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토록 당연한 여성이란 주제

ARTNOW

뉴욕 할렘에 자리한 가다 아메르의 스튜디오. 에로틱한 이미지를 묘사한 스케치, 화려한 색감의 실타래와 바늘, 아크릴물감과 새하얀 캔버스가 가득하다. 여성의 정체성을 탐구해온 그녀의 작품에선 당당함 속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무엇이 그녀를 강하면서도 유연하게 만드는걸까.

뉴욕 할렘의 작업실에서 가다 아메르

The Blue Bra Girls, 스테인리스스틸, 182.9×157.5×137.2cm, 2012
Courtesy of Kukje Gallery, Photo by Guillaume Ziccarelli

현재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한국에도 수차례 소개된 가다 아메르를 설명하는 키워드 중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여성 작가’라는 점이다. 이집트와 프랑스를 거쳐 뉴욕으로 오기까지 환경의 변화가 그의 작업에 영향을 미쳤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그 자신의 성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그는 캔버스에 실로 추상적인 선을 만들고 아크릴물감으로 형태를 그려 넣는다. 언뜻 보면 반복적으로 그린 추상적 이미지 같지만 실제는 포르노 잡지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으로, 남의성 전유물로 여기던 소재를 바느질이라는 여성 고유의 작업을 통해 예술로 승화시킨다. 1990년대 초부터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그는 1990년대 중반 미국으로 옮긴 뒤 점차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확장해나갔다. 2년 전 국제갤러리의시 전 <그녀에 대한 참조>에서 자수 회화와 함께 소개한 신작은 금속 선의 율동감이 돋보이는 대형 조각 작품. 가다 아르메는 조각을 통해 이집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문제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드러냈다. 무바라크 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외치던 시위대의 한 여성이 경찰에게 구타당하다 옷이 벗겨져 파란 브래지어가 노출된 장면을 영상을 통해 접하고 ‘파란 브래지어의 소녀들’이란 작품을 제작한 것이다. 작품 속 여성은 당시 현실과 달리 당당히 일어나 정면을 바보라는 모습이다. 용기 있는 여성의 모습에 찬사를 보내는 작품은 작가의 단호한 절제와 깊은 공감에서 비롯된다.

Portrait of Girl on White – RFGA, 캔버스에 자수, 아크릴물감, 겔, 106.7×91.4cm, 2014
Courtesy of Kukje Gallery, Photo by Christopher Burke

Lady in Pink, 캔버스에 자수, 아크릴물감, 겔, 106.7×81.3cm, 2014
Courtesy of Kukje Gallery, Photo by Christopher Burke

The Girl with the Blue Ribbon – RFGA, 캔버스에 자수, 아크릴물감, 겔, 127×152.4cm, 2014
Courtesy of Kukje Gallery, Photo by Christopher Burke

당신은 지속적으로 ‘여성’을 탐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처음 여성을 주제로 작업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인가?
어린 시절 난 늘 ‘여성’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는 아이였다.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 내가 태어난 나라 이집트의 문화가 성별 구분이 매우 뚜렷하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 여러 분야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왜 존재하는지 질문을 던진 것이 그 시작인 것 같고, 아주 어릴 땐 남자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다. 내 작품에 드러나는 여성에 대한 관심은 작품의 테마라기보다 자연스레 내면에서 진화해온 화두라고 말하고 싶다. 내겐 언니와 2명의 여동생이 있는데 어린 시절엔 할머니와 한 집에 같이 살아 집에 여자가 6명이나 되고 남자는 아버지밖에 없었다. 그런 어린 시절의 환경이 여성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한 건 아닐까 생각한다.

이집트에서 태어났지만 열한 살이 되던 해에 부모님과 함께 프랑스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2 년 전 국제갤러리 전시에서 소개한 작품 ‘The Blue Bra Girls’가 이집트 여성이 당하는 물리적 폭력을 형조화한 것처럼, 이집트 출신이라는 사실이 현재의 작업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사실 내 출신 배경이 사람들에게 괜한 고정관념을 불러일으킨다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내가 이집트 출신 아티스트라 캘리그래피를 잘할 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유럽에서 자라며 공부한 내게 이런 선입견은 편협하게 들린다. 물론 내 뿌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무의식적 영향력은 있을 것이다. 조각을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하면 할수록 조각이 자연스레 편안함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알다시피 조각은 이집트에서 천만 년의 역사를 지닌 예술의 한 형태다. 난 한 번도 조각가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문득 내 안에 내재된 뿌리와의 연결 고리 같은 것을 느낀 적이 있다. 소름이 돋은 순간이다.

