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허락한 선물
불교에서는 사람의 몸과 우주 만물의 근본 요소를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이라고 말한다. 땅, 물, 불 그리고 바람 이 네 가지가 모였다 흩어지는 과정을 통해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일어난다는 것. 도예가 꼭 그렇다. ‘지수화풍’이 온전히 최적의 상태를 이룰 때 비로소 ‘진짜’ 작품이 완성된다는 점에서 신경균 작가의 달항아리는 자연이 허락한 선물과 같다.

지난해 2월 우리는 시끌벅적한 겨울을 보냈다. 많은 올림픽이 그러하듯 2018 평창 동계 올림픽도 단순히 스포츠 경기를 통한 문화 교류에만 머물지 않았다. 각국 정상과 주요 기업인 등 한국을 방문한 해외 인사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각 정부 부처 및 기업인을 만나 비교적 가벼운 정치적 현안과 국제 경제, 문화 이슈를 공유했다. 무엇보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특별 대표인 한정 상무위원 등이 참석한 평창 동계 올림픽 환영 리셉션과 아베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 등은 국내외 주요 언론이 유독 주목한 만남이었는데, 그 자리에 시선을 끄는 도자기 한 점이 있었다, 바로 신경균 작가의 달항아리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우리 조상의 고귀한 얼이 살아 있는 백자 달항아리를 선물로 건네며 달항아리가 지닌 평화와 화합의 의미를 전 세계에 널리 알렸다.
조선의 찻사발 ‘이도다완(井戶茶碗)’을 재현한 故 신정희 선생의 셋째 아들인 신경균 작가는 2005년 11월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 태평양 정상회의(APEC) 공식 회의장에 장식 예술품 작가로 초대돼 각국 정상에게 한국 도자의 멋을 전한 한국의 대표 도예가 중 한 명이다. 본래 다완에 집중하다 달항아리에 천착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의 달항아리는 해외 국빈에게 유독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하나는 흙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전통 장작 가마를 여전히 이용한다는 점 때문이다. 도자기는 여러 가지 자연적 요소가 결합해 완성되는 결과물이지만, 그중에서도 흙과 불은 도자기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 신경균작가는 조선의 백자 달항아리를 재현하기 위해 전국 가마터 324곳 중 300여 곳을 답사하며 전통 제작 기법을 연구했고, 드디어 2010년 휴전선 북쪽에 있는 강원도 양구에서 전통에 부합하는 흙을 찾았다. 그 흙으로 한국에 몇 안 남은 전통 장작 가마를 이용해 전통 백자 달항아리를 재현한 그는 2014년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 본부에서 전시회를 열며 16세기 말 자기 제조 기술이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세계 최고의 예술 작품을 만들어온 한국의 전통 도예를 유럽과 세계에 본격적으로 소개했다.
지난해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서울에 뜬 달> 전시와 상하이에서의 <2018 주상하이한국문화원 특별기획전-상하이에 뜬 달> 전시회에 이어 오는 4월 9일부터 13일까지 열리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 <아트마이닝 밀라노 2019> 전시, 5월 그랑 팔레에서 열리는 <아트마이닝 파리 2019> 전시를 준비 중인 그를 만나 과정을 중시하는 전통이 지닌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질문부터 드리겠습니다.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독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작가님의 달항아리를 선물하셨는데요,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제가 전해 듣기론 당시 외교부 담당자들이 마지막까지 선물을 결정하지 못했다고 해요. 그런데 마침 평창 동계 올림픽 기간에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열린 제 개인전을 보러 오신 거죠. 전시를 보고 달항아리가 한국적인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 좋다고 하시며 독일 대통령에게 드릴 선물을 하나 마련해달라 하셨어요. 그래서 기장 작업실에서 준비해온 것입니다.
작가님은 작품에 ‘월하정인’, ‘맏이’, ‘청우’, ‘흔적’, ‘만추’, ‘운무’, ‘이문’, ‘태동’ 등 모두 이름을 붙이는데, 독일 대통령에게 선물로 드린 그 작 품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소화(素花)’예요. 차나무 꽃을 소화라고 합니다. 나무는 대개 꽃이 진 뒤 열매를 맺는데, 차나무는 꽃과 열매가 함께 달리는 나무예요. 꽃이 핀 뒤 다음 꽃이 다시 필 때 열매가 떨어지죠. 한마디로 1년 내내 감상할 수 있는 나무예요. 그런 좋은 의미로 ‘소화’라고 지었어요.
부산에서 국제 행사가 열리는 경우 해외 귀빈들이 장안요를 많이 찾습니다. 작업장이 어떻게 귀빈의 투어 코스가 됐나요?
