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의 확장, 감상의 혁신
향을 태운 재, 소가죽, 철과 알루미늄, 실리콘. 이 모든 것은 중국 아티스트 장환이 사용해온 재료다. 전통과 다문화 사이에서 과감한 작업을 해온 그에게 재료는 곧 혁신을 이끄는 매개체다.

1Magic Paradise: I Do & Huan Art Life Space, Mirror Finished Stainless Steel, 390×1900×1050cm, 2014~2015
2 실리콘, 철, 탄소섬유와 아크릴로 만든 작품 ‘Q Confucius No.2’ 앞에 선 장환 작가
장환
Zhang Huan
현재 상하이와 뉴욕을 오가며 활동하는 장환은 여러 매체와 재료를 실험하며 작품을 만드는 작가다. 세계 주요 미술관이나 조각 공원 등에서 그의 작품을 본 적이 있다면 주로 압도적인 규모의 대작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그는 본래 전통 회화를 공부하며 미술을 시작했고, 한때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중국 아방가르드 미술을 주도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혔다. 벌거벗은 채 온몸에 쇠사슬을 감고 공중에 매달려 있거나, 산에 올라 다른 작가들과 함께 몸을 쌓아 올려서 인간 탑을 만드는 등 1990년대에 그가 선보인 작품은 대체로 과격한 퍼포먼스였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 부산비엔날레에 전시한 1994년 영상 작품 ‘12평방미터’에서도 그는 온몸에 벌꿀을 바른 뒤 공중화장실 한가운데에 앉아 달려드는 파리 떼를 견디고 있었다.

1Cowskin Buddha Face No.1, Cowskin, 250×197×40cm, 2007
2Free Tiger Returns to Mountains No.4, Ash on Linen, 160×180cm, 2010
3 재로 만든 거대한 작품이 걸린 장환의 작업실
그렇게 열악하고 억압적인 중국의 현실을 강하게 비판하던 그는 이제 더 이상 퍼포먼스 작업을 하지 않는다. 1998년 뉴욕으로 이주한 뒤 조각과 설치 등으로 작업의 범주를 넓혔고,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작업하며 국제적 아티스트로 입지를 굳혔다. 2000년대 중반에 상하이로 돌아온 그는 대규모 작업실을 마련해 수많은 장인, 스태프와 함께 스케일 큰 작품을 만들며 재료에 대한 과감한 실험을 시작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은 소가죽으로 만든 부처의 얼굴이나 리넨에 재를 뿌려 그린 호랑이그림 등 모두 재료를 떼어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작품. 특유의 무게감은 여전하지만 과거의 퍼포먼스 작업과 비교하면 작가의 관심사가 변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향을 태우고 남은 재를 이용한 회화와 조각, 설치 작품에는 그가 외국 생활 후 중국에 돌아와 얻은 깨달음이 반영돼 있다. 무채색의 잿더미에 그가 담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

Q Confucius No.4, Incense Ash, 280×780cm, 2011
작가로서 당신의 삶에는 큰 전환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1990년대 중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대표주자로 꼽혔는데 뉴 욕으로 이주한 뒤 다양한 작업을 했고, 상하이로 돌아와서는 ‘재’를 이용한 작품을 선보였죠. 이전의 작품과 재를 이용한 작품은 상당히 달라 보여요. 이 독특한 재료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재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지만 중국인의 정신성을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재로 만든 작품은 중국인의 집단적 기억과 영혼, 염원을 담고 있는 셈이죠. 특히 종교의식에서 태운 재를 모아 작품 재료로 사용한 것은 사라진 존재가 다른 형태로 재탄생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윤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뒤 재료를 수급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누가 봐도 다루기 까다로운 재료니까요. 작품에 사용하기 위해 이동이나 관리에 동원한 남다른 방법이 있나요?
매년 저장 성 주변에 있는 10여 개의 절에서 향을 태우고 남은 재를 수천 세제곱미터씩 작업실로 공수해옵니다. 보통 휘발유통에 담아 현지에서 한두 달 동안 다시 태운 뒤 운반하는데, 작업실에 도착할 때까지도 연소가 계속돼 연기가 나오는 상예태요. 먼저 기초 작업을 하는 작업실에서 재를 처리해 분류하고 선별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선별 처리한 재를 창작 작업실로 옮겨와 그림, 조각, 설치 작품 등을 만들죠.
상상만으로도 넓은 공간과 많은 사람이 필요할 것 같네요. 상하이에 대규모 작업실이 있는데, 그곳에서 팀을 이뤄 작업 하나요?
그렇습니다. 우리 팀에서 제 역할은 절의 주지승이나 군의 총사령관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제가 원칙과 방향을 설정하고 무엇을 할지, 언제 시작하고 끝낼지 결정하죠. 팀 구성원들은 창작 과정에서 제작을 담당합니다.

