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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란’을 통해 받은 사랑 ‘장미란재단’에서

LIFESTYLE

세상엔 의지로만 되지 않는 일이 너무도 많다. 그것은 지난 수년간 스타 역도 선수로 생활하며 온갖 사랑을 받아온 장미란에게도 마찬가지다.

재사회화.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새롭게 사회화하는 과정을 말한다. 요즘 내가 보내는 하루하루를 전문 용어로 그렇게 말한다. 재단활동을 하며 틈틈이 논문을 작성하고, 영어 공부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삶. 누가 들으면 꽤 여유 있는 생활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금 쓰고 있는 논문 얘길 들려주고 싶다. 논문 제목은 ‘국가 대표 출신 선수들의 제2의 삶에 대한 연구’. 다소 비장한 느낌마저 드는 이 논문을 쓰기 위해, 나는 요새 생전 들추지도 않은 책들을 보고 있다. 그리고 무려 400명이나 되는 현역 운동선수에게 일일이 설문지를 돌려 그걸 받아내는 노력까지 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일을 하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어렴풋이 알고 있던 사실을 수치로 확인하고 크게 놀란 것이다. 바로 지금의 국가 대표나 프로 선수 대부분이 은퇴 이후를 전혀 준비하고 있지 않다.
일반 회사원보다 상대적으로 일찍 큰돈을 만지는 운동선수 대부분이 은퇴 후를 위한 준비보다는 지금 만족감을 주는 생활에 치중하고 있다. 한데 그런 무계획적인 생활로 은퇴를 맞이하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부닥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금메달리스트라고 모두 지도자가 되는 건 아니라는 현실을 미루어볼 때, 메달을 따지 못했거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선수가 은퇴 후 지도자로 전향해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확률은 아주 낮다. 실제로 많은 선수가 은퇴 후 현역 시절과는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서 완전히 새로운일을 시작하기도 한다.

 

나도 일반인으로 돌아가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 물론 나라고 특별한 게 있었던 건 아니다. 재단 활동과 학교 공부(용인대학교 박사 과정)를 병행하며 나름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긴 했다. 그런데 이 일 역시 쉽지만은 않았다. 선수 시절 경험하지 못한 일을 거의 매일 서너 가지씩 맞닥뜨려야 했기 때문이다. 재단 운영에 필요한 행정 지식 습득부터 타인의 생각과 내 생각 사이의 괴리를 이해하는 일 등 실로 다양하다. 일반인에겐 별것 아닌 일일 수 있지만, 10대 때부터 운동만 해온 나 같은 선수 출신 일반인에겐 평소 모든 일에 어느 정도의 ‘준비’가 필요하다.
언젠가 인터뷰를 통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선수 위원이 되고 싶다는 꿈을 내비친 적이 있다. 2016년 열리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선수 위원으로 활동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이전엔 선수 위원을 생각도 못했는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문대성 위원의 모습을 보며 꿈을 키웠다. 그 자리는 스포츠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다. IOC 선수 위원이 되면 국제무대에서 다양한 활동과 새로운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앞으로 장미란재단이 펼칠 몇 가지 사업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마음먹는다고 쉽게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몇 가지 자격 요건을 갖춰야 한다. 직전 올림픽 또는 당해 올림픽에 선수로 참가한 경력과 도핑 위반 경력이 없어야 하는 등 선수가 지녀야 할 품위, 언어 능력(영어 또는 프랑스어) 그리고 각국 올림픽위원회(NOC)의 추천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건 NOC의 추천. 그 때문에 지금은 선수 위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세상엔 이렇게 자신의 의지로만 되지 않는 일이 너무 많다. 이 또한 선수 시절엔 경험해보지 못한, ‘재사회화’를 통해 배우게 된 소중한 인생 공부 중 하나다.

“금메달리스트 장미란을 기억하는 이들 대부분이 나의 선수 때 이미지를 떠올리며 장미란재단 또한 완벽할 거란 생각을 한다. 물론 나도 잘하고 싶은 욕심은 있다. 하지만 결코 그 규모를 키울 생각은 없다. 이 일을 크게 벌이고 싶었다면 진작에 이슈가 되는 친구들을 불러 매달 운동회를 열었을 것이다.”

