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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프루츠

LIFESTYLE

과일 모양 디저트로 세계의 페이스트리 신 정상에 오른 세드리크 그로레. 새콤달콤, 향긋함과 고소함. 그의 인생을 과일에 비유하면 어떤 맛일까?

요즘 가장 트렌디한 검색 엔진 중 하나인 인스타그램에서 #cedricgrolet를 검색했다. 캐주얼한 셔츠 차림에 깔끔한 그루밍과 양팔 가득한 타투가 시선을 끄는 개성파 배우 같은 인상의 젊은 남자 프로필이 뜬다. 페이스트리 셰프가 맞나 하는 의구심은 그의 계정에 들어가는 즉시 사라졌다. 수백 장을 봐도 질리지 않는 형형색색 달콤한 창조물이 가득했기 때문. 인기와 화제성의 척도인 팔로워 수를 확인하니 110만 명이 넘는다. 과연 이렇게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 팬과 활발히 소통하는 셰프가 또 있을까 싶다.
세계 최초 페이스트리 셰프로 추앙받는 마리앙투안 카렘, 프랜차이즈 제과점을 처음 만든 가스통 르노트르, 디저트를 예술 영역으로 이끈 피에르 에르메로 이어지는 프랑스 파티시에의 전설적 계보를 잇는 인물이 인스타그램 ‘스타’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하지만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눈으로 맛보는 것이 입에 넣는 것 못지않은 즐거움을 선사하는 이 분야에서 소셜 미디어는 셰프의 스패출러만큼 중요한 도구 중 하나일 테니까.
세드리크 그로레(Cedric Grolet, 1985년~)는 현재 프랑스 제과 산업의 핵심 인물이자 최고 페이스트리 셰프로 거론되고 있다. 단지 엄청난 팔로워 수에 기반한 결과가 아닌, 이를 증명하는 근거는 얼마든지 있다. 20대 중반이던 2012년 르 뫼리스(Le Meurice)의 페이스트리 파트 헤드 셰프를 맡으며 일찌감치 실력을 인정받은 그. 적응기를 마친 2015년부터 각종 음식 매거진과 여행서가 선정한 올해의 페이스트리 셰프상을 휩쓸기 시작했다. 2017년에는 생애 첫 번째 책 <프루츠(Fruits)>를 출간하며 아마존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을 올렸고, 2018년 3월 르 뫼리스 호텔에 오픈한 그의 첫 페이스트리 부티크는 디저트 마니아의 성지로 자리 매김했다. 그리고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의 2018 월드 페이스트리 셰프로 등극하기까지, 불과 몇 년 만에 그는 진짜 월드 스타가 되었다.

세드리크 그로레가 주방에 첫발을 디딘 건 열세 살 때로, 루아르 지방에 위치한 조부모의 호텔 앙드레지외 부테옹(Andrezieux-Boutheon)의 레스토랑에서 견습 생활을 하면서부터다. 딱 1년 만에 페이스트리 분야에서 경력을 쌓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제과점에서 일하는 게 멋져 보였거든요.”라고 말한다. 솔직히 공부가 적성에 맞지도 않고 성적도 좋지 않았다며, 견디기 힘들었던 학교생활이 어린 나이에 요리 세계로 들어가는 촉매제가 된 것 같다고 덧붙인다. 스물한 살에 파리로 거처를 옮겨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페이스트리 브랜드 포숑(Fouchon)에서 마카롱 만들기를 배우는 것으로 꿈을 향한 행보를 시작한 청년 세드리크. “레클레어 드 지니(L’Eclair de Genie)로 알려진 크리스토프 아담(Christophe Adam)이 제 스승이셨죠. 디저트에 필요한 모든 전문적 기술을 가르쳐주셨어요.”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기술을 익힌 세드리크 그로레는 제품 개발과 교육 관련 업무를 동시에 처리했다. 베이징, 두바이, 모로코 등 포숑의 해외 매장을 오픈하는 데에도 적극 참여하며 국제적 감각을 길렀다. 6년 후 이직한 직장이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이 있는 르 뫼리스 호텔. 페이스트리 파트 수셰프로 입사했으나 선임자가 떠나면서 바로 주방장으로 승진했으니 운도 따랐다. 프랑스의 국가 대표 요리 대부와의 운명적 만남도 있었다. 2013년 알랭 뒤카스가 호텔 내 파인다이닝을 인수하며 세드리크 그로레에게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서빙할 디저트를 만들 기회를 준 것. “당시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저는 다른 훌륭한 셰프가 많다며 제안을 거절했어요. 하지만 그는 제게 지금의 기술로도 충분하다, 창조성을 마음껏 발휘해보라고 독려하셨죠.” 알랭 뒤카스는 요리할 때 설탕을 선호하지 않는데, 디저트도 설탕을 줄이길 원했다. “재료 본연의 풍미를 최대한 살린 자연스러운 맛을 강조하셨어요. 더불어 비주얼적으로도 감각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고요.”

