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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위예술은 오래 살아야 한다

ARTNOW

퍼포먼스는 순간의 예술인 줄만 알았다. 김구림을 만나고 그것이 잘못된 생각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1현상에서 흔적으로, 플라스틱 박스, 얼음, 트랜스패런트 종이, 각 110×480×80cm, 1969

‘한국의 첫 퍼포먼스 작가’, ‘이 시대에 가장 전위적인 인물’ 등 김구림을 수식하는 문구에는 항상 ‘최초’, ‘처음’, ‘가장’이 따라붙는다. ‘어떤 사람이길래 최초의 최초를 거듭할까?’라는 막연한 호기심에 그 이름 석 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던 2016년, 한 기자간담회에서 김구림 작가의 퍼포먼스를 볼 기회가 있었다. 여든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높은 좌대 위에 앉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가부좌를 튼 김구림. 허공을 응시하는 그의 눈빛에는 모진 풍파를 헤쳐온 거장의 강인함과 여전히 전위를 갈구하는 청년의 열정이 모두 담겨 있었다. 퍼포먼스를 보고 있으려니 더욱 그가 궁금해졌다. 도대체 김구림의 ‘무엇’이 그를 한국 화단에서 계속 최초로 불리게 하는 것일까? 김구림은 ‘존재의 소멸과 새로운 시작’을 추구한다. 잔디밭을 태우거나 얼음이 녹는 과정을 지켜보거나 또는 시집의 텍스트를 목탄 칠로 없앤 후 작품으로 환생시킨다. ‘음과 양’에서도 만물의 생성과 소멸, 변화의 원리를 이미지로 도출해냈으며 빗자루, 철제 의자 같은 사물을 일부러 낡게 만들어 시간 속에 존재하고 소멸하는 가치를 제시했다. 김구림은 없어짐으로써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순환, 이것이 김구림이 여전히 전위 작가로 살아가는 이유이자 언제나 최초인 이유다.

반신반의하며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한국 화단에서 전설로 불리는 김구림 작가가 과연 인터뷰에 응할까 하는 마음에서요.
9월 27일에 오픈하는 런던 데이비드 로버츠 예술 재단(David Roberts Art Foundation)전시를 준비하느라 시간이 여유롭지 않지만 이번 인터뷰는 왠지 모르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흐름에 모든 걸 맡기는 사람입니다. 한번 해야 한다는 느낌을 받은 이상 꼭 해야만 하죠.

지금 바로 퍼포먼스를 해도 무리 없을 만큼 여전히 정정하십니다.
예전에 백남준 작가가 저에게 “전위 작가는 오래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했어요. 그의 말대로 전위 작가는 최전방에서 항상 새로운 예술을 개척하고 작품으로서 증명해야 하기에 오래 활동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술을 안 합니다.(웃음) 꾸준히 퍼포먼스를 하려 합니다. 이번 런던 전시에서도 퍼포먼스를 계획하고 있어요.

기존 한국 화단엔 없던 새로운 예술 장르를 선보였기에 ‘전위적’, ‘최초’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습니다. 한데 처음 작가로 데뷔한 당시 화단은 회화와 조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퍼포먼스, 해프닝 등 실험적 예술을 선보이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해방 직후 미술을 처음 접했어요. 그때는 전문적 화실이나 서적은 당연히 전무했고 르네상스 화풍처럼 기술적으로 잘 그려야 화가가 될 수 있다는 문법이 지배적이었죠. 저도 ‘미술은 잘 그린 페인팅’이라고 굳게 믿은 사람 중 한 명으로 어떤 의문점도 갖지 않고 미술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어느 날 습관처럼 들른 서점에서 미국 잡지 한 권을 샀는데, 거기서 이상한 이미지를 봤습니다.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이었어요. 캔버스에 자유분방하게 흩뿌린 물감과 색의 향연을 보고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것도 그림인가?’라는 의문만으로도 혼란스러웠는데 심지어 이 작가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거예요. 저는 궁금한 게 생기면 잠을 못 잡니다. 그래서 당장 어느 대학교수에게 달려가 물었죠.  

2음과 양 6-S 65, 혼합 재료, 가방, 33×46×11cm, 2006
3음과 양 16-S.55, 관, 신발, 흙 외 혼합 재료, 자유 규격, 2016

만족스러운 답변이 돌아왔나요?
제 질문을 회피하더군요. 그때 저만의 독자적인 길을 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런 간단한 호기심도 해소해줄 수 없는 교육기관에서 제 예술 세계를 펼칠 순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곧바로 자퇴한 후 화단에서 뛰쳐나왔어요. ‘누구한테도 물어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할 것’, ‘내 작품이 미술로 인정받든 인정받지 못하든 전적으로 내 감각에 의존할 것’이란 철학을 확고히 세우고 작업에 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들이 하지 않은 퍼포먼스, 해프닝 같은 새로운 장르를 국내에서 시작하게 됐죠.

첫 퍼포먼스를 선보였을 때 부정적 반응이 만만치 않았겠어요.
20대 초반에 명동에서 글귀가 적힌 종이를 등에 붙이고 거리를 활보하거나 가게 쇼윈도에서 동물 퍼포먼스 등을 처음 시도했죠. 경찰까지 출동할 만큼 기이한 행동으로 입에 올랐을 뿐, 누구도 예술로 보진 않았습니다.

