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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도 예술 하는 시대

LIFESTYLE

바야흐로 인공지능의 시대다. 산업뿐 아니라 인간 고유의 활동이라 자부하던 예술 분야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의사, 비서 등에 이어 예술가로 거듭난 인공지능.

영화 <그녀(Her)>에서 사만다를 만날 때만 해도 내게 인공지능은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난해 3월 바둑 기사 이세돌과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의 4승 1패라는 대국 결과는 ‘바야흐로 인공지능 시대다’라는 말을 저절로 되뇌게 했다. 인간이 가장 우월하다는 착각을 버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세계 최고의 바둑 기사라는 타이틀을 얻은 인공지능은 이제 의사, 비서 등의 역할을 하는 멀티플레이어로 거듭나고 있다. 환자의 암 치료를 돕는 IBM 인공지능 왓슨, 쇼핑과 일기예보 등 생활의 편리를 돕는 아마존의 인공지능 비서 에코 룩 등이 대표적인 예.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자부하던 예술도 예외는 아니다.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의 IT 회사들은 저마다 기술을 과시하듯 다양한 아트 테크놀로지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낙서를 그림으로 바꿔주는 구글의 오토드로우.

구글은 지난 4월 대충 그린 스케치 그림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주는 오토드로우(Autodraw) 서비스를 공개했다. 사용자가 그림을 그리면 인공지능이 그 의도를 파악해 예쁜 그림을 추천해주는데, 예를 들어 사각형을 그리면 오토드로우가 가방과 냉장고 등 네모 형태의 사물을 보여주는 식이다. 이미지 인식 기술인 퀵, 드로(quick, draw)를 인공지능에 적용해 그림에 소질이 없는 사람도 기술의 힘을 빌려 금손으로 거듭날 수 있는 그림판인 셈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어떻게 스스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걸까? 인공지능을 구현할 때는 주어진 데이터를 활용해 일정한 패턴을 파악하고 학습함으로써 스스로 성능을 향상시키는 기술인 머신 러닝(기계 학습)을 사용한다. 딥 러닝은 머신 러닝의 방법 중 하나로, 인간의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을 컴퓨터 정보처리 방식에 응용한 인공 신경망 이론을 발전시킨 것이다. 명확한 기준이 없는 사물을 분류하는 것이 딥 러닝의 목적. 몇 년 전부터 구글은 다양한 샘플 데이터를 입력해 인공지능 스스로 고양이를 인식하도록 만드는 훈련을 해왔고, 이를 기반으로 오토드로우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 있었다.
한편 애플은 작년 7월 사진을 미술가의 그림 스타일로 변환하는 사진 편집 애플리케이션 프리스마(Prisma)를 출시했다. 딥 러닝을 사용해 원본 사진과 적용하고자 하는 스타일의 정보를 파악한 후 결합하는 방식이다. 인상주의 명화부터 팝아트까지 다양한 화풍의 아트 필터를 적용하면 셀카도 놀라움을 자아내는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인공지능의 새로운 도전은 소설 분야로도 이어졌다. 일본의 제3회 ‘호시 신이치’ 문학상 공모전에 인공지능 유우레이가 쓴 작품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이 1차 심사를 통과해 화제를 모은 것. A4 3장 분량의 단편으로 인공지능의 고독한 감정을 묘사했는데, SF 작가 하세 사토시는 “100점 만점에 60점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놀라운 수준”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소설 작업은 일본 공립 하코다테미라이 대학교의 마쓰바라 진 교수가 주도한 인공지능 프로젝트팀이 단어 구성과 등장인물 등을 설정해놓은 상태에서 ‘언제, 어떤 날씨에, 무엇을 하고 있다’ 등의 요소를 포함하도록 지시하면 인공지능이 상황에 적합한 단어를 선택해 문장을 완성하는식으로 이뤄졌다. 내용을 살펴보면 인공지능은 집 안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데, “따분해서 어쩔 수 없다”라든지 “내가 처음 경험하는 즐거움에 몸부림치며 써 내려갔다”와 같은 감정 표현이 생소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새로운 발상과 창의성을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호시 신이치 문학상의 1차 예선을 통과했다는 건 그 자체로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작년 6월에 벤저민이라는 이름의 인공지능은 러닝타임 8분의 SF 단편영화 <선스프링(Sunspring)>의 대본을 썼다. 뉴욕 대학교 대학원에서 통신 및 기술을 공부하는 프로그래머 로스 굿윈은 벤저민에게 , <스타트렉> 등 수많은 공상과학 드라마와 영화를 학습시키고 그 데이터를 토대로 스토리를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공상과학 영화 주인공들이 모호한 상황에서 말하는 “아니, 난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와 같은 대사가 자주 등장한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재미없다’와 ‘신선하다’로 극명하게 갈리는데, 감독 오스카 샤프는 “벤저민은 일종의 거울입니다. 독창적인 것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벤저민의 작품에서 독창적이지 않은 것의 표본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라고 자신의 영화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이외에 인공지능은 공포영화 <모건> 예고편을 제작하는 등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모차르트와 인공지능이 대결을 펼친 음악회 <모차르트 vs 인공지능>. ⓒ 경기도문화의전당

국내에서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예술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8월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에서 모차르트와 인공지능이 대결을 펼친 음악회 <모차르트 vs 인공지능>이 열렸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타크루스 캠퍼스의 데이비드 코프 교수진이 개발한 인공지능 작곡 프로그램 에밀리 하웰은 모차르트의 수많은 교향곡을 컴퓨터에 입력한 다음, 데이터를 분석해 ‘모차르트풍 교향곡 1악장 알레그로’를 만들었다.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하웰이 작곡한 곡과 모차르트의 교향곡 34번 1악장 ‘알레그로 비바체’를 교대로 연주했는데, 그중 어느 곡이 더 아름다운지 관객에게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272 대 514로 인간 모차르트가 승리했다. 인공지능의 곡은 부자연스럽다는 것이 관객의 대체적인 평가였다. 지난 1월 아트센터나비에서는 인공지능이 서울 하늘에서 찾은 얼굴 형상의 구름을 보여주는 전시를 열어 인공지능과 사람의 서로 다른 사물 인식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아트센터나비 전시 전경.

그림, 소설, 영화, 음악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 중인 인공지능. 예술이란 것이 본래 모방을 통해 이뤄지는 만큼 어떤 부분에선 인공지능의 모방도 예술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나 생각이 수반되지 않은 채 데이터 분석으로 탄생한 작품을 예술로 볼 수 있을까? 수많은 고뇌와 시행착오, 예측할 수 없는 영감으로 가득한 창작 활동을 분석할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 오롯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관람객은 예술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한다 해도, 인공지능은 그 음악을 즐기지 못합니다”라는 미래학자 정지훈 교수의 말이 크게 와 닿는다.

 

에디터 최윤정(amych@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