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살츠, 엔터테이너형 비평가를 제시하다
컬럼비아 대학교와 예일 대학교의 방문 학자로 활동하고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미술평론가가 카메라를 들이대면 익살스러운 포즈를 마다하지 않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같이 찍은 인증샷을 페이스북에 자랑하고, 각종 SNS를 통해 사생활을 서슴없이 노출한다면? 이 시대 최고 인기를 자랑하는 미술비평가 제리 살츠 이야기다.
2009년 구겐하임 뮤지엄에서 열린 제1회 구겐하임 아트어워드에 참석한 제리 살츠와 이본 포스 비야레알
페이스북 친구 5000명, 팔로워 4만 명을 거느린 제리 살츠(Jerry Saltz, 1951년~). 그는 정식 학위도 없고, 심지어 비평가가 되기 전 직업은 장거리 트럭 운전사였다. 예술가나 사업가 중에 종종 무학(無學)의 스타가 있긴 하지만, 글을 쓰는 엘리트 무리에 과연 이런 경우가 있었던가? 사연은 이러하다. 시카고의 변두리 출신으로 미술학교를 몇 년 다녔지만 중도에 그만두고 몇몇 작가와 함께 대안 공간 설립을 추진했다. 친구들을 따라 세계 미술계의 중심으로 떠오른 뉴욕으로 이주해 명성을 얻고 부자가 될 것을 꿈꿨다. 하지만 시카고에서 온 촌뜨기가 뉴욕의 미술계에 진출하기란 쉽지 않았다. 2년간 안달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택한 직업이 바로 트럭 운전사. 하지만 16시간씩 홀로 장거리 운전을 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자신이 얼마나 미술을 사랑하고 미술계에서 일하고 싶은지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든 다시 미술계로 돌아가기를 꿈꿨다. 몇 년 동안 미술계를 떠나 있었기에 다시 작품 활동을 하거나 기획을 하는 건 어려웠지만 글을 쓰는 것은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한 번도 미술에 대해 글을 써본 적이 없기에 우선은 <아트포럼>을 사서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잡지의 비평문처럼 쿨하고 스마트한 글을 쓸 생각이었다. 그러나 글이 너무 어려워 무슨 말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간신히 이해하고 나면 과연 필자가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 맞나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미술 평론을 써야겠다고 결심했고, 쉽고 재미있고 솔직하고 유머러스한 그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나이 마흔의 신인 비평가는 그렇게 탄생했다.
마침 시대가 변하고 있었던 것도 큰 행운이었다. 1970년대의 기하추상 작품을 둘러싼 현학적 논의가 끝나가고, 1980년대 대중문화의 붐과 함께 구상 회화가 다시 떠올랐다. 키스 해링 같은 작가가 지하철역 벽에 그림을 그리고, 바스키아 같은 스타 작가가 등장하면서 대중의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미술 전문 월간지의 진중한 논문보다는 주간지를 통해 생생한 현장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다. 살츠는 빠른 속도로 재치 있는 글을 쏟아냈으며 그 어떤 질문에도 즉각 현명한 대답을 해줄 수 있을 정도로 박식했다. 그 덕분에 그는 1998년에 시작한 <빌리지 보이스(Village Voice)>의 간판 필자로 자리 잡았으며 2006년부터 <뉴욕 매거진>의 고정 비평가가 되었다. 2010년에는 재능 있는 젊은 작가를 발굴하는 TV 쇼 <예술 작품, 다음 세대의 위대한 예술가(Work of Art: The Next Great Artist)>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하기도 했다(현재 한국에서 방영 중인 <아트 스타 코리아>의 모델이 된 프로그램이다). 얼굴이 알려진 탓에 공항이나 길거리에서 갑자기 그를 붙잡고 미술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도 많지만, 살츠는 귀찮아하기는커녕 “혹시 미술관에서 나를 만나거든 아무 말이나 붙여라”라며 “언젠가 함께 미술에 대해 토론하자”고 덧붙이곤 했다.
2010년 재능있는 젊은 작가를 발굴하는 TV쇼 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제리 살츠. 제리 살츠 왼쪽에 퍼플 드레스를 입고 선 여성은 1960년대 유명한 모델이자 앤디워홀의 뮤즈였던 티나 차우(Tina Chow)의 딸 차이나 차우(China Chow)다.