1970년에 선보인 국내 첫 대지예술 ‘현상에서 흔적으로-불과 잔디에 의한 이벤트’는 존재의 소멸과 새로운 시작이라는 화두를 던진 작품입니다. 이를 위해 뚝섬 잔디밭에 불을 질렀습니다.
불붙은 잔디는 순간 소멸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자리에 새파란 새싹이 돋아납니다. 이처럼 소멸은 새로운 탄생을 부르죠. 즉 ‘순환’의 과정을 겪습니다. ‘현상에서 흔적으로’ 시리즈의 또 다른 작품 소재로 얼음을 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특히 얼음 작업은 다양한 방향으로 진행했는데, 얼음을 공구로 부수거나 빨간 천으로 감싸고, 커다란 대야에 담고 녹을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작품에 쓰인 모든 얼음은 처음엔 고체로 있다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액체가 되고 다시 기체로 증발해 사라집니다. 그리고 다시 비가 되어 내리고 온도가 내려가면 얼음으로 되돌아오죠. 눈에 보이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아요. 이렇게 모든 것은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는 순환의 사이클 안에 있습니다. 실체가 있으면서도 없는, 이런 사상이 제 작업을 관통하죠.

4음과 양 16-S.49, 나무 상자 외 혼합 재료, 27×39×9cm, 2016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현상에서 흔적으로-불과 잔디에 의한 이벤트’를 재연했습니다. 40여 년이 지나 같은 퍼포먼스를 했는데, 작품이 ‘변했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작품도 나이가 들던가요?
환경, 장소, 시간에 따라 달라진 작품의 면모가 분명 있었죠. ‘영원’은 없어요. 웅덩이에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제 모든 작품은 항상 소멸하고 재탄생하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그 과정에서 변하는 부분도 있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작품이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회화와 조각은 실물로 존재하는 반면, 순간성이 짙은 퍼포먼스는 그렇지 않습니다. 행위가 끝나면 사라지는 예술이죠. 퍼포먼스가 ‘무엇’을 남기지 않는다는 게 아쉽지 않나요?
아쉽지 않습니다. 물리적 형태를 남겨야 작품인 것은 아니니까요. 진정한 예술 작품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각인되고 그들의 정신세계에서 떠돌아다녀야 합니다. 실체가 없어질지라도 머리와 마음에 남으면 그걸로 족합니다.

5도(道), 1970
6 현상에서 흔적으로-불과 잔디에 의한 이벤트, 1970

자신의 퍼포먼스를 ‘행위 없는 행위예술’이라 칭했습니다. 굉장히 아이러니해요. 퍼포먼스는 신체의 움직임이 주가 되는 예술 장르니까요.
그 예로 ‘심주’를 들 수 있습니다. ‘심주’는 불특정 다수에게 지시 사항이 든 편지봉투 네 장을 나눠준 퍼포먼스예요. 여기서 저는 편지봉투만 나눠줄 뿐 그 어떤 행위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 봉투를 받아 든 사람이 그 안에 있는 전언을 실천하거나 버리겠죠. 보통 퍼포먼스는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있는 사람만 볼 수 있지만 ‘심주’는 편지봉투를 통해 전해지고 퍼져 누구나 퍼포먼스를 볼 수 있죠. 이렇게 행위 없는 퍼포먼스는 순간성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내 작품은 시간성의 문제를 다룬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시간’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시대라 할까요? 제 작품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고 시대에 응답합니다. 같은 작품만 고수하는 건 매너리즘에 빠지는 지름길입니다. 영원은 존재할 수 없으며 그것은 발전이 없는 죽음이죠. 작품은 꾸준한 순환을 거치며 변화해야 합니다.

작품에 시작과 끝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즉 인간에게 생애 주기가 있듯 작품에도 탄생, 소멸이란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원로 작가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작품은 단지 하나의 흔적으로 존재할 뿐이며 그 생존 여부를 비롯한 모든 것은 시간과 자연의 섭리에 맡겨야 합니다. 지금 생각할 필요가 없는 문제예요. 후대가 원하면 작품은 존재하고 원하지 않는다면 존재 가치를 잃겠죠. 역사도 그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작품도 그 섭리를 거스를 수 없다고 여깁니다. 작품 해석 또한 마찬가지예요. 시대에 따라 작품을 달리 해석하지만 그걸 나쁘다, 좋다 판단할 순 없어요.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저는 작업에 대해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습니다. 단지 시간의 흐름을 따를 뿐이죠. 제가 어떻게 변할지, 무엇을 할지 저조차 가늠할 수 없습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대로, 물 흐르는 대로 갑니다.

7매스미디어의 유물, 1970 8 전위예술의 선구자 김구림 작가.

 

김구림
1936년 경북에서 태어난 김구림은 ‘아방가르드의 대표주자’라 불리는 전위예술의 선구자다. 한국 화단에서 처음으로 퍼포먼스, 대지예술, 일렉트릭 아트 등을 시도했고 영화, 연극, 무용, 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기도. 최근 서울시립미술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영국 테이트 모던, 미국과 일본, 이스라엘 미술관,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민회관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사진 JK(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