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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속에서 찾은 본질

ARTNOW

의식과 무의식 사이, 그 아슬아슬한 경계 속에서 본질을 탐구하는 조셉 초이. 그가 오랜만에 한국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작가보다 자유롭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본질을 탐구하는 작업을 이어가는 작가 조셉 초이.

4년 만의 개인전인데, 이렇게 오랜만에 전시를 열게 된 이유가 있나요. 조금 늦은 나이에 딸을 얻었어요. 아이가 태어나고 커가는 모습을 보며 제가 이전에 가지고 살아왔던 삶에 대한 관점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전엔 느낄 수 없었던 감정도 느꼈고요. 마침 프랑스에서 전속되어 있던 갤러리와도 계약이 끝날 시점이었어요. 4년 동안 제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다가 이제야 조금은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였나요? 집 근처에 큰 공원이 하나 있어요. 다섯 살 난 딸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자주 가는데요, 거기서 아이는 돌멩이를 하나씩 주워서 저한테 선물을 줘요. “아빠 이거 이쁘지?” 하면서요. ‘돌멩이가 오죽 아름다웠으면 나한테 선물로 줄까.’ 그 사소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아이가 너무 부럽더라고요. 저는 그동안 사람들에게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작업을 해온 작가인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죠. 지금도 제 옷 주머니에는 항상 돌멩이가 한두 개씩 들어 있어요.(웃음) ‘주위에 있는 사소한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 거였구나.’ 작업에 제가 좀 더 관여되어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들이 오히려 그렇지 않았고, 우리의 일상과 경험이 참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한국에서 프랑스로 떠난 지 30년이 되었어요. 조금은 오래된 이야기인데, 연유가 궁금합니다. 개인적인 이유였어요. 학교에서 잘 적응하지 못했고, 획일화된 교육과 분위기도 견디기가 힘들었죠. 그러던 중에 지인에게 프랑스 이야기를 들었어요.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떠났죠. 1992년이네요.

당시 프랑스는 어땠어요? 정말 좋았어요. 남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여러 국적의 친구들을 만나고 자유를 만끽했죠. 여행도 많이 다니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하는 공부는 정말 즐겁더라고요. 거의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죠.

1La Recherche, Oil on Linen, 2019
2Temptation, Oil on Linen, 2018~2019

작가로선 다소 늦은 나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하지도 않은 채 무작정 떠나온 탓에 고민이 많았어요. 제빵, 건축, 철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영향을 받았죠. 공부는 해야겠고, 무언가를 만들기 좋아했던 터라 인테리어를 시작했어요. 학교 수업에 미술 시간이 있었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즐겁더라고요. 학교 선생님도 저에게 미대 진학을 권유하셨어요.(웃음) 당시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길거리에서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는데, 제가 걸어가야 할 길이 좀 더 선명해지더군요. 결국 편입해서 미대에 갔어요. 스물아홉 살에.

지금 작품을 보면 작업 초기에 비해 큰 변화가 있어요. 점차 해체주의적 양상을 띤달까요.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고 했잖아요. 그때부터 제 상태에 대해 하나씩 체크해봤어요. 오랜 시간 달고 살아온 불면증이 제 심신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죠. 매일 밤 잠을 청하려고 누우면 많은 이미지가 떠올라요. 잊고 있던 추억이 되살아나기도 하고, 어느 순간 느낀 감정이나 기억이 특정 색깔로 표현될 때도 있어요. 어떤 이미지가 도드라지면 반대로 또 어떤 이미지는 사라져요. 그 이미지나 기억의 조각들이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잠들기 바로 직전이 모든 감각이 가장 예민할 때거든요. 몸은 가만히 있고 무의식과 의식이 서로 부딪치기도 하고 섞이기도 하죠. 타인에게 보여줄 수 없는 은밀한 상상까지 드러나요. 사회에서는 그것들을 잘 감추고, 숨기고, 포장해야 하지만 홀로 누워 있는 침대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어요. 프로이트도 무의식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정신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라 했어요.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것들이 바로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는 거죠. 이 과정을 캔버스에 그대로 담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그동안 했던 작품들을 돌이켜봤어요. 어떤 때는 피사체가 인물에 한정되기도 하고, 풍경이나 실내 공간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했어요. 소재를 바꾸면서 변화를 추구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언제나 본질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거예요. 만약 의자를 그린다면 보이는 이미지 뒤에 숨어 있는 관념, 의자에 앉았을 사람을 상상하거나 의자를 둘러싼 공간에 녹아 있는 삶의 흔적 같은 것들요. 현재도 그 본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욕구에는 변함이 없어요. 단지 예전에는 제가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면 이제는 한 발짝 물러나 있달까요. 그림의 요소가 오케스트라처럼 하모니를 이룰 수 있도록 지휘를 하는 거죠.

