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를 평생 소장하는 법
좋은 전시의 마지막이 아쉽다면 도록을 추천한다.

전시 <고려 불화 대전>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수월관음도’(일본 다이산지 소장)가 실린 도록. 현재 판매 종료된 출판물이지만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museum.go.kr)에서 약 20 페이지짜리 PDF 파일을 받아볼 수 있다.
전시 형태가 진화하고 사람들이 공유하는 미감이 변화한 만큼, 도록 또한 디자인부터 그 안의 내용까지 매우 다양해졌다. 사실 전시 도록은 ‘하이브리드’적 매체에 가깝다.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운 작품이 원래 있던 제자리로 돌아가면, 그곳에 전시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한 권의 도록뿐이다. 도록에는 당연히 작품을 출품한 작가,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작가와 작품에 대한 글을 쓴 비평가 혹은 작가, 전시 디자이너, 도록 디자이너, 협력 기업 등 많은 이의 목소리가 묻어 있다.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록은 종이와 잉크, 작품 및 전시 전경 이미지의 퀄리티까지 많은 이의 노력이 깃들었다. 그리고 이제 도록이 하나의 독립 서적이자 아트 북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1 레온 하몬과 켄 놀턴의 ‘지각연구 I 컴퓨터 누드’가 <예술과 기술의 실험(E.A.T.): 또 다른 시작>전에 출품됐다.
2 <예술과 기술의 실험(E.A.T.): 또 다른 시작>전에 출품한 로버트 브리어의 ‘떠다니는 것들’ 설치 전경.
쉽게 볼 수 없던 외국 작품을 국내에서 전시하는 경우, 유럽 유수 기관의 소장품이 서울을 찾거나 대중에 공개하지 못하던 오래된 고서화를 선보일 때 전시는 물론 도록의 가치도 상승한다. 2010년 10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전시 <고려 불화 대전>을 살펴보자. 일본 소재 27점, 미국과 유럽 소재 15점, 국내 소재 19점 등 총 61점의 고려 불화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 조선의 전시 불화와 고려의 불상과 공예품까지 전례 없는 규모의 ‘고려 불화’ 전시가 꾸려졌다. 이때 함께 출품한 도록은 동양화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이 동양화 전공자나 지인에게도 추천했다는데, 일본 도쿄의 센소지에서 소장 중인 고려 승려 혜허의 ‘수월관음도’ 때문이다. 일본에서조차 자국 학자에게 공개하지 않아 연구하기 어렵다고 알려진 고려 불화다. 이 작품이 한국을 찾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찼는데, 세계 곳곳에 흩어진 불화가 한데 모인 전시는 당시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림의 전체 모습, 디테일이 고루 담긴 도록 역시 인기가 많았지만, 아쉽게도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남아 희소성이 높다.

세계 유수 갤러리 가운데 하나인 리만머핀의 소속 작가 에르빈 부름(왼쪽 위), 길버트 & 조지(왼쪽 아래), 앨릭스 프레거(오른쪽)의 도록.
그런가 하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2018년 5월부터 9월까지 열린 <예술과 기술의 실험(E.A.T.): 또 다른 시작>전은 예술가 로버트 라우션버그, 로버트 휘트먼, 벨 연구소 공학자 빌리 클뤼베와 프레드 발트하우어가 결성한 비영리단체 E.A.T.를 집중 조명한 전시다. 첨단 기술 시대에 예술과 예술가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한 이들의 활동은 사실 대중에게는 생소한 부분이었다. 전시 도록은 전시 기획 의도부터 E.A.T.의 역사 및 프로젝트, 소속 작가의 활동까지 면밀히 담아냈다. 흥미로운 사실은 E.A.T. 출신 줄리 마틴과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김은지 교수의 대담이 생생하게 실렸다는 점이다. ‘21세기 현재 기술, 공학, 예술 창작의 결합’이나 ‘E.A.T.’란 이름에 내포된 ‘실험’의 뜻 등 대중이 궁금할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함께 겪고 이끌어온 사람에게 직접 답을 들으며, 어찌 보면 낯선 단체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코너 속 작은 코너’를 마련한 것. 전시는 단순히 E.A.T.로 활동한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E.A.T.에 대한 미술관의 사유와 연구의 총체를 보여줬기에 의의가 남달랐고, 이에 따른 도록은 많은 양의 정보를 한 권의 책으로 집약한 작은 아카이브로 남았다. 한편 2012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6월 20일까지 PKM갤러리에서 열리는 <윤형근 1989-1999>전 전경.
만약 이런 원론적 내용이 가득 담긴 도록이 부담스럽다면, 깔끔한 디자인에 작품 이미지가 두드러진 도록은 어떨까. 20세기 할리우드 영화를 레퍼런스 삼아 섬세하게 연출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앨릭스 프레거의 도록이자 화집

2015년 3월 12일부터 5월 16일까지 리만머핀 홍콩에서 열린 앨릭스 프레거의 개인전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하나의 교육 및 연구 기관으로, 전시를 개최함과 동시에 작가와 작품, 사조에 대한 연구를 이어나간다. 비록 갤러리는 미술관과 성격이 다르지만, 작가에 대한 연구와 작품에 대한 가치를 조망하는 데에는 뜻을 같이한다. 도록은 이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작가들이 밤새 지속한 고뇌의 흔적을 밟아가며, 작가들이 구성한 전시의 속과 또 다른 형태의 ‘전시’를 제시한다. 또 전시를 관람하며 미처 해결하지 못한 지적 . 미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존재로, 도록의 가치를 단순히 ‘전시에 관한 책’으로만 한정 지을 수는 없다. 인상 깊은 전시를 기억하고 또 기념하는 방법으로 도록에 눈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