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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의 고독한 걸음

ARTNOW

2016년은 스위스 작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50주기가 되는 해다. 세계 곳곳에서 자코메티의 회고전이 개막했고, 중국에서는 상하이의 유즈 미술관이 스타트를 끊어 7월 31일까지 전시를 개최한다. 자코메티의 예술 세계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자리다.

상하이 유즈 미술관의 <알베르토 자코메티 회고전> 전시장 설치 전경

‘걷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높이 1.8m, 앞으로 걸음을 내딛는 가늘고 긴 다리,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L’Homme Qui Marche)’은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친숙한 형상 중 하나다. 본래 계획한 전체 프로젝트는 작가의 건강상 문제로 완성되지 못했으나 총 6개의 청동 주조 에디션이 남아 있다. 2010년 소더비 경매에서 역대 조각품 중 최고가를 기록하며 개인이 소장한 한 점을 제외하고, 나머지 에디션은 미국 피츠버그의 카네기 미술관(Carnegie Museum of Art), 프랑스 생폴드방스의 마그 재단 현대미술관(Maeght Foundation Modern Art Museum), 덴마크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에 소장돼 있다. 상하이 유즈 미술관(Yuz Museum) 관장이자 컬렉터인 위더야오는 “자코메티의 조각은 두려움 없이 모든 불행에 맞서며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듯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250여 점의 작품은 대가의 지식과 감정을 아우른 에너지로 유즈 미술관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전시를 소개했다.
동시대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추상적으로 관념을 표현한 것과 달리, 자코메티는 인간 본연의 존재로 회귀한 작가다. 어머니, 동생, 조카, 아내, 연인 그리고 친구는 그의 화폭과 조각에 반복해 나타난다. 모호하고 단조로운 배경 속에 은은하게 비치는 사람의 형상은 마치 기억 저편에 있는 피붙이인 듯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는 미술 역사상 전에 없던 특별한 형상을 만들어냈고 동시대를 산 피카소, 마티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20세기 미술사의 절정을 이룩한 작가다.

크고 좁은 두상, 브론즈, 64.5×38.1×24.4cm, 1954 / ⓒ Estate Giacometti

코, 브론즈, 80.9×70.5×40.6cm, 1947 / ⓒ Estate Giacometti

위기와 초월을 넘나들며
예술가가 되는 것은 자코메티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그의 부친은 화가였고 동생들 또한 창작의 길을 선택했다. 소년 시절 자코메티는 부친의 지도로 조형의 기틀을 다졌고, 르네상스 대가들의 작품도 고루 접했다. 1922년 파리로 간 자코메티는 그곳에서 예술적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 조각가 앙투안 부르델(Antoine Bourdelle)의 스튜디오에서 굶주린 듯 작업에 열중했으며, 몇 년의 노력 끝에 그의 조각은 파리 미술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30년 그는 ‘초현실주의 선언’의 작가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의 초청으로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했는데, 이번 상하이 회고전에 출품한 ‘눈을 향하여(Pointe a l’Oeil)’가 바로 그때 제작한 대표작이다. 다수의 전시에 참여하며 명성을 쌓은 그는 성공한 작가의 반열에 올랐지만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 했고, 이윽고 초현실주의의 꿈에서 깨어나 현실과 마주했다. 1930년 말의 어느 날, 생미셸 거리에서 영국 여인 이사벨 니컬러스(Isabel Nicholas)와 이별한 그는 어스레한 빛 속에 사라져가는 연인을 보며 새로운 표현법을 떠올렸다. 이사벨과의 사랑이 끝난 그 순간, 흐려지는 연인의 형상은 자코메티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의 혼돈을 피해 제네바로 건너간 자코메티는 그 기억 속 형상을 표현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 시기에 그는 대형 좌대에 불규칙하게 놓은 작은 인간 군상을 대거 남겼고, 전쟁이 끝난 후 파리로 돌아와 더욱 성숙한 작업을 선보였다.

비스듬히 누워 꿈꾸는 여인, 브론즈, 23.7×42.6×13.6cm, 1929 / ⓒ Estate Giacometti

1961년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자코메티

미술 시장의 핫이슈, 고독한 그림자
자코메티가 만든 사람의 형상은 20세기 현대인의 고독을 대변한다. 그러나 이토록 고독한 그림자가 국제 미술 시장에서는 조금도 외롭지 않다. 자코메티를 향한 컬렉터들의 열망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걷는 사람’이 경매가 신기록을 세운 지 5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의 또 다른 작품이 경매 역사를 새로 썼다. 뉴욕 크리스티의 특별 경매 ‘과거를 고대하며(Looking forward to the Past)’에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L’Homme au Doigt)’가 1억4130만 달러(약 1640억 원)에 낙찰된 것이다. 2010년부터 2015년 사이에 거래된 자코메티의 작품은 단 3점에 불과하지만 모두 1억 달러를 넘었다. 불필요한 요소를 과감히 떨쳐낸 자코메티의 세련된 스타일은 동양 미학이 추구하는 간결함과도 맥이 닿아 있다. 자코메티 컬렉션의 주 거래상인 뉴욕 아콰벨라 갤러리의 디렉터이자 크리스티 경매의 인상파와 현대미술 파트 디렉터 마이클 핀들리(Micheal Findlay)는 싱가포르, 홍콩과 대만의 개인 컬렉션에 자코메티의 작품이 다수 포함돼 있으며 최근에도 한두 점이 중국 본토의 컬렉터에게 팔렸다고 밝혔다. “성숙기 작품은 본질만 남긴 채 부단히 제거한 작업입니다. 이것이 아시아의 미학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아시아 컬렉터의 흥미를 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는 자코메티의 작품을 소장하고자 한다면 유명한 대형 작품 외에 작가가 남긴 다수의 소묘, 회화 등을 주목하라고 제안했다. 소품부터 컬렉션을 시작하라는 말이다. 그 외에 초기 초현실주의 작품도 시장에서 높지 않은 가격에 거래된다.
생애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경험한 자코메티는 전쟁의 파괴로 인한 인류 문명의 스러짐과 전후의 척박한 땅이 안기는 절망감을 목도했다. 그러나 그는 이 시기에 더욱 무르익은 현대 철학과 전쟁의 피해를 비껴간 문화 예술을 다양하게 흡수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다. 그의 작품은 결코 어렵지 않으며, 인간 본성에 대한 예리한 성찰은 보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전문가와 미술 애호가뿐 아니라 일반 대중도 그의 작품에 공감할 수 있는 이유다.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
진행 Linlin Chen Reid, Zhu Lin, Chen Jing 편집 Zhu Lin, Mao Judan 사진 제공 상하이 유즈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