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만나는 곳, 한 걸음 더
자신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 질문에 마크 알란테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독학으로 공부하고 전통 매체를 사용해 홍콩에서 작업하고 있는 예술가다 (I am self-taught traditional medium artist based in Hong Kong).” 작가의 작품, 그리고 그의 거침없는 온라인 활동처럼 과연 매우 솔직하고 담백한 답변이었다.

1Prometheus, Oil, Ink, Watercolor, 90×60cm, 2017
2 스튜디오에서 작업 중인 작가.
4차 산업혁명 이야기가 나오는 이때, 미술계 또한 온라인을 통한 작가들의 활동과 아트 마켓의 판도 변화가 무서울 정도다. 홍콩을 무대로 활동하는 작가 마크 알란테(Marc Allante)도 온라인 활동으로 인생의 여정이 바뀐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마크 알란테는 홍콩에서 태어나 정식으로 예술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대학 졸업 후 금융회사 자딘메디슨(Jardine Matheson)에서 일하며 개인 작업을 지속해왔다. 그러다 2012년 친구가 ‘홍콩의 초상(A Portrait of Hong Kong)’ 작품을 웹사이트(www.reddit.com)에 올리면서 갑작스레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이후 여러 곳에서 인터뷰 제안을 받았고, 작품 제작과 전시, 판매를 직장 생활과 병행하던 것을 그만두고 2015년에 전업 작가로 전향했다. 작년 11월 로스앤젤레스의 애비뉴 데자르 갤러리(Avenue Des Arts Gallery)에서 개인전을 마치고 올해 한국에서의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홍콩 작업실은 어느 동네에 있나요?
스튜디오는 홍콩의 타이쿠(Taikoo) 설탕 공장 지역 동쪽에 위치한 쿼리베이(Quarry Bay) 지구에 있어요. 홍콩에 있는 것치고는 꽤 넓고 멀리 산도 보이죠. 저는 그림 그리는 것만큼 여행도 좋아해요.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 각지를 자유롭게 다니며 작업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작업 영상을 봤습니다. 아무래도 작업이 물감 흘리기를 기본으로 하다 보니 캔버스나 종이판을 바닥에 펼치거나 벽에 세우기를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 꽤 넓은 공간이 필요해 보여요.
네. 홍콩의 좁은 공간에서 그런 작업을 한다는 것은 거의 재난에 가깝죠. 졸업 후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때는 개인 스튜디오가 없어 집에서 작업했습니다. 방이 너무 작아서 작품을 벽에 수직으로 기대놓거나 바닥(아파트에서 가장 넓고 평평한 공간)에 내려놓고 작업해야 했어요. 이로 인해 제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감 흘리기 표현이 생겨났죠.
중국 잉크와 수채화물감 등 미디어가 이색적입니다. 물감뿐 아니라 사용하는 테크닉도 다양한 것 같아요. 이러한 미디어를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수채화물감으로 표현할 수 있는 유동성과 반투명한 효과를 좋아합니다. 캔버스나 오일물감, 아크릴물감과는 완전히 다른 재료죠. 성질이 다른 종이에 물감이 흘러내리고 퍼지면서 각각 독특한 효과를 냅니다. 화법에 대한 동서양의 많은 자료를 통해 저는 배우는 즐거움을 찾았고, 그리기의 새로운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그리되 시너와 알코올을 함께 사용해 수채화와 비슷한 반투명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수채화물감과 과슈를 함께 사용하죠.

3 LA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선보인 메인 작품 ‘Pallas’.
4Hold Your Breath, Ink, 50×40cm, 2013

5Skyline Study, Ink, 30×40cm, 2017
6 ‘A Portrait of Hong Kong(2012년)’은온라인을 통해 마크 알란테의 이름을 가장 먼저 알린 작품이다.
