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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모티브로, 작가 조영주의 이야기

ARTNOW

제20회 송은미술대상 대상 수상자 조영주의 이야기.

One Night with Someone’s T-shirt in My Bed, 디지털 프린트, 50×35cm(6 each, 가변 크기), 2006~2007

조영주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난 조영주는 파리와 베를린, 서울을 오가며 퍼포먼스, 설치, 사진, 비디오, 무용 등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다. 성균관대학교 서양화과, 파리 제8대학교 조형예술학과 석사과정을 수학했고 파리-세르지 국립고등미술학교를 졸업했으며, 국제 미술 그룹 글로벌 에일리언의 주요 멤버로 활약하기도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시립미술관, 사비나미술관 등 국내 주요 미술관 기획전에 참여해온 작가는 지난 1월 제20회 송은미술대상 대상을 받았다.

우연히 만난 남성들이 입고 있던 티셔츠를 빌려 입고 잔 후 그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한 ‘One Night with Someone’s T-shirt in My Bed’(2006~2007), 결혼정보회사에 직접 전화 걸어 맞선 상대를 소개받는 과정을 녹음한 ‘아름다운 인연’(2013), 중년 여성들을 작업실에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기록물을 남기는 지역민 참여 리서치 프로젝트 ‘드레스를 입은 대화’(2015)까지. 조영주는 늘 자신을 둘러싼 사회구조와 환경에서 비롯한 작업을 해왔다. 이런 그녀가 지금 관심을 보이는 주제는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일생일대의 ‘사건’, 출산과 육아다.

<제20회 송은미술대상전>에서 선보인 신작 ‘세 개의 숨’ 앞에 선 조영주.

입술 위의 깃털, 단채널 영상, 10분 30초, 2020

불완전한 생활, 6채널 영상, 각각 1~2분, 2019

우선 인터뷰에 앞서, 제20회 송은미술대상 대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코로나19 사태가 불러온 제한된 작업 환경에서 육아와 창작 활동을 병행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좋은 결과가 나와 기쁩니다.

송은미술대상 수상 작가 4인의 작품을 선보인 <제20회 송은미술대상전>에 신작들을 출품했습니다. 모두 작가님의 최근 경험에서 비롯한 작품이라고요? 저는 저 자신에게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작업 초기에는 이방인, 다문화, 차별, 인종, 계급 같은 문제를 다뤘어요. 당시 제가 어린 동양 여성 작가로서 유럽 사회를 경험했기 때문이죠. 2010년대 초반에 귀국해서는 어머니 세대를 주목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 작가에게 들이대는 엄격한 잣대에 무력감을 느꼈고, 자연스레 어머니들에게 제 모습이 오버랩되더군요. 그러다 몇 년 전 아이를 낳았습니다. 계획한 일이긴 하지만, 막상 육아가 현실이 되자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일과 육아 사이에서 밸런스를 잡는 게 어려웠어요. 작가들에겐 작업에 온전히 집중할 시간이 필요한데 그게 안 됐죠. ‘엄마’ 조영주로 살아가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작가’ 조영주는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 울고 보채는 아이를 두고 작업실로 향할 때 느껴지는 죄책감 등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저를 둘러싼 환경과 그에 대한 생각을 작업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여성 퍼포머 4인이 신체적 대결을 벌이는 영상 작품 ‘입술 위의 깃털’(2020)의 경우, 언뜻 ‘출산과 육아’라는 키워드와 잘 연관되지 않아요. 육아 과정에서 아이와 신체적으로 접촉하는 일이 많아요. 아이를 사랑으로 보듬는 것 외에도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순간, 성적 뉘앙스가 담긴 지점이 있죠. 이러한 경험은 저에게 잊고 있던 몸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입술 위의 깃털’에선 레슬링 경기에서처럼, 또는 사랑을 나누는 것처럼 퍼포머들의 몸이 뒤엉켜요. 다양한 움직임을 통해 예술사에서 오랫동안 다룬 여성의 신체 이미지를 저만의 시각으로 되짚어보고 싶었습니다.

8채널 사운드/영상 설치 작품 ‘세 개의 숨’(2020)은 육아일지가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2차원 텍스트가 어떻게 이런 융・복합적 장르의 작품으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육아일지를 쓰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아이의 배변, 수면, 수유 등을 기호화해 작성했어요. 30개월 정도 작성하고 나니 이것이 작업으로 연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육아일지를 음악과 연관 지어 작업한 건 ‘나의 몸을 쓰는 것’(2019)이 처음이에요. 기호 하나하나를 음으로 변환해 소나타곡을 만들고 안무를 더해 퍼포밍했죠. 이 개념을 조금 더 발전시켜 설치물 혹은 오브제가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보고 싶었고, 그 결과물이 3악장의 관악4중주로 이루어진 ‘세 개의 숨’입니다. ‘숨’에는 엄마 손에 달린 아이의 (목)숨, 작가로서 끝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나오는 (한)숨 등 여러 의미가 담겼습니다.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드는 데에는 전시장 곳곳에 뻗은 덕트(배기관)가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작품을 구상하며 악기로서 기능할 수 있는 설치물을 찾다가 작업실의 노출 천장에 있는 덕트를 발견했어요. 탯줄 같기도 하고 숨통 같기도 해서 제 의도와 잘 맞아떨어졌죠. 연주자들이 공기가 빠져나가는 듯한 ‘에어 사운드’라는 연주법으로 숨을 표현하는데, 배기관은 이 숨이 드나드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입술 위의 깃털’과 ‘세 개의 숨’은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해 만든 작품입니다. 아무래도 혼자 작업할 때보다 고려할 요소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제 지식만으로 구현할 수 없는 작업은 전문가의 조언을 귀담아듣는 게 중요합니다. 예컨대 아예 곡을 하나 만들어야 한 ‘세 개의 숨’은 작곡가와의 긴밀한 협업이 필수였습니다. 곡을 어떤 악기로 구성할지 같은 큰 부분부터, 특정 파트에서 덕트를 두드릴지 혹은 북을 칠지 등 세세한 부분까지 함께 고민했어요. 함께 작업한 이은지 작곡가가 제가 모르는 연주법이나 악기를 제안해준 덕분에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디테일을 신경 쓰는 과정에서 본래 의도가 흐려지는 것은 아닌지 전체적 틀은 작가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합니다.

