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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스위스적인 경험

LIFESTYLE

산과 호수의 나라 스위스에 다녀왔다. 세계 유명인사의 힐링 플레이스로 각광받는 뷔르겐슈토크 리조트에선 왕이 된 기분을 느꼈다. 대표 관광도시 루체른에선 낭만을, 거친 자연을 품은 필라투스산에선 고독을 즐겼다. 직접 보고 느낀 중부 스위스의 다채로운 매력을 전한다.

중세풍의 매력이 돋보이는 관광도시 루체른.

12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취리히 공항에 도착했다. 10월 중순, 스위스의 아침 날씨는 입김이 나올 정도로 쌀쌀했다. 이번 출장은 뷔르겐슈토크 리조트(Burgenstock Resort)의 재개장 소식을 전하기 위해 온 것이다. 당장 오후부터 프레스 일정을 소화해야 했기에, 감회에 젖을 새도 없이 스위스 중부 도시 루체른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까지는 약 1시간. 새파란 하늘과 초록 언덕, 호수의 잔잔한 물결이 어우러진 동화 같은 풍경을 넋 놓고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루체른에 도착했다. 기차역 바로 앞에 위치한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이어 리조트 전용 퍼니큘러로 산을 오르니 베일에 싸여 있던 뷔르겐슈토크 리조트가 그 우아한 모습을 드러냈다.

뷔르겐슈토크 호텔로 연결되는 리조트 전용 퍼니큘러.

새로운 역사의 시작, 뷔르겐슈토크 리조트
뷔르겐슈토크 리조트는 루체른 호수의 아름다운 경관이 발아래 펼쳐지는 뷔르겐베르크(Burgenberg)산 위에 위치한다. 이곳의 역사는 오래됐다. 지난 1873년 창립자 프란츠 요제프 부허(Franz Josef Bucher)와 요제프 두러(Josef Durrer)가 세운 그랜드 호텔(Grand Hotel)이 그 시작. 환상적인 자연경관, 그리고 당대로서는 혁신 기술로 만든 퍼니큘러와 유럽에서 가장 높은 야외 엘리베이터 하메치반트 리프트(Hammetschwand Lift)는 유럽 상류층과 세계 각국의 유명인사를 끌어모았다. 영화배우 찰리 채플린과 소피아 로렌,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 인도 총리 인디라 간디 등이 이곳을 방문한 대표적 인물. 2011년 본격적인 레노베이션을 시작한 이곳은 올 8월부터 임시 개장, 내년 5월 그랜드 오픈을 앞두고 있다.

1 호수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뷔르겐슈토크 호텔 룸.   2 호수에서 헤엄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알파인 스파의 아웃도어 풀.

