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이라뇨?
마니아들의 소수 취향을 넘어 문화의 한 축으로 성장하고 있는 아트 토이의 ‘장난 아닌’ 세계.

1 올해 아트토이컬쳐에 참여하는 디자인스튜디오 슈퍼픽션의 신작 ‘잭슨’ 2 국내 1세대 아트 토이 아티스트 쿨레인의 신작 삽화와 작품
‘아트 토이(art toy)’는 말 그대로 작가의 ‘예술(art)이 가미된 장난감(toy)’을 뜻한다. 스타일이나 단어의 어감상 왠지 유럽이나 미국에서 시작되었을 것 같지만, 의외로 홍콩에서 시작됐다. 1998년 홍콩의 미술가 마이클 라우(Michael Lau)가 오래된 ‘지아이조(G.I. Joe)’ 피겨를 화려하게 개조한 걸 시초로 또 이에 자극받은 다른 작가들이 ‘유레카!’를 외치며 자신의 피겨를 주야장천 내놓은 걸 아트 토이의 시작으로 보는 게 일반적.
그런데 사실 이는 우리가 아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만화 등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플라스틱이나 금속으로 원래 캐릭터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든 ‘피겨(figure)’와도 외형상 비슷하다. 굳이 기존 피겨와 구분하자면, 장난감 회사가 내놓은 ‘상품’으로서 가치보다 디자이너나 작가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워 좀 더 희소성을 지니며, 대부분 ‘관상용’을 목적으로 한다는 게 포인트. 국내에선 현재 ‘어른의 장난감’이라 불리며 포털 사이트에서 ‘키덜트’와 연관 검색어로까지 엮인 판국이지만, 이는 사실 아트 토이에 대한 편견에 가깝다. 실제로 민망할 정도로 노골적인 성 묘사나 시대 풍자를 담은 ‘귀엽지만은 않은’ 작품도 많기 때문. 하지만 아트 토이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국내 상황과 달리 홍콩이나 일본, 유럽, 미국 등지에서 이것은 이미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하나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표현하는 예술 장르로 인정받고 있다.

3, 4 아트 토이의 선구자 마이클 라우가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칼하트WIP와 협업해 내놓은 ‘Gardener Says Work Is Over’ 시리즈’ 5 국내 1세대 아트 토이 아티스트 쿨레인의 신작 삽화와 작품
여기엔 물론 대중문화계를 주무르는 유명인사들이 이것에 푹 빠져 있다는 것도 한몫한다. 이들은 자신이 수집한 아트 토이를 방송에서 공개하거나, 제작에 직접 참여하며 아트 토이를 알린다. 일례로 힙합계의 패셔니스타 중 한 명인 퍼렐 윌리엄스는 바쁜 일정에도 아트 토이 페어엔 절대 빠지지 않으며, R&B 가수 크리스 브라운도 이름난 아트 토이 마니아다. 특히 크리스 브라운은 사회의 이면을 풍자하는 것으로 유명한 현대미술가 론 잉글리시(Ron English)와 함께 아트 토이 브랜드 ‘덤 잉글리시(Dum English)’까지 런칭했을 정도.
해외 유명인사들의 이러한 ‘아트 토이 사랑’엔 못 미치지만, 국내에서도 아트 토이는 유명인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다. 일례로 그룹 빅뱅의 탑은 현대미술품 컬렉터인 동시에 아트 토이 마니아이기도 한데, 수년 전 미국 작가 카우스(KAWS)가 만든 1.5m 높이의 아트 토이를 2000만 원에 구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가 속한 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도 마찬가지. 양 대표는 지금도 잊을 만하면 방송을 통해 희귀한 아트 토이로 꾸민 자신의 사무실을 공개한다.
한편 세계적으로 아트 토이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며 이것을 다루는 페어도 다양하게 열리고 있다.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행사라면 단연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리는 ‘코믹콘(Comic-Con International)’을 꼽을 수 있다. 1970년 3월에 시작해 올해로 4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행사는 애초 만화와 애니메이션, 게임, 영화, 코스프레 등 거의 모든 서브 컬처 콘텐츠를 다루는 것으로 이름을 알렸고, 지금은 아트 토이 영역까지 확실하게 커버하고 있다. 매년 200~300명(팀)의 아토 토이 아티스트(팀)가 행사에 참여해 작품을 선보이는데, 나흘간 열리는 행사 기간에 대략 12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는다고.

