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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워치메이커

FASHION

시계의 역사에는 수많은 거장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반세기 넘게 우리의 손목 위에서 시간을 예술로 승화시킨 전설적인 인물을 소개합니다.

장-피에르 하그만(Jean-Pierre Hagmann)
지난 3월, 시계 업계는 깊은 애도에 잠겼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시계 케이스 제작의 거장으로 불리던 장-피에르 하그만(Jean-Pierre Hagmann)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그의 죽음은 전 세계 시계 제작자들과 업계 관계자들에게 큰 상실로 다가왔습니다. 1940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난 하그만은 1956년 주얼리 견습생으로 경력을 시작하며 일찍이 정밀한 수작업에 대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이후 그는 수십 년에 걸쳐 스벤 안데르센의 안데르센 제네바, 프랭크 뮬러, 블랑팡 등 스위스의 거의 모든 최고급 시계 브랜드를 위한 케이스를 제작해왔습니다. 특히 하그만의 전문 분야는 미닛 리피터 케이스였으며, 그는 이들 시계에 특별한 울림을 부여하는 독창적인 기능을 개발해 업계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기술력은 파텍 필립과의 협업으로 이어졌고 복잡한 무브먼트를 갖춘 시계를 위한 케이스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는 1989년 파텍 필립의 창립 15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미닛 리피터와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이 결합된 레퍼런스 3974입니다. 이 시계는 지금도 전 세계 수집가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모델로 꼽힙니다. 장-피에르 하그만이 제작한 케이스는 그의 이니셜인 ‘JHP’가 새겨진 제작자 마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이 마크는 오늘날 시계 수집가들 사이에서 프리미엄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도구와 기계를 고수하며 현대의 컴퓨터 기반 설계 도구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의 손길은 항상 아날로그 방식에 있었고 그 장인정신은 수많은 동료와 후배 장인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제24회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Grand Prix d’Horlogerie de Genève)에서 평생 업적을 기리는 특별 심사위원상을 수상했습니다. 수상 연설에서 그는 오데마 피게, 브라이틀링, 블랑팡, 파텍 필립, 그리고 첫 고객이었던 스벤 안데르센까지 자신이 케이스를 제작한 주요 브랜드들을 차례로 언급하며 소회를 밝혔습니다.

제랄드 젠타(Gérald Genta)
시계 역사상 가장 성공한 디자이너는 누구일까요? 여러 인물이 떠오르겠지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전설적인 디자이너 제랄드 젠타(Gérald Genta)입니다. 1931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난 그는 단 15세의 나이에 주얼리 업계에 입문해 세공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스위스에서는 주얼리 분야가 아직 미개척지에 가까웠기에 그를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대신 젠타에게 들어온 일감은 대부분 시계 브랜드로부터의 케이스나 다이얼 디자인 요청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자연스레 시계 디자인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1954년, 2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그는 유니버셜 제네브(Universal Genève)의 의뢰를 받아 본격적인 시계 디자인 작업에 착수합니다. 이후 스위스의 주요 시계 브랜드들과 협업하게 되었고 1959년에는 오메가의 대표 컬렉션 중 하나인 컨스텔레이션(Constellation)과 씨마스터(Seamaster) 개발에도 참여하게 됩니다. 물론 당시 그는 전체 프로젝트의 총괄 디자이너는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생전에 “오늘날 오메가조차도 내가 그들을 위해 어떤 작업을 했는지 전혀 모를지도 모른다”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진정한 전성기는 1970년대에 찾아옵니다. 제랄드 젠타는 이 시기 오데마 피게의 ‘로열 오크’(Royal Oak, 1972), 파텍필립의 ‘노틸러스’(Nautilus, 1976), IWC의 ‘인제니어’(Ingenieur, 1976) 등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대표적인 스포츠 럭셔리 워치들을 탄생시킵니다. 이들 시계의 공통점은 단연 ‘일체형 디자인’에 있습니다.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조는 그의 시그니처 디자인으로, 스포티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동시에 구현해냈죠. 젠타의 이러한 접근은 시계 역사에서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고 그가 남긴 디자인은 시계 산업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언급될 것입니다. 그의 도안은 실제 완성품과 매우 유사하기로 유명합니다. 이는 그만의 독창적인 설계 방식 덕분입니다. 그는 언제나 실제 크기의 원을 기준으로 도안을 시작했고 가로선과 세로선을 각각 하나씩만 사용해 간결하면서도 정밀한 구도를 구성했습니다. 그런 뒤, 아주 얇은 연필과 붓을 이용해 수채화 물감으로 섬세한 디테일을 표현했죠. 이처럼 정밀하고 예술적인 방식으로 완성된 그의 디자인은 단순한 설계를 넘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제랄드 젠타가 남긴 디자인은 단지 아름다운 외형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가 만든 시계들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 수많은 시계 애호가들로부터 존경과 열망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여전히 시계 업계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닌 작품들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커트 클라우스(Kurt Klaus)
한 브랜드에서 깊은 족적을 남긴 인물을 꼽으라면 IWC 샤프하우젠에서는 단연 커트 클라우스(Kurt Klaus)의 이름이 빠지지 않습니다. 1934년 스위스 동부 상트 갈렌에서 태어난그는 1957년, IWC의 서비스 부서에서 워치메이커로 경력을 시작하며 시계 업계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당시 그는 단순한 수리나 유지보수 업무를 맡았지만 이후 수십 년간 IWC를 대표하는 기술적 혁신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1970년대 스위스 시계 산업은 쿼츠 혁명의 거센 물결에 직면하며 전통적인 기계식 시계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던 시기였습니다. 이 위기 속에서도 커트 클라우스는 기계식 시계의 가치를 믿었고 포켓 워치의 컴플리케이션 개발을 담당하며 기술력을 다져갔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은 곧 그의 전설적인 발명으로 이어집니다. 애뉴얼 캘린더 개발의 성공을 기반으로 그는 손목시계를 위한 퍼페추얼 캘린더를 구상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1985년 바젤 시계 박람회에서 ‘다 빈치 퍼페추얼 캘린더 크로노그래프’(Reference 3750)를 세상에 선보입니다. 이 시계는 단 81개의 부품만으로 구성된 독창적인 퍼페추얼 캘린더를 탑재하고 있었고 크라운 하나만으로 모든 캘린더 기능을 조정할 수 있는 획기적인 메커니즘을 구현했습니다. 월의 길이와 윤년까지 자동으로 인식하며 2100년까지 수동 조정 없이 작동하는 이 시스템은 그야말로 기계식 시계 설계의 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클라우스가 만든 이 캘린더는 단지 기술적으로 뛰어난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설계의 단순성, 조립의 효율성, 사용자 편의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며 ‘기계식 퍼페추얼 캘린더’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IWC에서 40년 넘게 근무하며 수많은 기술적 유산을 남긴 커트 클라우스는 현재에도 여전히 활발히 활동 중입니다. 전 세계를 돌며 강연과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며 자신의 발명품과 워치메이킹에 대한 열정을 후세와 나누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유산은 단지 기계 속의 부품이 아니라 시계 제작에 대한 철학과 시대를 앞선 비전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에디터 박재만(pjm@noblesse.com)
사진 @gphg_official, 크리스티, IWC 샤프하우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