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 문화 도시 연출법
스타 PD 출신인 서울문화재단 주철환 대표가 서울을 문화 도시로 연출하는 일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긍정적 에너지가 넘치는 그와 마주 앉았을 때 자연스레 떠오른 건 그의 책 제목이기도 한 이 문구다. ‘더 좋은 날은 지금부터다.’

문화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명쾌한 즉답을 내놓을 수 있는 이는 의외로 많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문화계에 깊숙이 몸담은 이들조차 머뭇거릴 만큼 까다로운 질문인 이유를 서울문화재단의 주철환 대표는 이렇게 설명한다. 문화란 곧 우리 삶이고, 문화가 무엇이냐 묻는 것은 곧 삶에 대한 질문과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2004년 서울시 출연 기관으로 설립한 서울문화재단이 하는 일은 시민이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를 일상적으로 향유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각 문화 예술 장르별로 창작을 지원하고, 학교 현장과 시민을 위한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남산창작센터·금천예술공장·문래예술공장·서울무용센터·연희문학창작촌 등 서울 시내 총 16개의 문화 예술 창작 공간을 운영하는 등 수많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9월 서울문화재단의 네 번째 대표로 취임한 주철환 대표는 취임 직후부터 이런 사업을 알리고 확장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 12년간 유인촌·안호상·조선희 대표를 거치며 기초를 탄탄하게 다지고 나무도 잘 심었다고 보고, 이젠 그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포부다.
MBC 예능 프로그램 PD, 방송사 사장과 제작본부장, 이화여자대학교와 아주대학교 교수 등 언론사와 교육계를 거친 주철환 대표는 문화 콘텐츠를 만들고 가르친 사람으로서 현시점에 서울문화재단에 온 것은 운명이라고 말한다. “이곳이 일곱 번째 직장이에요. 60대가 된 이후 더 안정감을 갖게 됐고, 제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새로운 의욕이 생기네요. 전문성을 두루 갖춘 직원들과 여러 문화 예술인을 비롯한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선택했습니다.” 이제 문화 행정가로서 두 달째, 행정에 필수적인 것은 효율이라는 생각으로 불필요한 과정을 생략하고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면서 내년 사업을 준비 중이다.
주철환 대표는 지난가을 취임 인사말에서 “즐거운 문화 도시를 연출하겠다”고 밝혔다. 이름 석자만으로도 흥행을 보장하던 전설의 PD다운 말이다. 이런 ‘PD 마인드’는 그가 추진하는 많은 일에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연출의 정의는 이렇다. 아이디어를 토대로 스태프와 출연자를 꾸려 작품을 만들고, 미지의 시청자에게 이를 선물하는 것. 문화 도시를 만드는 데도 그 연출법은 충분히 유효하다. “서울문화재단의 사업이 소수만 누리는 ‘그들만의 리그’가 돼서는 안 되겠죠. 보다 많은 사람이 문화 예술의 혜택을 누리게 하고 싶습니다. 재단의 여러 사업 중 하나에 우선순위를 두기보다는 그때그때 추진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어요. 단, 그 모든 사업을 집대성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바로 축제죠. 그래서 내년 가을에 ‘풀뿌리 문화 주간’을 정해 나이를 막론하고 모든 시민이 문화를 즐기는 행사를 만들어보려 합니다.” 그는 축제를 바라보기만 하던 사람들이 직접 그 속으로 들어가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생활 밀착형 예술’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주철환 대표야말로 생활 속에서 예술을 즐기는 인물이다. 그는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총 15권의 책을 펴낸 작가이자, 직접 만든 노래로 2장의 음반을 낸 싱어송라이터 이기도 하다. 가지고 있는 미발표 작품도 많으니 앞으로 또 다른 창작물이 세상에 나올 것이다. 다만 그것을 업으로 삼지 않을 뿐. “제 아내는 교육학 교수인데 그림 실력이 뛰어나요. 쑥스럽다며 전시회를 열진 않지만 평소에 틈틈이 그림을 그리죠. 저는 시를 쓰고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며 사는 생활예술인이에요. 서울에 생활예술을 정착시키는 데 저부터 밀알이 돼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문화 도시를 만들기 위해 특정 도시를 벤치마킹할 생각은 없다. 1980년대 후반에 그가 MBC에서 기획, 제작한 프로그램을 돌아봐도 기존 프로그램을 변주한 것은 아니다. 대학생을 위한 <퀴즈 아카데미>는 다양한 교양과목을 망라해 독보적인 학습 프로그램이자 오락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누렸고, <우정의 무대>는 연예인이 아닌 군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히트를 치지 않았던가. 지금까지 적재적소에서 발휘해온 탁월한 캐스팅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그는 자신의 처남이기도 한 손석희를 언급한다. 2009년부터 2014년 봄까지 JTBC에서 제작본부장과 대PD로 일하며 JTBC가 손석희를 보도 담당 사장으로 영입할 수 있도록 오랜 시간 노력했고, 그가 판단한 뉴스의 가치에 대해서는 모두 존중하고 전권을 위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공들인 캐스팅의 결과가 좋으니 개국공신으로서 더없이 흐뭇한 일이다. “저는 상상을 통한 혁신을 꿈꿔요. 꿈을 구체화하면 상상이 되고, 그걸 더 구체화하면 현실이 되는 거죠. 그렇게 저 나름대로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그가 그리는 문화 도시에는 나눔도 포함돼 있다. 진정한 부자는 배타적인 ‘내부자’가 아니라 나누는 삶을 사는 ‘기부자’라는 게 그의 생각. 재능도, 열정도, 재산도 기부할 수 있는 이들의 마음가짐은 주철환 대표가 요즘 강조하는 ‘더다이즘’과 연결 된다. “저는 다다이즘을 바꿔 더다이즘이라고 말해요. 혼자서 더 잘 살기보다는 다 잘 사는 걸 목표로 해야 하지 않을까요. 더 즐겁고 다 행복한 게 제가 실현하고 싶은 더다이즘이에요.”
세상이 시끄럽고 국가와 세계의 상황을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하게 바라보게 되는 요즘, 그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 예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리고 그 영향력은 무엇일까? 스스로 ‘초긍정주의자’라 말하는 그는 “그래도 우리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것이 문화”라고 답한다. 흔들림 속에 얻은 유익함이 있으니 이 상황을 바라보는 모두가 깨달음의 시간으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그가 임기 동안 서울문화재단에서 언제나 문화적 삶이 가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우리는 그 가치 있는 삶을 누리는 것이 보다 행복해지는 일임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에디터 안미영(myahn@noblesse.com)
사진 안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