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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문학가들의 건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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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인으로 이 사회에서 사는 건 사실 결함투성이로 지내는 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쓴다. 아무리 문학이 위기라지만 어딘가에 독자는 있기 마련이니까. 지금 한국 문단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1980년대생 젊은 문학가 셋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생존법에 대해 들었다.

지금 한국 문학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무리는 단연 1980년대생 작가다. 이들은 독백으로 흐르는 문체, 단절된 소통, 무기력한 화자, 봉인된 희망으로 자신들이 얼마나 ‘쩔어’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헬조선’과 ‘수저론’, ‘병맛세대’ 등 그간 사회에서 켜켜이 쌓은 모멸감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한 젊은 세대의 허무감 또한 절실히 드러낸다. 이전 세대와는 분명 다른 언어로 문단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이들은 스스로 현실의 이방인이라고 여긴다. 한데 이런 얘기 끝엔 꼭 다음과 같은 반문이 나온다. 낙낙한 시대, 안락한 성장통을 겪으며 자란 이들이 왜 그리 불만이 많으냐고(그런데도 왜 반항 한번 시원하게 못하느냐고). 물론 이런 반문은 이들 작가를 속속들이 몰라서 하는 소리다.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에 자라, 2만 달러 시대에 진입한 지금의 20~30대 젊은 문학인은 사실 그 어느 세대보다 뛰어난 ‘스펙’을 자랑한다. 자기 계발은 물론 운동과 예술, 외국어 실력까지. 하지만 알고 보면 이들은 가슴속 깊이 ‘흑역사’를 품은 세대다. 오래전 경제지표나 실업률 같은 수치를 주문처럼 들으며 자란 세대다. TV 앞에 앉은 아버지가 급락하는 경제 수치에 불안해하며 뒷목 잡는 모습을 수차례 목격했다. 격동기를 직접 겪은 건 아니지만, 늘 그런 지표나 불안을 바라본 세대다. 선배 세대가 <드래곤볼>을 읽기 위해 일본어 공부를 했다면, 이들은 실직한 아버지를 통해 IMF를 체감했다. 그리고 사회 안팎에서 요구하는 필요 이상의 노력을 통해 자본주의 생산 시스템에 꼭 맞춘 인간으로 성장했다. 누구보다 소비자의 권리를 의식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들은 단군 이래 최대 취업난을 겪으며 경제활동인구로 편입되지 못한 ‘뜬’ 세대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착실하게 현실에 순응하려 발버둥친다. 기존 형식이나 언어에 맞서 딴죽을 걸고 비틀던 이전 세대의 작가 그리고 평론가와 이들은 분명 다르다. 상대를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 ‘미션 임파서블’급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지만, 죽지 않고 버티기 위해 현실에 순응한다. 적어도 적대감이나 대결 의식에서 초연해 보인다.
물론 이들도 선배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여느 때와 같이 마감하고, 공부하고, 일한다. 다만 이제는 문단 ‘안에’ 들어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쓰기’에 관한 생각이든 ‘자세’든 소설과 시를 쓰고, 비평을 써내면서 자신이 맞서야 할 뚜렷한 목표가 있음을 실감한다. 부모님께 효도해야 하고, 나이는 30대에 접어들었고, 곧 대학원을 졸업해 더는 적을 둘 곳도 없지만, 어떻게든 극복해내야 하고 갱신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자신의 책임임을 인지한다.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지금 한국 문학은 위기일까? 솔직히 이런 질문은 진부하다. 사실 근대 이후 한국 문학이 ‘어떻게든’ 위기가 아닌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어떤’ 문학은 위기를 박차고 나와 새 전기를 마련한다. 문화 예술적으로 격동기건, 안정기건 간에 항상 좋은 문학은 소수에 불과했고, 또 소수의 관심사였다. 그래서 이들은 그 소수가 되기 위해, 또 소수를 위해 쓴다.

 

시인 오은(1982년생)
한창 시집을 들추던 등단 전과 지금 이 순간, ‘문학’이란 단어가 다르게 와 닿는가?
​등단 전의 ‘문학’은 시간이 나면 다가가는 무엇이었다. 당시엔 내가 문학계에 몸담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의 ‘문학’은 시간을 내서 다가가는 무엇이다. 나는 하루에도 시시로 틈을 내어 책을 읽고 메모하고 글을 쓴다. 시간의 틈을 벌리고 기꺼이 시간을 내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 문학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무엇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 비해 문학에 대한 태도가 능동적으로 변한 것 같긴 하다.