그렇게 탄생한 것이 그의 시그너처가 된 아주 특별하고 섬세한 과일 모양 디저트 ‘트롱프뢰유(trompel’oeil, 눈속임)’ 시리즈다. 진짜 과일로 만든 무스나 마멀레이드를 안에 넣고 초콜릿 껍질로 감싼 것. 가령 ‘레몬’의 레몬 커드와 데친 레몬 과육, 유자 가나슈, 레몬제스트와 화이트 초콜릿을 이용하는데 레몬의 울룩불룩하고 기공 있는 껍질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레몬 설탕을 뿌리고 금빛 에어브러시로 마무리한다. 한 입 깨물면 강렬한 과일 향과 함께 가나슈 필링이 혀에서 사르르 녹는데, 그 조화로움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더 이상 비스킷과 달걀에 의존하지 않기로 했어요. 인위적인 과일 향도 배제했죠. 자연이 우리에게 준 선물인 과일 맛을 존중해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었어요. 단순하고 원초적으로.” 또 설탕을 최소화하되 과일이나 고품질 초콜릿에 든 천연 당분을 활용해 최적의 단맛을 이끌어내는데, 너무 달지 않아 마지막 조각을 비울 때까지 입안이 텁텁하지 않다. 트롱프뢰유 시리즈는 알랭 뒤카스의 기대치를 이미 넘어섰지만, 그는 과일 요리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지금도 도전과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
페이스트리 부티크에서는 과일 디저트뿐 아니라 클래식한 프렌치 디저트와 루비크 케이크(Rubik’s Cake) 같은 그의 또 다른 창작 페이스트리도 만날 수 있다. 루비크 케이크는 27개의 페이스트리 큐브를 3단으로 쌓아 올린 독특한 형태로 살구와 로즈메리, 체리와 타라곤 등 과일과 허브의 이색적 풍미의 조합과 독창적이고 우아한 컬러 매치가 돋보인다. 사과 타르트(Tarteaux Pommes)는 그가 전통 프렌치 디저트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지 보여주는 레퍼토리 중 하나. 사과를 최대한 얇게 슬라이스해 장미 모양을 구현했는데, 이는 그가 엄청난 인내심과 정교한 기술을 갖췄다는 것을 증명한다.
프랑스의 저명한 주간지 <렉스프레스(L’Express)> 기사에 세드리크 그로레의 디저트는 “달콤함의 세계에서 혁명을 일으켰다”고 묘사한 적도 있다. 혹자는 고전적 중추에 아방가르드한 날개를 달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만약 당신이 파리에 머무른다면 이 글을 읽는 즉시 르 뫼리스 호텔 파티세리로 달려가고 싶겠지만, 발 빠르게 예약하지 않으면 텅 빈 쇼케이스만 바라보다 빈손으로 발길을 돌릴 수도 있다. 대신 호텔레스토랑 & 바 르달리(Le Dali)에서 샌드위치와 스콘에 곁들여 세드리크 그로레의 디저트가 3단 트레이에 담겨 나오는 애프터눈 티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 저녁에는 파인다이닝에서 프렌치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알랭 뒤카스 디너 코스의 환상적 마무리로 그의 디저트를 맛볼 수 있다. 파리에 가기 전까진 그의 인스타그램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다. 세드리크 그로레는 완벽한 팬 서비스를 위해 디저트를 만드는 것만큼 정성 들여 촬영한 사진을 계속 업데이트할 것이라고 말한다. “여러분도 제게 약속을 해주셔야 합니다. 제 디저트를 맛본 뒤에는 꼭 #cedricgrolet 해시태그를 달아 포스팅해주셔야 해요.” 21세기 팬레터는 스마트폰을 이용하면 우편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스타에게 닿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이것이 그가 우리에게 선물하는 달콤한 행복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는 것도.

 

그의 열정(passion), 인내(patience), 철학(philosophy)에 관한 이야기

왜 이렇게 과일을 좋아하죠? 어린 시절 엄마가 간식으로 항상 과일을 주셨어요. 나무에서 갓 딴 신선한 과일요. 알록달록하고 새콤달콤한.

그 사랑은 생과일에 국한되나요? 전 말린 과일도 좋아해요. 말린 과일로 전통적 페이스트리를 만들기도 하죠.

