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하는 여자
지난 6개월 동안 임시 개방한 서울식물원이 정식 개원을 앞두고 있다. 그곳에는 평생을 식물과 함께한 이원영 원장이 있다.

오는 5월 개관하는 서울식물원은 국내 최초 도시형 식물원이다. 인도보리수, 바오바브나무 등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열대와 지중해 식물을 식재한 온실과 공원 형태인 열린숲, 호수원, 습지원으로 구성해 이미 임시 개방 때부터 많은 시민으로 발 디딜 틈 없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지난 1월, 서울식물원 원장에 취임한 이원영은 이곳을 이끄는 인물이다. 공무원인 데다 서울식물원 원장인 만큼 말끔한 정장을 입고 사무실에 앉아 집무를 보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그녀는 작업복 차림으로 온실에 등장했다.
“조경직 공무원으로 35년간 일했어요. 발로 뛰며 식물을 살피고 시민과 소통해야 하는 조경직은 사무직보다는 현장직에 가깝죠. 보통 공무원이라 하면 칼같이 8시간 근무 아니냐고 물어보시는데, 원장이 되고 나서는 주말도 없어요. 서울식물원은 주말에 시민이 더 많이 찾아오시니까요.(웃음) 그래도 좋아해주시는 걸 보면 힘든 게 싹 가셔요.”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온실을 둘러보며 세세한 부분까지 확인하는 이원영 원장에게 작업복은 몸에 꼭 맞는 옷이다.
그런데 그녀의 말 중 조경직이라는 단어가 생소하다. 한국의 공무원 중 조경직이란 게 있었나? 녹지직 안에 세분화된 직무가 조경직이라지만, 여전히 낯설다. 이는 학창 시절 이원영 원장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생 때 건축에 흥미를 가졌는데, 당시에는 건축은 남자들의 분야라는 인식이 강했던 터라 망설여졌어요. 그때 담임선생님이 건축과 비슷하다며 조경을 추천해주셨죠.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아버지가 집 마당에 화초를 많이 키우셨는데, 그 영향도 있지 않나 싶어요.” 대학에서 조경학을 전공한 그녀는 자연스레 같은 분야의 직업을 택했고, 서울식물원 초대 원장 자리까지 올랐다. 그 원동력은 역시 ‘살아 있는 식물’을 소재로 하는 조경의 매력. 즉 자생하는 식물이 5년 후,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상상하며 그 변화를 지켜보는 일 말이다. 처음 결과물이 그대로 유지되는 건축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집에서 20년째 행운목을 키우고 있어요. 오랜 세월 지켜보니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에 기특함을 느껴요. 그거 하나만큼은 저랑 생을 같이하려나 싶은 마음도 듭니다.(웃음) 식물원의 식물도 마찬가지예요.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죠.”

세계 12개국의 식물을 만날 수 있는 서울식물원 온실.
식물에 대한 시민의 높아진 관심도 원동력 중 하나다. 요즘 화두인 반려식물을 보며 식물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이 커졌음을 느낀다고. 특히 SNS에 끊임없이 올라오는 서울식물원 사진을 확인할 땐 이를 체감한다. 문득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것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 궁금했다. 이원영 원장은 질문을 듣자마자 손사래를 친다. “오히려 다른 분들이 더 걱정하세요. 식물원 기프트 숍에서 식물을 구매하고 싶다는 시민의 요청이 넘칠 만큼, 실제 현장에서 보면 그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졌어요.” 이런 큰 관심에 부응하고자 서울식물원은 앞으로 식물을 제대로 향유하는 문화를 구축하는 일에 힘을 쏟고자 한다. 공원과 녹지를 양적으로 늘리는 것에 초점을 둔 과거 조경 사업과는 다른 행보. 서울식물원은 어린아이는 물론 전 세대를 아우르는 교육을 통해 식물과 자연에 대한 학습과 환경적 깨달음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이곳을 찾은 아이들이 성장해 다시 자녀를 데리고 방문하는, 대물림될 식물원이 되는 것이 서울식물원과 이원영 원장의 바람이다. 그녀가 식물원에 온 어린아이들을 보며 “예뻐라! 너희들이 꽃이다”라며 연신 환한 미소를 감추지 못한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듯한 이원영 원장에게 힘든 순간이 없었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한자리를 꾸준히 지키며 원장이라는 자리에 오르기까지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많이 고민하고 갈등했죠. 엄마로서, 여자로서 일을 병행하기도 쉽지 않았고요. 그래도 현장에서 내가 했던 결과물을 살피며 시민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참 재미있어요. 여러분이 도와주신 덕분에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어요.” 서울식물원 개원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다고. 2007년 워터프런트 국제 현상 공모를 통해 설계와 시공을 시작한 서울식물원은 정식 개원까지 약 12년의 준비 기간을 거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그 과정에서 예산 축소와 건축설계의 어려움 등 시행착오도 많았다. 이 때문에 당초 계획보다 개원이 1년 정도 늦어졌고, 일부 공간은 여전히 공사 중이지만 더 이상 온실 개방을 미룰 수 없던 이유는 ‘시민’의 열렬한 기다림이었다. 그 마음이 전해졌는지, 서울식물원은 임시 개방 기간에만 200만 명에 가까운 시민이 방문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정식 개원을 앞두고 더 좋은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는 이원영 원장. 앞으로 남은 5년의 임기가 끝난 뒤엔 어떤 일상을 보낼지 물으니 인터뷰 내내 식물을 언급하던 그녀답게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퇴직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내가 할 줄 아는 거, 그나마 남보다 좀 더 많이 아는 걸 하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역시 식물원을 떠날 순 없을 것 같아요.” 공직을 떠난 뒤 서울식물원 자원봉사 교육을 이수하고 자원봉사자로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그녀에게 식물과 조경은 삶 그 자체다.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서울식물원 원장으로서 오늘도 이원영 원장은 식물원을 돌며 식물과 관람객을 챙긴다.
에디터 전혜라(jeonhyera@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