일반인이 보기에 시는 여전히 먼 세상 얘기다. 시를 읽지 않는 일반인을 위해 시가 그들에게 다가갈 필요는 없을까?
시가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게 좋긴하지만 한편으론 무섭기도 하다. 내가 쓴 시에는 나 자신이 담기기 때문이다. 내 시가 많이 읽히면, 사람들에게 일기장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나는 늘 ‘그들’을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을, 이 땅의 각종 부조리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가 보통 밝은 곳보다 어두운 곳을 향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인터뷰의 칼럼명이 ‘New Face’다. (1980년대생 문학인이라는 이유로 등단 13년 차인) 당신이 이 칼럼에 실려도 될까?
칼럼에 어울리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1980년대생 문학인’이라는 특정 조건에 부합하지 않을지라도 나뿐 아니라 ‘자신만의’ 시를 쓰는 누구든 이 칼럼에 실려도 될 것 같다. 자신만의 시를 쓰는 사람은 어떤 지점에선 모두 새롭기(new) 때문이다. 다만 내가 이 귀한 자리에 이름을 올린 것은 얼굴(face) 때문이 아닐까? 농담이다.

근데 1980년대생 젊은 작가들은 정말 ‘내면의 결핍’을 지녔을까? 왜 매체에선 그들을 그렇게 풀이할까?
내 경우는 IMF 구제금융 시기에 고등학교에 다녔다. 수학여행 때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셈이다. 게다가 대학 다닐 때는 취업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들은 1학년 때부터 전공 대신 토익 공부 등 소위 스펙 쌓기에 열을 올렸다. 그럼에도 우리가 결국 모인 곳은 쥐구멍 앞이었다. 볕도 잘 들지 않았다. 내면의 결핍을 스스로 키운 게 아니라 외적 상황에서 주어진 공포 같은 것이다.

당신에게 ‘전업 시인’이란 어떤 의미인가?
불가능한 것,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것이다. 난 지금 회사에 다니고 있다. 시뿐 아니라 여러 매체에 글을 쓴다. 글을 써서 버는 돈으로는 도저히 ‘생활’이 안 된다. 그것은 ‘생계’와는 다른 것이다. 회사에 다닌 몇 년간 얻은 교훈이 있다. 밥벌이는 정말이지 숭고하다는 것이다. 나는 주중에는 일하고 주말엔 글을 쓴다. 주중엔 직장인 오은으로, 주말에는 시인 오은으로 컴퓨터 앞에 앉는다.

요즘 좋아하는 것 6가지를 순서대로 나열해달라.
손글씨로 써서 전하는 편지, 흔들리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손잡이를 잡고 버티는 안간힘, 1980년대 신스팝(SynthPop), 모든 시인의 첫 시집,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이는 순간, 아무 생각 없이 음악을 들으며 몸과 마음을 놀리는 매일 밤 잠들기 전 10분.

 

소설가 정지돈(1983년생)
얼마 전, 등단 3년 만에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았다. 상을 받기 전과 후 무엇이 달라졌나?
상을 받고 욕을 먹기 시작했다. 이름을 검색하면 리뷰가 꽤 뜨는데 반 이상이 악평이다. 악평이 올라올 때마다 괴로워하면 친구들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 엄살 좀 떨지 마. 검색 좀 그만해.

야간 경비 일을 했고, 기회가 되면 또 하고 싶다는 인터뷰 글을 읽었다. 야간 경비원으로 보낸 삶이 소설가로 사는 데 도움이 되었나?
야간 경비는 로망 중 하나였다. 막상 해보니까 기대와는 달랐다. 우울하고 쓸쓸하지만 밤의 도시를 지키는 낭만은 있을 줄 알았는데…. 주당 72시간 일하고 월 170만 원 정도 벌었다. 힘들진 않지만 지루한 일이다. 돈이 궁해지면 또 할 생각은 있다.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우울하다.

1980년대생 소설가는 흔히 ‘실험적’이고 감각의 저 끝까지 ‘예민하다’고 한다. 그러나 소설적 언어가 선명하지 않아, 자기들끼리 ‘기호 놀이’에 그친다는 얘기도 있다. 이에 수긍하나?
기본적으로 모든 예술은 기호 놀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지적 활동 대부분을 기호 놀이로 볼 수 있다. 이를테면 문학도 바둑이나 체스처럼 자기 룰이나 규칙 안에서 움직이는 게임이다. 우리는 게임이 정교하고 복잡할수록 지적 즐거움을 느끼고, 새롭고 뛰어난 플레이에 열광한다. 가끔 그 안에서 삶의 의미와 철학을 얻기도 한다.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기호 놀이는 일종의 새로운 룰을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문단 시스템은 독자와 상관없이 갈수록 대학에 종속되어가고 있다 한다. 문예창작과가 없으면 문학도 사라질 거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문예창작과가 없다고 문학이 사라질 일은 없다. 문학이 아카데미에 종속되는 부분에 대해선 많은 비판이 있고 나 역시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오래된 예술 장르의 일부가 아카데미에 포함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미술이나 음악이 그런 길을 걸었고 영화도 그렇게 되고 있다. 전문적이고 아카데믹한 영역과 대중적인 영역이 나뉘는 것이다. 현대미술과 클래식 음악은 이미 소수화되었다. 그렇다고 음대나 미대가 사라져야 한다는 사람은 없다. 순수문학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

