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일상 속 혁신을 이어가는 발명가

LIFESTYLE

혁신을 메들리처럼 이어나가는 것을 모토로 하는 이놈들연구소 최현철 대표는 인체 전도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시곗줄 시그널로 국내외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가 말한 혁신은 원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사소함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발명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 사소함에서 시작한다. 세상에 이름을 떨치겠다는 원대한 목표가 아니라 평범한 일로 스쳐가는 찰나 속에서 불편함을 간파하고 해결책을 찾다 새로운 발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스마트 시곗줄 시그널(Sgnl)로 국내외에서 주목을 끌고 있는 이놈들연구소 최현철 대표는 수더분한 인상과 달리 누구보다 일상 속 불편함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2012년 친구들과의 저녁 모임에서 얼리어답터인 한 친구가 새로 출시한 스마트 시계를 자랑하더군요. 저는 그 스마트 시계의 우수성보다 친구의 통화 내용을 듣게 된 민망함을 더 크게 느꼈어요. 그리고 ‘앞으로 웨어러블 기기가 대중화될 텐데 그로 인한 사생활 보호는 모두가 바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뇌공학을 전공한 최현철 대표는 그 후 혼자만 통화 내용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그 답이 바로 지금의 시그널이다. 시그널은 인체를 통해 소리를 전달하는 시곗줄로, 전화가 왔을 때 스마트 시곗줄을 착용한 손을 들어 손가락을 귀에 대면 사생활 침해 없이 통화할 수 있는 혁신적 발명품이다. 설명을 들어도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라는 물음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소리가 시곗줄 내부의 블루투스로 전달되면 진동으로 변환돼 손끝까지 이어져요. 다시 그 진동이 손가락 끝이 닿은 귓속의 밀폐된 공간에서 소리로 바뀌는 원리예요. 시곗줄에 마이크가 내장되어 있어 전화기로 통화하는 듯 자연스러워 보이죠.” 통화뿐 아니라 문자와 스케줄 알림, 건강 체크까지 가능한 스마트 워치의 기능을 갖춘 것이 시그널의 또 다른 장점이다. 인체를 통해 소리를 전달하는 기발한 아이디어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이놈들연구소는 미국 크라우드 펀딩 킥스타터에서 2개월 만에 147만 달러(약 17억 원), 그 이후 10월부터 이어진 인디고고 캠페인을 통해 178만 달러(약 21억 원)를 모금했다.
2015년 9월 법인 설립 후 1년 5개월 만의 눈부신 성과다. 아이디어로만 승부를 보기엔 녹록지 않은 한국의 스타트업 시장에서 어떻게 이런 결과를 얻게 됐을까.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놈들연구소를 창업하기 전 삼성전자 DMC연구소에서 학부 시절 전공을 살려 빅 데이터 분석과 영상 처리 등의 업무를 담당했는데, 항상 마음속에는 제 아이디어와 기술력이 담긴 아이템으로 창업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삼성전자에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공모해 과제를 진행하는 C랩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선정된 과제는 1년간 연구 개발과 시제품 제작을 지원해주거든요. 분야에 상관없이 지원할 수 있다는 말에 1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5년 5월 시그널에 적용한 인체 전도 기술을 제안했고, 최종 과제로 선정된 덕에 기술 개발을 거쳐 9월에 이놈들연구소를 창업할 수 있었어요.”
삼성전자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이 될 줄 알았던 그의 생각과 달리 이놈들연구소는 삼성전자의 첫 스핀오프 사례가 되어 어엿한 스타트업 기업으로 새 출발을 했다. 최현철 대표는 법인 설립 후 완성된 기술을 시곗줄로 구현하느라 예전보다 바쁜 나날을 보냈다. 3개월 만에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팁톡(TipTalk)이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1월 2016 CES에서 첫선을 보인 후, 시그널로 개명해 9월 유럽 가전 전시회 IFA 2016에 출품했다. 전시회를 통해 얻은 피드백은 고스란히 시그널의 성능 개선으로 이어졌고, 이제는 시중에 판매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2월엔 베타 버전을 제작해 킥스타터 크라우드 펀딩 후원자에게 배송을 시작하고, 일반 소비자는 3~4월쯤 온·오프라인 마켓을 통해 시그널을 구매할 수 있다. 20~30대 얼리어답터 남성이 주로 관심을 보일 것 같지만 실제 구매 의사를 나타낸 연령층은 10~50대까지 고루 분포되어 있다고. “시그널을 구매하는 분들은 대부분 자신의 아날로그 시계를 유지하면서 건강, 알람 같은 스마트한 기능도 함께 이용하길 원하더라고요. 시계의 디자인을 해치지 않는 심플하면서 내구성 강한 실리콘 소재로 만든 것도 소비자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준비부터 시작해 순조로운 행보를 이어왔지만 그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스핀오프 제도를 통해 제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지만 밤낮없이 기술 개발에 매달리는 것은 쉽지 않더라고요. 하루아침에 원하는 결과를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좌절하기보다는 매일 끊임없이 반복하며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과정을 즐기려고 노력했어요. 무엇보다 전 좋은 사람들이 만나 생각을 공유하면 분명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믿거든요. 곁의 동료들에게 긍정적 기운을 얻어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달려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혁신을 지속적으로 창조하는 인재 중심의 연구소를 표방하는 이놈들연구소(Innomdle Lab)는 Innovation Medley Lab의 약자로 지금은 시그널에 몰두하고 있지만 앞으로 인체 전도 기술을 이용한 다양한 시도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이놈들연구소가 개발한 인체 전도 기술은 1·2·3세대를 모두 포함해요. 1세대는 시그널처럼 손가락으로 통화하는 기술, 2세대는 손가락으로 데이터를 전송해 단순한 터치를 통해 사물인터넷처럼 사물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기술이죠. 3세대는 인체의 고유한 주파수를 이용, 지문 인식처럼 사용할 수 있어 핀테크로 활용할 수 있는 가치가 높아요. 2·3세대는 시그널처럼 아이템 형태가 아니라 기업에 기술 지원을 통한 사업을 생각 중이에요.” 그는 시그널의 성공을 누구보다 바라지만 그것이 이루고 싶은 목표의 전부는 아니다. “단순히 하나의 아이템으로 사업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혁신을 선도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싶어요. 규모가 큰 수직적 기업으로 성장하기보다는 창의적 제품을 만들어가는 소규모 연구소나 동아리 같은 수평적 성장을 이루고 싶달까요. 저와 같이 창업을 꿈꾸는 미래의 사업가에게 또 다른 C랩 같은 존재가 되는 거죠.” 미래의 목표를 말하는 그의 눈빛에서 무한한 물질적 성과를 바라기보다는 기술로 모두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것을 개선하거나 필요한 것을 아이템으로 구현해 세상에 선보였을 때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짜릿해요. 사업가로 제 길을 걸어가겠지만 앞으로도 끊임없이 아이디어와 기술을 개발해 제품을 계속 선보이는 일상 속 발명가로서의 길도 포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발전된 기술이 우리에게 행복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그럼에도 최현철 대표와 같은 마음을 지닌 사업가가 많아진다면 그래도 행복해질 확률은 더 높아지지 않을까.

에디터 최윤정(amych@noblesse.com)
사진 김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