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갤러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
누구는 갤러리의 위기라 하고, 누구는 아직까진 괜찮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 갤러리의 행보가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초심을 잃은 갤러리스트도 많다. 이즈음에 생각해봐야 할 갤러리의 올바른 길.
1 2004년 전시가 열린 제롬 드 누아몽 갤러리
2 제롬 드 누아몽이 길러낸 세계적인 작가 피에르 & 질의 전시에 걸린 그들의 초상화 작품
3 올해 3월 문을 닫은 제롬 드 누아몽 갤러리의 대표 ‘제롬 & 에마뉘엘’ 부부
4 2011년 조너선 미즈의 전시를 연 다니엘 템플롱
5 파리의 최장수 갤러리 다니엘 템플롱의 대표 ‘다니엘 템플롱’
파리 유수의 갤러리 중 하나인 제롬 드 누아몽(Jerome de Noirmont) 갤러리가 2013년 3월 전시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갤러리의 흥망성쇠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제프 쿤스의 첫 프랑스 전시회를 개최하고 2008년 베르사유 궁 전시회를 추진하며 지난 20여 년간 성공적으로 운영해온 파리의 대표적 현대미술 갤러리이기에 세계 미술계에 큰 충격과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그 외에도 키스 해링(Keith Haring), 피에르 & 질(Pierre & Gilles), 시린 네샤트(Shirin Neshat), 파브리스 이베르(Fabrice Hyber) 등 이곳에서 길러낸 세계적 작가는 여럿이다. 고전미술이나 인상주의 등 근대미술을 다루는 유서 깊은 갤러리가 포진해 있는 엘리제 궁(프랑스 대통령 사저) 근처의 여러 갤러리 중에서도 비교적 젊은 갤러리에 속한 제롬 드 누아몽이 돋보인 이유다. 여전히 전시를 진행 중이었고, 2012년 가을까지만 해도 두바이 아트 페어에 참여할 정도로 활동적이었는데, 왜 갑자기 문을 닫았을까? 제롬 & 에마뉘엘(Jerome et Emmanuele) 부부는 갤러리 문을 닫으며 작금의 미술 시장, 특히 갤러리의 위기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명문을 남겼다. 폐관 이유는 다행히도(?) 적자 때문이 아니라, 갤러리가 아닌 다른 형태의 운영 방식을 찾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결론에 이르기 전 그들이 밝힌 현 미술 시장에 대한 분석과 소회는 가히 아름답고도 슬프며 또한 정직하고 용감하다. “우리는 보수적인 취향과 미술사적 판단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프랑스에서 동시대 미술을 소개하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일해왔으나, 오늘날 갤러리 운영이라는 분야는 너무 큰 변화에 직면하게 되었다. 오늘날 성공적인 갤러리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좀 더 넓은 공간을 확보하고 보다 많은 관계자를 끌어모아야 한다. 소속 작가의 리스트를 한도 끝도 없이 늘리고 프랑스뿐 아니라 해외에도 계속 지점을 내야 하는 등 가만히 있는 것은 뒤처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무한 경쟁에 빠져 있다. 게다가 프랑스의 정치적 판단이 숨 막힐 듯한 조세정책으로 치달으면서 프랑스 미술 시장의 미래는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따라서 백만장자 컬렉터를 좇아 세계를 이곳저곳 헤집으며 눈길을 끄는 작품만 여왕으로 대접하는 갤러리의 과열 경쟁을 떠나 초기에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보다 인간적인 방식으로 작품의 창작을 돕고 가치에 대해 논하는 자리로 되돌아가겠다.”