뷔르겐슈토크 리조트의 숙박 시설은 크게 팰리스 호텔(Palace Hotel)과 발트 호텔(Wald Hotel), 뷔르겐슈토크 호텔(Burgenstock Hotel)로 나뉜다. 기자들이 머문 곳은 지난 9월 개장한 뷔르겐슈토크 호텔. 미국산 월넛으로 만든 가구와 이탈리아 대리석 등 최고급 자재로 완성한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창문 아래 펼쳐진 호수의 아름다운 경관이다. 호수 반대편에는 투숙객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용 테라스가 있고, 12월이면 광장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 등 다채로운 행사를 구경할 수 있다.
프레스 일정이 늦춰졌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리조트 안에 위치한 절벽 산책길 펠젠베크(Felsenweg)에 가기 위해서다. 산책길에 들어서기 직전, 작고 하얀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이 결혼식을 올린 예배당이다. 아쉽게도 문이 잠겨 있어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미리 예약하면 결혼식도 올릴 수 있다고 하니 낭만적인 웨딩 마치를 꿈꾼다면 이곳을 고려해보는 것도 좋겠다. 산책길은 성인 3명이 나란히 걸으면 빠듯할 정도로 좁지만, 사람이 거의 없어 느긋하게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거대한 호수와 해가 나는 쪽으로 가지를 뻗은 나무, 바위 사이에 핀 야생화가 어우러진 마법 같은 경관을 감상하며 30분 정도 걷자 하메치반트 리프트가 나타났다. 높이가 153m나 되지만, 단 1분이면 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뷔르겐슈토크 리조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르니 하늘이 손에 잡힐 듯하고, 아래쪽에 듬성듬성 있는 집들은 장난감처럼 보인다. 전망대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며 한참을 구경하니 어느덧 저녁시간. 팰리스 호텔의 프렌치 레스토랑 리츠코피에(RitzCoffier)에서 열린 공식 만찬에서 루체른 관광청장 마르셀 페렌(Marcel Perren)은 “루체른은 ‘스위스 안의 스위스’라 불릴 정도로 스위스의 모든 매력을 갖춘 휴양도시”라며 “산과 강, 호수가 모여 있어 자연을 즐기기 좋고, 교통의 중심지로 다른 관광지와의 접근성도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로이스강의 남쪽과 북쪽을 연결하는 카펠교.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스포츠 시설인 다이아몬드 돔(Diamond Domes)으로 향했다. 전날 밤 테니스 레슨을 신청해서다. 실내 코트에 들어서니 테니스 코치 올리버가 반겨준다. 그는 코트 칭찬부터 했다. 이렇게 훌륭한 코트는 스위스에도 드물다고. 정말 그렇다. 테니스 국가 대항전 로저스 컵의 경기장 규격에 따라 만들었고, 특수 신세틱 소재로 제작한 코트는 오래 뛰어도 무릎에 부담이 없을 정도로 쿠션감이 좋다. 한편, 이 리조트 안에는 9홀 골프 코스도 있다. 멀리 병풍처럼 늘어선 알프스산맥 아래서 골프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두자.
뷔르겐슈토크 호텔 바로 옆에 위치한 알파인 스파(Alpane Spa)에서 운동으로 흘린 땀을 씻었다. 그리고 인도어 풀에 들어서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현대적 스파 시설과 환상적인 자연경관이 절묘하게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특히 아웃도어 풀은 인도어 풀과 바로 연결되는데, 호수 풍경과 어우러져 마치 호수에서 헤엄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개인적으론 아웃도어 풀이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휴식할 수 있어 더 좋았다. 이곳의 물 온도는 언제나 36℃를 유지해 겨울에도 무리 없이 야외 스파를 즐길 수 있다.

3 유럽에서 가장 높은 야외 엘리베이터 하메치반트 리프트.   4 샤르크 오리엔탈 레스토랑에서 맛볼 수 있는 중동 음식.

점심은 리조트 안에 자리한, 정통 중동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샤르크 오리엔탈 레스토랑(Sharq Oriental Restaurant)에서 먹었다. 중동식 샐러드 타불레(Tabbouleh)와 병아리콩으로 만든 아랍식 고로케 팔라펠(Falafel), 케밥은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았다. 여기서 만난 세일즈 & 마케팅 디렉터 스티븐 니콜로브(Steven Nikolov)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에게 이 리조트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를 하나만 꼽아달라고 하니 “스포츠와 미식, 스파, 쇼핑, 의료 서비스까지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답했다. 반신반의했지만, 리조트 시설을 마저 둘러보니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오후에는 뷔르겐슈토크 리조트의 백미인 레지던스 스위트부터 살폈다. 장기 투숙객을 위한 일종의 스위트룸으로, 6개월에서 최대 5년까지 거주가 가능하다. 리조트의 시조 격인 그랜드 호텔을 개조한 ‘그랜드 레지던스 스위트(Grand Residence Suites)’, 개인 와인 창고와 피트니스 룸 그리고 패닉 룸까지 완비한 ‘파노라마 레지던스 스위트(Panorama Residence Suites)’, 개별 사우나 룸을 갖춘 ‘레이크뷰 빌라(Lakeview Villas)’가 있다. 호텔과 동일한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하니 관리 걱정은 안 해도 좋다.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고 싶은 이라면 이곳에 몇 달 머무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어서 호텔을 둘러보는 시간. 1904년에 지은 팰리스 호텔은 모던한 분위기의 뷔르겐슈토크 호텔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언급한 호텔 중 유일한 4성이지만 개·보수를 거쳐 시설 차이는 거의 없다. 오히려 유럽 호텔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원한다면 이곳을 선택하는 게 나을 것 같다. 팰리스 호텔과 뷔르겐슈토크 호텔은 지하의 긴 회랑으로 연결되는데, 이곳을 뷔르겐슈토크 리조트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갤러리로 꾸며 좋은 구경거리가 된다. 발트 호텔은 12월 오픈 예정으로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탈리아의 건축가 마테오 툰(Matteo Thun)이 설계한 이곳은 의료와 건강 분야에 특화한 것이 특징. 건강검진과 멘털 클리닉, 디톡스, 다이어트, 스킨케어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20여 명의 전문의가 상주하며, 영하 110℃의 초저온에서 물리치료가 가능한 아이스랩(IceLap)까지 갖춘 의료 시설은 최첨단이다.
저녁식사는 리조트 내 스위스 음식을 즐길 수 있는 타바르네 1879(Taverne 1879)에서 했다. 이름처럼 1879년에 문을 연 이곳은 아직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음식 역시 그렇다. 찐 감자를 잘게 썰어 구운 뢰스티(Rosti)와 마카로니에 치즈를 듬뿍 넣은 엘플레마그로넨(Alplermagronen)은 다소 느끼하지만, 드라이한 스위스 화이트 와인을 곁들이면 괜찮다. 일정을 마무리하고 방으로 돌아가는 길,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이 눈으로 쏟아져 내릴 듯 가득하다. 완벽한 뷔르겐슈토크 리조트를 완성하는 건 과연 천혜의 자연환경이었다

