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스캔들
지나친 상업화와 고미술품 위작, 도난 등 각종 오명으로 얼룩지며 전통문화 거리로서 입지를 위협받아온 인사동 화랑가.
고사 직전의 이 땅이 다시 도약하기 위해서는 감성적 콘텐츠 개발과 적절한 세대교체가 급선무다.
옛 인사동 화랑가의 모습
서울 종로구 인사동은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 1번지다.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도 즐겨찾는 관광 명소로, 실제 각종 설문조사를 통해 ‘가장 방문하고 싶은 곳’으로 자주 선정되곤 한다. 동네의 역사도 무척 오래됐다.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며 처음 사용했지만, 그 명성의 시작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사동 지척에 왕을 위한 미술품 제작을 도맡는 도화서가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전국의 문방사우(文房四友)가 거래됐다. 왕궁 주변에 거주하는 고관대작이나 사대부 역시 이곳에 온갖 장식품 상점과 표구사들이 모이게 한 주요 고객이었다. 이후 일제강점기 말부터는 골동품을 주로 거래했고, 한국전쟁 때는 미군을 대상으로 한 기념품을 공급했으며, 경제개발 초기인 1970년대부터 최초의 현대식 화랑이 생겨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2000년 전후로는 화랑과 표구사 등 일대의 미술관련 상점이 300개를 훌쩍 넘겼을 정도다.
그러나 지금 인사동은 국적 불명에 정체성조차 모호한 동네가 됐다. 1층의 화랑이나 표구사가 거의 사라진 오늘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중저가 화장품과 구두, 열대 과일 주스, 아이스크림, 호박엿 등이다. 더불어 고미술품 위작이나 도난 등 각종 오명으로 얼룩져 ‘전통문화 거리’란 수식어는 옛말이 되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이제 더 이상 인사동이 미술 문화의 메카’가 아니라고 말한다. 1970~198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산실이던 화랑가 1세대도 다른 지역으로 떠났거나 2000년 이후 빠른 속도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여전히 미술인에게 인사동은 화가로 입문하는 꿈같은 첫 관문이지만, 이곳에서 제대로 된 개인전이라도 한번 열려면 적잖은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작은 전시 공간을 일주일 정도 임대하려면 최소 200만~300만 원이 들고, 인쇄물과 홍보비까지 포함하면 1000만원을 넘기기 일쑤다. 게다가 그 비용은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추세다.
인사동 화랑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초대전을 전문으로 진행하는 기획 화랑과 전시 공간을 유료로 임대해주는 대관 화랑, 판매할 작품만 의뢰받아 전시하는 상설 화랑이 그것이다. 이 중 상당수의 기획 화랑은 인근의 사간동이나 강남권으로 옮겨가고, 현재 거의 대관 화랑만 남아 있는 상태다. 여기엔 일대가 활성화되면서 지나치게 높아진 임대료가 한몫했을 것이다. 당연히 전시 대관료도 동반 상승했다. 게다가 지나친 상업화로 인해 문화 중심 거리가 평범한 상업지구로 전락한 상태다. 최근 들어 종로구 전역을 ‘전통과 문화의 중심지’로 재단장하려는 노력이 눈에 띄긴 하지만, 그마저도 사전 계획을 충분히 세우지 못한 졸속 행정이라는 지적이 여전하다. 대표적 예로 작곡가 홍난파 가옥이 꼽힌다. 종로구가 3억 원을 들여 리모델링했지만, 정작 홍난파를 떠올릴 수 있는 소품은 모두 사라졌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인사동 한가운데 들어서 있는 공예전문 쇼핑몰 쌈지길 (Ⓒ Tmannya)
결국 특정 건물이나 장소가 ‘인사동의 가치’를 좌우하는 게 아니다. 인사동 전체가 마치 인체 기관처럼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뤄 건강한 에너지를 발산할 때 비로소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다. 척추와 갈비뼈뿐 아니라 그 안의 모든 기관이 활성화되어야 신체가 건강하듯, 인사동 주변은 매우 밀접한 관계로 얽혀 있는 셈이다. 그런데 실제 이곳엔 각종 화장품이나 핸드백, 옷 가게가 즐비하다. 이런 환경에서 ‘돈안 되는 업종’인 화랑이나 표구사는 당연히 건물 고층이나 골목 깊숙한 곳 혹은 아예 다른 곳으로 쫓겨나는 실정이다. 상업적으로 변질된 인사동에서 전시하길 꺼리는 분위기도 크게 늘어났다. 우연찮게도 2000년대에 들어 인사동의 급격한 시류 변화가 세대교체 시기와 겹치면서 좀 더 과도기적 몸살을 앓고 있다.
