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이기적인 시대
혼술, 혼밥, 혼디(홀로 디저트)까지 요즘 젊은 세대는 자신만의 동굴을 찾아 점점 더 깊이 기어든다. 그 모습을 보는 조벽 동국대학교 석좌교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다. 혼자인 게 불쌍하거나 안쓰러워서가 아니다. 그들이 그린 인생 설계도에 ‘나’ 혼자밖에 없어서다. 사람에게 그토록 중요한 ‘관계’라는 그림이 빠져서다.

위스콘신 대학교 기계공학과 졸업 후 노스웨스턴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받고 미시간 공대에 20년간 재직한 조벽 교수는 교육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실천 전략을 전파해온 교육 전문가다. 미시간 공대 교수 시절 옴부즈맨과 창의력을 위한 혁신센터와 학습센터 소장을 역임하며 일명 ‘교수법의 권위자’로 맹위를 떨쳤고, 미국과학재단 연구상, 미시간 주 최우수 교수상, 미국공학교육학회 교육자상을 수상하며 당시 아시아 출신 교수로서 눈부신 행보를 보였다. 선생에게는 교수법을, 학생에게는 창의성과 인성 교육을 전파한 그는 국내 180개에 달하는 4년제 대학교 거의 모든 곳에서 교수를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하며 ‘교수를 가르치는 교수’로 우뚝 섰다. <인성이 실력이다>, <청소년 감정 코칭>, <조벽 교수의 수업 컨설팅>, <나는 대한민국의 교사다>, <조벽 교수의 인재 혁명>, <새 시대 교수법> 등의 저서에서 일찌감치 ‘인성’을 강조하며 새로운 인재상을 제시한 덕에 명문대 입학처장을 비롯한 입시 관계자, 학생과 교수, 정부 기관에서까지 그의 책과 강연은 ‘미래형 인재’를 찾는 지침서로 활용되고 있다. 교육계의 아웃사이더 역할을 자처하며 소신 있는 ‘사이다’ 강의로 꾸준히 주목받고 있는 조벽 교수를 만나 이토록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시대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큰 그림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강의로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한마디로 풀(full)이에요. 꽉 찼죠. 스케줄이 아니라 생기로 꽉 찼어요.(웃음) 하루하루 편안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일에 쫓기며 살지 않는 편이에요. 그러면 즐길 수가 없으니까요. 물론 열심히 삽니다. 그러나 바쁜 것과 열심히 사는 건 많이 다릅니다. 저도 일은 많을 때가 있지만 허둥대면서 살지는 않아요.
저는 늘 데드라인이 있다 보니 스스로 몰아붙여야 할 때가 있던데, 교수님은 그렇지 않으신 것 같아요. 어떤 한 가지 목표만 바라보고 간다거나 반드시 이뤄야 할 꿈이 있다면 급하겠죠. 저는 아니에요. 목표나 꿈보다 ‘방향’이 더 중요합니다. 방향은 도달 지점이 아니라 ‘거기로 가라’는 표지판입니다. 그걸 계속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도달할 수 있죠. 그게 내년이면, 5년 뒤면 어때요? 방향이 맞는다면 시간은 저에게 큰 의미가 없어요.
교수님의 방향은 어디였나요? 전 20대에 ‘교육자’라는 방향을 설정했어요. 어떤 전공을 택하든 궁극적으로 교육자의 삶을 살고 싶었죠. 그러다 아내(최성애 박사)를 만나면서 좀 더 구체적인 방향이 생겼어요. 사회에서 외면받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특히 어른보다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자가 되는 것이었죠.
그것을 위해 학창 시절부터 준비해온 것이 있나요? 보통 한국에선 아이들에게 ‘꿈’을 강요합니다. “꿈이 뭐니?”,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묻죠. 저는 교육자가 되고 싶었고, 지금 그 길을 가고 있지만 어릴 적에는 그걸 꿈으로 의식하지 않았어요. 어떤 면에서 전 꿈이 없는 아이였어요. 의식하는 꿈이 없는. 대신 꿈같은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요. 근데 교육자가 된 후 돌아보니 제가 이미 고등학교 때 야학에서 수학을 가르친 경험이 있더라고요. 가르치는 일 자체를 즐겼기 때문에 그것을 꿈을 이루기 위한 징검다리로 의식하지 않은 거죠. 대학 다닐 때도 도서관에서 튜터로 자원봉사를 하며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미시간 공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미국공학교육학회 교육자상, 미시간 주 최우수 교수상, 미국과학재단 연구상 등을 수상하셨습니다. 외국인으로서 그 나라의 교육자상을 수상하는 건 힘든 일 아닌가요? 상 받는 거 쉬워요.(웃음) 1980~1990년대 미국 교수의 생존 전략은 연구였어요. 조교수로 시작해 정교수가 되려면 10년 넘게 강의 대신 연구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저도 부임 첫해에 강의는 시간만 겨우 때우다 보니 학생에게 사기 치는 것 같아 마음이 찜찜했어요. 그래서 교수법과 교육학 서적을 구입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에는 이미 훌륭한 기술이 많이 소개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다른 교수들은 그런 책을 읽지 않더라고요. 남들이 외면하는 교수법을 제 것으로 습득하다 보니 강의실 안에서 다른 교수들과는 게임이 안 되었습니다.