얼마 전에는 ‘중동 미술의 현재’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궁금하다. 또 이 주제에 대한 당신의 생각도 듣고 싶다.
지난 9월, 허시혼 박물관과 조각 공원(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의 초대로 참석한 자리였다. 뉴욕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의 아트 디렉터 글렌 로리(Glenn Lowry), 스미스소니언의 아시아 미술관 프리어 앤 새클러(Freer & Sackler)의 수석 큐레이터 마수메 파라드(Massumeh Farhad)와 함께 진행한 토론회인데 흥미로운 대화가 오갔다. 이곳 뉴욕에 비해 비주류로 일컬어지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아티스트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그들이 더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주요 예술 기관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토론했다. 비주류에 속하는 중동 지역에는 현재 재능 있는 젊은 작가가 쏟아져 나오고 있고, 이제 세상이 그들의 작품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중동 지역의 성장하는 현대미술과 그 주체인 작가들을 지원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집트와 프랑스를 거쳐 현재 뉴욕에서 작업하고 있는데, 이 도시는 당신에게 어떤 느낌인가? 왜 뉴욕에 자리 잡았는지 궁금하다.
나는 피카소와 마티스 등 유명한 예술가가 거쳐간 프랑스 니스에서 자랐지만 그곳은 현대미술가인 내게 그다지 이상적인 곳이 아니었다. 보스턴 미술관 대학교(School of the Museum of Fine Arts)에서한 학기 동안 공부할 기회가 있어 처음 미국에 왔는데, 너무 기술적인 것만 가르친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프랑스로 돌아갔다. 하지만 항상 세계적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세계 문화 예술의 중심지인 뉴욕으로 오기로 결정했다. 뉴욕에서 둘러 본 여러 미술관, 갤러리 등이 나에게는 큰 동기부여가 됐다. 처음엔 뉴욕에서 예술가로 사는 것이 쉽지 않았고, 장학이금나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줄줄이 퇴짜를 맞았다. 그러다 1996년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레지던시에 입주하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뉴욕에선 현재 작업실이 있는 할렘에서 오래 지냈다.

The Words I Love the Most, 블랙 파티나와 브론즈, 152.8×152.8×152.8cm, 2012
Courtesy of Kukje Gallery

Baisers #1, 브론즈에 도금, 57.2×40.6×50.8cm, 2011-2012
Courtesy of Kukje Gallery

The Heart, 스테인리스스틸에 페인팅, 85.7×107.3×83.8cm, 2012
Courtesy of Kukje Gallery

당신의 브론즈 조각 작품은 규모가 거대하지만 수많은 선이 모여 복잡한 형상을 완성한다. 이런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
조각 작품은 매우 세심한 과정을 거친다. 페인팅 작업을 주로 하는 이 스튜디오 외에 금속으로 조각품을 만드는 작업실이 따로 있다. 먼저 디자인을 한 뒤 레진으로 원형을 만드는 것이 1단계 작업이다. 내가 만든 디자인으로 원형을 제작해주는 이가 있는데, 크기가 크고 디테일이 많은 디자인일수록 세심함을 요하는 까다로운 작업이다. 원형이 나오면 색을 칠하고 유점토를 발라 레진으로 모형을 만들며, 이후에 주물 작업을 거쳐 작품을 완성한다.

