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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샷’ 시대의 미술관

LIFESTYLE

장기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시작한 미술관 내 ‘사진 촬영 허용’ 방침이 더 많은 이들을 미술관으로 끌어모으고 있다. 그들의 ‘생존법’이 새삼 눈길을 끈다.

앤디 워홀이나 잭슨 폴록 등 대가들의 작품 촬영이 가능해진 뉴욕 모마

지난 10월 서울 대림미술관. 영국 패션 사진 작가 닉 나이트 개인전 오프닝에 많은 사람이 몰렸다. 미술관 입구부터 시상식처럼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 전시장 안에서도 작품을 담으려는 ‘찰칵찰칵’ 소리가 길게 드리워졌다. 수년 전 작품 앞 ‘사진 촬영 금지’를 해제한 대림미술관은 현재 인스타그램에서 ‘#대림미술관’ 해시태그(#)가 걸린 사진이 20만 건에 달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이나 한가람미술관 등 다른 미술관(5만 건 안팎)에 비하면 압도적. 또 이들은 미술관 내에서 ‘인증샷’을 남기면 다음 관람 ‘공짜’ 혜택을 주는 이벤트를 벌인다. 따로 돈을 들여 소식을 전하지 않아도 관람객이 절로 밀물처럼 밀려오는 것이다.
최근 서울 DDP에서 막을 내린 전시 <백남준쇼>도 이와 비슷했다. SF 영화 세트처럼 꾸민 이들의 전시장에도 ‘촬영 관람객’이 가득했다. 전시장 내 사진 촬영을 허용한 데 이어 사진 찍기 좋은 포인트가 곳곳에 존재했기 때문. 당시 관람객들이 찍은 사진은 각종 SNS로 직행했고 <백남준쇼>는 그들의 친구는 물론 그들을 전혀 모르는 사돈의 팔촌에게까지 퍼져 톡톡한 홍보 효과를 누렸다.
DDP를 운영하는 서울디자인재단의 한세현 매니저는 이 같은 미술관 내 사진 촬영 허용 효과에 대해 “20~30대가 주로 쓰는 SNS를 통해 전시장과 전시품이 지속적으로 노출돼 홍보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밝혔다.최근 계속되는 불황으로 관람객 수가 줄어든 미술관들이 사진 촬영을 허용하며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전까지 촬영 불가를 내건 미술관들이 적극적으로 사진 촬영을 장려하는 것은 물론, SNS상에서 이벤트까지 벌여 관람객을 끌어모으는 것. 그간 미술관에서 사진 촬영을 금지한 것은 ‘작품 보호’와 ‘저작권 문제’, ‘타인의 관람을 방해’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한데 이러한 명제 또한 문화계에까지 퍼진 불황의 그림자를 감당하지 못한 모양새다.

1 최근 팔레 드 도쿄에서 개인전을 연 티노 세갈의 퍼포먼스. 그 역시 ‘촬영세례’를 피해가진 못했다.
2 아카데미아 미술관의 ‘다비드상’ 앞에서 ‘인증샷’을 선보인 휴 잭맨