5 풍광을 즐기며 점심을 먹는 루체른 사람들.   6 1821년에 세운 빈사의 사자상은 장엄하고 비극적이다.

중세풍의 아기자기한 매력, 루체른
다음 날, 루체른 시티 투어에 참여했다. 루체른은 스위스에 온 여행자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으로, 18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긴 휴가를 보내기 위해 방문했을 정도로 유서 깊은 관광도시다. 유람선을 타고 도시로 나오니 점심 무렵, 선착장 앞에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돗자리를 깔고 한가롭게 샌드위치나 피자를 먹고 있었다. 오리와 백조가 호수에 둥둥 떠다니고, 사람들이 주는 먹이도 잘 받아먹는다. 이는 도시가 청정 호수 피어발트슈테터제(Vierwaldst ttersee)를 끼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처음 방문한 곳은 기차역 오른편에 자리 잡은 루체른 문화컨벤션센터(Kulturund Kongresszentrum Luzern, KKL). 세계적인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 설계한 이 건물은 콘서트홀과 다목적 홀, 시립미술관 세 파트로 크게 나뉜다. 그중 콘서트홀은 자타가 공인하는 월드클래스로, 스위스를 대표하는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명성에 걸맞다. 이곳에서 주최하는 고전음악 축제 루체른 페스티벌은 매년 부활절과 8~9월, 11월에 세 번 열린다고 하니 클래식 애호가는 이 때 맞춰 루체른을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미술 애호가라면 로젠가르트 미술관(Sammlung Rosengart)은 꼭 들러야 한다. 옛 스위스 국립은행 사옥을 개조한 이 미술관에선 미술상 지크프리트 로젠가르트(Siegfried Rosengart)와 앙겔라 로젠가르트(Angela Rosengart) 부녀가 수집한 작품 200여 점을 전시 중이다. 파울 클레, 피카소, 세잔, 샤갈, 마티스 등 거장의 작품이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꽉 차 있다. 그중 피카소가 그린 앙겔라 로젠가르트의 초상도 눈에 들어온다. 한국에서 만나기 어려운 국보급 작품들이 이 작은 도시의 미술관에 모여 있다니, 스위스의 남다른 문화적 역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보행 다리 카펠교(Kapellbr cke)는 지난 1333년경 로이스강의 남쪽과 북쪽을 연결하는 교통로이자 호수로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한 방어 시설로 건설했다. 1993년 심각한 화재로 절반 이상이 소실됐지만, 지금은 다시 복원한 상태. 카펠교를 거닐면 스위스와 루체른의 역사적 장면을 묘사한 지붕 아래 패널을 감상할 수 있다. 그중 3분의 1 정도는 얼핏 봐도 거뭇거뭇 오래됐는데, 화재에서 살아남은 오리지널 작품이다. 카펠교는 루체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이니 이곳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는 것을 잊지 말자.
카펠교를 건너 북쪽의 구시가로 들어섰다. 중세풍 건물과 미로처럼 이어지는 돌길, 작은 분수를 세운 광장은 옛 정취가 가득하다. 군데군데 들어선 기념품 가게도 여행객의 흥을 돋운다. 특히 우아한 프레스코 벽화로 수놓은 건물은 그 자체로 거대한 미술 작품처럼 보인다. 길을 따라 북쪽으로 걷자 무제크 성벽(Museggmauer)이 모습을 드러냈다. 과거로 시간 여행을 온 것처럼 느껴질 만큼, 1km에 이르는 성벽과 9개의 감시탑은 1386년에 만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성벽을 오르면 루체른 시내와 호수의 풍경, 멀리 필라투스산까지 전경이 보기 좋게 펼쳐진다. 감시탑 중 3개는 관람객도 들어갈 수 있는데, 그중 루체른에서 가장 오래된 시계가 설치된 치트탑(Zytturm)은 힘들더라도 올라가봤으면 한다. 루체른의 다른 시계보다 1분 일찍 종을 울리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우렁찬 소리를 낸다.
루체른 투어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빈사의 사자상(L wendenkmal)은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당시 전사한 스위스 용병들을 기리기 위해 1821년에 세운 기념비다. 영국의 대문호 마크 트웨인이 “세계에서 가장 슬프고도 감동적인 바위”라 평했을 정도로, 창에 찔려 쓰러진 사자의 모습은 장엄하고 비극적이다. 그런데 시티 투어를 맡은 스위스 관광청 직원이 재미있는 얘기를 했다. 바위가 파인 형태가 돼지를 닮았다는 것이다. 일설에 따르면, 바위를 조각한 루카스 아호른(Lucas Ahorn)이 적은 보수에 불만을 품어 그렇게 만들었다고. 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은 없으나, 사진보다 나은 실물을 자랑하는 이 조각상은 직접 볼 가치가 있다.