예전부터 부산에서 국제적 큰 행사를 많이 치렀잖아요. 그때마다 해외에서 손님들이 간혹 들르시길래 ‘어떻게 하면 한국의 전통 도예를 촌스럽지 않고 세련되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1200평 정도 되는 작업장이 워낙 넓으니 전시장도 멋지게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 꾸미게 됐고요. 그 후 자주 방문하던 컬렉터들이 외국 손님을 모시고 오면서 해외 국빈도 자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부산에 문화 예술 공간이 마땅치 않은데, 그분들께는 정말 의미 있는 투어일 것 같아요. 한국의 전통 도예 기법과 그 과정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요.
네, 간혹 방문 일정이 겹쳐 어쩔 수 없이 거절하는 경우도 있어요. 예를 들어, 3박 4일 일정으로 APEC이나 ASEM이 열리면 낮 시간 동안 영부인들이 방문할 곳이 마땅치 않아요. 절이나바다, 자갈치시장도 한두 번이고. 전시장을 만든 후부터는 각 대사관에서 영부인을 모시고 장안요에 오시는데, 지난번에는 인도네시아 영부인과 브루나이 국왕의 방문 신청 시간이 겹쳐 먼저 신청한 인도네시아 영부인만 다녀가셨죠.

1 분청 철화 항아리, 51X62.2cm
2 신경균 작가의 옥인동 미팅룸.
3 백자 달항아리, 42X44.5cm
장안요 그리고 작가님의 작품이 이토록 많은 관심을 받는 이유는 지금도 여전히 전통 방식을 고수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조선시대 가마터를 연구한 뒤 지금까지 일곱 번 넘게 가마터를 옮기며 작업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좋은 흙을 찾아 가마를 짓느라 장소를 자주 바꿀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하나의 가마에 여러 종류를 구울 수 없기에 다완을 굽다 달항아리를 굽고 싶으면 거기에 맞는 가마 구조로 완전히 바꿔야 하니 가마터를 옮겨 다시 짓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죠. 사실 또 다른 이유도 있어요. 작업장에 너무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는 것. 작업을 하려면 몇 개월 동안 집중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드나드니 일에 방해가 됐죠. 그래서 장소가 알려질 만하면 옮기고 그랬어요.
가마를 짓는 일이며 작업이며 많은 분의 도움이 필요할 텐데, 장안요에는 몇 명의 스태프가 있나요?
아들도 도예를 하고 있어 지금은 아들과 함께 하지만 본격적으로 불을 때고 작업을 하게 되면 열 명 이상 있어야 원활하게 돌아가요.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쉽고 편하고 화려한 것에 익숙하다 보니 이 일을 안 하려고 하더라고요. 저랑 같이 작업하려면 규율도 까다롭고요.
어떤 규율이 있나요?
일단 작업장에는 휴대폰을 들고 들어올 수 없어요. 라디오나 음악도 들어선 안 되고, 잡담도 거의 안 돼요. 또 중요한 건 새벽 5시 출근이라는 것. 사실 그 시간도 늦은 거예요. 저는 작업을 시작하면 새벽 2시 30분에 기상해 16시간을 꼬박 일하고 밤 10시에 자는 생활을 해요. 그래야 작업이 가능하니까.
이 모든 것이 아버지에게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일 것 같아요. 특히 도예를 대하는 자세를 엄격히 가르치셨을 듯한데,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지금은 도자기 재료상이 있어 백화점처럼 고르기만 하면 됩니다. 제가 아버지 밑에서 도예를 배울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재료를 다 만들었어요. 흙도 산에서 구해 왔고 그걸 직접 발로 뭉개는 과정을 다 거쳤어요. 그것만 전담하는 사람이 두세 명이었죠. 유약도 산에서 재료를 구해 정제해 사용했고, 나무도 마찬가지고요. 자기 종류에 따라 나무도 다 달라 참나무재, 소나무재, 잡재 등을 각각 따로 모았죠. 저는 열다섯 살부터 그 과정에 직접 참여했기에 지금도 모두 직접 만들어요. 그러니 준비 과정에서부터 작업량이 엄청나죠.
재료상에서 다 판매하는데, 굳이 직접 만들어 사용하시는 이유는요?
파는 것은 일단 질이 좋지 않으니까요. 만져보면 촉감이 다른데, 어떻게 그걸 써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산속에 사는 분이 많았어요. 그분들께 느릅나무재, 떡갈나무재 같은 특이한 재료를 구해달라고 하면 정확히 구해다 주시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힘들죠. 그래서 제가 직접 다 해요. 귀한 것들은 이처럼 쉽게 만들어지지 않아요.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죠.