사실 인사동 미술계의 세대교체는 단순히 개인이나 집안의 문제만이 아니다. 작게 보면 화랑주 1세대와 자녀 세대 사이의 갈등이지만, 크게 보면 개발 논리에 밀려 인사동 고유의 성격이 점차 퇴색되어가는 시류와도 맞물려 있다. 결국 전통성과 현대성, 예술성과 상업성 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묘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과연 고사 직전의 인사동을 되살릴 방안은 없는 것일까?
인사누리에서 진행하는 캘리그라피 체험 현장
우선 콘텐츠 개발이 관건이다. 현대사회가 ‘이야기 산업의 시대’라 불리는 만큼, 감성을 자극할 만한 기회를 조금씩 늘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감성 발산의 숙주는 문화와 예술 장르. 여기에 역사성까지 가미한다면 금상첨화다. 이 모든 것을 동시에 갖춘 지역은 결코 많지 않고, 쉽게 찾기도 힘들다. 인사동은 그 자체가 살아 있는 역사의 교장이자 문화와 예술을 생성하는 현재진행형의 적소다. 이런 잠재적 회생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수치 중심의 생색 내기 지원책’만 고집한다면, 머지않아 그 희망의 불씨마저 꺼질 것은 자명하다. 우리가 ‘이야기 산업’에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례 역시 인사동에 있다. 인사동 SK건설 골목에 위치한 호텔썬비(Sunbee). 왜 이름이 ‘썬비’일까? 점잖은 선비 동네에 위치한 호텔이라? 실제로 이곳이 율곡 이이의 집터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현재 중국이 공자와 조금이라도 연관된 곳은 모두 찾아 성역화하거나 관광 명소로 삼는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가장 늦었다고 깨달았을 때가 가장 빨리 시작할 수 있는 때라고 한다. 지금 인사동은 격투기 선수가 마지막 라운드를 남겨놓고 만신창이가 된 상황과 비슷하다. 안타깝고 억울한 일이지만, 가장 절실한 지금이 새로운 인사동의 내일을 그리기에 최적기가 아닐까 싶다. 일각에선 희망의 조짐도 보인다. 인사동을 문화와 역사 중심으로 체험할 수 있는 ‘인사누리’ 교육 프로그램이 대표적 예다. 전문 문화 해설가가 저학년 학생과 직장인,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인사동 주변을 소개하는 이 프로그램은 참여 인원이 최근 1만 명을 넘어섰다. 인사동 화랑가의 순기능을 되찾기 위한 노력은 이처럼 인사동 전체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때 가능하다. 아이스크림이나 엿을 들고 수로에 물 빠져나가듯 거리만 훑고 지나는 관광객보다는 자연 하천에 냇물이 스며들듯 조금 느리지만 여유 있게 움직이는 마니아층을 개발하는 게 옳다. 그 수가 늘어간다면 지금의 화랑이 4~5층 고층에 위치해 있더라도 꾸준히 관람객으로 들썩일 것이다. 미술 작가 역시 수백만 명의 관광객보다 수천 명의 문화 향유자를 더 반길 것이다. 인사동이 명동이나 동대문과 다른 점은 그것이다. 결국 새로운 도약을 위한 과제와 방안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미술 문화의 메카로서 인사동의 모습뿐 아니라, 한국의 정체성을 품고 있는 수많은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행정적 지원 역시 ‘관광 명소’ 대신 ‘문화 명소’라는 인식의 전환을 기반으로 한다면 충분히 효과를 거둘 것이다.
궁극적으로 인사동은 문화가 중심이 되는 ‘특별한’ 관광 명소로 제 역할을 다할 때, 과거의 명성을 회복하고 훗날까지 우리의 얼굴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글 김윤섭(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