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즐길 줄 아는 이들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고 싶은 것, 말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고 이런 메시지가 타당한지 고민한다.” 마치 흑과 백처럼 명확하다. 패션 앞에서 이처럼 당당한 두 남자. 빅터 호스팅과 롤프 스뇌렌, 빅터 앤 롤프가 2014년 S/S & 리조트 컬렉션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11월 14일 청담동 ‘분더샵 at 마이분’에서 빅터 앤 롤프의 S/S & 리조트 컬렉션의 프레젠테이션이 열렸다. 옷과 안경, 향수는 물론 상식을 깨는 캣워크 무대를 선보이며 늘 주목받는 이들을 본 첫 느낌은 의외였다. 데님 팬츠에 블랙 터틀넥 톱과 스웨트 셔츠, 모직 코트와 파카 점퍼 차림. 인터넷이나 캣워크 피날레 무대에서 만나던, 테일러링 슈트에 베르가모트 향이 진동해 숨 막힐 것 같은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되레 블랙 프레임 안경이 학구적으로 보인다. 지금껏 이들이 선보인 퍼포먼스에 주목한다면 파격, 도발 아니면 독특한 사고의 소유자를 연상할 테지만 새로운 컬렉션에 대해 설명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침착했고 움직임 역시 조용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온 듀오 디자이너와 대화를 시작했다.
2014년 빅터 앤 롤프의 S/S 오트 쿠튀르 컬렉션. 검은 옷을 입은 모델들이 무대 위에 띄엄띄엄 바위섬처럼 멈춰 서 있고 디자이너들이 옷매무새를 정리하는 퍼포먼스로 꾸몄다.
매우 독특하게 꾸미고 다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컬렉션처럼요. 그런데 예상 밖이네요. 일상은 여느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지 않아요. 하지만 패션이나 쇼, 일은 저희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잘 전달해야 하니 집중하고 독특한 요소를 사용하는 거죠.
하지만 설치미술을 떠올리게 하는 캣워크나 아방가르드한 의상을 보면 비범함이 느껴져요. 영감의 원천에 대해 많이들 물어보세요. 생활과 그 속의 패션이 저희 아이디어의 소스에요. 예를 들면 패션쇼 같은 큰일을 앞두고 무리한 스케줄이나 가식에 숨 막힐 때, ‘No’라는 글자를 새긴 드레스가 탄생하는 식이죠. 우리에게 패션은 생활 속 감정을 담는 방식, 일종의 치료(theraphy)이고 힐링(healing)이니까요. 창의적 사고는 이렇게 해야지 생각해서 발현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편안하게 쉬고 즐기는 순간에 불현듯 떠오르죠. 압박 없이 온전히 휴식을 취하며 놀 때 말이에요.
놀 때요? 갑자기 40대 중반의 세계적 디자이너는 무엇을 하며 노는지 궁금해지는데요. 텔레비전도 보고, 자전거도 타고, 누워도 있고, 운동도 하죠. 파티에는 잘 안 가요.
두 분이 함께 일하잖아요.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서 서로 감정이나 생각이 늘 같을 순 없을 것 같아요. 싸우기도 하나요? 전혀요. 우리는 디자인과 비즈니스 등 많은 일을 함께 하지만 각자의 시간과 의견을 존중해요. 그렇기 때문에 서로 충돌하는 일이 없죠. 이렇게 완벽한 친구를 만난 건 정말 신의 축복(Blessing of God)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해서인지 서로 닮았어요. 쇼의 피날레 무대에서처럼 옷을 맞춰 입을 땐 특히 그래요. 특별한 파티나 모임이 있을 때는 함께 맞춰서 드레스업하지만 그렇지 않은 날엔 오늘처럼 각자 내추럴한 캐주얼 룩을 즐겨 입어요.
