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아식 건축학 개론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 공간을 쓰는 사람이다. 거주자가 오랫동안 서서히 공간에 가치를 부여하고 자신만의 의미를 발견할 때 건물은 스스로 성장한다. 바로 디아건축의 정현아 소장이 지난 10년간 가장 중요하게 여겨온 건축의 가치다.
정현아 소장은 탐정 같은 건축가다. 그녀는 건축주의 삶을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건 물론, 건축주의 의견이 건축에 진실로 긴요한지 여러 번 체크하고 시간이 흐른 뒤 건축주의 삶을 헤아리는 일까지 꼼꼼히 챙긴다. 그녀의 이런 일 처리 방식은 국내 건축계에 이미 소문이 나 있다. 서울시는 2008년 그녀가 처음으로 독립해 만든 건축물에 ‘서울시 건축상’을 수여했고, 2012년엔 그녀에게 공공 건축물 정비 사업을 전담하는 ‘공공 건축가’라는 타이틀도 줬다. ‘쉽고 경제적인 집’을 추구하는 그녀의 건축은 화려하진 않지만 은근한 멋이 있다.
사실 그녀는 어떤 필연적 이유 때문에 건축가가 된 것이 아니다. 어느 유명 건축가의 인터뷰처럼 일곱 살 때부터 줄곧 건축가만 꿈꾸었다거나, 당대의 위대한 건축물을 보고 어느 날 갑자기 어떤 ‘계시’를 받은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녀가 건축가가 된 건 오히려 ‘자기 계발’에 가깝다. “건축설계는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의 생활 방식을 반영해야 하는 일이에요. 사소한 일부터 일일이 컨트롤하면서 큰 그림도 봐야 하죠. 사춘기에 우연히 유명한 건축 히어로 두 분(김수근, 김중업)의 작고 소식을 접하면서 건축가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게 됐고, 이후 그 직업에 대해 깊이 생각했어요.”
그녀는 홍익대학교 건축과에 진학하고, 수년 뒤 별 무리 없이 뉴욕 컬럼비아 대학원 건축과로 유학을 떠났다. 건축계의 ‘20세기 별’이라는 로버트 스턴 사무실에서 근무하며 좀 더 문화적 관점에서 건축을 바라보는 ‘트인 시각’도 얻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크고 선진화된 뉴욕의 건축 시스템도 그녀의 건축적 욕망을 채워주진 못했다. 건축가로서 화려한 명함이었지만, 늘 남이 시키는 대로 살아야 하는 삶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5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서울에서 작은 건축사무소 몇 곳을 전전하며 호시탐탐 독립할 기회만 꿈꿨다. 그러다 마침내 2004년 그녀는 서른네 살의 젊은 나이에 아틀리에 규모의 작은 건축사무소를 차렸다. 하지만 나이가 어린 데다 경험도 적은 그녀에게 사람들은 좀처럼 건축 일을 맡기지 않았다. 사무실 열고 3년 동안은 거의 인테리어 일만 했다. 그러던 중 그녀의 꼼꼼한 일 처리 솜씨를 눈여겨본 몇몇 사람이 그녀에게 건축 일을 맡겼다. 그렇게 날이 갈수록 건축 수주가 조금씩 늘었고, 그녀도 본연의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2008년 그녀는 부엌과 식당을 1층에, 방과 거실을 2층과 2.5층에 둔, 명상과 걷기를 좋아하는 건축주가 주문한 ‘젠 스타일’을 반영한 ‘평창동 주택’을 선보여 그해 서울시 건축상을 받았다. 그리고 같은 해에 길쭉한 구리 패널을 이어 붙인 외벽과 맞벌이 부부인 건축주의 주거 기능을 고려해 완성한 ‘신사동 근린생활주택’으로 건축계 안팎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대전한의원주택(2009년), 용인주택(2010년), 대전주택(2012년), 횡성주택(2012년), 와촌리 창고주택(2012년) 등의 건축 등을 선보이며 그녀는 국내 건축계에서 점점 확고한 입지를 다져나갔다. “저는 건축가가 되기 위해 꼭 일정의 시간이 필요하다곤 생각하지 않아요. 건축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어떤 태도나 방식을 지닌 사람이잖아요. 오랜 경험이 도움은 되지만 그것이 절대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1 정현아 소장이 독립 후 처음으로 작업한 평창동주택(2008)
