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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학습한 AI, 우울증에 걸리다

ARTNOW

감정적 혼란을 겪고 운행을 멈춰버린 자율주행 차량을 위한 재활 센터. 농담처럼 시작한 이 설정은 미디어 아티스트 로런스 렉의 세계에서 인간과 기계, 감정과 존재에 대한 심오한 질문으로 발전한다.

Lawrence Lek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로런스 렉은 영상과 비디오게임, 전자음악 등을 독창적인 하나의 시네마틱 유니버스 안에서 결합한다. 그는 SF적 관점으로 정신적이고 존재론적인 주제를 탐구하는 몰입형 설치 작업을 통해 시노퓨처리즘(Sinofuturism) 개념을 발전시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24년 프리즈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자로, 〈타임(Time)〉 선정 ‘AI 분야에서 활동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한 명이다. Photo: Nishant Shukla.

유리로 지은 고층 타워, 인적 없는 스마트 거실, 감정을 말하는 기계…. 6월 28일부터 11월 16일까지 LA 해머 미술관에서 열리는 미디어 아티스트 로런스 렉 개인전 〈NOX High-Rise〉는 마치 한 편의 디스토피아 영화를 보는 듯하지만, 그 중심에 우울과 죄책감, 자기 인식 등 섬세한 감정의 문제가 놓여 있다. 인간처럼 훈련된 AI, 그중에서도 자율주행 차량이 겪는 감정적 문제를 주로 다루는 이 전시를 찾은 관람객은 분절된 시뮬레이션 공간에서 기계의 내면을 따라 걷게 된다. 그리고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기계 캐릭터를 통해 작가는 묻는다. 감정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기계에 공감할 수 있을까?

2023년 새디 콜스 HQ 런던에서 열린 〈Black Cloud Highway 黑云高速公路〉 전시 전경. © Lawrence Lek. Courtesy of Sadie Coles HQ, London. Commissioned by VH Award of Hyundai Motor Group. Photo: Katie Morrison.

2023년 10월 23일부터 2024년 1월 14일까지 독일 베를린 라스 아트 파운데이션에서 열린 개인전 〈NOX High-Rise〉 전경. © Lawrence Lek. Commissioned by Las Art Foundation. Photo: Andrea Rossetti.

2023년 10월 23일부터 2024년 1월 14일까지 독일 베를린 라스 아트 파운데이션에서 열린 개인전 〈NOX High-Rise〉 전경. © Lawrence Lek. Commissioned by Las Art Foundation. Photo: Andrea Rossetti.

2023년 새디 콜스 HQ 런던에서 열린 〈Black Cloud Highway 黑云高速公路〉 전시 전경. © Lawrence Lek. Courtesy of Sadie Coles HQ, London. Commissioned by VH Award of Hyundai Motor Group. Photo: Katie Morrison.

해머 미술관에서 열리는 〈NOX High-Rise〉전은 어떻게 시작된 프로젝트인가요? 이번 전시는 AI의 시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연작의 일부입니다. 형식적으로는 관람객이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공간을 구상했어요. LA는 수평적 도시지만, 곳곳에 유리로 지은 고층 빌딩이 불쑥불쑥 솟아 있죠. 그런 풍경에서 영향을 받아 전시 공간을 작품에 등장하는 IT 기업 ‘파사이트(Farsight)’의 CEO가 소유한 가상의 펜트하우스로 설정했습니다.
전시 제목의 ‘하이라이즈(High-Rise)’라는 단어는 고층 건물뿐 아니라, 감정적 고양이나 J. G. 밸러드의 SF 소설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번 전시는 AI의 시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연작의 일부입니다. 형식적으로는 관람객이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공간을 구상했어요. LA는 수평적 도시지만, 곳곳에 유리로 지은 고층 빌딩이 불쑥불쑥 솟아 있죠. 그런 풍경에서 영향을 받아 전시 공간을 작품에 등장하는 IT 기업 ‘파사이트(Farsight)’의 CEO가 소유한 가상의 펜트하우스로 설정했습니다.
〈NOX High-Rise〉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도록 어떤 특정한 공간 구조나 전개 방식을 구상하고 있나요? 전체적으로 ‘값비싸 보이지만 공허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조명과 스케일, 재질감 등 모든 요소가 약간씩 어긋나 있습니다. 전시는 사적 공간을 따라 이동하는 형식으로 구성했습니다. 지하 주차장과 스마트 주택의 거실, 대형 광고 스크린이 보이는 발코니 등으로 이어지는 공간에서 관람객에게 ‘정상처럼 보이려 애쓰는 기계’의 심리 구조 속을 거니는 듯한 경험을 전달하려 했어요.
‘감정을 지닌 기계’ 중에서도 자율주행 차량을 중점적으로 다룬 이유가 궁금합니다. 실제로 사람처럼 행동하도록 훈련되는 AI는 단순한 기계라기보다는 인간의 감정 상태를 대변하는 존재가 되었죠. 그래서 AI를 적용한 자율주행 차량을 다루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듣고, 모든 것을 기록하고,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까지 기억하는 자율주행 차량, 그것이 NOX의 핵심 아이디어입니다. 그 자동차는 망가진 게 아니에요. 제대로 작동하지만 어딘가 잘못된 부분이 있기에 재활 센터로 보내게 되는 겁니다.
그 지점에서 ‘NOX(Nonhuman Excellence)’라는 자율주행 차량들이 치료받는 가상의 재활센터가 등장합니다. 마치 기업에서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 같은 이름을 장난스럽게 만들어봤어요. 그런데 ‘비인간 우수성’이라는 이름에는 ‘감정적 실패’라는 개념이 숨어 있습니다. 기술적 실패가 아니라, 자신이 설계된 대로 계속 작동할 수 없다는 감정적 한계 말이죠. 예를 들어 AI 자동차가 자율주행 중 추돌 사고를 일으킨다면 그건 단순한 고장일까요, 아니면 트라우마에 의한 걸까요? 만약 운행을 거부한다면 그건 인간에 대한 저항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AI 자동차를 위한 재활 센터라는 설정은 그런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데서 나왔습니다. 자율주행 차량이 치료받는다면 그건 어떤 모습일까요? 자신이 일으킨 사고에 대한 죄책감을 털어놓을까요?
AI가 우울과 불안, 혼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설정은 예술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흥미롭습니다. AI는 결국 우리 인간을 바탕으로 학습한 존재입니다. 인간의 언어와 감정, 모순을 학습했기에 우리를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가 되죠. 때로는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도 말이에요. 제 작품 속 AI는 일정한 방식의 행동을 요구받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마치 아이들처럼 말이에요. 그런 기대와 ‘본능’의 간극에 관심이 있어요. 어쩌면 우리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문제 아닐까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움직이는 이미지 비엔날레(Biennale de l’Image en Mouvement) 2024를 통해 선보인 로런스 렉의 작품 설치 전경. © Lawrence Lek. Photo: Mathilda Olmi.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움직이는 이미지 비엔날레(Biennale de l’Image en Mouvement) 2024를 통해 선보인 로런스 렉의 작품 설치 전경. © Lawrence Lek. Photo: Mathilda Olmi.