그 당시 활용한 교수법은요? 일례로 저는 학생들의 질문을 평가해 학점에 반영했어요. 내 질문에 대한 학생의 답변이 아니라 학생이 하는 질문의 질을 평가했죠.
학생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학생에게 받은 기쁜 코멘트 중 하나는 “비록 C학점을 받긴 했지만 이 수업을 택한 건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예요. 학생들이 학점에 연연하지 않고 뭔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을 배웠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제 수업을 통해 스스로 발전하고 성숙해졌다고 느낀 것이 교육자로서 기뻤습니다.
미시간 공대 재직 시절 공대 학생의 리더십과 적응력 계발을 위해 학생성공센터 소장을 역임하셨습니다. 한국에선 좀 낯설게 들리는데, 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당시 우리 학교 공대생 중 약 44%만이 졸업을 했어요. 집안에서 처음 대학에 진학한 학생, 소수민족 학생 등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약 56%의 학생이 중도 탈락을 합니다. 그들이 성공적으로 졸업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우리 센터의 핵심 역할이었어요.
요즘 국내에선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있는데 미국에도 그런 것이 있었던 셈이네요. 아카데믹 흙수저가 있죠. 흔히 “흙수저로 태어나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장벽을 넘을 수 없다”고 하는데, 사실 인생의 성공 여부는 내가 들고 있는 수저가 흙인지 금인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정서적 금수저’인가가 중요합니다. ‘헬조선’ 타령을 하는데, 그거 결국 남 탓하는 겁니다. “이미 나는 더 이상 할 것이 없다”고 패배를 인정하는 겁니다. 그건 건강하지 않은 생각이죠.
‘정서적 금수저’는 뭔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그것을 추진하는 게 정서적 금수저예요. 내가 처한 상황이 좋지 않지만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무엇인가를 찾는 긍정적 사고방식과 태도를 구축해야 합니다. 학생성공센터에서도 학생들에게 그런 생각의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제 할 일이었어요. 스트레스에 무너지지 않고 견디고, 그로 인해 결과적으로 더 큰 존재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죠.
미시간 대학에서 옴부즈맨으로도 활동하셨습니다. 학교에 ‘감찰관’ 제도가 있었나요? 미국의 주요 대학에서는 대학 구성원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을 본인끼리 해결하지 못할 때 대학 내에서 소송을 걸 수 있어요. 소송을 제기하면 제가 재판장 역할을 합니다. 학생과 교수, 일반 교수와 학장, 처장과의 갈등, 행정직원과 교수 등 일대일 파워로 싸울 수 없는 상황에서 제가 개입해 판결을 내리는 거죠. 미국 대법원 재판장이 종신직이듯, 학교 재판장도 종신 보직이었습니다.
권력과 책임이 어마하게 큰 자리인데, 선출 과정이 궁금합니다. 교수 대표, 학교 대표, 행정 대표, 학생 대표, 직원 대표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있는데, 거기서 만장일치로 재판장을 선출합니다. 거기엔 세 가지 조건이 있어요. 학내에서 존경받는 사람, 정의에 대한 센스가 있는 사람, 상식이 있는 사람. 법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니 재판할 때는 가장 상식적인 선에서 해야 하지 않겠어요? ‘내가 하기 싫은 거, 남에게도 시키지 않는다.’ 이게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상식입니다. 거기에 근거해서 판결을 하죠.
만장일치라니, 교수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 아닌가요? 네, 그것도 동양인은.(웃음) 그게 저에게는 무척 소중한 경험이 되었어요. 미시간 공대 재직 중 꾸준히 한국에 초대받아 강연이나 자문, 객원교수 등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다른 교수에겐 없는 혁신센터 소장, 옴부즈맨 경험 등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1 조벽 교수의 자택 테이블 위에 놓인 옛 사진. 왼쪽부터 그의 선친과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다. 3형제가 각 시대의 복장을 하고 있다.
