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배우고 실천하기
흔히 저작권법은 일상에서 멀리 떨어진 것처럼 여기지만, ‘창조’라는 수식이 붙지 않는 영역이 없다. 생활 속에서 저작권의 가치를 지키고, 창작자의 혼과 열정이 담긴 예술을 더욱 의미 있게 즐기는 방법이 여기 있다.
애니쉬 커푸어가 시카고에 설치한 ‘구름 문’을 최근 중국에서 표절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콩’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이 작품처럼 중국 커라마이에 세운 작품도 콩 모양의 주변 풍경을 반사하는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 모양만 놓고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문화 예술계에 ‘표절’이라는 단어가 흑사병처럼 번지고 있다. 이름난 소설가의 소설, 모 연예인이 만든 옷, TV 드라마의 극본, 학계의 논문 등 그 종류도 가지가지다. 표절 문제는 하루 이틀에 걸친 일이 아닌 터라, ‘이제 그만!’이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 세상에 새로운 것 하나 없다는 달콤한 말로는 더는 위안이 되지 않는다. 표절 문제가 불거질 때면 우리는 표절한 사람의 윤리적 책임을 따져 물으며, 창작자의 권리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찾아주기 바쁘다. 저작권법은 이런 일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었다.
세상에 제 모습을 드러낸 창작물은 특별한 등록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저작물’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법적 보호를 받는다.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2014년 발행한 <알기 쉬운 저작권 계약>에는 ‘저작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다.” 그 종류는 소설·시·논문·강연·연설·각본 등의 어문 저작물, 음악 저작물, 연극·무용·무언극 등의 연극 저작물, 회화·서예·조각·판화·공예·응용미술 등의 미술 저작물, 건축물·건축을 위한 모형 및 설계도 등의 건축 저작물, 사진 저작물, 영상 저작물 등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창작의 결과물이다. 그 밖에 지도·도표·설계도·약도·모형 등의 도형 저작물, 컴퓨터 프로그램 저작물 등도 여기에 속한다. 사실상 저작물의 요건을 갖춘 모든 창작물이 법의 보호를 받는 대상인 셈이다. 단, 소재나 비용, 아이디어 등을 제공했다고 해서 저작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메모나 드로잉 정도의 기록물이라도 남아 있어야 한다.
제프 쿤스, ‘마이클 잭슨과 버블스’, 1988. 제프 쿤스는 ‘Banality’ 연작에서 대중문화의 요소를 전유해 작품화했다. 자기로 만든 이 작품은 마이클 잭슨과 그의 애완 침팬지 버블스를 형상화한 것이다.
©Jeff Koons
저작권법의 조항은 일견 간단명료한 사용 설명서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작권과 저작권법은 전문가들도 다루기 쉽지 않은 값비싼 크리스털 유리잔 같다. 저작물의 쓰임에 따라 법적 절차나 적용 방식이 상이해 누구보다 저작권법을 잘 알고 있어야 할 작가들마저도 세부 사항은 잘 알지 못한다. 특히 미술계에서 저작권은 늘 논란거리다. 작품 자체뿐 아니라 작품을 거래하거나 기증할 때, 미술관이나 개인에게 빌려줄 때, 또는 작품 이미지를 활용한 상품을 제작하거나 지면에 작품을 게재할 때도 저작권이 매번 적용된다. 표절이나 작품 거래에서 미술에 관한 저작권법의 판례가 다양하지 않은 것도 걸림돌이다. 현실이 이렇기에 관련 법규를 꼼꼼히 따져가며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는 아주 드물다.
