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발레가 보고 싶다
곧 만날 수 있는, 그리고 만났으면 하는 컨템퍼러리 발레 작품을 꼽았다.

셰익스피어의 낭만 희극을 재해석한 <한여름 밤의 꿈>.
지난여름 서울시발레단이 역사적 출발을 알렸다. 국내 유일의 공공 컨템퍼러리 발레단으로서 안무가, 무용수, 작품 중심의 맞춤형 프로덕션을 통해 생동하는 오늘의 발레를 제시하겠다는 포부와 함께. 창단 공연 <한여름 밤의 꿈>은 그 시작이다. 안무가 주재만이 셰익스피어의 낭만 희극을 재해석한 전막 창작 컨템퍼러리 발레로, 두 커플의 뒤엉킨 이야기가 중심인 원작과 달리 요정 ‘퍽’의 시점에서 상상과 환상의 세계가 펼쳐졌다. 고전발레의 전형성을 무너뜨리면서도 본연의 미학을 잃지 않은 우아한 움직임을 마법 같은 영상, 독창적 의상이 뒷받침했다. 하이라이트는 2막 2장 엔딩 신.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필립 다니엘의 라이브 연주와 무용수들의 군무였다. 고전발레가 강세인 국내 발레계에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는 평이다.
유연한 형식, 현대적 주제, 대담한 의상과 세트 디자인, 여러 장르의 음악으로 무장한 컨템퍼러리 발레에 눈길이 간다면, 10월 9일부터 12일까지 이어지는 더블 빌 <한스 판 마넨×차진엽>도 놓치지 말 것. 컨템퍼러리 발레의 거장 한스 판 마넨(Hans van Manen)의 대표작 <캄머발레(Kammerballett)>가 아시아 최초로 공연된다. 정제된 단순함과 명료한 형식, 선명한 컬러의 의상 등 한스 판 마넨 고유의 분위기가 짙은 작품이다. 스카를라티 소나타 등 피아노 선율로 이어지는 음악과 무용수 각자의 감정이 담긴 안무, 특히 후반부의 솔로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번 공연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프리마 발레리나 김지영이 출연한다. 2007년 네덜란드 국립 발레단 활동 당시 이 작품으로 무대에 오른 적 있는 그녀인 만큼 완성도 높은 <캄머발레>를 즐길 수 있다.
해외에서도 컨템퍼러리 발레는 꾸준히 인기다. 몇 년 사이 주목할 만한 레퍼토리들을 소개하면, 대표적으로 <미친 아담(MaddAddam)>이 있다. 2019년 부커상 수상자 마거릿 애트우드(Margaret Atwood)의 디스토피아 소설 시리즈가 원작으로, 소설 속 유전공학, 환경 재앙, 생존 등 무거운 주제를 웨인 맥그리거(Wayne McGregor)가 매력적인 안무로 표현해낸 작품이다. 무용수와 인터랙티브 세트 디자인 등 첨단 기술은 미래 세계를 표현하는 일등 공신. 2022년 캐나다 국립 발레단이 초연한 이 작품은 오는 11월 로열 오페라하우스 무대에도 오른다.
캐시 마스턴(Cathy Marston)이 안무를 맡은 <첼리스트(The Cellist)> 역시 대중과 평단 모두 사로잡은 작품으로, 영국이 사랑한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의 삶을 그려냈다. 그녀가 첼로를 처음 접한 순간부터 가장 뛰어난 연주자로 조명받은 전성기, 다발성경화증으로 인한 좌절과 투쟁의 시간까지 모두 담겼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독특한데, 캐시 마스턴은 첼로를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설정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연주자가 자신의 악기를 대하는 느낌을 탐구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이러한 장치를 통해 <첼리스트>는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헌신과 열정, 예술과 예술가 공생이라는 주제의 보편성이 돋보인다.
<크리처(Creature)>는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의 표현주의 걸작 <보이체크>에서 영감받아 탄생한 작품이다. 군의 실험 프로그램에 징집된 주인공 ‘크리처’는 추위와 고립, 향수병에 적응할 수 있는 정신적·신체적 능력을 테스트받는다. 인류의 마지막 개척지를 식민지화하는 계획에 필수적 자질이다. 생존을 위한 인류의 싸움에서 크리처가 갈구하는 인간성은 중요하지 않다. 최면에 걸린 듯한 아크람 칸(Akram Khan)의 안무는 전자 사운드, 음성, 라이브 오케스트라가 혼합된 빈센초 라마냐의 강박적 음악과 어우러져 착취와 소외에 관한 이야기를 증폭한다.
뉴욕시티 발레단 상주 안무가 저스틴 펙(Justin Peck)이 제작한 <타임즈 아 레이싱(The Times Are Racing)>은 무용수들이 패션 브랜드 오프닝 세리머니가 디자인한 스트리트웨어를 입고 등장한다. 신발은 무려 스니커즈. 덕분에 안무에 탭댄스 요소를 더할 수 있었다고. 음악도 의상만큼 파격적이다. 전자음악 작곡가 댄 디콘이 미국 정치와 지리에서 영감받아 완성한 2012년 앨범 <아메리카(America)> 마지막 4개 트랙이 울려 퍼지는 것. 그래서일까. 세트 디자인은 미니멀하지만, 공간을 가득 메우는 자유로움은 다분히 미국적이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