‘Berlin Buddha’, 재로 만든 부처와 알루미늄으로 만든 부처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설치 작품
당신의 최근 작품 중 2015년 ‘시드니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시드니 붓다(Sydney Buddha)’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매우 거대한 작품이었죠. 재와 알루미늄으로 만든 각기 다른 부처가 마주 보고 있었는데, 재로 만든 부처가 알루미늄 부처의 틀을 이용해 제작했다는 걸 알고는 비로소 탄생과 죽음이라는 대립적 주제가 와 닿았습니다.
탄생, 노화, 질병, 죽음 그리고 환생에 이르는 삶을 표현한 작품이죠. 재로 만든 부처상은 무게를 지탱해주는 부분이 없어서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해체됩니다. 마지막에 사라질 때까지 크기가 가변적이고, 부서지거나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는 작품이죠. 전시장의 공간과 주변 환경, 시간의 흐름, 공기의 진동에 따라 예측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제가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그러고 보면 당신은 재 외에도 알루미늄 같은 금속, 소가죽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작업했어요. 작업에 따라 재료 선택의 기준이 어떻게 달라지죠?
기준은 간단해요. ‘감상의 혁신’을 이룰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죠. 특별한 시각적 효과를 낼 수 있고, 그래서 관람객이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작품을 바라보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에서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재료를 고릅니다. 물론 각 재료가 제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건 당연한 전제죠.
그렇다면 예술의 재료가 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기준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표현 방법을 찾는 것이 관건이에요. 만약 재료를 사용할 수 있는 적당한 표현 방법만 있다면 그런 기준은 없습니다.

Giant No.3, Cowskin, Steel, Wood and Polystyrene Foam, 460×1000×420cm, 2008

1Buddha Hand, Copper, 450×670×140cm, 2006 2Ru Lai, Ash, Steel and Wood, 549×459×340cm, 2009
당신은 현대미술가로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하곤 했죠. 당신의 작업에서 현대미술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기 위해 재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해요.
개념은 적절한 재료가 있어야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재의 다문화 세계에서는 특히 그렇죠.
회화로 미술을 시작한 이후 퍼포먼스, 설치미술, 조각 작업을 하며 주요 매체를 바꿔왔죠. 당신이 중국의 현실을 비판하며 고통을 수반한 퍼포먼스를 하는 영상은 지금도 비엔날레 같은 미술 행사에서 볼 수 있는데, 이제 그런 작업을 할 생각은 없나요?
나이가 들고 사는 환경이 변하면 생각이 달라지고, 자연히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적당한 방법을 찾게 되죠. 예전에 한 것을 반복하는건 원치 않지만 만약 새로운 영감이 떠오른다면 퍼포먼스를 다시 할 수도 있습니다. 퍼포먼스야말로 세계적으로 많은 거장이 활약하는 영향력 있는 예술 형태니까요.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사용하지만 기본적으로 제 모든 작품에는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저만의 관점이 반영돼 있습니다. 작품마다 표현 양식이 다를 수 있지만 그 속의 DNA는 변함이 없어요.
상하이에 작업실을 열기 전 뉴욕에서 보낸 시간이 당신의 작업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뉴욕에서 사는 건 젊은 시절 제 꿈이었죠. 8년간 뉴욕에 살면서 여러 나라를 여행하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공부를 했고, 제가 추구하는 예술의 방향도 보다 명확해졌어요. 그래서 더 다양한 재료와 매체를 실험해보면서 유익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창작의 범위가 넓어졌고, 강한 자기 확신과 독립심도 얻을 수 있었죠. 그것이 큰 자산이 됐습니다.
그 이후 작업부터 본격적으로 중국의 정신성이 드러난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제 영감의 원천은 중국의 전통이고, 그걸 매우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작품을 통해 제가 깊은 감동을 받은 전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The Eternal Fetal Movement, Wood and Human Placentas, 900×361cm, 2012
Photo by Rebecca Fanuele

상하이 작업실 안에 선 장환
영국 사치 갤러리, 프랑스 퐁피두 센터,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 등에서 전시를 했고 휘트니 비엔날레에도 참여했죠. 전 세계 주요 갤러리와 미술 행사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데, 관람객이 당신의 작품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제각각 다를 것 같습니다. 동양적 세계관이 깃든 작품은 더더욱 그럴 것 같은데, 그런 부분을 고려하면서 작업을 하는 편인가요?
사실 작업을 할 땐 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작품에만 집중하려 합니다. 그 이후 완성작이 다양한 관람객과 만나면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것이죠. 관람객의 층이 넓어지고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작품에 보다 풍부한 의의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문화 예술을 위해 필요한 소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예술가의 의무와 가능성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예술로 무엇을 해야 하고,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예술은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이고, 예술 작품을 통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죠. 예술가의 중요한 임무는 사회에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미술의 진정한 가치는 시대정신을 드러내는 작품을 만드는 데 있습니다.
에디터 안미영(myahn@noblesse.com)
사진 제공 Zhang Huan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