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천후 예술가의 귀환
만능 예술가 스털링 루비가 한국을 찾는다

Photo by Melanie Schiff. Courtesy of Sprüth Magers.
스털링 루비 Sterling Ruby
1962년 독일에서 태어난 스털링 루비는 지난 20여 년간 다양한 매체와 주제를 넘나들며 활동했다. 특히 회화, 드로잉, 콜라주, 조각, 사진, 도자, 패션 등 여러 장르에서 자전적 이야기, 미술사, 사회적 폭력과 억압을 다룬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96년 펜실베이니아 칼리지 오브 아트 앤 디자인을 졸업하고, 2002년 시카고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에서 학사 학위를, 2005년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휘트니 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타이베이 비엔날레 등에서 작업을 소개했으며, 뉴욕 현대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 파리 퐁피두 센터 등 유수의 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Turbine. Burning Horizon., Acrylic, Oil, and Cardboard on Canvas, Painting: 121.9×213.4×5.1cm, Framed: 126.7×218.1×8.3cm, 2024. Courtesy of Sterling Ruby Studio and Sprüth Magers. ©Sterling Ruby.
오는 9월 5일부터 11월 30일까지 스털링 루비(Sterling Ruby)의 개인전 〈먼지 쌓인 계단 위 쉬고 있는 정원사(The Flower Cutter Rests on Dust Covered Steps)〉가 신세계갤러리 분더샵 청담에서 열린다. 그토록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작가임에도 유독 국내에서는 만날 기회가 드물었는데, 2013년 이후 무려 11년 만에 열리는 한국 전시에서 그는 40여 점의 미공개 신작을 선보인다. 다채로운 작업을 소개해온 그는 이번 전시에서도 세라믹, 콜라주, 조각, 회화 등 여러 장르를 가로질러 재료, 형태, 내러티브의 향연을 준비했다. 그 결과 관능과 쇠락, 대격변 등 자연과 문명에 대한 은유를 담은 작품들이 공간을 채우고 독특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이전의 모든 시도와 헛된 동시대적 제스처를 박살 내고 있다”며 지구를 움직이는 원초적 힘에 대한 탐구를 펼쳐낸 전시 개막을 앞두고 보다 근본적인 스털링 루비의 작업관, 미학적 전략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질문을 건넸다.

Turbine. Night Fright., Acrylic, Oil, and Cardboard on Canvas, Painting: 121.9×213.4×5.1cm, Framed: 126.7×218.1×8.3cm, 2024. Courtesy of Sterling Ruby Studio and Sprüth Magers. ©Sterling Ruby.

Turbine. Incipient. Growth. Fully Developed. Decay., Acrylic, Oil, and Cardboard on Canvas, Painting: 213.4×121.9×5.1cm, Framed: 218.1×126.7×8.3cm, 2024. Courtesy of Sterling Ruby Studio. ©Sterling Ruby.
작가님은 유럽 태생이지만 미국 각지에서 성장했고, 지금은 캘리포니아에 거주하고 계시죠. 정주하지 않는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 진정한 ‘고향’은 어디일까요? 인생에서 경험한 여러 장소와 문화적 배경이 예술가가 되는 데 어떤 힘을 발휘했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네덜란드, 펜실베이니아 동남쪽의 농장, 볼티모어, 워싱턴DC, 시카고에서 살았고, 20년 넘게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고향이라는 개념이나 느낌을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이었어요. 제가 살았던 지역은 이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서로 달랐고, 다양한 방식으로 저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현재 거주하는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도 특별한 곳으로, 그 중요성을 항상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진보적인 피난처를 제공하는 주는 드물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쨌든 저에게 고향이란 가정과 일상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가족이 있는 곳, 출퇴근하는 작업실, 그리고 매일 마주하는 주변 사람들이 가장 큰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니까요.
착상부터 실행에 이르는 작업 과정에 관해 듣고 싶어요. 특정한 아이디어에서 작업을 시작하시나요, 아니면 일단 무언가를 만들거나 그려보다 그에 맞는 개념을 떠올리는 편인가요? 저는 사전에 정한 과정 없이 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 좋아요. 예술가로서 누리는 즐거운 순간 중 하나는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이 예상을 벗어나 스스로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계보를 만들어낼 때입니다. 어떤 요소는 이전 작업에서 본 듯 익숙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또 어떤 것은 완전히 낯선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거든요. 그런 것이 아예 새로운 시리즈로 이어지고,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며 큰 즐거움을 느낍니다.
작가님을 상징하는 작품은 붓 터치, 색감, 형태, 규모 등 여러 면에서 강렬함이 두드러지죠. 그런 에너지의 원천은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이번 전시에서는 어디서 그 에너지를 느끼게 될지 궁금해요. 작품의 형식 언어는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뿐 아니라, 주제와 개념적으로 연결되거나 경험을 반영하는 내러티브를 제안하는 수단으로 항상 사용돼왔습니다. 특히 변화가 많고 불확실성이 두드러지는 시기에 더욱 그렇죠. 미술사를 돌아보며 구성주의 예술가와 미래파 예술가들이 속도감, 폭력, 파괴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동작이 많이 들어간 마크메이킹(mark-making)과 색상, 형태, 규모의 급진적 대비에 대해 떠올리곤 합니다. J. M. W. 터너(J. M. W. Turner)는 종종 바다 풍경을 순수한 수평선으로 묘사했는데, 이는 마치 우리의 시간이 앞으로 나아가는지, 우리 뒤로 물러나는지에 대한 실존적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브루스 나우먼(Bruce Nauman)은 또 어떤가요. 그는 산업용 강철을 사용해 구속을 상징하는 철창을 만들기도 했죠. 저는 너무 직설적인 예술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작품을 감상할 때는 일련의 단계를 거쳐 자신만의 결론에 도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이 명확하게 설명돼서도, 너무 쉬워서도 안 돼요.
작가님의 작품은 추상적이고 사뭇 미니멀한 형태로 완성되지만, 동시에 작업 과정의 손맛과 노동의 흔적 또한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특히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둘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세요? 공예적 기술을 연마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 작업의 기본 정신과도 같습니다. 아마 미국의 노동자계급에서 성장한 영향이 클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자란 환경의 사람들은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법을 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전통적 형태와 그것이 세대를 거쳐 전해지는 방식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저는 그 연속성이 아주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예술가로서는 가장 익숙한 것에 반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느끼기도 해요. 이미 정립된 역사적 관습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고요. 예술이란 기술과 표현의 다양한 변수를 보여주는 궁극의 균형 잡기입니다. 이 긴장감은 느낄 수 있지만, 말로써 오롯이 설명하긴 힘든 일종의 오라를 만들어내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그간 재료, 기법, 장르 면에서 누구보다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해오셨습니다. 여전히 도전하고 싶은 재료나 장르가 있나요? 일종의 미지의 영역이라고 할까요. 글쎄요, 저는 모든 재료로 이뤄진 온갖 물건에 심취하는 편이에요. 오래된 삽이든, 셰이커 스토브든, 체코슬로바키아산 은장식 유리 화병이나 블랙 포레스트의 나무에 조각한 명판, 또는 에르메스 승마 모티브 팔찌든 말이죠. 예술의 영역에 속한다고 여기지 않는 아주 다양한 것에서 영감을 찾거든요. 그리고 때로는 그것이 시도해본 적 없는 무언가를 실험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Installation View of 〈Specters Tokyo〉 at the Sogetsu Plaza, Tokyo, Japan, 2023. Photo by Kenji Takahashi. Courtesy of Taka Ishii Gallery.

