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인생
홍순명은 장르와 장르를 종횡무진한다. 조각을 하다가 사진을 찾고, 그게 질리면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린다. 작품도 비슷한 게 하나도 없다. A 다음 A-1이 아니라, B 혹은 C, D 등을 내놓는다. 그래서 그를 별종이라 부르는 이도 많다. 한데 그게 뭐?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원하는 진짜 아티스트의 모습 아닐까? 작가는 타협하지 않는다. 홍순명도 그렇다.

홍순명 작가.
1980년대에 미술계에 데뷔, 한 우물만 파기보단 다양한 실험을 했습니다. 설치 작품부터 판화, 입체, 미디어 아트, 조각, 페인팅, 서예 등 광범위한 영역을 넘나들었죠.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장르를 아우를 수 있었나요? 저는 진득하지 못해요. 그래서 그림도 그리고 조각도 하고 사진도 찍었죠. 요 근래에만 5개 장르를 작업하고 있어요. 실은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여러 개를 같이 하죠. 관심사가 자꾸 바뀌기도 하고요.
말 그대로 살아서 ‘생동’하시는군요. 저는 그런 인간이에요. 그리고 계속 바뀌는 것이 별로 불편하지도 않아요. 저는 이런 경험이 많아요. 가령 제가 A라는 작업을 발표해요. 그걸 보고 누가 너무 좋다며 작업실로 찾아와요. 그런데 제 작업실엔 A랑 비슷한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같은 걸 안 하니까요. 그동안 저는 그렇게 비슷한 걸 찾지 못해 실망한 눈을 굉장히 많이 봤어요. 어떤 갤러리스트는 화까지 냈죠.(웃음)
그러게 왜 A와 비슷한 작품은 안 하고 B나 C, D 같은 걸 자꾸 하셨어요? 인간이 늘 같은 생각만 하는 것도 너무 이상한 거 아닌가요?
애초에 A라는 작품을 보고 작업실에 왔다면 제가 갤러리스트라 해도 A-1이나 A-2 같은, 결이 비슷한 작품을 찾지 않았을까 싶어요. 솔직히 그건 한국 미술계 수준이 그리 높지 못해 생기는 일 같아요. 그러니 ‘외형’이 비슷한 것만 자꾸 찾죠. 하지만 저는 A에서 B로 가든, C나 D로 가든 그 이유가 틀림없이 있어요. 그거 없인 절대로 다음으로(연장선상의 개념으로) 넘어가지 않죠. 한데 어느 날 그 외형이 달라지면, 모두들 제가 ‘다른 것’을 한다고 봐요. 필연적으로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서 간 건데도요.
그렇게 여러 장르를 작업하면 이따금 실패도 하게 되지 않나요? 아무래도 한 장르에 진득하게 주제의식을 쏟는 것보단 실패 확률이 높을 것 같아요.
실패할 수도 있죠. 그런데 실패가 뭐가 중요하죠? 시도가 훨씬 중요해요. 예술은 애초에 ‘시도하는’ 장르예요. 결과를 내는 장르가 아니고.

1붉은 남쪽 바다, 캔버스에 오일, 300×424cm, 2018
2 올해 말레이시아 베리깅스 해변에서 촬영한 조각 ‘사소한 기념비’ 시리즈 전경.
그런가 하면 페인팅은 다소 늦게 시작하셨습니다. 여러 장르를 작업하다가 2004년에 이르러서야 페인팅 작품을 발표했죠. 2003년까진 설치 작업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페인팅으로 넘어왔죠. 그 전까진 사실 그림을 거의 안 그렸어요. 페인팅을 시작한 게 40대 중반이니 20대부터 미술을 했다고 쳐도 20년 넘게 미술계에 있었던 건데, 갑자기 안 하던 그림을 그리려니 ‘뭘 그리지?’가 되어버린 거죠.
아니, 순서가 잘못된 것 아닌가요? 보통은 뭘 그릴지 정하는 게 먼저잖아요.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정한 후 대상을 찾는 게 아니라. 그저 ‘그림’이라는 걸 그려보고 싶었어요. 오랫동안 미술을 해서 그림 빼곤 다 해봤거든요. 그림 실력이 좋지 않은 것도 이유였죠. 그런데 뭔가를 그리려면 소재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냥 앉아서 자화상을 그렸는데, 너무 못 그리는 거예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간 뭘 그려본 적도 없고, 20년을 미술계에서 활동해 눈만 높아진 거죠.
미술 작가도 자신의 그림을 보고 자괴감에 빠지는군요? 사실 많은 작가가 저처럼 장르를 옮기는 과정에서 미술을 그만둬요. 설치 작업 같은 건 조금 덜하지만, 조각이나 페인팅은 정말 숙련되어야 하거든요. 저 역시 설치 작업에서 페인팅으로 넘어오며 굉장한 고통의 시간을 보냈죠.