인터넷 시대의 미술 평론
하지만 빈 수레가 요란한 것은 아닐까? 일각에서는 그가 미술의 수준을 끌어내렸다고 비판한다. 살츠는 이에 대해 미디어의 변화에 따라 작품이 변하듯 비평도 새 시대에 맞게 변하는 것이라고 응수한다. 소수가 지식을 독점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위키피디아(인터넷 백과사전으로 이용자가 정보를 업데이트하며 공동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특징) 시대’라는 것이다. 한 사람의 스승이 무지한 대중 위에서 한 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배워가는 시대다. 그는 미술에 대해 들을 준비가 된 사람들과 함께 언제 어디서든 이야기를 나누며, 일하면서 배우는 행복한 직업을 가졌다고 말한다. ‘전문 블로거’, ‘집단 지성’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지만 살츠는 미리 인터넷 시대를 예견하기라도 한 듯 대중 속으로 파고든 비평가의 전형이 되었다.
영상 시대에 걸맞게 <뉴욕 매거진>에서는 제리 살츠와 함께 뉴욕의 전시장을 둘러보는 일종의 영상 크리틱을 발 빠르게 제작했다. 3분 내외의 짧은 시간, 다양한 채널을 돌려 보듯 여러 전시 장소를 편집한 뮤직비디오 스타일은 미술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들도 흥미롭게 볼만한 요소를 갖췄다. 살츠는 영상에서 친근하고 자연스럽게 “Let’s go”를 외치며 미술관으로 시청자를 안내한다. ‘뉴욕에서 가장 좋아하는 그림’ 편에서는 뉴욕의 대표 미술관에서 각각 몇 점씩 그가 좋아하는 작품을 소개했다. 현대미술에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필립 거스턴, 뉴욕 현대미술관의 잭슨 폴록 작품 등이 포함되었다. ‘뱅크시’ 편은 거리에서 즉석으로 제작한 듯 보인다. 뱅크시는 그가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한 작가인데, 아마 다른 미술관으로 이동하는 거리에서 우연히 뱅크시의 작품을 발견한 것 같다. 작품 주변에 시민이 몰려 있는 가운데 살츠가 뛰어들어 작품을 설명하고 즉석 퀴즈쇼를 벌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처음에는 카메라와 함께 등장한 살츠를 사진 찍으며 구경꾼처럼 뒤로 물러나 있던 사람들이 어느덧 그와 친구가 된 모습으로 현대미술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며 적극적인 참여자로 변해간다.
그에게는 페이스북도 새로운 예술 비평의 통로다. 글을 포함해 사진과 영상으로 즉석에서 많은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매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예술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예술은 경험에 대한 것이다. 예술이란 생각하는 방편이고 자기 자신을 알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의견을 쓰고 타인의 의견에 반응하는 페이스북은 미술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좋은 방편이 된다. 과거라면 빈방에서 조용히 명상하며 스스로에게 던졌을 질문을, 이제는 빈방에 홀로 앉아 컴퓨터 너머의 수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는 시대가 됐다. 그는 수시로 인터넷 유저들과 댓글 토론을 벌이며 종종 구글 검색을 통해 누가 자기 욕을 하지 않나 조사한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1 올해 초 링컨 센터에서 열린 미국 드라마 시즌 3 오프닝에 참석한 제리 살츠
2 ‘The Next Great Artist’의 심사위원이었던 제리 살츠와 배우 앤디 코엔
예술계에서 성공하는 법
이처럼 살츠의 비평은 굳이 도서관이나 강의실에 가지 않아도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고, 학파나 이론에 기대어 작품을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보다 친근하다. 하지만 아무 내용 없이 가볍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대중의 환심을 사는 이야기꾼과 달리 날카로운 비판도 마다하지 않는다. 제프 쿤스 같은 예술가에게는 예술가인 척 가장하고 있다는 비판을 서슴지 않고(하지만 꼭 알아야 할 미술계 인물 100인 리스트에서 제프 쿤스를 예술가 중 첫 번째로 꼽기도 했다), 데이미언 허스트는 남이 그린 땡땡이 그림으로 여러 갤러리를 꽉꽉 채우고도 남을 거라고 비아냥댄다. 반면 마지막으로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린 게 언제냐는 질문에 매슈 바니의 ‘크리매스터’ 작품을 꼽았고, 찰스 부커필드는 모더니즘 중심의 미술사에서 배제되었다고 안타까워하며 피터 도이그 같은 잘나가는 현대미술가와 짝지어 재조명하기도 했다.
