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최고의 미니멀리스트
최정상의 위치에서 이름 자체만으로 고유명사가 된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
작년 파리 패션 위크에서 수많은 디자이너를 봤지만 유독 기억나는 한 사람이 있다. 클래식한 브라운 레더 재킷과 귀여운 핑크색 샌들을 신은 그녀, 미우치아 프라다였다. 미우미우 쇼가 끝나고 퇴장하려던 찰나, 우연히 런웨이 아래에서 만난 그녀는 한 그룹의 수장이자 세계적인 디자이너라고 하기엔 생각보다 수더분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어떻게 이토록 빠르게 변하는 패션업계에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최고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까? 지금은 패션업계에서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쉽게 볼 수 있지만 과거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패션은 남성들이 지배하고 있는 금기의 영역이었고, 성별에 대한 개념과 개인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하나의 수단이었기에 패션이 시대의 거울이라는 의미를 지니기 전까지 길고 긴 인고의 시간이 존재했다. 이는 단순한 서사가 아니라 투쟁으로 얻어낸 역사의 흔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의미에서 미우치아 프라다는 스스로를 세상에 던진 투사가 아니었을까.
수많은 여성의 워너비이자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독창적인 스타일을 창조하며 여성스러운 스타일에 혁명을 일으킨 미우치아 프라다는 1949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프라다 가문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미우치아는 이탈리아 사회주의 당원이자 페미니스트로 여성 해방 시위에 이브 생 로랑 스커트를 입고 나설 만큼 역행자의 태도로 삶을 대했다. 이 시기는 그녀의 세계관과 현재의 패션 철학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비평가로서 지닌 근원적 투쟁심은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열망으로 치환되었다. 1970년대 중반, 가족 사업인 프라다에 합류하게 되면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그녀는 기존 하우스가 지닌 모든 것을 지우고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인다. 기존 질서에 저항한 페미니스트였기에 프라다만의 독특한 소재와 전략이 탄생했다. “나는 항상 반항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다 좋다고 말하는 것에 반대하기를 좋아했죠”라고 한 것처럼, 미우치아는 당시 여성의 몸매를 육감적으로 드러내는 스타일에 반하는 자유로움을 극대화해 단순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며 절제된 디테일에 지적 이미지를 입혔다.
밀리터리 코트, 케이프, 웨지 힐, 알파카 코트 등 클래식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시그너처 아이템은 전통적 화려함을 되레 천박하고 과시적인 것으로 여기며 쿨하고 투박한, 실용적 미니멀리즘이라는 1990년대 새로운 트렌드를 탄생시켰다. 이후 그녀의 남편 파트리치오 베르텔리의 외조에 힘입어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두 번째 레이블을 만들게 되는데, 어릴 적 별명이자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 디자인을 표현하는 창구로 브랜드 미우미우를 설립한다. “프라다는 전통이 깊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담지 못할 때가 있거든요. 미우미우는 기본적으로 재미와 본능을 추구하고, 심각함은 덜어내고 있어요.” 이처럼 미우미우가 매 시즌 전 세계 여성의 마음을 꿰뚫는 트렌드를 주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미적 가치를 넘어 우리 시대의 복잡하고 다양한 정체성을 반영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삼각 로고, 미니멀리즘의 미학, 로라이즈 룩의 재발견, 젊고 세련된 룩을 완성할 수 있는 미니스커트 룩, 러블리한 아이템과 스포티즘의 믹스 매치, 빅 백을 멋지게 드는 요령, 란제리를 일상에서 입게 하는 묘책, 모던 레이어링의 기술, 뿔테 안경의 쿨한 매력 등 매 시즌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디자인과 키 아이템을 선보이며 메가트렌드를 선도하는 미우치아 프라다. 우리는 그녀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지금도 배우는 중이다. 이 모든 것이 미우치아 프라다가 패션계에서 대체 불가한 이름이 된 이유를 증명한다.
에디터 한지혜(hjh@noblesse.com)
사진 프라다, 미우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