2012년에 부인인 최성애 박사님과 함께 HD행복연구소라는 평생교육원을 설립하셨습니다. 강의와 교육, 상담 등이 이루어지는데, 그 전에 준비 과정이 있었을 것 같아요. 2012년에 오픈했지만 이전부터 쭉 ‘행복씨앗심기’라는 활동을 해왔습니다. ‘모든 사람은 행복할 수 있는 씨앗을 품고 태어나는데 살아가는 환경과 경험에 따라 씨앗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행복이란 남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안에 있는 씨앗을 스스로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라, 만약 그것이 안 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씨앗을 심고 물과 거름을 주는 방법을 가르쳐주자’는 것입니다.
‘행복씨앗심기’나, 교수님이 책으로 쓰신 ‘감정 코칭’ 모두 감정을 다스리고 그것을 바람직한 행동으로 옮긴다는 측면에서 일맥상통합니다. 강의나 상담의 대상도 초반엔 불우 청소년 등 사회에서 외면받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많이 확대되었다고 들었어요. 처음엔 아내와 저 둘이 시작했는데 곧 한계에 부딪혔어요. 그래서 행복씨앗심기 활동을 할 수 있는 전문가 양성을 시작했습니다. 그걸 위해 설립한 것이 HD행복연구소라는 평생교육원입니다. 지금은 전문가가 많이 생겼죠. 최근에는 진해의 해군사관학교 생도를 대상으로 하는 연수에 저희 강사 90명이 동시에 들어가 교육을 진행했어요. 감정 코칭, 관계 조율 능력, 감정의 회복 탄력성, 공익 조율에 대한 훈련이었죠.
HD행복연구소에서는 교육 외에 심리 상담도 진행하고 있는데, 홈페이지의 ‘자녀 상담’ 섹션을 보니 ‘음식을 심하게 가려 먹거나 너무 천천히 먹는 아이’라는 항목도 있더군요. 이것도 문제인가요? 건강에 해가 되는 정도만 아니라면 문제로 볼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 ‘문제’에 집착하는 것 같아요. 어차피 심리 상담 센터이기 때문에 “우리 애가 문제가 있습니다”라며 오시지만 연구소에 들어오는 순간, 저희는 아이의 문제에 집중하지 않아요. 행동의 이유를 찾고 환경을 바꾸는 데 목표를 둡니다.
부부 문제도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시나요? 네, 기본적으로 우리는 사람에게서 문제를 찾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다 좋아요. 그런데 상호작용에서 본의 아니게 서로 독을 퍼붓는 거죠. 그래서 관계가 망가집니다.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관계 맺는 방식을 모르는 거죠.
HD행복연구소에서는 관계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합니다. 부부, 부모와 자녀, 교사와 학생, 직장에서의 노사와 인간관계, 인간과 자연, 이렇게 다섯 종류의 관계 속에서 행복과 힐링을 목표로 정했는데, 서로 어떤 관계가 있나요? 처음엔 부부로 시작해요. 아이가 태어나면 부자 관계가 형성되죠. 아이가 바깥으로 나가는 첫 단계가 학교고, 거기서 교사와의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그 아이들이 자라 사회 구성원이 되는 거고요. 마지막으로 자연이라는 것은 신과 인간의 관계도 되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도 됩니다. 영적인 면이죠. 이처럼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육체적·정신적·정서적·영적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이것들이 여러 관계에서 조화를 이루고 시너지를 내는 거죠.
한 사람 안에서 이 에너지들이 조화를 이루는 가장 쉬운 방법은요? 우선 건강해야 해요.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순간 사람은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됩니다. 사회에서 성공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보다 더 큰 존재에 의미를 둔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더 큰 존재’라는 건 공익, 미션 등이죠. 시선이 내 자신과 외부로 반반씩 향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하루에 꼭 1시간 이상 걷기운동을 해요.
연구소 홈페이지에 ‘입학사정관’ 배너가 있어 눌러보니 ‘PDF 자료가 필요하면 연구소로 연락하라’는 문구가 뜨더라고요. 그 자료는 뭔가요? 몇 달 전 제주도에서 국내 유명 사립대학의 입학처장과 입학사정관들 앞에서 특강을 했어요. 그때 진행한 PPT 파일인데 다들 달라고 하셔서 올려놓았다가 시간이 지나 지금은 내린 상태입니다.