수채화는 색끼리 서로 부딪치면 짙어지고 탁해지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쓰는 게 일반적인데, 당신은 어울리지 않을 듯한 색을 함께 사용하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맑은 톤을 유지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감사합니다. 작품의 맑은 톤은 잉크와 수채화물감 같은 서로 다른 재료를 결합해 얻은 결과입니다. 또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색들이 뒤죽박죽 엉키지 않도록 처음부터 신중하게 계획합니다. 종종 사용한 재료가 너그럽지 않아 그림을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할 때도 있는데, 예술가들은 때때로 스스로에게 최악의 비평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작품이 ‘완성되기’ 전에 수많은 반복 작업을 거쳐야 하죠.
‘Two Step’이라는 작품의 이미지는 이미 인터넷에 상당히 많이 올라와 있더군요. 같은 제목으로 여러 작품을 제작한 듯합니다.
그 작품들을 포함해 대부분의 작품이 상당히 로맨틱하고 따뜻한 시선을 품고 있어요. 이 부분이 바로 대중적 흡입력을 발휘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Two Step’은 예전 작품 중 하나지만 여전히 컬렉터와 온라인 팔로워들에게 인기가 많아요. 그 작품을 그리기 전 저는 상당히 어두운 흑백 작품을 그려왔지만 개인적으로 아주 힘든 일을 겪으면서 예술이 아픈 감정을 해소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좀 더 따뜻하고 행복한 주제와 소재를 작품에 반영하게 되었죠. 사람들은 완벽한 사랑, 완벽한 가정환경에 대한 이상을 추구하죠. 저는 미적으로 아름다운 작품을 통해 가족과 개인이 어떤 면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하지만 예술의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목적이기도 하죠.
물감을 바르고 겹치는 과정 자체가 일종의 영상물처럼 보입니다. 물감과 붓질을 더해 형상을 만드는 과정이 실제 결과물을 좀 더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죠. 혹시 영상 작품도 제작하나요?
비디오 설치 작품을 만든 적은 없지만 스케치부터 완성까지 작품 제작 과정을 타임랩스로 촬영한 필름은 고객과 팔로워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죠. 많은 예술가가 자신의 작업 과정을 비밀스럽게 지키고 싶어 하지만,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각각의 작품을 넘어서는 작업의 진가를 알게 해주고, 예술가 지망생과 학생들이 자신의 작품과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동물 모티브를 사용했습니다. 당신의 작품 속 동물 모티브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저는 아이와 동물 보호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동물은 소중히 해야 할 자연과 세상의 한 부분이죠. 세계야생동물기금(World Wildlife Fund), 해비타트(Habitat), 해양생물트러스트 (Ocean Giants Trust)와 협력해 동물 보호에 대한 인식을 높이려 노력하고 있고, 많은 갤러리 전시와 프린트 작품 판매를 통해 자연 보존 프로젝트와 자선단체, 동물보호구역 등도 후원하고 있어요. 게다가 저는 여행을 좋아해요.제가 그린 상당수의 그림은 세계 각지의 다양한 자연환경을 탐험한 결과죠. 동물은 아름다운 생명체이자 힘, 속도, 지식, 권력, 그 외에도 인간이 원하는 많은 특성에 대한 메타포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동물은 당분간 제 그림의 중요한 소재가 될 것 같아요.
당신은 다른 작가들에 비해 단연 SNS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것 같아요. 작품 제작과 유통, 구매를 아우르는 기존의 일정한 산업 체계를 벗어난 흥미로운 활동처럼 보입니다.
SNS는 제 예술적 방법론의 핵심이자, 예술 작업을 전업으로 할 수 있는 수입과 방편이 되고 있습니다. 회사에 다니던 당시 일과 예술 작업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온라인을 통해 성공적으로 독립한 예술가들을 찾아봤죠. 지금도 여전히 두세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려면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한편으로 컬렉터, 관람객과 직접 소통하고 대규모의 팔로워를 거느릴 수 있는 온라인 서비스와 웹사이트가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SNS 팔로워는 현재 40만 명이 넘어요. 이를 통해 새로운 작품, 커미션 또는 프로젝트를 위한 고객을 신속하게 찾을 수 있었고, 1년 내내 바쁜 일정을 유지하고 있어요. 물론 갤러리 전시와 아트 페어 같은 전통적 경로도 여전히 미술계에 제 이름을 알리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술가와 갤러리는 미술계에서 작가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새로운 시스템을 함께 받아들여야 한다고 봐요.