무엇보다 동시대 미술에는 ‘전유(appropriation) 미술’이라는 골치 아픈 전통이 있다. 저작권법과 관련한 이슈에 늘 빠지지 않고 도깨비처럼 등장하는 이 단어의 안방에는 제프 쿤스, 리처드 프린스 등 글로벌 아트 신의 내로라하는 슈퍼스타가 단골손님으로 자리를 차지한다. 전유를 작품 창작의 방법론으로 내세운 작가들은 기존의 예술 작품뿐 아니라, 일반인이 촬영한 사진이나 대중문화의 모든 소스를 힘센 청소기처럼 먹어치운다. 최근 리처드 프린스는 일반인이 촬영해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으로 제작한 연작 ‘새로운 초상들’로 또 한 번 저작권법의 도마 위에 올랐다. 그의 작가 인생 득의작으로 평가받는 ‘카우보이’ 연작은 말보로 광고 사진을 재촬영해 만든 작품으로 도둑질과 미술이라는 개념의 획기적 전환 사이를 불안하게 오가며 미술사의 전설이 됐다. 제프 쿤스도 키치적 이미지로 가득한 자기로 만든 연작 ‘Banality’에서 미술과 창조성을 방패삼아 담대한 전유를 구사했다. 물론 이들이 만든 작품을 본 원 창작자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사진가 파트리크 카리우(Patrick Cariou), 아트 로저스(Art Rogers) 등이 두 작가를 법원에 고소했지만, 표절이다 아니다를 두고 법정마다 다른 판결을 내놓아 혼란을 가중시켰을 뿐이다. 더욱이 그들은 온전한 승리를 거둘 수 없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리처드 프린스와 제프 쿤스의 작품으로 그들이 촬영한 사진을 기억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제프 쿤스나 리처드 프린스의 작품 이미지를 사용하려면 소속 갤러리와 스튜디오의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미지를 사용할 지면의 내용, 크기, 함께 실리는 이미지까지 체크하며 최종 레이아웃을 검토한다. 사용 목적에 따라 정해진 값을 내야하고, 심지어 돈을 내고도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모두 저작권이라는 보호막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동기가 화장품 브랜드 헤라와 협업해 제작한 화이트 프로그램 이펙트의 리미티드 에디션

2020년 도쿄 올림픽 엠블럼(왼쪽)과 벨기에 리에주 극장 로고(오른쪽). 사노 겐지로가 디자인한 도쿄 올림픽 엠블럼은 벨기에의 그래픽 디자이너 올리비에 도비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주최 측이 사용 의사를 철회했다.
1987년에야 저작권법을 제정한 한국은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저작권의 개념이 비로소 정착하기 시작했다. 일본과 미국의 만화 캐릭터인 아톰과 미키 마우스를 결합한 ‘아토마우스’의 작가 이동기는 그 어떤 작가보다 많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해왔다. 1990년대 말부터 각종 브랜드와 협업한 그는 활동 초기만 해도 사회 전반에 저작권에 관한 인식이 전무했다고 회상했다. “지금이야 워낙 기업과의 협업이 많고 다양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왜 우리가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느냐, 상품 이미지로 노출되면 홍보도 되고 좋은 것 아니냐고 따져 묻는 회사도 있었어요.” 다종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그지만, 저작권법이 불명확한 부분이 많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작가가 어느 정도로 개입하느냐, 얼마나 많은 상품을 생산하느냐에 따라 계약 방식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이동기 작가의 후배 세대인 젊은 작가들은 저작권을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으로 보고 있다. 작품 자체로 승부를 거는 동시에, 다른 산업 영역과 협업하면서 작가의 창조성을 발휘하는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8월 6일, 홍익대학교에서 ‘작가 및 미술인을 위한 저작권 특강’을 진행했다. 이를 주최한 ‘굿-즈’는 젊은 작가들이 작품과 소량 제작한 에디션 및 작업의 파생물을 직접 판매하는 행사로, 몇몇 작가와 그들이 운영하는 미술기관이 모여 만들었다. 10월 14일부터 18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굿-즈의 본행사에 앞서 참여 작가와 미술인, 일반 관람객을 위한 저작권 특강을 마련한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김정묵 팀장과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홍승기 교수가 강의 소개와함께 강연을 펼쳤다. 자신의 작품을 보호하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젊은 작가들의 열기가 강의실을 가득 채웠다. 저작권의 실체에 한 걸음 더 다가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작가의 작품이나 협업의 결과물을 ‘소비’하는 것이다. 10월 굿-즈에 출품한 그들의 작품을 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구매하면서, “문화와 관련 산업의 향상 및 발전에 이바지함”이라는 저작권법의 목적을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