6 아트 토이 스튜디오 핸즈인팩토리와 <스타워즈>의 협업 작품 7 패션에 관심이 많은 아트 토이 아티스트 초지(Chogy)와 <스타워즈>의 협업 작품
이웃 나라 일본에도 이에 못지않은 행사가 있다. 바로 ‘원더 페스티벌(Wonder Festival)’이다. 오사카의 SF 굿즈 관련 회사 제너럴 프로덕트가 1985년에 창설한 이 행사는 ‘한정판’에 목매는 일본인의 특성을 반영, 애초 당일 한정 피겨 상품을 판매하는 이벤트로 시작해 지금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피겨·아트 토이’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행사는 1년에 두 차례 겨울(2월)과 여름(7월)에 도쿄 인근의 지바 현에서 단 하루씩만 열리는데, 1800개 이상의 아트 토이 제작자와 피겨 전문 기업, 제작팀이 내놓는 아트 토이를 만나기 위해 5만 명에 이르는 관람객이 찾는다고.
미국과 일본의 규모엔 한참 못 미치지만 국내에도 아트 토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행사가 있다. 2014년에 시작된 국내 최초의 아트 토이 페어 ‘아트토이컬쳐’가 그것. 자신만의 콘텐츠로 캐릭터와 토이를 직접 제작하는 국내외 아티스트와 디자이너, 스튜디오가 참여하는 이 행사는 해마다 150명(팀)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신작을 공개한다. 지난해엔 국내 최고의 아트 토이 아티스트 쿨레인과 현대미술가로 더 잘 알려진 아트놈, 스티키몬스터랩, 슈퍼픽션, 초코사이다, 키타이, 데하라 등이 참여했으며, 행사가 열린 닷새 동안 16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고. 올해도 이들은 5월 3일부터 7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지난해보다 업그레이드된 형태로 행사를 선보일 계획이다. 이 행사를 주최하는 아트벤처스의 백민규 매니저는 “국내 아트 토이 시장 규모가 일본과 미국에 비하면 아직 작다”면서도 “40~50대 중년층에서도 아트 토이를 구매하는 사례가 크게 느는 등 열풍이 불고 있다”며 국내 아트 토이 시장을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 몇 년간 아트 토이는 전시장을 넘어 경매장으로까지 진출해 판로의 분명한 확장을 보이기도 했다. 2008년 중국의 현대미술가 웨민쥔(Yue Minjun)이 디자인한 아트 토이 베어브릭이 한 경매에서 약 2억5000만 원에 거래된 걸 시작으로, 국내에선 지난해부터 서울옥션의 온라인 경매 서비스 ‘서울옥션블루’를 통해 아트 토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서울옥션의 손지성 홍보수석은 “(기존의 아트 토이 컬렉터가 아트 토이 구매를 위해 경매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지만) 최근엔 아트 토이에 빠져 있던 컬렉터가 역으로 경매를 통해 현대미술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며 아트 토이와 현대미술품이 만드는 이 이상한 시너지를 소개했다.

8 팝 아티스트 카우스가 인기 캐릭터 스누피를 표현한 ‘Joe KAWS’ 9 그래픽디자인부터 애니메이션, 아트 토이까지 제작하는 스티키 몬스터랩이 비트볼뮤직과 함께 작업한 ‘The Loner’
21세기 최고의 패턴 디자이너 알렉산더 지라드(Alexander Girard)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장난감은 한 인간의 내면이자 꿈의 축소판이며 환상, 상상력, 유머와 사랑을 뜻한다”고. 몇 해 전만 해도 아트 토이는 국내에서 어른이 덜 된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보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작가의 손길을 거친 예술의 한 영역으로 인정받는 추세다. 그 형태 자체로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데다, 고급 취미 생활을 즐기려는 열망이 더해지면서 아트 토이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남은 봄, 오래 관찰하고 만지작거리면서 행복감을 잃지 않게 해주는 당신의 첫 아트 토이를 구입해보는 건 어떨까? 그것이 당신에게 상상력과 유머, 사랑을 준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물론 너무 빠지면 통장 잔고가 바닥을 드러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