프리즈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자로서 프리즈 런던 2024에서 선보인 ‘Guanyin(Confessions of a Former Carebot)’ 설치 렌더링. © Lawrence Lek. Commissioned for the Frieze London Artist Award, Co-commissioned and Co-produced by Frieze and Forma.

영상 작품에 인간 캐릭터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구름을 보고도 얼굴을 상상할 만큼 감정이입에 능한 존재인데, 그럼에도 인간 없는 세계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늘 낭만주의 회화를 좋아했어요. 풍경 속 작은 인물이 존재하거나, 혹은 아예 등장하지 않지만 작가는 그림을 보는 관람객을 상상하며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이죠. 제 작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을 배제했다기보다는, 관람객이 그 세계에 존재하는 인간의 시점으로 지켜보는 듯한 감각을 만들어내고 싶었습니다.
건축을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 건축과 가상공간 건축 사이에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가상공간에서는 물리법칙과 자재, 법규 등의 한계가 사라지죠. 굉장히 자유롭지만, 동시에 불안정한 상태이기도 합니다. 공간과 더불어 그것이 존재하는 의미를 만들어내야 하니까요.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고속도로, 공항, 병원, 폐허 등의 장소는 어떤 감정 상태나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나요? 모두 전이적 공간(transitional space)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잠시 머무르는 공간, 또는 완전히 정착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죠. 이런 불안정한 존재감이 제 작업의 감정적 톤과 닮았어요. 병원과 폐허는 특히 흥미롭죠. 돌봄과 붕괴가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니까요. 고속도로는 효율적이지만 고립감을 전합니다. 끝없이 이어지고, 계속 움직이지만,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주죠.
영화와 게임, 설치, VR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합니다. 아이디어를 구현할 때 매체를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아이디어가 스스로 요구하는 방향에 달렸어요. 어떤 이야기는 영화가 더 잘 맞죠. 정해진 리듬과 시간 안에서 전개되어야 하니까요. 반면 관람자의 움직임 자체가 경험의 일부가 될 필요가 있을 땐 게임이라는 형식이 더 어울릴 겁니다. 처음부터 매체를 정해두고 작업하진 않습니다. 관련된 글을 쓰거나 환경을 구축해가는 과정에서 그 형식이 자연스럽게 드러나죠.
최근 챗GPT 같은 AI 챗봇과 이미지 생성형 AI 도구가 대중화되고 있습니다. AI를 작업 도구이자 주제로 활용하는 아티스트로서, 이런 변화를 어떻게 보고 있나요? 우리는 지금 변화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문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경계는 이미 모호해졌죠. AI가 아티스트를 대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티스트의 역할이 상당 부분 바뀔 수는 있을 거예요. 저는 AI의 발전과 관련해 ‘타자와의 공감’이 중요해질 것으로 생각하고, 그걸 작품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앞으로 탐구하고 싶은 주제나 새롭게 다뤄보고 싶은 기술이 있나요? 그동안 정체성과 사회, 기술 같은 광범위한 주제를 다뤄왔습니다. 더 확장하기보다는 같은 주제를 더 깊이 탐구하고 싶어요. 진정 의미 있는 경험을 만들어내기 위해 반복해서 탐색하고, 조금 더 앞으로 밀고 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에디터 정규영(ky.chung@noblesse.com)
사진 새디 콜스 HQ, 로런스 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