사실 이러한 변화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미술관(Galleria dell’ Accademia)은 재작년 개관 이래 처음으로 엄격하게 금지해온 사진 촬영을 허용했다. 이곳에서 관람객의 플래시 세례가 집중된 곳은 단연 1층 중앙 홀에 자리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현재 인스타그램에서 ‘다비드상’을 검색하면 일반인은 물론 휴 잭맨 같은 배우들의 익살스러운 ‘셀카’도 볼 수 있다.
19세기 미술품을 잔뜩 소장한 파리 오르세 미술관(Orsay Museum)도 지난해부터 사진 촬영을 허용하고 있다. 이곳은 한국계 입양아 출신으로 알려진 전 프랑스 문화부 장관 플뢰르 펠르랭(Fleur Pellerin)이 직접 사진 촬영 허용을 주문한 케이스. 그녀는 ‘작품 보존’이라는 이름하에‘사진 촬영 불허’를 유지해온 오르세 미술관에 ‘모든 미술관에서 사진을 찍어 많은 사람이 SNS를 통해 나누는 걸 허용한다’는 기존 프랑스 문화부의 권고 사항을 들이밀며 ‘촬영 금지’ 안내문을 없애버렸다.
그런가 하면 19세기 이후 미국 공예품과 장식 예술품을 다량 소장하고 있는 미국 워싱턴DC의 렌윅 미술관(Renwick Gallery)은 아예 ‘사진 촬영 권고’라는 푯말까지 내걸었다. 이들이 이렇게 사진 촬영을 ‘권하게’ 된 건 SNS를 통한 사진 공유로 엄청난 홍보 효과를 봤기 때문. 과거 1년에 16만여 명이던 이 미술관의 관람객 수는 사진 촬영을 허용한 이후 두 달 반 만에 무려 17만6000여 명을 기록했다는 후문이다.
최근 파리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에서 개인전을 연,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의 주인공 티노 세갈(Tino Sehgal)도 ‘촬영 세례’를 피하진 못했다. 현대미술의 정치적 이슈를 현대무용으로 시각화해온 그는 오랫동안 사진 촬영과 배포를 엄격히 금한 미술가다. 하지만 지난 두어 달간 그는 팔레 드 도쿄의 기본 기조인 ‘촬영 허용’에 밀려 SNS에서 강제로 스타가 됐다.
이런 현상은 뉴욕 모마(MoMA)에서도 이어졌다. 최근 모마를 찾은 관람객은 피카소나 반 고흐, 살바도르 달리, 잭슨 폴록, 마르크 샤갈, 앙리 마티스, 앤디 워홀 등의 걸작 앞에서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며 미술관에 대한 애정을 표한다. 이 밖에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The Art Institute ofChicago),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런던의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 파리의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와 루브르 박물관(Louvre Museum) 등도 최근 1~2년 사이 ‘사진 촬영 허용’을 내걸며 관람객을 맞이하는 형국이다. <뉴욕 생활 예술 유람기>의 저자인 독립 큐레이터 이나연은 이 같은 세계 미술관의 사진 촬영 허용 움직임에 대해 “오랫동안 SNS의 홍보 효과를 인정하지 않은 미술관들이 뒤늦게 그 힘을 체감하고, 작가들 또한 홍보 효과를 인정했기 때문”이라며 어느덧 ‘파워풀한 매체’로 부상한 SNS의 효과에 대해 언급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이러한 움직임에 전혀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사진 촬영으로 인한 다른 관람객의 ‘작품 감상 방해’와 ‘저작권’이라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날 선 비평으로 유명한 영국의 미술 칼럼니스트 루퍼트 크리스티안센은 2014년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쓴 한 기사에서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뭐든지 허용 되는 단순한 공공장소가 아니라 고요한 명상과 생각, 연구를 위해 고안한 곳”이고 “작품 앞에서 셔터만 누르고 돌아서는 행위는 사람들 대부분이 미술 작품과 마주 섰을 때 그것을 시각적으로 기록하는 것 외에 뭘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반영한다”라며 유럽 내 미술관의 사진 촬영 허용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 영국의 한 방송사는 자국의 몇몇 미술관에 위작을 걸어놓고 작품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위작을 찾아 내는 성실한 관람객에게 상을 주는 이벤트를 펼쳐 ‘인증샷’만 찍고 돌아서는 관람 문화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세계 미술계의 불황 타개를 위한 움직임은 더 거세지는 듯하다. 이미 고착화되고 있는 ‘사진 촬영 허용’을 뒤로하고, 최근엔 아예 ‘미술관 연중무휴’라는 카드까지 꺼내 드는 실정이다. 이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루브르 박물관이 휴관일을 없앴고, 최근엔 국내 미술관에까지 이런 흐름이 전해져 지난 10월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이 매주 한 차례 있던 정기 휴무를 폐지하고 관람객을 맞고 있는 것. 국내의 경우 정기 휴관을 없애는 사안에 대해 현재 미술품 관리와 예산 등의 문제로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관람객 입장에선 충분히 반길 만한 일일 것이다.
불황을 타개하는 하나의 탈출구로 시작한 미술관 내 사진 촬영 허용 방침이 더 많은 관람객을 미술관으로 끌어모으고 있다. 미술관 건물의 공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화로, 이제 미술관은 단순히 그림을 보기 위해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소셜라이즈’할 수 있는 장소로 변모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이가 다양한 차원의 현대미술을 누릴 수 있길 바란다.

“깐깐하던 미술관들이 관람객의 사진 촬영을 허용하며 문턱을 낮추고 있다. ‘인증샷’ 시대를 맞아
더 많은 이가 현대미술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에디터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