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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황홀한 악기

LIFESTYLE

8월이면 한국의 클래식 관객은 ‘소리’라는 주제로 새로운 체험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같은 악단이라도 공간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내는 ‘음악홀’이라는 악기를 통해.

8월 18일 개관하는 클래식 전용 홀 롯데콘서트홀의 내부. 2036석 규모에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됐다.

“그 홀에 가보셨어요?” 초여름부터 공연장에서 마주친 음악계 지인들이 서로 인사처럼 주고받은 말은 잠실 롯데월드몰에 새로 지은 음악홀에 대한 것이었다. 1988년 예술의전당 음악당이 개관한 이후 28년 만에 서울에 생긴 클래식 전용 홀이니 화두로 떠오르는 것도 당연하다. 화제의 중심에서 집중적 관심을 받는 것은 역시 ‘음향’이다. 일본의 산토리 홀(Suntory Hall)과 프랑스의 필하모니 드 파리(Philharmonie de Paris)의 음향 설계를 총괄한 일본 나가타 어쿠스틱스에서 롯데콘서트홀의 음향을 맡은 만큼, 현시점에서 가장 발전 한 첨단 음향 기술을 적용했으리라는 기대 때문. 한국에서 클래식 전용 홀 최초로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했고, 그것이 빈에 위치한 무지크페라인(Musikverein)의 파이프를 제작한 리거사의 작품이라는 점도 기대감을 더한다. 롯데콘서트홀은 8월 18일 정식 개관을 앞두 고 음향 테스트와 점검을 위해 몇 달 동안 각 장르별로 총 14차례 사전 공연을 진행했다. 모두 관계자만 참석한 비공개 공연이었고, 지난 7월 1일에는 사전 공연 중 마지막 무대인 임헌정이 지휘하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음악 관계자들과 언론에 공개했다 . 프로그램은 슈만 첼로 협주곡과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처음으로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를 감상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어떨까?
황진규 음악평론가는 “잔향이 아주 풍부하면서도 소리가 객석에 고르게 잘 전달되는 홀”이라고 평가했다. 소리가 번지는 경향이 있지만 울림이 좋고 예쁜 소리가 나기 때문에 특히 독주회나 실내악, 고음악 연주회에서 홀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고 덧붙 였다. 또 최은규 음악평론가는 “음질이 매우 고급스러우면서 밝고 열린 느낌이다. 잔향 시간이 긴 편이고 각 악기의 파트별 소리가 또렷하게 전달되기는 하지만 소리가 직접적이고 크기 때문에 감상을 위해서는 뒤쪽 좌석이 더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소리가 앞쪽에서 는 약간 뜨는 느낌을 받는 반면, 객석 끝까지 감쇄되지 않고 들리기 때문에 음향만 따진다면 앞자리를 고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흔히 공연장에서 ‘명당’으로 꼽는 자리가 1층 앞쪽에서 중간 정도라면 롯데콘서트홀에서는 명당 좌석의 기준 이 조금 바뀔 수도 있겠다.

암스테르담의 콘세르트헤보 무대에 선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와 로열 콘세르트헤보 오케스트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주 홀이자 연중 다양한 클래식 공연이 열리는 무지크페라인의 야경

