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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중심의 가치를 실현하는 연구 중심의 델프트 공과대학교

LIFESTYLE

학문은 단지 과시용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뿌리내리고 있어야 한다. 깊이 있는 실습과 활발한 토론을 바탕으로 한 실용적인 학문 연구에 집중하는 델프트 공과대학교를 소개한다.

MVRDV가 설계한 건축 강의, 설계, 연구 등의 다목적 공간인 와이 팩토리(Why Factory)

실용성을 중시하는 유럽 최고의 공과대학
우리나라 3분의 1 정도 크기에, 땅이 해수면보다 낮은 나라 네덜란드. 언제 물에 잠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홍수를 막기 위해 60여 년이 넘도록 여러 섬을 제방과 구조물로 연결하는 델타 프로젝트를 시행하는 등 물과 공존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했다. 높은 인구밀도를 해결하기 위해 간척 사업으로 땅을 넓히고 물 위에 건물을 짓는 토목 및 건축 기술의 발달은 네덜란드인에게 선택이 아닌 생존 수단이었다. 여기에 네덜란드 사람의 경계를 긋지 않는 열린 자세와 성실한 태도가 더해져 네덜란드는 건축과 토목 분야에서 세계 최고라는 명성을 얻었다. 네덜란드 델프트에 위치한 170여 년 전통의 델프트 공과대학교(Delft University of Technology, TU Delft)는 태생적으로 오랜 시간 물과 힘겨운 싸움을 해온 네덜란드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MVRDV가 설계한 건축 강의, 설계, 연구 등의 다목적 공간인 와이 팩토리(Why Factory)

TU Delft의 역사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왕 빌럼 2세가 1842년 국가의 건축 발전을 위해 왕립 토목학교를 설립했는데, 이 학교가 바로 TU Delft의 전신. 왕실 토목학교는 왕실에서 댐을 건설하는 데 도움을 주며 급속히 성장, 1905년 대학교의 권리를 인정받은 후 1986년 TU Delft라는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했다. 유럽의 5개 명문 공과대학교 연합인 IDEA 중 하나로 손꼽히는 TU Delft는 특히 건축, 토목, 산업디자인과 항공우주공학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인공지능 로봇 분야에서도 두드러진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 대학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실용성이다. 즉 ‘학문이 일상에 녹아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건축을 예로 들면 땅의 역사를 비롯해 사회적·경제적 접근을 통해 건축설계를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식이다. 땅의 장점과 그것을 토대로 무엇을 실현할 수 있는지 논리적으로 분석한 후 궁극적으로 도시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도 함께 고려한다. 이것은 다른 분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며 학부 때부터 이론에 그치지 않고 꾸준한 실습을 통해 현실에 적용해보는 연습을 한다. 연구실에서 진행하는 리서치에 참여하고, 학생들이 팀을 이뤄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인턴십 등을 경험하는 실습 수업, 강의실에서 교수와 함께 하는 토론 수업은 현실적 감각을 기르는데 큰 역할을 한다. TU Delft의 교수진도 대부분 현업 종사자라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어떻게 현실화할지 구체적으로 조언해줄 수 있는 강점이 있다. 이런 노력 끝에 TU Delft는 올해 영국의 글로벌 대학 평가 기관 QS(Quacquarelli Symonds)가 발표한 세계 대학 랭킹(QS World University Ranking)에서 200개 학교 중 건축 4위, 토목·구조공학 5위, 화학 6위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1 학생들이 실습을 하 는 워크숍 2 델프트 공대에서 연구·개발한 솔라 카