특히 “예술계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컬렉션할 수 없는 작품을 하라(그래야 미술관이 작품을 컬렉션할 것이다)”, “당신이 설사 모든 것의 중심에 있다고 해도 마치 비주류인 것처럼 굴어라”라고 말하며 미술계의 속성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고 있다. 또한 1970년대엔 모두가 외면했지만 지금은 부와 명성을 거머쥔 앨릭스 카츠를 예로 들며, 고개 숙이고 묵묵히 제 길을 갈 것을 권유한다. 한편 살츠는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같은 정반대의 모델을 예로 들기도 한다. 오브리스트는 1991년 전시 기획을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무려 300회의 전시를 기획했다. 1년에 350일을 비행기에 오르고, 하루에 4시간밖에 자지 않으며 짬짬이 15분간의 낮잠으로 수면을 보충하면서 전 세계의 미술계를 돌아다니는 기이한 행적이다. 심지어 그의 전시나 책 제목은 마치 스포츠 정신을 강조하기라도 하듯 ‘Do It’ 혹은 DontStopDontStopDontStopDontStop’일 정도다. 오브리스트의 장점은 엄청나게 복잡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적을 만들지 않고 모두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살츠는 오브리스트를 ‘다보스 맨(Davos Man)’이라고 소개하며 네트워킹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미술계의 ‘군주론’이라 할 만큼 냉정한 현실과 성공의 비결을 전달하는 비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미술 시장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다. “19세기 후반부터 예술과 돈이 섹스를 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며, 특히 “경매는 미술을 ‘질(가치)’에서 ‘양(숫자)’으로 떨어뜨린 장본인”이라고 비판한다. 그가 생각하는 적합한 미술 작품 가격은 155달러다. 150달러에 5달러를 붙여 조금 비싸 보이게 했다는 농담도 빠뜨리지 않는다. 심지어 페이스북에 리히터, 폰타나, 허스트 등의 작품을 똑같이 만들어 가져오면 사주겠다는 공고를 내기도 했다. 그러자 한 인터넷 유저가 ‘제리 살츠를 위한 리히터 그림법’이라는 이름으로 리히터 스타일로 그림 그리는 기법을 동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예술을 그렇게 사랑한다는 그는 과연 작품을 살까? 게다가 그의 아내 로베르타 스미스도 <뉴욕타임스>에 글을 기고하는 미술평론가가 아닌가. 이들은 한 인터뷰를 통해 종종 작품을 사지만 모두 20달러 정도의 작품이라고 밝힌 바 있다.
1 추상화에서 구상화로 급진적인 움직임을 보인 필립 거스턴은 제리 살츠가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2 제리 살츠는 본인의 주간 미술 비평을 모아 <크게 보기(Seeing Out Louder>라는 평론집을 내기도 했다.
세계의 탐미자
파격적 행보에도 불구하고 미술계의 주요 인사로 널리 사랑받는 건 그가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진솔한 비평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대중의 인기를 얻었지만 그것을 무기 삼아 권력을 휘두르지 않는다. 다른 평론가라면 숨기거나 잠깐의 아르바이트였다고 둘러댔을지 모를 트럭 운전사 경력을 계속 강조하며 대중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려고 노력한다. 사실 학위만 없을 뿐이지 미술을 좋아하는 어머니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수시로 미술관을 방문하는 등 일찍이 예술은 그의 삶의 일부였다. 그는 아내와 함께 평일이고 주말이고 글을 쓸 때 외에는 계속 전시장에 있을 정도로 부지런하다. 이런 열성 덕분인지 퓰리처상의 저널리즘/비평 부문 후보로 세 번이나 지명되었고, 2007년에는 대학미술연합에서 수여하는 미술평론상을 수상했다. 매년 미술 전문지에서 조사하는 영향력 있는 미술계 인물 100위에 포함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살츠는 “오늘날의 미술 비평은 아무런 힘이 없다”고 말한다. 어떤 전시나 작가가 조금 더 주목받게 할 수는 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고, 19세기 말 보들레르가 인상주의 미술을 옹호하며 키워낸 것처럼 혹은 그린버그가 잭슨 폴록의 작품을 비롯한 미국의 추상 회화를 현대미술사의 중심에 심어놓은 것 같은 일은 더 이상 일어나기 어렵다고 말이다. 특히 그의 글은 매주 업데이트되는 주간 칼럼인 만큼 두고두고 읽힐 것도 아니고 가볍게 잊힐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살츠의 매일은 즐겁다.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계의 탐미자로서 이미 자신의 삶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98년부터 2003년까지 매주 업데이트된 그의 칼럼은 <크게 보기(Seeing Out Loud)>라는 책으로 묶여 나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의 글은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누구나 읽고 볼 수 있는 자료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글 김영애(이안아트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