직접 설계한 전통 장작 가마에서 1350℃의 고온에 도자기를 굽습니다. 1350℃의 불꽃은 태양 색, 즉 우리가 감히 마주 볼 수 없는 색이라고 하던데, 작가님도 시력이 많이 상하셨겠어요.
요즘 들어 잘 안 보이네요. 그래서 얼마 전 안과에 갔는데, 백내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그런데 수술을 하면 불꽃 색깔이 달라 보일 수 있다네요. 저 같은 사람은 불꽃 색을 보고 온도를 아는데, 그 색이 달라지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수술을 못하고 있어요.
온도계 대신 불꽃 색을 통해 가마의 온도를 가늠하시는 거예요?
온도계를 보고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겠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불꽃으로 온도를 맞췄기 때문에 그렇게 안 해요. 온도계를 못 믿는 거죠.
소나무 장작도 모두 전통 방식으로 만드신다고요.
옛날엔 이맘때 모두 산에 나무를 하러 갔어요. 나무를 싣고 돌아와 창고에 야적하죠. 그걸 1년 정도 놔두면 껍질이 살짝 일어나요. 그때 톱질과 도끼질을 해요. 그러면 껍질이 저절로 다 벗겨지죠. 그걸 다시 창고에 넣고 보통 2~3년 말리면 그제야 그릇을 구울 수 있는 장작이 준비되는 거고, 본격적으로 가마에 불을 땔 수 있죠.
지금도 그렇게 하세요?
지금도 다 그렇게 만들어요. 예전엔 직접 했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을 시킨다는 게 다르긴 하지만요.
나무를 수년간 건조하는 이유는 가마에 들어갔을 때 불이 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김치나 장을 숙성시킨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가마에 들어가는 장작도 그렇게 수년의 기다림이 필요한지 미처 몰랐어요.
전통이라는 건 그런 과정을 지켜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과정을 생략하자고 마음먹으면 충분히 생략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자꾸 이것도 생략하고, 저것도 생략하면 그게 바로 기계화로 가는 거고, 그렇게 하다 결국 지금 우리가 플라스틱에 인스턴트 음식을 담아 먹게 된 거예요. 그런 게 싫어요. 과정을 지켜나가는 것, 그것이 곧 전통이고 우리 삶에서 사라지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과정이 힘들진 않으세요?
힘들지만 어쩔 수 없죠. 그리고 막상 하다 보면 힘들다는 생각도 안 들어요. 몸에 인이 박여서요. 물레를 차보면, 도예라는 게 몸짓 언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가만히 누워 있으면 허리가 아픈데, 그러다가도 물레에 앉으면 자동적으로 몸이 반응하죠.
좋은 도자기를 만들려면 과정만 잘 지키면 될까요? 더 필요한 건 없을까요?
‘좋은 도자기를 만든다’는 것은 심미안이 뛰어나야 가능한 일이에요.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죠. ‘내 작품만 잘 만들면 된다’가 아니라 다른 작품을 보고 평가할 줄 알아야 해요. 유명한 명화 여러 개가 있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을 찾아낼 줄 아는 것도 필요하고요. 왜 다들 김환기 선생을 대단한 분이라고 하느냐면, 그분은 우리나라에서 최고 좋은 달항아리와 청자, 고가구를 다 갖고 계셨기 때문이에요. 부산의 한 아트 컬렉터 댁에 국보급 달항아리가 있어요. 18세기 금산에서 만든 건데, 그것의 본래 주인이 김환기 선생이에요. 제가 달항아리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좋은 작품을 보며 눈을 키웠는데, 그중 하나예요.
지난해 1월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열린 <서울에 뜬 달> 개인전에서 관람객은 작가님의 작품을 직접 만져볼 수 있었습니다. 작품을 만질 수 있다니, 정말 파격적인 것 같아요.
도자기는 오감으로 느끼는 거예요. 다완만 해도 손으로 들고 입으로 마시잖아요. 다완이 진열장 안에 갇혀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본연의 의미를 잃는 거죠. 아무리 비싼 그릇이라도 사용하다 깨지면 그게 그릇의 운명인 거예요. 일본에서는 수백, 수천, 때로는 수억 원짜리 그릇을 실제로 사용하면서 그 가치와 중요성을 배워요. 전통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태도에서 상대를 배려하는 문화도 생겨났고요. 우리도 막걸리나 소주를 마실 때 좋은 사기그릇에 먹으면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굳이 양은 사발이나 유리 소주잔에 따라 ‘짠, 짠’ 하고 박치기해 술을 흘리기도 하고 유리잔을 깨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그런 것들이 사실 문화유산의 기본을 이루는 행동인데, 참 안타까워요.
