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지만 괜찮아
인공지능(AI)은 당신을 도우면 도왔지 절대 해치지 않는다. 장병탁 교수는 약 30년 전부터 인간을 돕는 인공지능을 연구해왔다.
개발 중인 보모 로봇 ‘오페어’와 함께 선 장병탁 교수
지난 3월, 이세돌 9단과 구글의 AI(Artificial Intelligence) 프로그램 알파고의 대국으로 세계가 술렁였다. 그 결과는 알파고의 승리(4:1). 이후 세상엔 그간 존재하지 않던 여러 담론이 쏟아져 나왔다. 기계(알파고)가 마치 사람처럼 행동했다는 목격담과 그것이 직관력까지 갖췄다는 것, 또 어이없는 수를 두는 약점까지 보였다는 것 등등(그래서 더 사람 같았다는 것). 물론 이 글의 주인공 장병탁 교수도 대국을 지켜봤다. 그리고 평소보다 오래 생각에 잠겨 하루하루를 보냈다.
장병탁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AI 권위자다. AI를 영화 속 공상으로 치부하던 수십 년 전부터 그것을 연구해왔다. 1982년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들어가 같은 학교 대학원과 독일 본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독일국립전산학연구소(GMD) 선임연구원, MIT CS & AI Lab(CSAIL) 방문교수, 독일 뮌헨 대학교와 베를린 공과대학교 방문교수를 역임하며 오랫동안 해당 분야 연구에 빠져 살았다.
장병탁 교수의 이력 중 눈에 띄는 건 특히 이런 거다. 그가 ‘한국인치곤’ 너무 일찍 AI 공부를 시작했다는 것. 그가 AI 공부를 시작한 1980년대 초반 한국은 AI는커녕 IT 자체가 생소한 나라였다. 하지만 그는 우연한 기회에 AI 과학자 라파엘(Bertram Raphael)이 쓴 AI의 ‘자각’에 관한 책
사실 AI는 1980년대 중반에도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당시의 AI 붐은 엑스퍼트 시스템(expert system)이라 불리는 기술이었다. 인간이 컴퓨터에 지식을 이식하면 AI 프로그램이 인간이 원하는 답을 해주는 기초적 수준. 그런데도 사람들은 AI가 그려내는 미래의 푸른 빛을 떠올리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단, 그 지원이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다양성이 넘치는 현실 세계에서 지식을 컴퓨터에 집어넣고 판단을 맡기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던 것이다(물론 컴퓨터에 지식을 이 35식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이후 AI 연구는 ‘하겠다곤 하지만, 잘 안 되는 기술’로 치부되어 침체기를 겪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그 분위기가 이어졌어요. 독일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는데 몇몇 친구가 ‘아직도 그걸 공부를 하느냐’고 물었으니까요. 당장 그 발전상을 볼 수 있는 공학 연구를 하는 게 ‘성과’ 면에서 낫다는 뜻이었죠.”
실제로 그즈음 장병탁 교수와 오랫동안 연구한 동료들은 로보틱스(로봇에 관한 기술공학적 연구를 하는 학문) 분야로 많이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가 생각하는 AI란 사람처럼 걷고 움직일 수 있는 것에 집중한 공학적 로봇이 아니라, 진짜 사람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어떤 것이었기 때문이다. “기계가 학습하지 않으면 사람은 이내 고달파져요. 지능을 직접 넣어줘야 하니까요. 지난 수십 년간 AI 분야에선 놀랄 만한 기술적 진보가 있었어요. 알파고도 사실 머신 러닝(기계 학습) 원리의 AI죠. 현대의 AI 연구는 사람의 뇌를 닮은 AI의 인공 신경망을 이용해 점점 경험을 바탕으로 학습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물론 장병탁 교수도 이런 머신 러닝 방식의 로봇을 세상에 공개했다. 지난해에 선보인 아이용 로봇 ‘뽀로로봇’이 그것이다. 이 로봇엔 아이들이 좋아하는 <뽀롱뽀롱 뽀로로> 애니메이션 1232분 분량의 183개 에피소드와 자막(한·영)이 이식돼 있다. 로봇에게 특정 이미지를 보여주면 적당한 자막을 만들어내고,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어를 포함한 대사를 입력하면 이에 적합한 이미지를 화면에 표시한다. 그 덕에 아이와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며 질문하고 감상하는 것은 물론 영어 대화도 가능해 외국어 교육에도 활용할 수 있다. 최근에 그는 ‘오페어(AuPair)’라는 보모 로봇도 개발 중이다. 오페어는 프랑스어로 외국인 가정에 입주해 아이를 돌보고 현지 문화와 언어를 학습하는 보모를 일컫는 말. 이 로봇은 시간에 맞춰 아이를 깨워서 등교를 돕고 뽀로로봇과 마찬가지로 아이가 <뽀롱뽀롱 뽀로로> 애니메이션의 내용을 질문하면 답하고, 반대로 영어 선생처럼 영어로 아이에게 질문하는 게 가능하다. “지난 몇 년간 머신 러닝을 적용한 AI를 연구하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있어요. 왜 아이용 AI를 연구하느냐는 거였죠. 이유는 단순해요. 아이들은 처음엔 실수하지만 학습할 기회를 마련해주면 스스로 성장하죠. 전 이렇게 아이들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연구해 아이들과 비슷한, 정말 사람처럼 사고할 수 있는 AI를 만들고 싶은 거예요.”
장병탁 교수의 말은 이렇게 풀이되기도 한다. 일례로 AI는 기술적으로 인간보다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다. 최근 도로 주행에 성공한 구글의 무인차를 떠올려보자. 심지어 무인차는 음주운전이나 졸음운전도 하지 않는다. 또 AI의 바둑 실력은 이미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모든 면에서 AI에 비해 부족한 건 아니다. 엄청 잘하진 않지만, 엄청 못하는 것도 없다. 역설적으로 AI가 가장 흉내내기 어려운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두루두루 못하는 게 없는 인간적인 모습. “앞으로 AI를 발전시키려면 인간을 더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해요. 과학자들도 인문학을 배워 자신이 하는 연구의 본질을 알아야 하죠. 지금도 많이 발전한 것 같지만, 이 분야는 깊이 파고들수록 연구할 게 정말 무궁무진해요.”
장병탁 교수의 말을 정리해보자. 앞으로 AI가 인간에게 서비스할 품목은 인간의 마음, 감정, 취향을 읽어내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건 사람과 교감할 수 있는 AI가 세상에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들과 AI의 습성을 꾸준히 연구하다 보면 언젠가 그 결실을 맺은 무언가가 세상에 등장할지도 모른다. 사람과 AI가 서로 협력해 보완하는 관계가 될 수 있고, 알파고나 뽀로로봇이 아이들 수준에 맞춰 바둑을 가르칠 수도 있다. 단, 아직 AI는 정해진 목표에 최적화해 잘하는 일엔 능하지만 스스로 목표를 정하거나 의도를 찾는 단계는 아니라는 것. 그러니 적어도 사람을 해하는 터미네이터 같은 AI가 곧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점점 우리 현실과 가까워지고 있는 AI, 당신은 지금 어떤 대비를 하고 있나?
에디터 |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 김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