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격 연합작전
자동차업계가 다른 분야와 만나 일으키는 전략적 화학작용에 관하여.
올-뉴 링컨 MKX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 기술과 만난 볼보 자동차
바야흐로 컬래버레이션 홍수 시대다. 여기저기서 브랜드와 디자이너, 아티스트가 얽히고설킨 합동작전을 펼친다. 자동차업계도 마찬가지. 오래도록 끈끈한 관계를 지속해온 마세라티와 에르메네질도 제냐부터 링컨과 까르띠에, 피아트와 구찌, 랜드로버와 폴 스미스까지, 서로 다른 브랜드가 의기투합해 특별한 자동차를 만들어냈다. 패션 브랜드와의 합작이라 그런지, 둘의 시너지는 대부분 디자인에서 드러났다. 에르메네질도 제냐 특유의 실크 패브릭으로 단장한 내부 인테리어, 구찌의 상징인 레드 & 그린 컬러 줄무늬를 새긴 소프트톱과 안전벨트 등 온몸으로 ‘난 패셔너블한 자동차야’라고 외치는 듯 말이다. 그렇다고 패션 브랜드하고만 아이디어를 나누는 건 아니다. 타이어 전문 업체 피렐리와의 협업 50주년을 기념해 만든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LP700-4, 이탈리아 모터사이클 브랜드 비모타와 컬래버레이션한 푸조 RCZR 스페셜 에디션(푸조는 자동차뿐 아니라 모터사이클도 제조한다)처럼 연결 고리가 있는 브랜드와 힘을 모아 새로운 결과물을 창조하기도 한다. 이렇게 활발히 이어온 자동차업계의 컬래버레이션이 최근에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에디션 카를 출시하기보다 신차에 살짝살짝 다른 브랜드의 장점을 곁들이는 식으로 영민한 협업을 시도한다.고객이 외관의 페인트 컬러부터 시트 가죽까지 취향에 맞게 지정하는 비스포크 서비스를 먼저 살펴보자. 벤틀리의 기대주 벤테이가는 브라이틀링에서 맞춤 제작하는 기계식 뮬리너 투르비용 시계를 옵션으로 제공한다. 순금 케이스는 화이트나 옐로 골드 중에, 자개 다이얼은 8개의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화이트나 에보니 컬러 중에 선택 가능하다. 분명 어마어마한 추가 금액이 뒤따르는 일이지만, 구매를 앞둔 고객이라면 브라이틀링 시계를 장착한 벤테이가에 구미가 당길 법하다. 비스포크 자동차의 대명사 격인 롤스로이스는 영국 주얼리 브랜드 그라프 다이아몬즈를 끌어들였다. 올해 마카오 코타이 스트립에 오픈 예정인 루이 13세 호텔의 고객 의전 차량을 위해서다. 호텔 내부 인테리어에 맞춰 선명한 레드로 물들인 외관도 기대되지만 센터페시아에 놓일, 그라프 다이아몬즈가 디자인한 특별한 시계에 더 관심이 간다.
브라이틀링 기계식 뮬리너 투르비용 시계

벤틀리 벤테이가
운전자의 편의성을 극대화하고 감성을 만족시키기 위한 묘책으로 서로 다른 브랜드가 동맹을 맺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카 오디오 시스템. 2000년대 이후 여러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가 자동차 안으로 들어왔다. 더 이상 오디오 브랜드와 자동차의 만남이 신선하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하지만 링컨과 레벨(Revelⓡ)의 조합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레벨은 음향 애호가 사이에서도 갖고 싶은 홈시어터 오디오로 손꼽히는 브랜드다.
그만큼 생생한 사운드를 구현하는 레벨 오디오를 자동차 안에서? 플레이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심장이 요동칠 일이다. 이들의 만남이 특별한 건 단순히 프리미엄 오디오를 차량 내부에 장착한 게 아니기 때문. 링컨과 레벨의 엔지니어들은 개발 단계부터 스피커와 차의 구조를 맞추는 작업을 진행했다. 홈시어터 오디오 못지않은 카 오디오를 개발하기 위해 19년간 연구한 결과 올-뉴 링컨 MKX라는 첫 결실을 맺었다. 간혹 풍부한 사운드를 와트와 스피커 개수, 높은 출력만으로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 올-뉴 링컨 MKX는 어느 자리에서도 균일한 음질을 느낄 수 있도록 실내 구조에 맞게 19개의 스피커를 설치했다. 게다가 객석, 무대, 스테레오 3가지 모드 중 선택할 수 있는 퀀텀 로직 서라운드를 적용해 콘서트장에 있는 듯 완벽한 서라운드 음향을 즐길 수 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마음에 드는 건 클래리-파이. 저용량 음원을 고용량처럼 바꿔주는 기술인데, 차안에서 스마트폰에 저장된 음악을 재생할 때 정말 유용하다. 렉서스 올 뉴 ES도 비슷한 예다. “차 안에서 음악을 들을 때 공연장의 맨 앞줄에 앉아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거죠.” 명품 오디오 브랜드 마크 레빈슨의 대표 필 무치오는 렉서스와 함께한 프로젝트를 이렇게 설명했다. 마크 레빈슨 팀 역시 자동차의 디자인부터 스케치, 생산 단계에까지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필 무치오는 리어 시트 패드를 다르게 디자인하면 음질이 향상될 거라는 사실을 발견했고, 그에 맞춰 뒷좌석을 다시 만든 결과 오디오 음량을 5데시벨 높일 수 있었다. 여기에 독일 부메스터 오디오를 탑재하고 운전석과 조수석 발 아래 공간을 공명 장치로 활용해 입체적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메르세데스-벤츠 더 뉴 S 클래스까지, 프리미엄 오디오를 차안에 넣는 데 그치지 않고 최적의 사운드를 위한 구조를 함께 만들어가는 점이 돋보인다.
자동차업계의 핫이슈인 자율 주행과 커넥티드 카로 인해 IT업계와의 협업도 두드러진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가 홀로렌즈 기술을 볼보 자동차에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홀로 렌즈는 전용 헤드셋을 착용하고 현실 공간에 3D 영상을 투영하는 기술을 말하는데, 이걸 자동차 개발 프로세스에 도입하면 도로 주행 전 다양한 가상 체험이 가능하다. 그렇게만 된다면 고객이 자동차를 구매할 때 따로 시승하지 않아도 가상현실에서 모의 주행하는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자동차가 IT 기업과 힘을 합쳐 머지않아 사물 인터넷의 매개체가 될 기미도 보인다. 1월 초에 열린 세계 최대 가전 박람회(CES)에서 포드는 집안의 각종 가전제품을 자동차로 제어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세계 최대 전자 상거래 업체 아마존과 제휴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탑재해 이를 실현할 예정.
그간 컬래버레이션 하면 디자인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본래 의미는 서로 다른 두 브랜드가 각자의 경쟁력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게 아니던가. 눈앞에 화려하게 펼쳐지진 않아도 조용히 전략적 제휴를 이어가고 있는 자동차업계의 컬래버레이션은 분명 우리 삶을 좀 더 특별하고 편리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메르세데스-벤츠 더 뉴 S 클래스 내부의 부메스터 스피커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실크 패브릭으로 단장한 마세라티 기블리 에디션

롤스로이스 팬텀 for 루이 13세 호텔
에디터 | 문지영 (jym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