3Doubtful Man(Yellow), Oil on Linen, 2018~2019
4Man with a Landscapehead 2, Oil on Linen, 2019

여러 겹의 이미지가 레이어드된 그림을 보면서 작업 과정이 궁금했어요. 처음부터 완벽한 구상을 하는 게 아닌가요? 그렇죠. 뚜렷한 목적 없이 그리기 시작해요. 그래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저조차도 몰라요. 처음에는 손이 가는 대로 풍경도 그리고 공간도 그려요. 그러다가 나뭇가지가 나오고 사람이 나오고 팔만 나오기도 하면서 그림이 만들어지죠. 누워 있을 때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이미지의 메커니즘을 그대로 따르다 보니 개념보다 행위가 앞서게 돼요. 어떤 특정한 틀이 없으니까 상상도 풍부해지고 터치도 자유로워지고요. 가끔은 맨 처음 그린 이미지가 정말 마음에 들 때가 있어요. 다른 이미지가 떠오르면 어쩔 수 없이 그 위에 나중에 떠오른 이미지를 그려야 하는데, 그럴 때 정말 힘들죠. 아까워서요.(웃음) 그럴 때면 처음에 그린 캔버스를 뒤집어요. 동시에 각인됐던 이미지가 깨지도록.

색깔도 즉흥적으로 선택하세요? 처음부터 계산을 하진 않아요. 여기에 이런 배색이 들어갔으니 여기엔 이런 색을 써야겠다, 뭐 그런 계산요. 대신 머릿속에 떠오르는 색깔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원색은 잘 사용하지 않는 편이에요.

굉장히 자유롭게 작업하시네요. 저는 제 작업이 일기라고 생각해요. 보통 한 작품이 아홉 번에서 열 번은 덧대어집니다. 제가 작업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산문처럼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과, 두 번째는 이 장소가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 관객의 상상력을 방해하고 싶지 않거든요. 세 번째는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덧그림을 그릴 때도 이전 그림을 완전히 지우지 않고 투영되도록 남겨둬요.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도록요.

그렇다면 언제 작품이 완성되었음을 확신하나요? 잭슨 폴록을 다룬 영화를 보면서 참 마음에 들었던 대사가 있어요. “그림은 사랑 행위와 같다.”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다는 거죠. 저도 제 마음에서 하는 이야기를 잘 들으려 해요.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지만 이미지에 사로잡힐 때가 있거든요. 멋진 이미지만 보고 끝났음을 확신하는 거죠. 하지만 나중에 보면 그 그림은 미완성일 때가 많았어요.

5 조셉 초이의 그림은 여러 개의 층이 존재한다. 그가 쌓은 층들은 얽히고설켜 새로운 이미지와 이야기를 만든다.
6 2019년 9월 5일부터 29일까지 이유진갤러리에서 열린 < Starting to Seek >전 전경.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있어요. 거울이나 조각상요. 많은 작가가 거울을 소재로 활용하잖아요. 나르시시즘을 표현하는 상징이기도 하고요. 저도 비슷한 관점에서 접근했지만 공간적 의미를 내포하기도 해요. 제 그림에 실내와 실외가 동시에 등장하기도 하는데, 2차원의 화폭에서 보지 못하는 3차원의 공간을 거울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조각상은, 제가 루브르 박물관에서 관광객을 안내하는 일을 5년 정도 했는데, 그때 못해도 한 400번 이상은 갔을 거예요. 이집트부터 그리스, 르네상스 등 각 시대에 만든 조각상은 당시 실존했던 인물을 본떴을 텐데 몇천 년이 지난 지금 제가 그 앞에서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묘하더라고요. 완벽한 비례미를 추구했던 미술의 근본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다는 욕망이 표출된 게 아닐까요?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오늘 딸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정말 위대한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제 그림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그런 작가요. 그런데 그 가치관도 바뀌더라고요. 작가로서 이름을 날리기보다는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딸에게 무엇을 남기고 갈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어요. 좋은 집, 좋은 차 같은 물질적 유산보다 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려줄 꾸밈없는 순간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는 사람들이 제 그림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조금 늦은 질문인데, 이번 전시명이 < Starting to Seek >예요. 제 관점이 바뀌고 나서 연 첫 번째 개인전이니까,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거죠.

앞으로 계획은요? 저도 몰라요. 눈앞의 그림도 어떻게 마무리될지 모르는걸요. 현재 이 전시장에 걸린 그림 중에 어떤 게 판매되었는지도 모르고요.(웃음) 아, 당분간 파리에 머물 계획이라는 건 알아요.

조셉 초이
1968년 한국에서 태어나 1992년 프랑스로 이주한 후 30세부터 초상화를 그리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몇 해 전 아버지의 죽음 이후 빈 공간, 빈 의자 등 주인 없는 물건을 그리며 아버지의 빈자리를 묵묵히 견뎠다. 그러던 어느 날 뒤늦게 결혼한 작가에게 딸이 생겼고, 자신의 진실된 마음을 딸에게 보여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9월 5일부터 29일까지 이유진갤러리에서 4년 만의 국내 개인전 < Starting to Seek >를 열었다.

 

에디터 김민지(mj@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   장소 협조 이유진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