Tree, Steel, Sculpture: 1236.3x240x193.7cm, Weight: 8133.3kg, 2023. Photo by Robert Wedemeyer. Courtesy of Sterling Ruby Studio. ©Sterling Ruby.
어느덧 선배 세대 예술가에 속하게 됐네요. 1990년대에 ‘전통적’ 미술 교육을 받은 예술가로서 세상의 변화를 실감하시나요? 사실 저는 오랫동안 또래들과 달리 동시대적 혹은 이론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했습니다. 제가 처음 4년간 받은 미술 교육은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전통적이었거든요. 화가 N. C. 와이어스(N. C. Wyeth)와 그의 아들 앤드루 와이어스(Andrew Wyeth), 그리고 브랜디와인 리버 미술관(Brandywine River Museum)의 전통에 따라 펜실베이니아의 우리 학교에서는 주로 누드 인물화와 야외 풍경 스케치를 그렸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개념적 실천과 포스트모더니즘에 익숙해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일종의 선물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여전히 그때와 같은 방식으로 작업하는 것 같아요. 리서치나 맥락화를 통해 작품을 구상하기보다는 관찰하고 드로잉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사람이죠.
세상이 예술가에게 원하는 것과 예술가가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것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특히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른 예술가일수록 자유로울 거라 예상하지만, 세상의 ‘기대치’ 또한 정형화되기 쉽죠. 만약 예술가가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을 밀고 나가야 한다면, 스스로의 생각과 목소리를 잃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제가 처음 예술가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의 분위기는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어린 시절, 학교 선생님들은 예술가로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며, 그나마 예술 교육자가 되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단언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아무 보상이 없더라도 예술가로 존재한다는 일종의 연대감이 오히려 해방감을 주기도 했어요. 예술가들은 표준화된 사회의 요구에서 벗어나 주변부에 존재할 수 있도록 일종의 ‘허가’를 받았고, 만약 진정한 예술가라면 비록 정상성이나 표준에서 벗어난 삶의 어려움과 도전이 있더라도 항상 예술가로 남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많은 예술가가 말씀하신 기대와 갈등을 겪고 있으며, 때로는 결국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작업하기로 결정하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외부의 목소리가 너무 많이 들린다면 힘들겠죠. 저 역시 저 자신을 위해 작품을 만들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작품이 일단 스튜디오를 떠나면 완전히 다른 세계에 존재하게 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점이 불만스러울 수 있어요. 그래도 저는 자율성을 누릴 수 있음에 매우 감사하며 작업합니다.
큰 주목을 받은 ‘Supermax’ 시리즈를 포함해 그간 작품을 통해 미국 사회의 시스템과 관련된 문제의식을 드러내셨습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이자 아티스트로서 작가님이 눈여겨보는 화두는 무엇인가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예술가들은 항상 그 시대가 겪는 시련과 고난에 반응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반응성은 저 역시 따르고자 하는 중요한 원칙이 되었죠. 제 작품이 추상적으로 보일 때조차 그 심연에는 주변의 갈등, 동시대 시민이 느끼는 불안,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편집증, 그리고 내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여러 요소가 반영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마지막 질문을 드려야겠네요. 먼 훗날 세상에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나요?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습니다. 한 사람의 유산(legacy)이란 아무리 노력해도 통제할 수 없는 거니까요. 제가 세상을 떠난 후, 결국 다른 사람들이 결정할 문제겠지요.

Installation View of ‘Stoves’ at Musée de la Chasse et de la Nature, Paris, France, 2015. Photo by Thomas Lannes.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글 이가진(미술 저널리스트)
사진 아티스트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