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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선물한 기술

LIFESTYLE

생명체나 그 일부를 이용하는 바이오테크놀로지는 먼 미래를 위한 기술이 아니다. 의약품부터 식품 생산, 환경보호 영역까지 광범위하게 적용하고 있는 과학이다.

 

건강한 장수를 바라는 인간의 욕구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조선시대의 평균수명은 43세였지만 지금은 81세까지 늘었다. 지금의 과학과 의학 발전 속도를 고려하면 평균수명 90세에 도달하기까지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발전의 중심에 바이오테크놀로지(Biotechnology, BT), 즉 생명공학이 있다. 바이오테크놀로지는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인간에게 응용하는 기술이다. BT는 크게 의약·건강, 농업·식량, 에너지·화학 세 분야로 나뉘는데, 이 중 우리 삶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관련 산업이 발달한 것은 의약·건강 분야다.

미국에 본사를 둔 바이오 제약 기업, 애브비

BT의 꽃, 바이오 의약
현재 급성장 중인 바이오 의약의 핵심적 성과는 바이오 약품(biopharmaceutical)이다. 이는 기존 화학기술이 아닌 바이오 기술로 만든 약품을 말하며, 인슐린 같은 단백질 약품이나 줄기세포 같은 세포 치료제가 주를 이룬다. 예를 들어 아스피린은 화학합성으로 만든 약인 반면, 인슐린(당뇨 치료용 호르몬)은 인슐린 유전자를 삽입한 효모를 배양한 후 다시 인슐린을 분리하는 기술을 이용한다. 이런 바이오 의약을 ‘BT의 꽃’이라 한다면, ‘꽃 중의 꽃’은 항체 치료제라 할 수 있다. 항체는 외부 병원균에 달라붙어 그것을 파괴한다. 크게 암세포를 죽이는 표적 항암 치료제와 류머티즘 치료제처럼 자가 면역 치료제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약품들이 개발되면서 바이오 의약은 의약 산업계를 통째로 흔들고 있다.
바이오 의약의 성장세는 놀랍다. 15년 전 신약 중 15%가 바이오 약품이었지만 이제는 50%에 육박한다. 매출액도 압도적이다. 2014년 세계 제약 시장의 상위 매출액 20개 품목 중 바이오 약품이 18개를 차지한다. 그중 글로벌 바이오 제약 기업 애브비(AbbVie)는 ‘휴미라’라는 류머티즘 치료제 하나로 2014년 한 해에 11조80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한 제품의 매출액이 국내 상위 20개 제약 회사에서 생산한 모든 제품의 매출을 합친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블록버스터’라 불리는 이런 황금알 제품 덕분에 바이오 약품 제조 기업이 큰 성과를 거두자, 화학합성 위주로 신약을 찾던 대규모 제약 기업들이 급히 바이오 약품으로 방향 전환을 하고 있다. 길리어드, 애브비, 제넨텍 등 급성장하고 있는 신생 바이오 기업은 기존의 대기업을 제치며 선두로 올라서고 있다. 제약 산업의 중심이 화학 위주의 합성 의약품에서 바이오 의약품으로 급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메르스가 한국을 휩쓸 당시 예방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었던 이유는 뭘까? 기술이 없어서는 아니다. 바이오 의약은 기술이있다 해도 장기적인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메르스 예방 백신의 경우 실험실 연구와 동물 대상 임상, 환자 대상 임상 단계까지 거치면 약 12년의 시간과 1조 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그래서 에이즈나 사스도 이제야 본격적인 치료제가 개발돼 공급되고 있는 것이다. 외부 병원균보다 건강한 장수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것은 만성질환과 암이다. 바이오약품은 인체의 가장 정교한 방어 시스템인 면역 항체와 조절 호르몬을 치료제로 사용하므로 이런 질병 치료에 더욱 효과적이다. 게다가 항체를 더 정교하게 대량생산하는 바이오 생산 기술이 개발돼 적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이제는 인간의 항체를 동물(쥐) 세포 배양을 통해 얻고, 인간의 혈당 조절 호르몬인 인슐린을 대장균에서 만들어 대량생산하는 것도 가능하다.
인슐린, 항체 치료제 같은 단백질 약품과 함께 줄기 세포 치료제도 각광받고 있다. 최근에는 자기 몸의 세포를 줄기세포로 만들어 언제든 쓸 수 있는 역분화 줄기세포가 개발돼 줄기세포 기술이 급진전했다. 그리고 BT와 IT가 결합한 스마트 헬스 케어는 IT 기업의 새로운 산업 돌파구로 세계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표적 예가 진단용 바이오칩과 스마트폰이 만난 웨어러블 헬스 케어로, 시계처럼 차고 다니기만 해도 혈압, 콜레스테롤, 혈당 등을 자동으로 측정하고 의사와 바로 연결된다. 이런 기술력을 통해 고령화 시대에 노인의 건강을 24시간 돌볼 수 있다. 또 30억 개의 개인 유전자 정보를 분석해 미리 건강 상태를 예측하고 2세의 특징도 점칠 수 있다. 이처럼 바이오테크놀로지는 건강한 장수의 꿈을 현실화하고 있다.

