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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된 운율을 그리다

LIFESTYLE

김태호 작가의 단색화 작품은 멀리서 보면 무심한 단색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수천 개의 촘촘한 격자무늬 안에 숨은 다양한 색이 드러나며 리드미컬한 운율이 느껴진다. 그는 오랜 시간 색을 더하고, 쌓고, 다시 깎아내며 얻은 치밀한 수양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의 정서를 담아내는 그림으로 단색화만 한 것이 없다고 했다. 박서보, 정창섭, 하종현 등 거장으로 평가받는 1세대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때로는 수행의 정신이, 때로는 꼿꼿한 선비정신과 담담한 한국의 자연관이 스며 있다. 그들의 맥을 잇는 김태호 작가는 이미 서울예술고등학교 시절부터 박서보 선생을 사사하며 추상화 작업에 빠져들었다. 구상화 작업과 달리 추상화는 작가의 감정이나 느낌을 어떤 대상에 얽매이지 않고 그릴 수 있어 표현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점에 매료되었다. 홍익대학교 미술 대학에 갓 입학한 스무 살 시절부터 화단에 데뷔한 그는 일찍이 국전에 입선하는 등 상도 수차례 받았다.
그의 작품 세계는 크게 3단계에 걸쳐 변화해왔다. 그가 ‘스프레이 작업’이라 부르는 1970~1980년대의 초기 작품은 수평의 반복적인 선 사이로 분리 혹은 해체된 추상적 형상이 보이는 ‘형상’ 시리즈. 컴프레서로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을 뿌려 표현한 이 작업은 우연히 문 닫은 은행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셔터 문에 올록볼록한 형태로 투영된 형태에 착안해 추상화한 것이다. 당시 평론가들이 그 어떤 외국 작가와도 견줄 수 없는 독창적인 작업으로 평가한 작품이다. 두 번째 단계는 종이 작업. 1980년대 중반에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국 종이 조형전>의 출품 작가로 선정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기존의 스프레이 작업과 한지를 어떤 식으로 결합할지 연구하고 시도한 끝에 기존 스프레이 작업의 딱딱하고 기계적인 형상이 종이 작업에선 더 포근하면서 자연스러운 멋으로 변화했다. 그림 위로 종이를 붙이고 찢어 그 사이로 색과 형상이 드러나게 하는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세 번째 단계로 넘어 가게 한 계기는 종이 사이즈의 한계. 100호를 넘는 대작 사이즈를 구하기 힘든 종이에서 다시 캔버스로 돌아가 작업한 것이 지금의 ‘내재율’ 연작이다.
“고 이일 평론가가 절제된 리듬감이 느껴진다는 의미로 붙여준 제목이에요. 처음엔 캔버스에 한지를 붙여 작업하다 물감으로 바꾸었어요. 구체적 형상을 최대한 생략한 채 격자 선을 따라 물감을 스무 번 이상 올린 다음 끌로 깎아내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두껍게 쌓인 물감층을 깎아 덜어내니 그 밑으로 쌓여 있던 색이 드러나면서 의외의 질감이 만들어지고 색다른 느낌이 들더군요.” 100호짜리 한 점 완성하는 데 2~3개월이 소요될 만큼 엄청난 시간과 노동력을 요하는 이 연작 또한 10여 년에 걸쳐 수많은 변화가 있었다. 벌집 같은 촘촘한 공간도 다양한 시도 끝에 생겨났다. 물감 색을 많이 쌓을수록 공간의 밀도가 점점 높아지고, 모노톤에서 점차 색도 밝고 다양해지며 그만의 독특한 조형 언어로 자리 잡았다. “한국의 단색화는 색으로 논하기보다 절제된 행위의 반복에 의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박서보 선생은 ‘목탁 두드리듯이 반복한다’라고 표현하곤 했죠. 그렇게 1000점 이상 작업하다 보니 어느새 주목을 받게 되더라고요. 아무리 출중한 재능도 열심히 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해요. 그러다 보면 시기에 차이는 있지만 빛을 보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와요.” 그의 인생은 그런 믿음으로 흘러왔다. 김병기, 박서보, 하종현, 유영국 작가 등 훌륭한 스승에게 좋은 가르침과 영향을 받았고, 수양하는 자세로 시간과 노력의 힘을 들인 작품은 그의 인생에 아름다운 운율을 만들어냈다. 김태호 작가의 작품을 마주하게 되면, 멀리서 가까이 다가가며 천천히 그리고 깊숙이 감상해보길. 그 운율의 묘미가 주는 울림에 매료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GalleryDate
갤러리데이트는 2009년 개관 이래 이동엽, 남춘모, 최병소, 김택상, 장승택 등 한국 작가와 스테판 보르다리에, 티모테 탈라드 등 해외 작가를 통해 심도 있는 전시를 선보이는 한편 국제적으로 조명 받는 단색화 작가를 초대해 한국 단색화를 알리는데 앞장 서고 있다. 12월, 갤러리 데이트는 내재율 시리즈를 통해 컬렉터와 평단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김태호 작가를 초대한다. 전시는 12월 1일부터 30일까지 이어지며, 12월 9일 오후 4시에 김태호 작가와 함께하는 오프닝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주소 부산시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298번길 24 팔레드시즈 2층
문의 051-758-9845, 갤러리데이트 gallery-date.com

컨트리뷰팅 에디터 이정주
사진 선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