교수님은 1990년대부터 꾸준히 인성 교육을 강조해오셨고 한국의 대학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인성’ 바람이 불고 있죠. 교수님의 특강이 입학사정관들에게는 절실할 것 같아요. 저는 일단 한국에 연고가 없어요. 열 살 때 한국을 떠나 40년 넘게 외국에 있었으니까요. 즉 아웃사이더죠. 그래서 저는 제 생각 그대로 이야기합니다. 몸을 사리거나 눈치 보지 않고, 상대가 들어야 하는 이야기를 눈앞에서 하죠. 다행히 많은 사람이 그걸 좋게 받아들입니다.
교수님의 경험과 시각은 좀 특별한 것 같아요. 그것이 교수님의 경쟁력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도 훌륭한 지식인이 많아요. 그런데 비슷한 학교를 나오고 비슷한 경험을 해서인지 어떤 이슈를 볼 때 보는 방향도 비슷해요. 저는 그 시각이 좀 다를뿐더러 꼭 해야 할 말을 할 수 있는 아웃사이더 역할을 잘하는 것 같아요.(웃음) 입학사정관 특강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하버드 대학교 입학처 홈페이지에 들어가봐라. 하버드가 원하는 인재상이 적혀 있다. 그걸 읽어보면 마지막에는 한 사람의 모습이 눈앞에 구체적으로 그려지는데, 그것이 하버드형 인재다”라고요.
뭐라고 적혀 있나요? “We look for~”라고 적힌 문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해석하면 이래요. “하버드 대학교에 들어와서 하버드 대학교라는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 그 아래 다시 세 가지 유형을 나열했습니다. 첫째, ‘스트레스에 무너지지 않는 사람’. 자기 조율 능력을 뜻하죠. 예를 들면 운전할 때 앞차가 끼어들면 욕부터 하는 사람이 있는데, 스트레스에 순간적으로 무너지는 사람입니다. 둘째, ‘다른 사람이 당신과 같이 생활하고 팀워크를 이루고 싶어 하는 사람’. 집단지성시대에서 이런 관계 조율 능력은 아주 중요하죠. 셋째, ‘당신의 능력으로 우리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 즉 공익 조율이에요. 이 항목 아래 다시 추가적인 인재상이 쭉 적혀 있습니다.
국내 명문대의 입학처에는 뭐라고 적혀 있나요? 주로 입학 지원 규정, 절차, 날짜 등이 있어요. 인재상이 안 보이죠. 결국 시험 점수로 줄 세워 통과시키는 겁니다.
학생들의 사고방식도 외국의 학생과는 다를 수밖에 없겠어요. 한국 학생들 대부분은 좋은 대학에 가서 졸업장을 얻고, 그 졸업장으로 다시 좋은 직장을 얻고, 그 후광으로 높은 연봉을 받아야지 합니다. 계속 자기가 얻을 것만 생각해요. 기여, 기부라는 건 없죠. 아이와 어른은 바로 거기서 구분됩니다. 아이는 계속 얻을 것만 생각해요. 근데 어른이 되어서도 나이 좀 있다고 대우받고 존중받고 우대받고, 계속 받을 것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거지 근성이에요. 어른은 주변에 있는 어린이 같은 존재, 예를 들면 가정에서는 자녀, 회사에서는 신입 사원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이 어른이에요. 그게 어른 리더십, ‘어른십’입니다.
그 모든 게 인성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인성 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한국에서는 “실력이 없으면 인성이라도 좋아야지” 하잖아요. 그 말에 이미 인성은 실력이 없을 때 필요한 것이고, 실력자가 갑질하더라도 참고 삭여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누가 인성을 갖추려고 하겠습니까. 그렇게 보잘것없는 것인데.
교수님이 생각하는 인성은요? 인성은 이성과 감성이 조율될 때 나오는 거예요. 제가 기자님께 고개 숙이며 인사하는데 속으로는 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허위이고 가식이고 거짓이죠. 기자님에 대한 배려, 존중, 방문에 대한 감사함이 동반된 인사를 할 때 ‘인품을 갖췄다’고 하는 겁니다. 좋은 행동에는 반드시 좋은 감정이 동반되어야 해요.
지금 우리 사회는 온통 부정적인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개인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앞날이 밝아서 우리가 희망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희망’을 선택하는 순간 앞날이 환해지는 겁니다. “한국은 너무 수직적인 나라”라고 하는데, 사실이죠.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위가 제대로 서면 매우 빠른 속도로 나라, 사회, 가정이 다시 올바르게 설 수 있어요.
어떻게 하면 똑같은 상황을 보고도 교수님처럼 그렇게 희망적으로 생각할 수 있죠? 긍정심을 갖추세요. 매일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연마해야 합니다. 내 안에 긍정심이 있어야 상대방과도 긍정의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어요. 절망과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는데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만드는 건 꿈에서도 절대 안 일어납니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안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