청정 지구를 만드는 기술, 자연 친화적 BT
인간의 욕망인 건강한 장수를 실현할 곳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다. 자연은 곧 생명이므로 청정 지구를 만드는 것이 건강한 장수의 전제 조건이다. 지구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자연 친화적이어야 하며, 바이오테크놀로지가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사막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식물을 개발하고 더 이상 굶는 아이들이 없는 아프리카를 만드는 것은 지구촌의 공동 목표가 됐다. 새로운 종자를 만드는 식량 개발의 중심에는 유전자 기술이 있다. 그런데 유전자 변형을 통해 생산한 GM 콩을 판매하기 시작한 지 20여 년이 지났고 얼마 전 GM 연어도 식품으로 승인받았지만, 아직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 외부 유전자를 삽입해 생길 수 있는 변화에 대한 완벽한 검증이 필요하다. 최근 외부 유전자를 삽입하지 않고 분자 수준에서 식물의 유전자 특성을 조절할 수 있는 ‘초정밀 유전자(CRISPR/cas9)’ 기술이 개발됐다. 예를 들어 해충과 상대하기 위해 쌀에 다른 생물의 해충 저항성 유전자를 넣는 것이 아니라 쌀 자체의 해충 저항 유전자를 활성화하는 식이다. 앞으로 GM 식물과 외부 환경의 장기적 영향을 검증한다면 BT 기술이 식량 증산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식량문제뿐 아니라 환경문제도 바이오테크놀로지에 희망을 걸어볼 수 있다. 코앞의 문제는 지구온난화다. 최근 세계보건기구에서 지카 바이러스와 말라리아 등 많은 병원균을 옮기는 모기가 점차 북상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사과 주산지가 대구에서 강원도로 올라온 것만 봐도 지구온난화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증가가 직접적 원인이므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거나 다른 물질로 대체해야 하는데,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에너지로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에너지원인 식물성기름이나 녹말로 만드는 방법을 인공적으로 이용하면 이산화탄소를 감소시킬 수 있다. 또 이렇게 만든 식물성기름으로 바이오 디젤을 만들고 식물의 포도당을 대장균에게 먹여 휘발유를 만들 수도 있다. 이러한 바이오 에너지 분야는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지만 브라질에서는 미생물을 이용해 사탕수수에서 뽑아낸 알코올(에탄올)로 이미 차를 굴리고 있다. 이렇게 자연의 일부로 자원의 재순환이 가능하다. 플라스틱의 원료도 이제는 원유가 아닌 식물에서 얻어야 한다. 실제로 식물을 이용해 만드는 플라스틱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결국 지구를 살리는 기술의 핵심은 자연에 있으며, 스스로 잘 돌아가는 지구를 만드는 것이 곧 BT의 기본 원리다. 바이오테크놀로지는 의학으로 인간의 꿈인 건강한 장수를 이루고, 자연 친화적 기술로 청정 지구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하지만 과학은 언제나 양날의 검이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BT는 생명을 다루는 분야인 만큼 이를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자만이 칼을 쥘 자격이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글쓴이 소개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 공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생물공학회 회장을 역임 했으며 현재 인하대학교 생명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손에 잡히는 바이오 토크>, <자연에서 발견한 위대한 아이디어 30> 등의 저서를 통해 바이오 과학기술을 알리고 있다.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
김은기(인하대학교 생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