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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의 탄생

ARTNOW

작가의 스튜디오를 떠난 작품이 있을 장소는 사방이 온통 하얀 전시장만이 아니다. 여기, 당신이 미처 상상하지 못한 장면이 탄생했다.

한경우, Plastic Rorschach, C-프린트, 각 80×53cm, 2014

작품은 때로 둔갑술을 쓴다. 한경우는 시점에 따라 동일한 대상이 전혀 다르게 인지되는 것에 대해 고찰해왔다. 그는 좌우대칭 잉크 얼룩을 본 느낌에 따라 성격을 파악하는 ‘로샤’ 검사를 활용한 사진 작품을 제작했다.

이완, How to Become Us(5.06kg No.1), 혼합 재료, 2011 / 다음 생에 꽃이 되어 그대 곁에, 마가린, 13×17×20cm, 2010 / How to Become Us(5.06kg No.9), 혼합 재료, 2011

이완은 ‘재료의 연금술사’를 자처한다. 그는 닭을 갈아 야구공을, 마가린으로 녹는 해골을 만들거나, 망치·구둣솔·무게 추 등의 면을 매끈하게 갈고 광을 내어 거울로 둔갑시켰다. ‘메이드 인’ 연작에서는 직접 제작한 오브제를 박물관의 유물처럼 전시한다.

강서경, 둥근 목소리, 와이어에 실 감기, 브론즈, 철 구조물, 잣나무 둥치, 60×180×70cm, 2013 / Pink Voice 중 부분

길거리의 버려진 사물과 작품은 멀고도 가까운 친척 관계다. 강서경의 ‘Grandmother Tower’ 연작은 모든 재료가 버려진 물건이다. 그 형상은 제목처럼 할머니를 연상시킨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서 있는 오브제에는 작가의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짙게 묻어 있다. 병상에 있던 할머니가 손녀를 보기 위해 벽에 기대 가까스로 일어나던 모습에서 작품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척박한 땅에서 악착같이 자란 기형의 나무처럼 보이기도 한다.

문성식, 꽃과 사람, 종이에 아크릴 물감, 112×76cm, 2013 / 아담과 이브, 종이에 아크릴 물감, 112×76cm, 2013 / 늙은 아들과 더 늙은 엄마, 종이에 아크릴 물감, 112×76cm, 2013 / 남화연, 가변 크기, 퍼포먼스, 2013

어떤 작가는 개인적 사연을 털어놓는가 하면, 어떤 작가는 그런 일에는 관심도 없다. 문성식의 작품에 담긴 이야기는 대부분 그가 어린 시절 시골에서 직접 경험한 일이다. 대자연 속 인간사를 담은 그의 작품은 삶과 죽음, 성(性)과 속(俗)에 관한 아포리즘 같다. 작가는 낙서나 일기처럼 끄적이는 드로잉에서 더 큰 자유로움을 느끼는 듯 보인다. 남화연은 작품에 직접 등장하지 않고, 일종의 프로그램 설계자나 프로듀서 같은 역할을 맡는다. 그녀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협업자는 퍼포머. 작품에 등장하는 그들은 작가가 부리는 살아 있는 인형이자, 작가와 작품을 완성하는 주인공 노릇을 동시에 수행한다.

이원우, Fat Coke, 스테인리스스틸, 알루미늄, 페인트, 12.5×12.5×12.5cm, 2009

동시대 미술의 ‘파격’에 이골이 난 사람이라도 어떤 작품을 보면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은 순간이 있다. 콜라 캔이 부풀어 올라 터져 죽은 걸까? 제목이 가관이다. ‘뚱뚱한 콜라’. 이원우는 헛웃음을 부르는 영국식 블랙코미디 화법을 구사한다. 그가 만든 얄궂게 귀여운 설치와 조각은 관람객이 고개를 반쯤 갸우뚱하게 만든다.

김인배, 겐다로크, FRP, 130×75×138cm, 2013 / Rising Fastball, FRP, 철, 70×150×242cm, 2010~2011 / 정면은 없다, FRP, 24×36×81cm, 2014

김인배는 초기작에서 2차원 평면 드로잉과 3차원 조각의 관계를 탐구했다. 드로잉으로 조각을 만들고 다시 조각이나 벽면에 드로잉을 덧붙인 것. 이런 작품을 출품한 그의 개인전 제목 ‘차이의 경계에 서라!’는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최근 연 개인전의 제목은 ‘점, 선, 면을 제거하라’. 이 작품은 모두 그의 명령에 따라 제작한 형태들이다.

김영나, Table A, 혼합 재료, 2013 / Found Abstract 연작 중에서

디자인과 미술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물리적 수치로 환산한다면 몇 킬로미터일까? 김영나가 시중에 유통되는 종이를 사이즈별로 올려놓기 위해 디자인한 테이블은 디자인 가구 제품일까, 아니면 미술관에 소장된 위대한 예술 작품일까(실제로 이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첫 디자인 전시에 출품했고, 최종적으로 미술관에 소장됐다)? 무한대로 인쇄 가능한 포스터를 한 편의 그림처럼 취급할 수 있을까? 김영나는 오브제뿐 아니라 포스터, 잡지, 음반 커버, 전광판 등 거의 모든 장르의 시각물을 거리낌없이 상대한다.

정희승, 무제,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56×225cm, 2014 / 장민승, 196, C-프린트, 디아본드, 118×280cm, 2012

세상의 모든 값비싼 광고판이 사진작가에게 주어진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정희승에게 사진은 회화와의 길고 긴 투쟁에 관한 역사를 간직한 이야기보따리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그는 유학을 떠나서야 본격적으로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Still-Life’ 연작에서 일상의 사물과 신체를 이용해 낯선 상황을 연출하고 이를 카메라로 기록했다. 장민승은 카메라를 들고 도시의 폐허를 기록했다. 일견 사회적·정치적 이슈에 참여하는 작품 같지만, 너무 아름답게 담긴 그 장면들은 관람객의 마음을 서늘하게 한다.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일러스트 노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