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회의 새로운 목수들
톱밥을 공기처럼 마시며 가구를 만드는 젊은 목수들과 그들이 내놓는 신세계, 새 안목, 완전히 새로운 응답에 대하여.
‘디테일의 힘’을 믿는 밀로드의 유정민 대표

등의 굴곡에 맞게 등받이가 휘는 밀로드의 원목 의자

튼튼해 보이는 4단 서랍장. 무심한 라인이 돋보인다.

아메리칸 블랙 월넛을 사용해 톤 다운된 차분함이 느껴지는 책꽂이
지난날 가구 제작의 중심은 ‘목공소’였다. 톱밥이 먼지처럼 흩날리는 그곳에서 목수들은 모든 가구를 손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 그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가구 산업은 이케아 같은 공룡 기업에 의해 재편됐고, 목수를 꿈꾸던 관련 학과 학생들도 (꼭 가구 디자이너가 아니라 해도 여하튼) 겨우 몇 명만이 그럴싸한 기업에 취업하거나 작품 활동을 하는 전업 작가의 길로 빠졌다. 물론 일일이 손으로 목재를 다듬는 수제 가구의 매력에 빠져 목공소를 차린 이들은 배고픔을 감수해야 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구를 만든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열정이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는 생활은 정말로 참담했다.
그러다 2008년을 기점으로 곳곳에 다시 창작 가구 중심의 목공소가 생겨났다. 스마트 기기 시대에 치인 많은 이가 ‘따뜻한 정성’이 깃든 ‘손맛’을 선호하면서 디자인과 수작업으로 승부하는 목공소가 엄청 증가했고 ‘1인 가구’가 늘며 나만의 ‘특이한’ 가구를 찾는 수요 또한 한몫했다. 그러면서 등장한 목수는 대개 가구 디자인과 제작을 겸하는 이들이다. 대부분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중반에 태어나 현재 20~30대인 젊은 목수. 이들은 효율성을 추구하며 디자인과 생산을 분리한 기성 가구 산업의 뒤편에서 느리지만 성실하게 자신의 가구를 만들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전 세대 목수들과 마찬가지로 주문자의 요청에 따라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구를 만든다는 거다. 주문 제작은 당연히 주문자의 취향을 반영하기 마련. 이들이 만든 가구는 공장에서 천편일률적으로 찍어내는 가구와는 다른 기능과 의미를 지녔다.
이들 젊은 목수는 외국에서 공부한 정통파 목수 출신부터 여성복 디자이너로 시작해 가구로 나아간 이까지 다양하다. 출발점은 달라도 전 세대 목수들이 시장의 규모 문제로 소극적으로 일관한 수제 가구를 업으로 삼아 승부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어떤 목수는 한술 더 떠 ‘오더메이드’에 머물지 않고 공방 스타일 생산과 기성 가구를 접목한 새로운 유형의 가구를 만들기도 했다. 쉽게 말해 지금의 국내 가구 문화를 완전히 갈아엎는 사람들. 누가 떠밀었건 스스로 밀고 들어왔건 결국 새로운 가구의 흐름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지금 젊은 목수들이 지향하는 목공소는 대개 ‘공방형 목공소’의 형태를 띤다. CEO가 목공소에서 직접 나무를 켜고, 만든 제품을 팔기도 하는 등 모든 일을 책임진다. 기존 목공소에 나름의 철학이 담긴 이름을 내걸고 입소문이나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주문자와 소통하며 가구를 만든다. 물론 아이덴티티와 브랜드 철학은 기본 옵션. 이들을 찾는 주문자는 대부분 20~40대로, 가구를 단순한 생활용품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정서적 물건으로 받아들이는 게 특징이다. ‘아이디어’와 ‘노동’의 결합이 이 사회를 조금이나마 멋지게 만드는 역할을 하리라 생각하는 이들이 가구를 만들고, 그걸 알아본 이들이 가구를 산다.
서울 방배동에서 ‘밀로드’를 운영하는 유정민 대표는 자신이 만든 가구의 특징을 ‘디테일의 힘’이라 표현했다. 밀로드의 컨셉은 전통에 젊은 감각을 입힌 ‘수제 원목 가구’. 2009년 가구를 만들기 시작해 벌써 7년 차다. 그는 산업디자인학과 재학 시절부터 사실 전공보다 가구에 관심이 많았다. 전공 공부보다 가구 보러 다니는 일에 눈이 팔려 혼도 많이 났다. 하지만 누구도 좋아서 하는 일을 말릴 순 없었다. “가구를 만드는 건 산업디자인 세계와 달리 직관적이에요. 머리에 떠올린 디자인이 금방 결과물로 나오죠. 물론 가구 디자인도 만만치 않다는 걸 금방 알았지만요.” 디자인만 하고 제작 공정은 다른 이에게 맡길 수도 있지만, 그는 디자인하고 그것에 맞춰 목공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 그리고 그 모든 공정을 밀로드에서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제대로 된 의자를 만들기 위해 큰맘 먹고 핀 율(Finn Juhl)의 암체어를 사서 써본 적이 있어요. 그리고 얼마 안 가 그걸 전부 분해했죠. 편한 의자를 만들려면 등이 닿는 부분과 엉덩이가 닿는 부분의 미세한 각도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어요.” 현재 전공이 아닌 길을 걷고 있지만 대학에서 배운 구조감과의 세심한 연계는 그의 가구에 근력을 더한다. 나무의 본질을 살리면서도 가구의 기능성을 잃지 않는 것. 의자부터 책상, 침대, 서재 등 늘 다양한 실험을 하는 그는 지금도 공부 중이다.
소목장세미의 유혜미 대표

각종 사무용구를 수납할 수 있는 수납함. 상판을 닫으면 테이블이 된다.