기업가 정신의 가치를 실현하다
우주공학, 건축과 건물 환경, 산업디자인공학 등 8개 학부로 이뤄진 TU Delft는 총 16개의 학사, 35개가 넘는 석·박사 과정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3년제 학사 과정은 우주공학과 응용지구과학, 나노생물학을 제외하고는 네덜란드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탓에 외국 유학생은 주로 영어로 수업하는 2년제 석사 과정, 4년제 박사 과정에 지원한다. 전교의 약 2만 명 중 석·박사를 전공하는 외국 유학생 수가 4000명을 넘을 정도. 학사와 석사 과정 모두 입학 원서는 10월 1일에서 4월 1일 사이에 접수 가능하며, 9월 초에 학기가 시작된다. 박사는 홈페이지 공고에 맞춰 개별적으로 지원하면 되니 참고하자. 학비가 저렴하다는 것도 TU Delft의 장점 중 하나로, 1년 기준으로 학사의 경우 1만 유로(약 1200만 원), 석사는 1년에 1만 5000유로(약 1800만 원) 정도다. 대부분의 국제 학생이 석사 과정에 등록하는 만큼 국제 학생의 경우 석사 이상만 장학금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TU Delft 엑설런스’라는 장학금 제도가 우리나라 학생에게 해당하는데, 2년 동안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박사 과정은 대부분 프로젝트 연구비에서 장학금을 지원하는 체계로 이뤄진다. 세계적 대학 교육의 추세에 발맞춰 TU Delft에서도 2014년부터 온라인 강의를 실시하고 있다. 전 세계의 75만 명이 무료 온라인 강의 무크(MOOCs)를 통해 학사와 석사 과정을 수강했으며, 공개 강좌에도 800명이 이미 등록한 상태다. TU Delft의 전통적 캠퍼스 교육과 지리적·시간적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TU Delft는 오랜 역사만큼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공학자를 배출했다. 1901년 최초의 노벨 화학상 수상자 야코뷔스 헨드리퀴스 판트 호프(Jacobus Hendricus van’t Hoff), 198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시몬 반 데르 메이르(Simon van der Meer), 세계적 가전업체 필립스의 공동 창업자 제라드 필립스(Gerard Philips) 등이 TU Delft를 빛낸 대표적 졸업생이다. 건축 분야에도 유명한 졸업생이 많다. 네덜란드 건축을 선도하는 MVRDV의 비니 마스(Winy Maas), 야코프 판레이스(Jacob Van Rijs), 나탈리 더프리스(Nathalie de Vries)를 비롯해 메카누(Mecanoo)의 프란시너 하우번(Francine Houben)도 TU Delft를 졸업했으며, 토목 분야에는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의 사무총장 프랭크 리즈버먼(Frank Rijsberman), 산업디자인 분야에는 BMW의 디자인 수석 부사장 아드리안 판호이통크(Adrian van Hooydonk) 등이 있다.
TU Delft에서 또 하나 강조하는 것은 기업가 정신이다. 실제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거나 창업을 계획하는 학생도 많지만, 단순히 회사를 경영하는 학생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비단 학업적 성취만이 아니라 학생회나 동아리 등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해 책임감을 기르고 학교를 졸업할 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제 몫을 해내길 바라는 것.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신이 세상을 만들었지만,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인이 만들었다”는 말처럼 한계에 좌절하기보다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혁신의 길로 이끌 수 있는 인재를 원한다. 여전히 주입식 교육이 주를 이루는 우리에게 실용성과 창의력을 고취시키는 TU Delft의 교육 방법은 미래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INTERVIEW
네덜란드와 한국에서 활약하는 3명의 TU Delft 동문을 만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학문을 우리의 삶과 연결하는 태도와 방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건축설계사무소 MVRDV의 공동 창립자 나탈리 더프리스(Nathalie de Vries)

MVRDV는 주상복합 건축인 수원의 광교 프로젝트,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클라우드, 안양예술공원의 안양타워 등 한국에서도 건축물을 설계했는데, 여기서 가장 중점을 둔것은? 우리는 삶과 일, 레저가 밀접하게 결합된 새로운 차원의 공공 건물을 만들고 싶었다. 각 공간이 따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돼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길 바랐다. 물론 한국에서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됨에 따라 주위와 잘 어울리면서도 기능적인 측면을 고려한 건축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숙제가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좋은 도시환경을 만드는 목표에 집중했다.

1984년 TU Delft 석사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나? TUDelft는 리서치 중심의 디자인을 추구한다. 과학, 경제 등과 얽힌 다양한 요소에 대한 리서치를 통해 방법론적으로 접근한다. 다양한 관점의 디자인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틀에 박힌 디자인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과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일상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결국엔 건물도 삶 속에 존재한다.

TU Delft 재학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주도적으로 주제를 정한 후 교수를 초대해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우리가 궁금한 점이나 알고 싶은 것을 주제로 정해 공부하니 훨씬 재미있었고,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었는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또 다른 학생들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들을 수 있어서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건축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리의 삶은 도시를 기반으로 형성되어 있다. 건축가라면 좋은 도시 디자인과 건축물에서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공간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리서치와 기술을 함께 접목한다면 좋은 디자인을 창조할 수 있다.

앞으로 계획은?우리 앞엔 많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좀 더 지속 가능한 디자인과 많은 사람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디자인을 보여주고 싶다. 잠깐 머무는 공간에 그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도시 디자인을 하고 싶다.