유니버셜 콜라보레이터, 서울, 다채널 영상(각각 5분) & 퍼포먼스, 2014

꽃가라 로맨스, 단채널 영상, 6분 51초, 2014

작가님과 백인 남자 퍼포머가 함께 연기하는 영상/퍼포먼스 작품 ‘유니버셜 콜라보레이터’(2014), 일반 중년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꽃가라 로맨스’(2014), ‘디바들의 외출’(2015) 등 과거 작품에서도 협업적 요소가 눈에 띕니다. 여러 작업을 한 만큼 협업에 관한 작가님만의 노하우가 있을 듯합니다. 저는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동등한 입장에 서려고 해요. 제가 보스고 그들이 고용인인 구조는 뭔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창의적인 것이고, 그렇기에 자유로워야 합니다. 협업할 때 그런 환경을 만드는 건 제 일이니까요.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노하우라면 노하우일 것 같습니다.

한편으론 이렇게 많은 협업을 진행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특히 작가님이 서양화와 조형예술을 전공했다는 점에서 의외로 느껴집니다. 외향적 성격이기도 하고, 몸으로 부딪치는 걸 워낙 좋아해요. 학부 때는 극회 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처음엔 미술과 연극이 전혀 다른 분야라고 생각했는데, 점차 서로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졸업할 즈음엔 현대무용에 관심이 생겨 제가 듣고 싶은 수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파리 제8대학교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곳에선 3년 내내 무용을 배울 수 있었죠. 아시다시피 연극이나 무용은 협업이 베이스잖아요. 이 외에도 과거 다국적 작가로 구성된 글로벌 에일리언(Global Alien)이란 그룹에서 10년 정도 활동하기도 했고요. 이런 경험이 모여 지금까지 제 작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작품 중에는 앞서 이야기한 ‘세 개의 숨’이나, 토크 콘서트 형식의 퍼포먼스 ‘미스 리와 김 여사: 이영숙과 김숙자 이야기’(2017)처럼 다매체적, 다장르적 특성을 띤 것이 여럿 있습니다. 이런 작업을 하려면 남다른 상상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 작품의 구상 방법이 궁금합니다. 머릿속에 차곡차곡 정보를 입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들이 이어져 하나의 아이디어가 됩니다. 사실 이건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예요. 다만 여러 요소를 끌어들이는 작품의 특성상, 아이디어를 아이디어로 남겨두지 않고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조금 더 많은 ‘실행력’이 요구되는 편입니다. ‘세 개의 숨’을 예로 들어볼까요? 작품에 덕트를 활용하기로 마음먹었으면 그것을 어디서 구할지부터 알아봐야겠죠. 예산이 한정되어 있으니 가능한 한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요. 저 같은 경우 고물을 수거하는 분부터 섭외했어요. 이런 성질의 작업을 오래 하다 보니 훈련이 잘된 편입니다.(웃음)

나의 몸을 쓰는 것, 단채널 영상, 9분 57초, 2019. Filmed by Sunyoung Lee

그랜드 큐티, 단채널 영상, 7분 34초, 2015. Filmed by THISISAWORKBYHAZARD

그런 작가님의 작업은 종종 다원예술의 카테고리 안에 묶입니다. 다원예술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작가로서 크게 와 닿는 말은 아니에요. 다양한 가치를 아우르는 오늘날 미술에 이미 ‘다원’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시다시피 다원예술은 제도적 필요성에 의해 만든 말이에요. 기존 예술 장르로 분류하기 애매한 것을 지원하기 위해서요. 다만 다원예술이라는 명칭이 생기고 나서 국내에서 융・복합적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가 많아진 건 흥미롭게 생각합니다.

재밌네요. 원래는 다원예술적 작품이 많아져 다원예술이란 명칭이 생겨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한국 작가들은 기금 의존도가 높은 편이에요. 다원예술이라는 카테고리가 생겼다는 건 지원이 따른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자연스레 작가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죠. 정책 담당자가 여기까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양성의 측면에서 국내 아트 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건 사실입니다.

현재 관심 있는 토픽, 혹은 앞으로 시도해보고 싶은 작업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여성의 신체성에 대한 궁금증이 남았습니다. 여성의 신체가 다의적이고 복합적인 이미지로서 기능하는 지점을 연구해볼 생각입니다. 장기적으로는 가정생활이나 육아를 경험한 선배 작가들의 당시 경험과 작품을 조사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오마주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작가로서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육아로 지친 시기에 저와 비슷한 길을 걸은 멘토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해외엔 ‘산후 기록’이란 작품으로 유명한 미국 작가 메리 켈리(Mary Kelly) 같은 작가가 제법 있는데, 국내에는 딱 떠오르는 인물이 없더라고요. 훗날 제가 육아와 작품 활동을 병행하는 누군가에게 모델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에디터 황재웅(jewoong@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
사진 제공 조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