‘쓰고 싶은 것’과 ‘써야 하는 것’의 차이가 있나?
쓰고 싶은 것과 써야 하는 것의 차이는 아직 없다. 계속해서 없도록 하는 게 목표지만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곧 1990년대생 소설가가 대거 들이닥칠 텐데, 그들은 당신 같은 1980년대생 작가와 어떻게 구분될까?
잘 모르겠다. 그냥 이런 생각이 든다. 1990년대 이후 사람들은 좀 덜 냉소적이었으면 좋겠다. 희망 사항이다.

요즘 좋아하는 것 6가지를 순서대로 나열해달라.
전기장판, 안마기,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글, 아인슈페너, 후장사실주의 잡지 < analrealism vol.1 >, New Order의 새 앨범 < Music Complete >.

 

문학평론가 김나영(1983년생)
다른 장르의 비평이 누리지 못하는 문학평론의 특권은 무엇일까?
다른 예술 장르에 대한 비평과 문학비평의 차이를 묻는 것인가? 그런 비평 대상의 문제나 문학과 다른 예술 장르의 차이에 관해서는 상당히 복잡하고 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냥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특권은 책이라는 것을 늘 가까이할 수 있다는 점이다.

평론가로서 지향하는 모델이 있다면?
故 김현 선생님이다. 시와 소설 작품에 대한 탁월한 안목뿐 아니라, 문학작품의 보편적 가치를 독자의 개별적인 삶으로 끌어들일 수 있게 해주는 평론을 쓰셨다. 김현 전집 중 어느 권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이 거기 있다. 그의 글은 폭과 깊이와 감동을 모두 간직하고 있는 평론이다. 이건 글만으로는 논할 수 없는 문제인 것 같다. 한국 문학에 대한 이해와 애정의 수준을 포함해 인격이 남다른 분이었을 것 같다.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문학’을 구휼의 대상이라 한다. 왜 늘 문학은 이 모양일까?
구휼이라니. 동의할 수 없다. 물론 책이 너무 안 팔린다고 한다. 그건 책의 상품으로서 가치가 낮다는 말에 불과하다. 그런 시장 논리로 책 자체의 가치를 깎아내릴 순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책과 문학은 많은 상황에서 동의어로 쓸 수 없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해서 문학이 그 사람들의 삶에서 완전히 배제된 것일까?

문학 강의를 하고 비평가로 살아온 시간 동안 좋은 문장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변했나?
오랫동안 간단명료하게 쓴 문장이 좋은 문장이라고 믿어왔다. 읽는 순간 쓴 사람의 생각과 느낌 등이 전달되는 문장. 그런데 요즘 생각이 좀 복잡해졌다. 여전히 정돈되지 않은 생각이긴 하지만, 좋은 글에 포함된 문장이 좋은 문장이 아닐까 싶다. 따로 떼어놓고 봐도 곱씹어볼 여지가 있는 문장이라면 더 좋겠지만, 그보다는 한 편의 글이나 하나의 문단 단위의 복잡한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적재적소에 적힌 듯한 인상을 주는 문장을 요즘은 좀 더 옹호한다.

이달에 읽은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이언 매큐언의 장편소설 <속죄>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미 예전에 깨달았던 바지만,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에 추함은 끝도 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할 수 있었다.”

문학평론가 김나영의 ‘생존법’은 무엇인가?
최대한 많이 읽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제대로 실천하고 있지는 못하다. 한편으로는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마음의 여유를 잃으면 판단력이 떨어지기 십상이다. 문학평론가가 아닐 때의 나는 주로 잘 먹고 잘 잔다.

요즘 좋아하는 것 6가지를 순서대로 나열해달라.
수요일 밤, 수면양말, BEAT 라디오, 바이오 오일, 집 앞 초밥, 프렌즈팝. (항상 좋아하는 것은 제외한 목록임).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김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