델프트 공대의 상징인 도서관 외관

건축가 겸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김병찬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건축과를 졸업한 후 2009년 TU Delft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이유는 무엇인가?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설계사무소에 다녔는데, 그 때 네덜란드 건축가들과 협업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본 그들은 실험적이고 독특하며 전략적인 건축 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네덜란드 건축은 아직 생소하지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네덜란드에도 다른 공대가 있지만 가장 명성이 높은 TU Delft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두 학교의 차이점에 대해 말해준다면? 한예종은 한마디로 소수 엘리트 중심의 교육을 한다. 한 학년에 10명 이내의 학생이 한 명의 교수와 스튜디오에서 밀도 있는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건 큰 이점이다. 조성용, 승효상, 민현식 등 당시 명망 있는 현업 건축가에게 그들의 건축 철학과 방법론을 배웠다. 반대로 TU Delft는 학교의 규모가 크고 주거 및 공공 건축, 디지털 건축 등 동시대의 건축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기간 내에 건축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고, 다양한 분야를 두루 경험한 뒤 원하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어 좋았다.

TU Delft 재학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2년 동안의 모든 시간이 그립다. TU Delft에는 강의실뿐 아니라 복도나 도서관에서 다른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많다. 도서관에 앉아 공부하다가도 친구와 함께 건축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이곤 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고, 사고의 틀을 넓혀가는 시간은 정말 즐거운 일상이었다.

TU Delft 건축과 재학 중 인상 깊었던 커리큘럼에 대해 소개해달라.특별히 인상 깊은 커리큘럼을 꼽는건 힘들 것 같다. 다만 그 모든 과정을 통해 건축을 대하는 태도와 장소와 공간을 해석하는 방법을 배웠다.

재학 시절 배운 것이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나? 예를 들어 부산 감천마을이나 다가구주택 등을 설계할 때도 어떻게 하면 땅 고유의 특성을 잘 살려 일상을 풍요롭게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먼저 하게 된다. 건축은 크고 눈에 띄어야 좋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삶을 행복하게 하고 도시와도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세종대학교 건설환경공학과 부교수 맹승규

미국 렌설리어 공과대학교와 조지아 공과대학교에서 각각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2006년 박사 과정으로 TU Delft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그 이유를 말하기 전에 먼저 내 전공부터 말해야 할 것 같다. 나는 토목공학 중에서 물 관리를 세부 전공으로 택했는데 물과 역사가 깊은 네덜란드에서 박사 과정을 하는 것은 나에게 무척 당연한 듯 여겨졌다. 또 네덜란드 TU Delft 박사 과정은 입학 후 바로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박사 과정에 지원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건은? 아무래도 적극성이 아닐까 싶다. 학사나 석사처럼 정기적으로 학생을 선발하지 않기에 홈페이지에서 박사 과정 학생을 뽑는 공고가 나는지 눈여겨봐야 한다. 내 경우는 국제 물 재이용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한 게리 에이미(Gary Amy) 교수와 인연이 닿아 함께 TU Delft에서 박사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지도교수와 함께 프로젝트를 연구하는 방식으로 4년의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 명확한 목표를 세워놓아야하고, 무조건 기다리기보다는 먼저 다가가 어필하는 것이 중요하다.

TU Delft는 실습 중심으로 수업이 이뤄진다고 들었는데. 맞다. 토론과 세미나도 많이 하지만 책에 나오는 내용을 직접 실습해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강물을 떠와 물을 정수할 수 있는 설계 인자를 도출한다거나 정수 처리 시설을 설계하는 식이다. 대부분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교수가 많아 내 의견에 명쾌한 답변을 해주는 점이 너무 좋았다.

TU Delft 재학 시절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세미나가 끝난 후 강의실에서 함께 맥주를 마시며 토론을 즐기는 시간이 인상적이었다. 또 한번은 서프라이즈 피크닉을 간 적이 있다. 장소에 대한 어떤 정보도 알려주지 않은 채 무작정 떠난 여행인데 마치 선물을 받은 듯해 기분 좋은 경험으로 남아 있다.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책에서 배운 내용을 시험에만 활용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연결하는 연습을 하라고 강조한다. 미국 수질오염 사고와 같은 사회적 이슈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함께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많이 마련한다. 또 학생들과 정수장, 매립지 등을 방문해 학문이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델프트 공대 건축환경학부 건물 전경

에디터 최윤정(amych@noblesse.com)
사진 델프트 공과대학교, JK(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