혹시 캐주얼한 차림에도 당신들만의 스타일링 팁이 있나요? 간혹 패션 초보자들은 캐주얼하게 입는 것도 어렵다고 하거든요. 실루엣에 집중하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오늘 우리가 입은 것처럼 스트레이트 피트 팬츠에 티셔츠나 니트를 매치해도 좋고, 빅터처럼 프린트 패턴 팬츠로 변화를 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죠.
패션계에서는 드물게 네덜란드 출신이라는 점이 흥미로워요. 가구나 건축 분야에는 네덜란드 출신의 유명 작가가 많아요. 저희는 프랑스가 패션의 메카이니 대학을 졸업한 후 파리로 떠났죠. 지금은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며 일하고 쇼만 파리에서 하고 있어요.
한국 방문은 처음이라고 들었어요. 인상이 어떤가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정말 놀라워요. 저희가 사는 곳과는 사뭇 다른 도시 풍경이 흥미롭습니다. 특히 저희가 팝업 이벤트를 진행하는 분더숍, 정말 세련되고 멋져요. 홍콩, 중국, 일본을 모두 돌아야 하는 일정이라 하루밖에 머물지 못해서 매우 아쉽습니다.
2014년 빅터 앤 롤프의 S/S 컬렉션
단 하루의 방한 목적이 2014년 S/S 리조트 컬렉션 프레젠테이션이잖아요. 컬렉션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어요? 스쿨 룩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스터드 장식, 도트 패턴, 에이시머트리 실루엣 등 저희만의 실험적 코드를 담았죠. 전반적인 컬렉션의 실루엣은 고급스러운 슈트와 구조적이고 유연한 흐름이 돋보이는 이브닝웨어의 느낌이 조화를 이뤄 풍성한 느낌일 거예요.
개인적으로 빅터 앤 롤프의 화이트 셔츠를 좋아하는데 이번 컬렉션에서도 이를 변형한 제품이 눈길을 끄네요. 화이트 셔츠, 저희의 대표 아이템이자 인기 아이템이죠. 이번에는 아래로 갈수록 퍼지는 트라페즈 실루엣, 아일릿 디테일, 불규칙한 헴라인 등의 요소를 적용해 변형을 줬는데, 저희도 마음에 들어요.(웃음)
이번 컬렉션에서 특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봄베트(Bombette) 백이요. 기하학적 형태가 독특한 저희의 시그너처 백 컬렉션인데 이번 분더샵 at 마이분 팝업 이벤트를 위해 특별히 이곳에서만 판매하는 디자인으로 변형을 준 봄베트 타이니 백을 출시했거든요. 일렉트릭 블루 컬러와 스터드 디테일이 조화를 이뤘죠.
그러고 보니 빅터 앤 롤프는 옷에서 향수, 아이웨어까지 모든 비즈니스가 성공적이었네요. 혹시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것이 있나요? 1993년 프랑스 남부 예르(Hyeres)에서 개최한 국제 아트 & 패션 페스티벌에서 데뷔한 후 올해 브랜드 런칭 20주년을 맞았어요. 그래서 지난봄 파리에서 2013년 F/W 시즌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당분간은 여기에 집중할 계획이에요. 저희는 브랜드 초기 프레타 포르테보다 먼저 오트 쿠튀르를 시작했기 때문에 이는 큰 의미가 있거든요. 블랙 의상을 입은 모델이 런웨이를 따라 워킹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에 설치한 의자에 가서 앉아 움직임에 변화를 주는 방식으로 꾸몄는데 색다른 시도였죠.
색다른 시도라…. 이렇듯 남과 다른 파격을 선보이며 완성하고 싶은 빅터 앤 롤프의 이미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기대하지 못한 우아함, 개념적인 글래머, 도전적인 쿠튀르처럼 예상 밖의 놀라움을 전하는 이름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그럼 그 최종 목표를 위해 당신들이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도 있나요? 지금 이 순간을 진실로 즐기는 거요. 무엇을 하든지 집중해서.
에디터 서재희 (jay@noblesse.com)
사진 정태호(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