그렇다면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요? 딱 하나만 고르라면 불가능해요. 계절별로 다르거든요. 여름엔 딸기, 겨울엔 밤, 배, 헤이즐넛이죠.

당신의 첫 번째 저서 <프루츠>는 오랜 과일 사랑에 대한 일종의 헌정 시 같아요. 45가지 과일을 활용한 130가지 레시피를 담았으니 ‘과일 디저트에 대한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기획하고 책이 나오기까지 1년 정도 걸렸는데, 대부분 레시피는 이 책을 위해 새로 만들었어요.

그 책에서 트롱프뢰유 시리즈도 심도 있게 다뤘죠. 자, 이 실제 같지만 실제가 아닌 과일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죠? 과일 모양 디저트는 완전히 새로운 시도라고는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원재료인 과일을 활용하는 방식만큼은 제 고유의 것이죠. 열여섯 살 때부터 스무 살까지 취미로 초콜릿 조각을 했어요. 르 뫼리스 호텔에 부임했을 때 새로운 디저트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과일, 내가 잘하는 초콜릿 조각을 떠올렸어요. 트롱프뢰유는 초콜릿 껍질을 사용하지만 달지 않아요.

달지 않은 것도 당신이 만든 디저트의 특징이죠. 디저트는 무조건 달아야 한다는 건 오해고 편견이죠. 그렇다고 무조건 설탕을 배제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헤이즐넛 프랄린의 경우 그것만 먹으면 굉장히 짠데 캐러멜 무스를 더하면 맛이 완벽해지죠. 중요한 건 맛의 균형이고, 이에 따라 설탕의 양을 조절해 ‘적정량’만 쓰겠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단맛을 줄이는 건 일종의 현대화 같기도 합니다. 당신 또래 젊은 페이스트리 셰프들이 달지 않은 디저트에 대한 의지를 많이 내비치고 있으니까요. 전통적 DNA를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통의 답습이 아닌 저만의 생각으로 새롭게, 더 가볍고 정교하게 풀어내려 해요. 제 디저트의 또 다른 특징은 한 가지 재료에 집중한다는 것인데, 다른 맛과 섞지 않고 재료의 순수한 맛을 최대치로 이끌어내는 거죠. 먹는 이가 온전하게 그 재료를 ‘주인공’으로 느끼게 하고 싶어요.

평소 어디에서 창작의 영감을 얻나요? 제 주위의 모든 것을 통해서요. 저는 패션, 미술관, 향수와 향에 관심이 많아요. 컬러풀한 것과 건축물도요.

새로운 메뉴가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궁금해요. 모든 디저트는 최초 스케치 형태로 존재해요. 제 그림을 보고 부주방장이 실물로 구현하는데 그 과정을 통해 제가 좀 더 객관적으로 그 메뉴를 평가할 수 있게 됩니다. 스케치는 5분이면 끝나지만 디저트 하나를 만들기까진 2일 혹은 3일 정도 걸려요. 업무 효율성을 위해서도 이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의 디저트를 맛본 이라면 누구나 포근한 단맛으로 위로받았을 거예요. 당신에게도 위안을 주는 음식이 있나요? 정말 맛있는 샐러드를 먹을 때면 바다를 보면서 물에 발 담그고 있는 기분을 느껴요.
그렇다면 당신이 즐겨 찾는 샐러드 맛집은요? 파리 생제르맹데프레 인근에 있는 마르가리타(Margarita)요.

당신에게 귀감이 된 페이스트리셰프는 누구인가요? 가장 먼저 피에르 에르메를 언급할게요. 함께 일한 적은 없지만, 그의 철학과 전략은 제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가끔 그와 얘기를 나눌 때면 제게 많은 조언을 해주세요. 그리고 영원한 제 스승 크리스토프 아담과 크리스토프 미카라크도 제게 늘 영감을 주죠. 특히 크리스토프 미카라크는 매우 대담하면서 진보적이에요.

최고 페이스트리 세프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요? 인내심과 끈기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기본기를 익히기도 전에 그만둬요. 기술을 어느 정도 해내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한데, 기다리지 못하죠. 그리고 호기심이야말로 성장의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2018년 세계 최고 페이스트리 셰프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죠. 이처럼 높은 수준에 도달하게 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세계 최고 페이스트리 세프 타이틀을 생각보다 일찍 얻게 되어 놀랐어요.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모든 면에서 더 발전하고 성장해야죠.

향후 계획은요? 제 이름을 건 페이스트리 부티크를 세계에 더 많이 열고 싶어요. 그리고 1년 뒤 출간할 두 번째 책 만드는 데도 힘을 쏟을 겁니다.

 

에디터 이재연(jyeon@noblesse.com)
사진 Pierre Monetta(음식)   손희란(미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