현재 당신은 원화와 프린트를 어떤 경로를 통해 유통하나요? 원화와 프린트의 판매 비중 또한 궁금합니다.
저는 여전히 갤러리를 통해 작품을 판매하는 전통적 경로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LA에서 개인전도 열었고요. 원화 작품은 대부분 갤러리를 통한 오프라인 판매와 SNS를 비롯한 온라인 판매를 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익(최대 70%)은 SNS를 통해 이뤄지죠. 저는 이러한 새로운 유통 방식을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전시뿐 아니라 유통 사이트도 페이스북과 기타 SNS를 통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활발한 활동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요? 작품의 인지도와 판매에 영향을 미치나요?
SNS는 전통적으로 갤러리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었던 고객에게 폭넓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지역적 제약을 벗어나 전 세계의 고객을 만나게 해주죠. 제 고객은 SNS를 통해 제가 작가로서 성장해가는 과정과 작품 제작 과정을 볼 수 있다는 점, 예술가와 좀 더 긴밀한 연결 고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어요. 저도 SNS를 통해 고객과 관람객의 질문에 빠르게 답하고 그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열린 대화를 나눌 수 있죠. 기술과 온라인 커뮤니티의 발전으로 최근 10년 안에 일어난 가장 놀라운 변화입니다.
그간 작가들이 보여준 신비주의적 태도가 현재는 상당 부분 사라졌습니다. 특히 대중문화 예술가들은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사생활을 대중과 공유하죠. 하지만 아직 미술계는 이러한 태도에 대해 다소 미온적인데, 당신은 앞으로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사회가 전반적으로 개인적 삶과 직업적 삶을 좀 더 개방적으로 공유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고 봐요. 예를 들면 저를 통해 사람들은 이런 것을 발견했을 수도 있어요. 비슷한 열망을 지니고 생활하며 자신과 마찬가지로 우여곡절을 겪는 사람에게 예술 작품을 구매하는 것의 진가 같은 것 말이죠. 예술 작품의 가치에 대한 투자도 여전히 중요하지만, 사람들은 서서히 개인으로서 예술가에게 투자하고 예술가의 동기와 열정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올해와 내년에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알려주세요.
서울에서 프로젝트를 하나 기획 중이에요. 한국 가수의 새로운 디지털 싱글 커버 아트워크를 하는 거죠. 이 작업을 위해 전통적 회화, 비디오와 디지털 미디어를 혼합하는 새로운 작업을 실험 중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매체이자 주제이기 때문에 제게도 힘든 일이지만 도전적이고 보람 있는 일이에요. 최종 프로젝트는 올 3월까지 발표할 계획이에요. 또 하반기에 진행할 서울 개인전을 위해 협의 중이에요. 유화와 전통적 수묵화 기법을 결합한 작품을 선보일 겁니다. 연말에는 홍콩에서 갤러리 전시를 계획하고 있고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한국에서도 자주 만나뵙기를 기대합니다.
네, 저에게도 좋은 시간이었어요. 올해는 서울을 자주 방문해 구석구석 다니면서 아름다운 예술과 문화를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마크 알란테
1986년 홍콩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활동하는 작가다. 호주 시드니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국 더럼 대학교(Durham University)에서 수학한 후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한 이래 홍콩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하며 경력을 쌓았다. 2012년 아시아 컨템퍼러리 아트 쇼(Asia Contemporary Art Show)에서 올해의 젊은 홍콩 작가(Hong Kong Young Artist of the Year) 명단에 이름을 올린 그는 2017년 LA에서 첫 미국 개인전을 개최했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글 류정화(전시 기획자, 엔더블에프이 디렉터 사진 제공 마크 알란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