에 어떤 선배가 “눈알이 바뀌었다”고 했다.(웃음) 내가 30대에 접어들었을 때다. 아마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일 거다. 그게 나라는 사람의 톤을 툭 떨어뜨렸다. 그때 결심한 게 하나 있는데, 쓸데없는 데 쓰지 말자는 거다.

자신을? 모든 쓸데없는 것을 위해 애쓰지 말자. 그것이 뭐가 됐건. 그런 자리가 있다. 내가 아무리 애쓰고 변명해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사라지지 않을 자리. 20대 때 오해를 많이 받았다. 인터뷰를 하면 미디어에서 항상 지적을 했다. 말이 짧거나 무뚝뚝하다고. 물론 내가 그렇게 다정한 사람은 아니지만(웃음) 그땐 그게 인터뷰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편안해 보여야 다들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그걸 그때 배웠다.

연기도 변했다. 이건 어떤 면에서 칭찬인데, 그늘이 생겼다. 맑기만 하던 캐릭터에 음영이 생겼다. 난 원래 그늘진 사람이다. 그런데 어릴 땐 사람들이 다 밝은 것만 하라고 했다. 요샌 내게 맞는 걸 주더라. 첫 회사 계약이 끝날 즈음 어머니에게 연기를 그만하고 싶다고 했다. 나와 다른 성격의 배역을 연기하는 게 힘들었다. 그때 어머니가 “세상에 자기 성격과 맞는 역을 연기하는 배우는 없다. 그건 정말 복”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지금 복을 받는 중인 거지.(웃음)

<다시, 봄>에 출연한 이청아를 흥미롭게 봤다. 배우가 연기할 때 연출자의 개입이 거의 없더라. 혼자서 극을 끌고 나가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설정인데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책을 받을 때부터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임감이 너무 큰 역이었다. 고민하다 요새 여배우가 홀로 영화를 끌고 나가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기회가 내게 얼마나 주어질까 싶어 출연을 결심했다. 감독님을 서울숲에서 처음 만났다. 가만히 앉아 이야기하는 게 싫어 걸으며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나중에 들었는데 4시간이나 걸었다더라.(웃음) 그만큼 생각이 많은 작품이었다. 영화의 규모는 나중 문제였다.

목소리에도 놀랐다. 일상적 톤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적인 목소리더라. 다큐멘터리에도 잘 어울릴 것 같다. 듣는 맛이 있다. 재미없는 목소리라 그렇다. 높낮이도 없고 예쁜 목소리도 아니다. 흔히 교양 프로그램에 어울리는 목소리라고 주위에서 말한다. 그만큼 재미없다는 뜻이겠지.

외모건 연기건, 이청아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다. 내면에서 벌어진 일을 설명해줄 수 있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게 컸다. 급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시진 않았다. 병석에 오래 누워 계셔서 이별할 시간은 있었다. 어머니는 따뜻한 사람은 아니었다. 한번은 대학 친구들과 압구정에 영화를 보러 갔다 어머니와 마주친 적이 있다. 놀라서 여기서 뭐 하느냐고 물으니 건조하게 “영화 보러 왔다” 하곤 갈 길을 가셨다.(웃음) 그만큼 무뚝뚝한 분이었다. 어릴 땐 그걸 질타했다. 그런데 커서 보니 나도 그렇더라. 지금 아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좋은 친구가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 런던에 3개월 정도 있었다. 그때의 경험이 내 시야의 각도를 약간 비틀었다. 전에 보지 못한 세상을 조금은 볼 수 있게 됐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함께 촬영한 스태프 중 한 명이 전에 이청아에 대해 이야기했다. 현장에서, 그리고 일과 후에 가장 열심히 한 배우로 기억하더라. 무식했던 시절이다.(웃음) 요령도 없고 열심히 하는 것 말곤 방법이 없었다. 나는 그렇게 열정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연기에서는 다르다. 배역을 위해 무언가 배울 땐 능력이 3배 정도 늘어나는 것 같다. 언어나 무술같이 몸으로 하는 것도 그렇다. 이번 드라마에서도 첫 등장이 몸이 많이 보이는 신이었다. 그래서 고민했다. 이 인물에게 어울리는 몸이 뭘까? 어떤 인물일까? 성격에 비추어보건대,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일 거다. 그래서 한 달 보름 동안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을 했다. 덕분에 건강과 탄탄한 몸을 얻었다.(웃음) 작품을 할 때 제한이 걸리고 해내야 하는 게 있을 때 신난다.

평소엔 어떻게 지내나? 연기 말고 관심이 있는 분야는 어떤 것인가? 나는 참 재미없는 사람이다. 책 읽고, 미술 작품 보는 게 다다. 어떤 작가를 좋아한다기보단 어떤 작품이 좋다. 런던에 있을 때도 책을 사거나 공연 관람, 뮤지엄 멤버십 그런 곳에만 돈을 썼다. 최근엔 에드워드 호퍼가 좋다. 책은 여전히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고.

무엇이 이청아를 행복하게 하나? 오늘 화보 촬영 덕에 오랜만에 식구들이 모였다. 그들과 함께 차를 타고 올 때 행복했다. 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어디에 가주는 것. 그리고 오늘 비가 와서 행복했다. 아까 내가 출연한 작품을 봤다고 말해줬을 때도 행복했다. 난 항상 행복하라는 말을 싫어한다. 내게 행복은 늘 지속되기보단 잠깐 동안 반짝이는 거다.

앞으로 10년 뒤 이청아는 어떤 배우가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10년 뒤? 그럼 내가 몇 살이지? 아직 젊잖아.(웃음) 그땐 내게 붙는 수식어가 ‘산만한 배우’가 됐으면 한다. 아마 그게 지금보다 원래의 나와 더 가까울 거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기간 동안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인지? 이제껏 뻥만 친 사람들 얼굴 보러 다니는 것(웃음), 그리고 드라마가 잘돼서 더 많은 작품에서 내가 하고 싶은 연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사진 최민석   스타일링 구원서   헤어 주희(꼼나나)   메이크업 은주(꼼나나)   장소 협찬 르메르디앙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