필라투스산 정상에 위치한 호텔 필라투스 쿨름.

정상에서 느끼는 고독, 필라투스산
뷔르겐슈토크 리조트에서의 꿈 같은 여정을 뒤로하고 필라투스산(Mt. Pilatus)으로 향했다. 필라투스는 리기(Rigi), 티틀리스(Titlis)와 함께 루체른 인근에서 손꼽히는 명산이다. 예수를 처형한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의 영혼이 갇혀 있다는 전설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이곳에 오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알프나흐슈타트(Alpnachstad)로 가서 톱니바퀴 산악열차를 이용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루체른 바로 옆 도시 크리엔스(Kriens)로 이동해 케이블카를 타는 것. 뷔르겐슈토크 리조트 선착장엔 알프나흐슈타트로 가는 유람선이 있으니, 리조트 이용객이라면 첫 번째 루트를 이용하는 걸 추천한다.
톱니바퀴 산악열차는 놀이동산에서 볼 법한 한 량짜리 꼬마열차처럼 생겼지만, 그 힘은 무시할 수 없다. 평균 경사도 38도, 최대 경사도 48도에 이르는 길고 가파른 철길을 30분 만에 주파해 관광객을 2067m 높이의 산 정상 역에 올려놓는다. 짧은 승차 시간 동안 눈에 띄게 바뀌는 주변 경관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산 초입부에는 단풍 든 활엽수림과 작은 오두막이 보이더니, 중간부에 이르러서는 20m를 훌쩍 넘기는 울창한 침엽수림, 그리고 1400m를 넘어서면 웅장한 바위와 그 사이로 난 촉촉한 풀이 눈에 띈다. 이어 천장이 낮은 동굴을 몇 개 통과하면 정상에 이른다.

필라투스산 정상까지 연결된 케이블카.