조각 작품에 앞서 당신은 화폭에 바느질을 하는 화가로 알려졌다. 바느질을 통해 드로잉을 하는 ‘자수 회화’를 만들어가는 작업은 어떻게 시작했는가?
프랑스에서 예술학교에 다닐 때 아트 클래스에는 여학생이 별로 없었고, 미술 교과서에서도 여성 화가나 아티스트의 이름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내가 새로운 기법으로 여성적 매체를 활용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 내 작품을 본 사람들이 이게 과연 여성 작가의 작품인가, 남성 작가의 작품인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페인팅과 실의 결합으로 탄생한 일련의 작품 시리즈로 이름이 알려졌지만 사실 바느질은 전 세계 어디서든 통하는 작업이고, 특히 꼼꼼함이 요구되는 여성의 매체로 각인되어 있다. ‘여성’이라는 주제를 끌어내기에 이보다 좋은 소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 주제 속에서 당신이 꾸준히 화두로 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현대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성차별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이다. 역사적으로 여성은 제대로 된 예술 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작가로 활동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랐다. 현재 알려져 있는 몇몇 여성 작가는 정식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다. 이런 남성 지배적 환경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무척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현대미술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정확한 숫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옥션에서 남성 작가와 여성 작가의 작품 가격은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그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캔버스에 표현하는 이미지는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받나?
남성들이 보는 포르노그래피 잡지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포르노그래피의 이미지를 여성인 내 관점으로 캔버스에 풀어내는 작업이다. 나는 미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금기시하는 섹슈얼리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최근 관심을 갖고 있는 여성에 대한 이슈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
예술 작품이 거래되는 미술 시장에서 남성과 여성 작가 사이의 균형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남성 작가의 작품 가격이 훨씬 높고 여성 작가의 작품보다 거래도 활발하다.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지만 앞으로 좀 더 영향력있는 여성 아티스트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아트 컬렉터, 갤러리와 예술 기관, 큐레이터와 갤러리스트, 언론과 미디어 등에서 좀 더 관심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진정으로 ‘용기 있는 여성’은 어떤 모습인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울 줄 아는 여성이다. 나는 페미니즘 작가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권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사회에 만연한 여러 제도나 관념이 여성을 더욱 수동적으로 만들고, 자연스럽게 더욱 게으른 사람으로 만든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알고, 자신의 권리를 지킬 줄 아는 여성이 되어야 한다. 오랜 시간 이어져온 것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다음 세대를 제대로 교육하고 작은 것이나마 실천에 옮기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다음 프로젝트는 어떤 작품일지 궁금하다.
지난 2년간 세라믹을 주요 소재로 조각품을 만드는 데 열중해왔는데 당분간은 금속 조각에 몰두할 생각이다. 그리고 캔버스에 텍스트를 넣고 이를 바느질로 마무리하는 새 시리즈를 작업하고 있다. 내년 4월에 독일에서 전시회를 개최하고 2017년에는 금속 조각품을 가지고 다시 한국을 찾을 계획이다.

당신은 ‘예술’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작품을 통해 아름다움, 사랑, 기쁨 등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마음으로 느끼는 즉각적인 것, 추상적이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그 원동력이 바로 예술의 본질이 아닐까.

2015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연말을 어떻게 보낼 예정인가?
한동안 너무 바쁘게 지냈다. 연말에는 이집트로 떠날 계획이다. 카이로에서 남동쪽으로 가면 홍해를 품은 아름다운 도시가 있는데, 그곳에서 바다를 보며 조용히 휴가를 보내고 싶다.

작업실에서 자수 작업을 하고 있는 가다 아메르

가다 아메르
1963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났다. 외교관 아버지 덕분에 해외여행을 자주했고 1974년 프랑스로 이주했다. 수많은 그룹전과 개인전을 거쳐 1999년 제48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 유네스코상(UNESCO Prize)을 수상했다. 2000년에는 부산비엔날레(PICAF)와 광주비엔날레에 참가했고, 국제갤러리에서 세 차례 전시를 통해 한국 관람객을 만났다. 현재 뉴욕에 살면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자수회화 작품을 주로 작업하는 할렘의 스튜디오 풍경

35 Words of Love, 브론즈, 61cm(지름), 2011
Courtesy of Kukje Gallery

In Red and Pale – RFGA, 캔버스에 자수, 아크릴물감, 겔, 94×106.7cm, 2013
Courtesy of Kukje Gallery, Photo by Christopher Burke

You are a Lady, 캔버스에 자수, 아크릴물감, 겔, 182.9×162.6cm, 2015
Courtesy of Kukje Gallery, Photo by Christopher Burke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
진행 이치윤(뉴욕 통신원) 사진 민혜령(인물,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