2 공간 체계와 재료 사용이 돋보이는 용인주택(2010)
3 간결하고 개성적인 건축으로 평가받는 대전한의원주택(2009)
그녀는 현재 국내 건축계에서 누구보다 건축주의 의중을 잘 파악하는 젊은 건축가로 평가받는다. 그녀의 건축은 건축주를 꼭 닮았다. 해당 건축물에서 생활하는 건축주와 주변의 관계를 살피는 것이 그녀가 하는 건축 작업의 중요한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거창한 디자인이나 개념을 내세워 온갖 멋을 부리기보다 건축주의 이야기를 잘 듣고 이해하는 그녀의 건축 스타일을 두고 누군가 ‘의사’ 같다고 했을 때, 물음표보다는 느낌표가 먼저 찍혔다. “주택 건축이란 제한된 공간 안에 개인 삶의 현재 모습을 담아내는 일이에요. 당연히 세월이 흘러 건축주, 그들의 가족이 어떻게 변화해갈지도 고려해야 하죠. 주거의 유형은 물론이고 방의 구성, 가족이 어디서 어떻게 만나는지, 세월이 흘러 어떻게 맞물리게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해요. 물론 고민 끝에 그린 도면을 토대로 공간을 설명하는데 건축주가 다른 것에만 관심을 보일 땐 조금 공허해지기도 하지만요.(웃음)”
그녀는 주로 주택 건축을 해왔지만, 도시 건축에도 관심이 많다. 홍대 앞에서 30여 년을 살며 한 지역이 고유의 색깔을 잃고 변화해온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본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그래서 그녀는 현재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을 원주민이 애초 디자인한 원형 그대로 살리는 방식으로 재개발하는 프로젝트를 맡고 있고, 마음 맞는 몇몇 건축가와 함께 한 도시의 근현대 건축양식을 둘러보는 건축 기행에도 참여하고 있다. 특히 시스템 창호 회사 이건창호가 지원해 2010년부터 매해 두 차례씩 떠나는 건축 기행은 한예종의 김봉렬 총장, 경북대 조재모 교수, 이화여대 김광수 교수 등의 이론가와 그녀 같은 건축 실무자가 함께하는 뜻깊은 기획으로, 창의적 아이디어를 얻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녀는 이런 인연으로 올해 경향하우징페어에서 이건창호의 부스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그간 건축 하면 자신의 집이나 방보다 어떤 특별한 건물을 떠올렸지만, 점차 일상 공간으로 관심이 옮아가고 있어요. 옆집, 거리, 동네, 우리 마을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죠.”
그녀는 어떤 건축이 좋은 건축이냐는 질문에 행복한 건축이 좋은 건축이라고 했다. 학생 때는 멋지면 최고인 줄 알았지만 실무를 하면서 거창한 것보다 제대로 잘 작동하는지가 중요해진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사용할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건축이 가장 좋은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한 공간 안에서 행복하다는 건 ‘근사해서 좋다’는 의미뿐 아니라 손때가 묻어 익숙해지듯 그 속에 삶이 자리 잡으면서 편안한 애정을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건축이 그리 거창한 건 아닌 것 같아요. 결국 일상의 환경에 관심을 갖는 것이거든요. 앞으론 사회적으로나 건축학적으로 새로운 건축물을 지어보고 싶어요. 물론 그 또한 사회 변화에 잘 적응하고 기존 것에 잘 묻어나는 것이어야겠지만요.” 앞으로도 그녀가 자신의 색을 잃지 않고 작업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김하영(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