‘장밋빛 인생’ 시리즈 중 ‘4대강(낙동강)’, 캔버스에 오일, 200×660cm, 2017
그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풍경화로 극복했죠. 풍경화는 형태가 필요 없잖아요. 산을 그릴 때 능선의 각도가 똑같지 않아도 표가 안 나죠. 그런데 인물은 얼굴의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완전히 다른 존재가 돼버려요. ‘사이드스케이프’라는 시리즈를 그렇게 시작했어요.
알아요, 그 시리즈. 초기엔 한 프레임의 중심이 되는 피사체가 아니라 그 주변 풍경을 골라 그렸죠. 처음엔 세계의 명승고적지를 그렸어요. 누가 봐도 그 장소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유적은 그리지 않고, 바로 옆에 있는 나무나 꽃 등을 그렸죠. 불국사 옆 소나무나 남대문 옆의 돌멩이 같은 거요. 그런데 그것도 어느 정도 그리니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러다 ‘보도사진’이란 것에 빠졌죠.
평론가들이 홍순명을 ‘사건 기록 작가’라고 부르기 시작한 계기가 바로 그 일이었죠. 맞아요. 보도사진은 인터넷을 뒤지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나와요. 로이터 같은 데엔 하루에 2만~3만 장쯤 올라오죠. 그래도 처음엔 그중 그리고 싶은 걸 찾아야 하니 오랫동안 사진을 뒤졌어요. 매일 밤 1000장 가까이, 거의 10년 넘게 리서치했죠. 그러다 자연스레 “오늘 새벽 샌프란시스코에 불난 거 알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고요. 이후엔 계속 사건만 팠어요. 거의 나이 50세가 되어서야 내가 그것에 흥미를 느낀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아무리 풍경을 그리는 것이 재미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돌연 현실과의 관계 맺기를 시작할 수 있었나요? 사실 사건 자체를 건드릴 것인가 말 것인가로 고민을 좀 했어요. 사건을 건드리는 것과 그 주변만 다루는 건 완전히 다른 개념이니까요. 그런데 앞서 말했듯 풍경만 그리다 보니 옆에 있는 사건 그 자체가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러다 스스로 질문을 했죠. ‘작품은 직유법보다는 은유법을 쓰는 게 옳다고 생각해왔는데, 과연 내가 사건 그 자체를 다루는 게 맞는 걸까?’라고요. 고민 끝에 그냥 ‘해버린’ 거죠.
고민 끝엔 보통 그렇게 ‘해버리’시나 봐요?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맞아요. 그냥 해버려요. 아니, ‘원래’라는 게 없다고 생각하죠. 지금의 저는 이러니까. 그러다 보니 작품이 자꾸 바뀌어요. 재료도 바뀌고, 주제도 바뀌고. 그런데 사건을 그리면서도 주저하긴 했어요.
취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게 아닐까요? 네. 어떤 사건을 그리는 행위가 제 취향이 아닌 것 같단 생각에 이르렀죠. 그래서 그만뒀다가, 그리다가, 다시 시작했다가 하며 시간을 보냈죠. 그러다 사건을 그리는 행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는데, 바로 세월호 사건이었죠.
맞아요. 세월호 사건을 작품화한 ‘사소한 기념비’ 시리즈나 어두운 사건의 단편을 슬프도록 화려하게 표현한 ‘장밋빛 인생’ 시리즈가 오랫동안 화제였죠. 개인적으로 ‘사소한 기념비’ 시리즈를 여러 번 본 적이 있어요. 네, 세월호 사건이 유독 제 마음을 흔들어놓았어요. 당시 전 50대 중반이었죠. 그 나이쯤 되면 보통 사회에서 벌어지는 어떤 사건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게 돼요. 저는 세월호 사건이 그랬고요. 그래서 사건을 그린다, 안 그린다, 예술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같은 걸 떠나, 일단 사회의 한 성인으로서 그곳에 갔고요. 가서 글 쓰고, 사진 찍고 별걸 다 했어요. 뭔가를 작품화하겠다는 게 아니라, 나 역시 그것에 대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죠. 한데 제가 예술가다 보니 결국 예술의 하나로 표현하게 된 거죠.