이처럼 소리의 전달력이 좋은 것은 ‘빈야드 스타일(vineyard style)’ 공연장의 장점이다. 마치 포도밭처럼 무대를 중심에 두고 객석이 비스듬히 경사져 올라가는 이 구조는 한국에서 롯데콘서트홀이 처음 선보이지만 해외에서는 여럿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자리에서나 무 대가 잘 보이고 소리가 아름답게 들려 누구든 한번 다녀오면 그 황홀한 경험에 대해 극찬하는 베를린 필하모니(Berliner Philharmonie)가 대표적인 빈야드 스타일 홀. 1963년 완공한 이 홀은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으로 개관 공연을 했고 지금까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주 홀로 사용하고 있다. 그 성공 사례를 이어받은 곳은 일본. 1986년 개관해 음향 좋은 홀을 말할 때 아시아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도쿄의 산토리 홀 역시 빈야드 스타일로, 세계의 수많은 악단이 연주하고 싶어 하는 홀이다. 무엇보다 빈야드 스타일의 매력은 객석이 무대를 감싸는 구조 덕분에 관객이 연주자와 교감하기도, 몰입하기도 쉽다는 것. 한편으로는 소리가 풍부하게 전달되기 때문에 뛰어난 악단이라면 더욱 멋진 소리를 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실수가 그 대로 드러날 가능성이 있어 연주자에게는 부담스러운 홀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의 클래식 전용 홀 중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부채꼴형 공연장이고, 2014년 개관해 좋은 평가를 얻고 있는 통영국제음악당은 직사각형 모양인 슈박스(shoe-box) 형태다. 부채꼴형 공연장은 많은 좌석 배치가 가능하지만 좌석에 따른 음향 편차가 크고, 슈박스 형 태는 음향 조건이 좋지만 객석과 무대의 단절감이 단점으로 꼽힌다. 홀의 음향 조건을 완성하는 것은 구조뿐 아니라 외부 소음과 진동을 차단하는 방진 시스템, 음이 반사되는 벽과 천장의 밀도, 자재의 종류 등 다양한 요소가 작용한다. 또 개인이 느끼는 음향은 주관적 이며 어떤 공연이냐에 따라 장단점도 상대적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말하는 훌륭한 공연장의 기준은 존재한다.
황진규 평론가는 좋은 음악홀이 갖춰야 할 조건으로 음색이 좋으면서 소리의 초점이 분명하게 전달될 것, 소리가 명쾌하면서도 차갑지 않게 울릴 것, 좌석에 따라 소리가 왜곡되는 정도가 크지 않을 것, 공연장의 구조가 관람객의 시선을 가리지 않을 것 등을 꼽았다. 그 런데 이 모든 조건을 갖추기는 어렵기 때문에 세계의 수많은 공연장 중에서도 뛰어난 음악홀로 찬사를 받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매년 1월 1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 음악회가 열리는 무지크페라인의 대극장인 황금 홀은 내부가 금빛 찬란하게 화려한 만큼 소리도 아름답고 유려해 꼭 한번 감상해볼 만한 곳이다. 신년 음악회 티켓을 구하는 것은 전 세계 팬과 경쟁해야 하기에 엄청난 노력 과 행운이 필요한 일이지만, 평소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이곳을 본거지로 활동하며 다양한 클래식 공연을 펼치니 관람의 기회는 많다. 또 최고의 음악홀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암스테르담의 콘세르트헤보(Concertgebouw)는 로열 콘세르트헤보 오케스트라가 상주하며 특유의 윤택한 소리를 만들어가는 곳. 무지크페라인이 1870년, 콘세르트헤보가 1888년 문을 열었으며 둘 다 전통적 슈박스 형태의 홀이다. 1998년 루체른 페스티벌 창립 60주년에 맞춰 오픈한 루체른의 KKL 콘서트홀도 오케스트라부터 실내악, 독주회 등 모든 공연을 최적의 음향으로 즐길 수 있다는 평을 듣는다. 건축 단계에서 지금은 작고한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의견을 반영했고, 그가 개관 공연을 지휘한 곳이기도 하다.
1900년 개관한 보스턴 심포니 홀에는 의미심장한 별명이 하나 있다. ‘콘서트홀의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것. 공연장의 역할을 생각해보면 꽤 적절한 비유다. 최은규 평론가는 “홀 자체가 하나의 악기와 다름없기 때문에 같은 악단이 연주해도 홀에 따라 다른 소리가 날 수 있다”고 말한다. 악기가 연주자를 만나 길들여지고 익숙해지는 기간이 필요하듯 새로 지은 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자연스럽고 좋은 소리가 날 수 있다. 나무가 자리 잡고 연주자들이 새 공간의 사운드에 적응하고 수많은 관객이 드나드는 시간을 거치고 나면 진 정한 자기만의 소리를 갖게 될 것이다. 롯데콘서트홀은 서울시향이 진은숙의 세계 초연곡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와 생상스의 오르간 교향곡을 연주하는 개관 공연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이어지는 풍성한 개관 기념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공연이 계속되며 시간이 지날수 록 서울에 새로 생긴 아름다운 홀이 연주자와 관객에게 감동적인 순간을 선사하는 명기(名器)로 자리 잡길 바란다.

에디터 | 안미영 (myah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