국제역도연맹(IFW) 선수 위원이 됐다. IFW 선수 위원이 되어 좋은 점은 위원회 활동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국제 스포츠 인사와 교류할 수 있다는 것, 이를 통해 쌓은 인적 네트워크가 추후 IOC 선수위원이 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보다 더 구미를 당기는 건 앞으로 내가 보고 싶은 역도 경기를 부담 없이 마음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선수 시절엔 올림픽 같은 큰 경기에 나가 누가 잘하는 지 보고 싶어도 스케줄이 맞지 않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가깝게는 인천 아시안게임(9월 19일~10월 4일)의 모든 역도 경기부터 마음 편히 볼 수 있다. 아마 보통 사람은 지금 내가 하는 얘길 잘 공감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최근까지 실제로 경기를 뛴 선수가 경기는 하지 않고, 그걸 관람만 한다는 게 얼마나 큰 자유이자 기쁨인지 말이다. 사실 주변의 몇몇 사람은 이런 걱정도 했다. 역도 경기를 계속 집중해 보다 다시 역도를 시작하게 되는 건 아니냐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역도를 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지금도 개인적으로 역도를 하고 있고, 일반인으로 사는 현재의 삶에 꽤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메달리스트 장미란을 기억하는 이들 대부분이 나의 선수 때 이미지를 떠올리며 장미란재단 또한 완벽할 거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나도 잘하고 싶은 욕심은 굴뚝같다. 심지어 몇몇 지인은 재단에 도움을 주고자 후원금을 내는 방법을 묻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늘 한결같이 말한다. 아직 재단에 개인 후원금에 대한 장기적 플랜이 없으니, 조금만 참아달라고 말이다. 잘하고 싶은 욕심은 많지만, 결코 그규모를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지금 하는 일을 더 크게 벌이고 싶었다면 진작에 이슈가 되는 친구들을 불러 매달 운동회를 열고, 방송 카메라도 돌리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과한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아직 재단 차원에서 미래에 대한 플랜을 세운 것도 아닌데, 야금야금 돈을 받는 건 뭔가 아니지 싶다. 이는 선수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수용할 수 있는 영역 외에 더 많은 일을 맡아 헉헉대는건 내 성미에 맞지 않는다. 한 만큼 받는 것이 되레 마음 편하다. 1000만 원짜리 후원을 해야 하는데 100만 원밖에 없다면 100만 원짜리를 1000만 원짜리처럼 잘하면 된다.
10대부터 30대 초까지 정말 열심히 운동만 하며 살아왔다. 지금부터 40대 초반까진 열심히 공부만 해볼 생각이다. 사실 40대 이후엔 돈도 많이 벌고 싶다. 장미란재단과 대학 공부 등 앞으로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하다 보면 두루두루 돈이 필요한 곳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연애와 결혼은 어떡하느냐고? 아직 구체적 계획은 없다. 친한 친구 10명 중 4명이 이미 결혼해 애까지 있지만, 아직까진 그들 집에 가끔 놀러 가 애들하고 인사하는 정도로만 재미를 느낀다. 앞으로 몇 년간은 재단 운영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혼자만의 활동이 아니라, 각 종목의 대표 선수들이 유망주들과 함께 멘토와 멘티로 서로 인연을 맺을 것이다. 또 어린이들에게 스포츠를 통해 이룰 수 있는 꿈과 희망을 전해주는 것이 재단의 목표다. 이제껏 장‘ 미란’을 통해 받은 많은 사랑을 앞으로는 ‘장미란재단’에서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미란 선수는 …
1983년 강원도 원주 출생.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부모님의 권유로 역도를 시작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역도 최중량급 은메달,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여자 역도 최중량급 금메달(세계 신기록 달성)을 받으며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역도 선수로 이름을 떨쳤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선 메달을 따지 못했으나 그녀가 마지막 용상에서 170kg에 실패한 후 바벨에 손키스를 남기고 기도하는 모습은 국민의 가슴속에 남았다. 2013년 은퇴 후 장미란재단을 세우고 스포츠 꿈나무를 응원하며 또 다른 삶을 시작한 그녀는 여전히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장미란  일러스트 장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