정상부엔 파노라마 테라스와 기념품점, 케이블카 탑승장, 호텔 필라투스 쿨름, 호텔 벨뷰 등이 있다. 그중 필라투스 쿨름(Hotel Pilatus Kulm)은 1890년에 문을 연 유서 깊은 호텔로, 2010년 레노베이션을 거쳐 다시 개장했다. 뷔르겐슈토크 리조트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고지대에서 아늑한 하룻밤을 보내기에 안성맞춤. 체크인을 하고 건물 밖으로 나서자 압도적인 경관이 눈에 들어왔다. 남쪽으로 멀리 아이거(Eiger)와 융프라우(Jungfrau) 등 만년설로 덮인 알프스산맥이 병풍처럼 서 있다. 가까이엔 험한 산길을 부지런히 오르는 트레킹족, 패러글라이딩으로 하산하는 이들이 보였다. 거기에 체구는 작지만 독수리처럼 당당하게 비행하는 서양갈가마귀와 큰 뿔을 자랑하는 알프스염소까지, 지난 며칠간 봐온 풍경과는 또 다른 웅장하고 거친 자연을 경험할 수 있었다.
누군가 필라투스산에 간다면 정상부에 하루쯤 머무르라 말하고 싶다. 사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많은 만큼 여유롭게 풍경을 즐기긴 어렵다. 하지만 오후 5시가 지나면 거짓말처럼 사람들이 사라진다. 관람객 대부분이 케이블카와 산악열차의 마감 시간에 맞춰 하산하기 때문. 정상부 호텔에 머무는 사람이 많지 않은 덕에, 다음 날 아침까지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 필라투스산의 진정한 매력은 낮보다 밤에 있다.

7 프레크뮌테크의 로프 파크는 중부 스위스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8 짜릿한 스피드를 경험할 수 있는 토보간 런.

일몰을 감상하기 위해 여러 봉우리 중 오르기 쉽다는 오베르하우프트(Oberhaupt)로 향했다. 루체른 지역 특산 맥주 아이히호프(Eichhof)를 한 병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봉우리에서는 루체른 시내와 피어발트슈테터제, 뷔르겐슈토크 리조트는 물론 저 멀리 발데크(Baldegg) 호수까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외로울 만큼 적막함이 감도는 꼭대기에서 맥주를 마시며 환상적인 풍경을 감상하는 기분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산바람이 매서웠지만, 그 순간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해가 지고도 오래도록 머물렀다. 이른 아침, 해가 뜨는 모습을 보려고 또 다른 봉우리인 에젤(Esel)에 올랐지만, 날씨가 흐려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다. 일출을 보러 꼭 다시 오겠다는 다짐을 뒤로한 채 케이블카로 하산, 잠시 1416m에 위치한 프레크뮌테크(Fr kmu¨ntegg)에 들렀다. 여기엔 필라투스 정상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하이킹 코스, 나무 사이에 연결된 로프를 타고 공중 다리를 건너는 로프 파크(Rope Park), 강철 레일을 따라 내려가는 썰매인 토보간 런(Toboggan Run)이 마련되어 있다. 그중 토보간 런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직접 타봤다. 썰매에 레버가 달려 있는데, 그것을 앞으로 밀면 아찔할 정도의 스피드를 경험할 수 있다. 반대로 레버를 당기면 천천히 가는 것도 가능하다. 썰매 위에서 보이는 필라투스산 풍경은 확실히 색다르니 겁 많은 사람이라도 용기를 내서 타보길 권한다. 다시 한번 케이블카를 타고 크리엔스에 도착, 며칠 사이 정이든 루체른에 작별을 고했다.

필라투스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스위스 풍경.

기사를 작성하며 필라투스산을 안내해준 스위스 관광청 직원 콜레트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며칠 사이 눈이 내려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내가 경험한 스위스는 지금 없지만, 여전히 눈에 잡힐 듯 생생하다. 이미 수차례 다짐했지만, 또 다른 스위스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그곳에 가겠다 되뇌었다. 그때는 출장이 아닌 여행으로, 좀 더 느긋하게 스위스를 즐기려 한다.

 

에디터 황제웅(hjw1070@noblesse.com)
취재 협조 스위스 관광청, 뷔르겐슈토크 리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