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요? 아이디어 팔아요
포화 상태에서 진짜배기는 더욱 빛나는 법이다.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요즘, 크리베이트 박성연 대표가 돋보이는 이유.

“크리베이트는 사무실이 없는데, 인터뷰는 어디에서 하면 좋을까요?” 인터뷰를 하기 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크리베이트 박성연 대표의 한마디에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사무실이 없는 회사라니? 전화를 잘못했나? 그녀를 만나자마자 사무실에 대한 질문을 던진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초기에는 사무실이 있었어요. 크리베이트는 꾸준히 내부 변화를 모색하는데, 그중 하나가 회의를 할 때만 사무실에 모이는 방식이었죠. 각자 생활 패턴에 맞춰 자유롭게 일하니 업무 효율도 좋아졌고, 만나는 횟수가 줄어든 만큼 더 임팩트 있는 회의를 할 수 있었죠. 그런데 점점 콘퍼런스 콜로 대체하거나 유명한 카페에서 만나다 보니 고정된 공간의 필요성이 줄어들더라고요. 그래서 없앴어요. 클라이언트가 우리를 유령 회사로 생각하면 어쩌나 고민도 했지만, 그 자유로움을 맛보니 다시 돌아갈 수가 없더군요. 한번 스마트폰으로 넘어오면 피처폰을 쓸 수 없는 것처럼요. 혁신은 바로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에디터의 고정관념에 대한 탄식과 그녀의 선견지명을 향한 감탄이 뒤섞인 가운데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녀는 아이디어 컨설턴트다. ‘새로운 아이디어 찾아 3만 리’라지만, 세상은 이미 아이디어로 넘쳐나고 있다. 대학생 공모전만 열어도 수천수만 가지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고 기업들은 상품 기획, 광고 기획 등 여러 부서를 거느리며 새로운 생각을 발굴하는 데 여념이 없다. 이런 포화 상태에서 삼성전자, LG전자, 서울시 등 여러 기관이 앞다퉈 박성연 대표에게 조언을 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엄밀히 따지면, 그녀가 수장으로 있는 크리베이트는 단순히 아이디어를 파는 게 아니라 소비자 중심의 아이디어 컨설팅을 제공한다. 새로운 제품(또는 서비스)의 기능과 타깃만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제품이 소비자의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예측한다. 수많은 아이디어 중 소비자가 가치를 느끼는 ‘무엇’을 선별하는 게 가장 큰 차이점. 대표적 예가 바로 LG전자의 스타일러다. “스타일러는 소비자의 삶을 바꿀 미래 가전을 고민하다 나왔어요. 트렌드를 살피고 실제로 가정 방문도 하다 보니 여러 증거가 보이더군요. 첫 번째는 침실과 드레스룸에서 옷을 갈아입는데도 세탁기는 베란다에 자리하는 구조적 불편함, 그리고 사람들이 고급 소재의 옷을 찾기 시작한 사회 트렌드가 두 번째였어요. 이러한 정황을 조합해보니 ‘가구와 세탁기를 결합하면 어떨까?’, ‘좋은 옷을 매일 새 옷처럼 입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컨셉이 나왔고, 실현 가능성이 보여 기업 측에 제안했습니다”라며 스타일러는 특별한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말한다.

1 박성연 대표가 개발한 아이디어 오프너(www.ideaopener.com)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그에 맞는 아이디어 소스를 제공한다.
2 아이디어 컨설팅에 사용하는 아이디어 카드.
등장하자마자 화제에 오른 가전제품을 특별하지 않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독창적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오는지 물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고들 하죠. 아이디어는 한순간 번쩍 떠오르는 비범한 존재가 아닌 훈련으로 얻어지는 결실이에요. 요즘 수영을 시작했는데, 결정적 순간에 힘을 줘야 앞으로 나아가는 원리와 강약 조절이 필요한 삶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개념을 이리저리 조합하는 브레인 피트니스를 꾸준히 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곤 하죠.” 순간의 영감이 아닌 훈련만으로 아이디어 컨설턴트 자리에 올랐다고 말하는 그녀. 기발한 생각은 천재의 전유물이라 여기며 좌절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말이 아닐까.
훈련 다음 단계는 ‘태도’다. 아이디어는 연약하다. 하품, 찡그린 표정, 작은 숨소리 하나에도 쉽게 기가 죽으니 아이디어에 대한 비판을 자신을 향한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게 요지.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타인의 평가가 신경 쓰여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디어는 불완전하다는 특징만 인지해도 용기를 얻고 발산할 수 있죠. 그렇기에 아이디어를 발산하는 시간에는 경청하는 태도가 필수예요. 판단은 검토와 수렴 단계에서 해도 늦지 않아요.”
창의적 사고에 대한 명언이 쏟아지는 가운데, 문득 박성연이란 인물이 궁금했다. 그녀는 어떻게 크리베이트를 창업하게 됐을까? 박성연 대표는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평범한 회사원이던 그녀에게 창업의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삼성전자 근무 당시 프로젝트 회의에서 제시한 100개의 아이디어 중 50개가 긍정적 평가를, 25개는 특허 산출을 받은 걸 보고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용기가 생긴 것. 회사를 그만두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블로그였다. 아이디어를 팔아보자는 막연한 생각으로 혁신 사례를 분석한 포스팅을 올렸는데, 그 글을 본 한 기업이 신규 사업을 시작하기 앞서 필요한 사례 분석을 의뢰했다. 단순 분석이 성에 차지 않던 박성연은 신사업 관련 아이디어를 추가한 결과물을 제시했다. 그 결과 입소문을 타고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으며 5명의 든든한 정예 멤버와 함께하는 지금의 크리베이트로 거듭났다. 경영 지식 없이 뛰어들었기에 아쉬운 점도 많고 초심자의 운이 따라줬다고 웃으며 말하지만, 창업 13년 만에 미국 진출을 앞둔 기업으로 성장한 건 단지 운 때문만은 아니다.
여전히 새로운 생각을 요구하는 이 시대에 맞춰 당장 실천 가능한 브레인 피트니스 방법도 전수해주는 그녀. “나 자신을 아는 게 먼저예요. 내가 어떤 고정관념을 지녔는지 파악해야 그것을 뒤집고 새로운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도약할 수 있죠. 결국 마음가짐과 태도의 문제라고 할 수 있어요.” 진정한 혁신을 바라는 기업이라면 대단한 의지가 필요하다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아이디어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어요. 참신함에 인센티브를 준다고 하면 되레 압박을 느끼고 두뇌가 굳어버리죠. 게다가 그간 해온 효율주의 경영과는 성격이 많이 달라요. 창의는 당장 눈에 보이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않고 성패를 판단할 만한 객관적 기준도 없죠. 수만 개의 아이디어에서 단 몇 개만 건지면 성공일 만큼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정말 혁신적 기업이 되고 싶다면 ‘창의를 얻는 대신 효율을 잃어도 좋다’는 각오로 시작해야 해요.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죠.”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사진 JK(인물) 헤어 소아(꼼나나) 메이크업 이영주(꼼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