2014년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소개한 <홍순명전: 스펙터클의 여백> 전경.
그러면서 점점 더 사건에 빠지게 되신 거군요? 그런 셈이죠. 하지만 지금도 100% 그렇다고 말하긴 어려워요.(웃음)
솔직히 이전엔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참 정치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세월호 외에 4대강에 대한 작품도 있고 그 밖에 정치색을 띤 걸 꽤 봤거든요. 정치적 이념 따위엔 아무 관심도 없어요. 전 그냥 제가 아는 상식에서 벗어난 것에 대해 ‘대체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을 할 뿐이에요.
작품의 정치성에 대해선 진짜 관심이 없나요? 정말 그렇다면 그간 선보인 어떤 시리즈엔 ‘이중적’이란 말을 붙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일례로 어떤 대상은 너무 심각하고 처참한데, 그것이 만드는 이미지는 작품 속에 너무 아름답게 묘사된 것이 많으니까요. 개인적으론 ‘장밋빛 인생’ 시리즈의 ‘4대강’이란 작품이 그랬어요. 4대강 주변의 보기 싫은 녹조를 핑크로 바꿔 ‘나름의’ 심미성을 강조하셨죠. 이중적이라는 얘기는 받아들입니다. 어쨌든 제 작품이 더럽거나, 무섭거나, 징그러워 보이진 않으니까요. 어떤 서정성을 띠고 있다곤 생각해요. 또 그런 서정성을 띠는 게, 그런 사건을 그릴 때 과연 적절한가 하는 질문도 계속하고 있죠.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표현되는 거 아닐까요? 유미주의와 비슷한 거죠. 아름다움을 좇는. 사실 제가 그걸 즐기는 사람은 아닌데, 계속 그렇게 되더라고요. 저도 왜 그런진 모르겠어요. 참 곤란해요. 하지만 거기에 답은 없다고 봐요. 내 선택이 있을 뿐이지.
선택을 이미 하신 것 아닌가요? 뭐든 아름답게. 구차하게 자기 변호를 하자면, 그게 제 성향인 것 같아요. 저도 모르게 그렇게 그려져요. 정말 곤란하죠. 종종 그 서정성이 거슬리기도 하고요.

3Sanliurfa. 2014년 10월 8일, 캔버스에 오일, 218×291cm, 2015
4Marseille, 2010년 10월 28일, 캔버스에 오일, 260×194cm, 2011
그럼 그걸 조금 더 ‘누르려고’ 해보신 적은 없나요? 이미 하고 있어요.(웃음) 많이 하고 있는 거예요.
지난해에 대구미술관에서 최근 10년간의 주요 연작 100여 점을(피스로 치면 3000여 점) 전시했습니다. ‘사이드스케이프’와 ‘메모리스케이프’, ‘사소한 기념비’, ‘장밋빛 인생’ 등 4가지 주제로 선보였죠. 근래에 열린 가장 큰 전시인 것 같은데, 그걸 준비하며 지난 작품을 돌아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답변이 조금 어처구니없겠지만, 그냥 놀진 않았구나, 꽤 열심히 했구나 싶었어요. 재능이 없는 대신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는 것 하나는 인정받을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죠. 왜냐하면 지난 10년 동안 4000점의 그림을 그렸으니까요. 결코 게으르게 시간을 흘려보낸 건 아니었죠.
그 외에 다른 생각은 안 하셨나요? 재능은 없구나. 이렇게 많이 했는데, 이 정도밖에 못했구나.(웃음)
그건 대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요. 자신이 만든 작품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는 거요. 비참한 느낌이죠.(웃음)
그런데 전시 간판을 달고 관람객을 끌었는데, 작가가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해요? 아니, 해도 되나요? 그것조차 없으면, 무슨 에너지가 있겠어요. 예술가가.(웃음)
오는 12월 27일부터 내년 1월 25일까지 노블레스 컬렉션에서 개인전을 엽니다. 어떤 전시인가요? 이전과 크게 다르진 않을 거예요. 어떤 사건들에 대한 그림을 그릴 거예요.
내년이면 60세에 접어듭니다. 오랜 시간 작품 활동을 해온 그간의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세요?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미술을 했어요. 그간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죠. 장르도 많고, 주제도 많았죠. 하지만 제 인생 전체를 돌아보면, 그건 바둑의 설전처럼 결국엔 전부 한 판 안에 들어오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게 들어오고 안 들어오는 걸 결정하는 건 지금 할 일도 아니고요. 때가 됐는데도 안 들어갔다면 그냥 후진 작가라고 하면 그만이에요. 전 거기에 관심이 없어요. 한데 이 생각은 결국 제가 맞을 거예요. 사실 작가 활동이라는 건 저 자신을 위한 거예요. 무책임한 말 같지만, 결국 ‘내 작업’을 열심히 할 때 남들이 더 좋아해줘요. 자아에 대한 질문의 깊이가 우리의 목표예요.
삶에서 ‘장밋빛 인생’이라 할 수 있는 시기가 있었나요? 지금 현재요. 작가로서 여전히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지금이 행복해요.
홍순명
조각, 설치, 비디오 등 매체의 실험을 거듭했고 정치, 경제, 문화와 같이 세계를 둘러싼 여러 요소를 ‘부분과 전체’라는 철학적 명제 아래 분석해 꾸준히 작업해왔다. 그는 오늘도 ‘이 시대에 작가로 사는 것’에 관해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