지난해 12월 영국 맨체스터 샐퍼드 대학 미디어시티 팀 최인숙 교수와 로빈 바거 교수가 장안요를 방문했습니다. 한국 전통 도예와 4차원 영상의 접목을 시도한 프로젝트였는데, 어떻게 시작한 작업인가요?
예전에 영국 맨체스터에서 진행한 행사에 초대받은 적이 있어요. 행사를 마치고 맨체스터에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 담당자, 후원회 회장단, 시 관계자와 만찬을 가졌는데 거기서 최인숙 교수를 알게 됐죠.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제 작업실을 방문하고 싶다고 해서 그러시라 했는데, 그게 계기가 되었어요. 제 작업을 담은 다큐멘터리와 기사 등을 보내달라 해서 보냈는데, 그걸 검토한 뒤 미디어시티팀과 함께 방문하신 거예요.
미디어시티 팀은 영국 BBC 방송국 타운 내 건물을 두고 AI, IT, 멀티미디어와 같은 4차원 영상에 대해 자문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조직입니다. 주로 BBC와 일하지만 박물관, 미술관과도 첨단 영상 기법을 논의한다고 들었어요. 그들과 촬영하면서 몸 곳곳에 센서를 달고 일하셨다고요. 힘들진 않았는지요?
12월에 보름 가까이 같이 숙식을 하며 반죽, 성형, 건조, 초벌, 유약, 재벌 등 최첨단 영상 기법을 총동원해 도자기 제작 전 과정을 담아냈어요 엄청난 양을 찍더라고요. 저보다 촬영 팀이 고생 많았죠.
최인숙 교수님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전통적 도예과정을 4차 산업혁명의 하이테크 인공지능과 접목해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한다고 밝혔는데요. 사실 영국 또한 도자기가 매우 발달한 나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프로젝트가 남달라 보여요.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혁명은 전통, 즉 뿌리가 살아 있어야 가능한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연결이 안 돼요. 튼튼한 전통 위에서 4차 산업혁명도 올바른 방식으로 일어나는데, 우리는 4차 산업혁명과 전통은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생각해요. 그런데 영국 사람들은 달라요. 1820년 영국에서 1차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래 영국은 매번 산업혁명을 중심에서 이끌어온 나라예요. 그 과정에서 놓친 것, 실수한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전통이라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 것 같아요.
아버님과 작가님 그리고 작가님의 아드님까지 3대째 가업을 잇고 계신데요. 작가님이 보기에 도예를 하는 환경이나 도예에 대한 인식이 어느정도 발전했다고 생각하세요? 아버지가 사발을 만들던 당시에는 한국에선 거의 하나도 못 팔았다고 보면 돼요. 전부 일본인 상대였죠. 더구나 그 당시는 사발은 예술이란 생각도 안 하던 시절이에요. 88 서울 올림픽을 치르면서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도자기를 하나의 문화 예술로 보는 시선은 많이 부족해요. 만드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잘 보고 잘 쓸 줄 아는 사람이 생겨나야 하는데, 아직 많이 부족하죠.
어떻게 나아질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건 작업자가 일단 인문학적 소양을 갖춰야 하고, 심미안이 있어야 해요. 도자기를 사용하는 사람은 그것의 가치를 알아야 하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보고 직접 만져보고 사용해봐야 해요. 제가 전시장에서 제 작품을 만져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 그러면서 ‘진짜’ 작품을 고르는 눈을 키워야 합니다. 좋은 작품은 지(地), 수(水), 화(火), 풍(風) 모든 요소가 맞아떨어질 때 완성돼요. 과정을 생략한 작품이 아니라 과정을 잘 지켜낸 작품이 무엇인지 사용하는 사람도 알아야 하죠.
올해 준비 중인 전시가 궁금합니다.
4월과 5월에 밀라노와 파리에서 열리는 디자인 페어에 달항아리 작품을 가지고 나가요. 한국의 갤러리 부스를 통해 선보이죠.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열리는 전시도 지금 이야기 중인데, 곧 결정될 것 같아요. 현재 한일 관계가 굉장히 안 좋은 상태인데, 일본 정부에서 요청이 온 프로젝트도 하나 있어요. 도쿄, 교토, 오사카, 후쿠오카 등 4~5군데 도시에 있는 퍼블릭 미술관을 순회하는 계획인데, 악화된 양국 관계가 문화 예술 교류로 조금이나마 회복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