호두나무와 물푸레나무로 만든 다양한 모양의 도마 겸 플레이트
서울 문래동에서 ‘소목장세미’를 운영하는 유혜미 대표는 조소과 출신이다. 뭔가를 만드는 게 좋아 미술대학에 들어갔지만, 졸업 후 ‘작가’로 살아야 한다는 것에 암담함을 느끼고 지금의 목공소를 열었다. 사실 그녀는 애초 목수를 할 생각이 없었다. 언젠가 집에 놓을 가구를 직접 만들었는데, 그걸 본 친구들의 가구 제작 요청이 쇄도해 본격적으로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녀가 만드는 가구의 주요 타깃은 ‘1인 가구’. 작은 의자부터 책상, 북 케이스, 도마에 이르기까지, 여차하면 여자 혼자서도 방 안 배치를 바꿀 수 있을 정도의 크기다. 혼자 좁은 방에 사는 1인 가구가 많아질수록 작아서 가볍고 운반하기 편한 가구를 만드는 게 맞다 생각했다. 본디부터 혼자 목공소를 꾸릴 생각이었기에 가구 재료도 합판이나 가벼운 오동나무를 주로 쓴다. 원과 사각형, 무채색 계열의 목재를 주로 쓰는 가구 디자인은 여성이 제작한 것임에도 중성적 느낌이 강하다. “제가 단순한 구조를 선호해서일 거예요.” 소목장세미의 가구는 원하는 용도와 사이즈에 맞춰 디자인이 나온다. 주문자의 요구 사항을 베이스로 그녀의 스타일에 맞게 디자인하는 식. 재료 이동의 불편함(목공소가 2층에 있다) 문제로 원목을 자주 쓰진 않지만, 앞으로 원목의 비율을 늘리고 조소과를 전공한 이력을 살린 ‘디자인 가구’도 제작할 생각이다.
아이네클라이네의 신하루 실장과 이상록 대표(왼쪽부터)

가로로 긴 AV장. 문을 닫고도 리모컨 사용이 가능하다.

금속과 나무의 특성을 이용한 입체적인 디자인의 책장
한편 ‘아이네클라이네’의 이상록 대표와 신하루 실장은 각각 주거환경학과와 공예미술학과에서 공부했다. 그러다 취미로 목공을 시작했다. 이상록 대표는 학교 공부를 하면서도 늘 사람의 몸에 닿는 뭔가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게 가구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대학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목공대학원 과정을 마쳤고, 당시 살던 집 아래 창고를 고쳐 아이네클라이네를 열었다. 기성 가구는 아니고, 소규모 목공소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디자인적 감성을 담은 스튜디오 가구를 지향한다. 신하루 실장은 이상록 대표가 한창 고군분투하던 1년 차 시절 아이네클라이네에 합류했다. 당시 신 실장은 디자인 문구 회사 ‘mmmg’의 7년 차 직원이었다. 회사에 다닐 때부터 집 안 인테리어 소품을 디자인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기에 틈틈이 공방을 찾아 목공을 배웠다. 나무를 다루는 게 쉽지 않아 자신감을 잃기도 했지만 우연한 기회에 이상록 대표를 만나 아이네클라이네를 함께 이끈다. 이들 가구의 특징은 ‘베이식함’이다. 그게 무슨 자랑이냐고 묻는 이도 있겠지만, 원래 기본기가 충실해야 스타일이 나오는 거다. 그리고 이들 특유의 비례감과 두께 등 각종 디테일을 신경 쓴다. 이곳의 또 다른 특징은 ‘천연 오일’. 화학적 마감보다 내구성이 떨어져 유지 관리가 필수지만, 나무 특유의 따뜻한 감성이 배어나기 때문에 이를 좋아하는 팬도 많다. 아이네클라이네의 컨셉은 ‘삶 속에서,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쌓여 추억이 되는 가구’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이들이다.
지금 대량생산과 유통은 소비에 관해 인간의 삶을 피동적으로 만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취향은 알게 모르게 획일화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젊은 목수의 출현은 이 사회를 조금이나마 다양하게 만든다. 시대는 계속 새로운 디자인에 대한 무언의 요구를 던지는데, 그것에 가장 빠르게 응답하는 것이 이들 젊은 목수인 셈이다. 갈수록 새로워질 이들의 다음 응답을 기대해본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김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