갤러리의 위기
제롬 & 에마뉘엘 부부의 지적은 갤러리 운영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갤러리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넓고 번듯한 공간을 확보해야 하고 세계 유수의 도시 곳곳에 분점을 내는 것은 물론 세계 각 도시에서 열리는 아트 페어에도 출품해야 한다. 수많은 자본 투입이 요구될 수밖에 없고, 그런 만큼 자금 회수가 가능한 스타 작가를 모셔야 한다. 미래의 주역이 될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사업 구조상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하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젊은 작가를 위한 투자는 점차 요원해진다. 그사이 신생 갤러리들이 젊은 감각으로 치고 올라온다. 손쉬운 방법은 이미 시험대를 거친 작가들을 영입하는 것이다. 떠나가려는 작가를 잡기 위해 신생 갤러리도 과도한 약속을 할 수밖에 없다. 좀 더 공간을 넓히고 관계망을 구축하고 투자금을 끌어들이고 잘 팔리는 작가를 중심으로 상황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너도나도 ‘유수’의 국제적 갤러리가 되기 위한 무한 경쟁에 돌입하게 된다. 파리에 이어 홍콩에도 분점을 내며 최근 가장 잘나가는 갤러리스트가 된 에마뉘엘 페로탱 갤러리 관장도 “현재의 갤러리 시스템은 발전하거나 혹은 작가를 뺏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고, 누구도 아트 페어에서 구석진 자리를 배정받는 모욕은 당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면서 “제롬 드 누아몽 갤러리의 상징적 폐관 결정을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파리에서 47년간 운영해온 최장수 갤러리 다니엘 템플롱(Daniel Templon) 역시 강력한 조세정책을 피해 올가을 벨기에에 새로운 공간을 개관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뉴욕타임스>의 고정 필진이자 평론가인 제리 살츠(Jerry Saltz)는 왁자지껄하던 뉴욕의 갤러리 쇼가 퇴색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예술가와 딜러들은 점점 더 대단한 오프닝을 준비하지만 컬렉터들은 발길도 뻗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현재 미술계의 혈류를 쥐고 있는 헤지펀드 백만장자와 프로 큐레이터들이 반(反)미술 시장의 분위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갤러리 쇼가 새로운 예술가들이 성장하고 상호 의견을 교환하는 장이 아니라 팔렸느냐, 안 팔렸느냐로 성공 여부가 결정되는 분위기에서 예술은 그 매력을 잃고 만다. 또 다른 이유는 잘 팔리는 작가들조차 뉴욕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었다가 혹시라도 비평가의 혹평을 받게 되면 옥션이나 아트 페어에서 자신의 작품 판매에 악영향을 미칠까 봐 회피하기 때문이다. 악순환이다. 그렇다. 확실히 현재의 갤러리는 위기에 처해 있다. 무엇보다도 갤러리의 정체성이 위기에 처해 있다. 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미술 시장의 호조 속에서 잉태되었다. ‘돈 되는 작품’의 유혹에 빠져 정작 갤러리의 본분인 신진 작가 발굴이나 신작 소개는 소홀히 한 탓이다. 갤러리의 경쟁자는 크게 아트 페어, 딜러, 경매사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원래 상생하는 관계지만 지금은 확실히 갤러리가 모든 면에서 가장 약세에 처해 있다.
승승장구하는 경매사
대표적으로 아트 페어는 갤러리의 연합에 의해 태어났지만 도리어 갤러리의 발목을 잡는 짐이 되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대가의 신작은 갤러리의 전시회가 아닌 바젤 아트 페어에서 선보이기 시작했고, 갤러리는 심지어 아트 페어에 참여하기 위해 운영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전락했다. 갤러리도 운영하고 아트 페어에도 참여하려면 이중의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갤러리는 상설 전시장은 아주 작게, 그나마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아트 페어에 참여하느라 문 여는 날보다 닫는 날이 더 많은 채 방치해두기도 한다.
이렇게 갤러리가 2차 시장으로 변모해가면서 갤러리의 주요 요소로 떠오른 것이 바로 딜러다. 갤러리스트가 직접 딜러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보통 갤러리들은 외부의 독립 딜러와 협력해 일한다. 갤러리스트 딜러가 작가와 함께 새로운 작품의 제작과 소개, 미디어의 평판 등 종합적인 면에 초점을 두는 운영자라면, 독립 딜러는 소개한 작품을 컬렉터에게, 다시 컬렉터의 작품을 갤러리나 다른 컬렉터에게 판매하는 등 매개 이후의 유통에 좀 더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문제는 딜링(판매)이 중시되면서 갤러리 본연의 역할이 축소 혹은 퇴색되었다는 점이다. 가령 뉴욕 최장수 갤러리인 노들러 갤러리(Knoedler Gallery)는 글라피라 로살레스(Glafira Rosales)라는 남미 출신 딜러와 거래하면서 잭슨 폴록, 빌럼 데 쿠닝, 로버트 머더웰 등의 작품을 판매해 1990년대 중반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무려 6000만 달러(약 660억 원)라는 수익을 거뒀다. 갤러리의 주요 수입원이 2차 시장에서 판매 마진이 된 셈이다. 그러나 ‘신분을 밝히길 꺼린다’는 스위스나 멕시코의 개인 소장가에게 받아왔다는 작품이 모두 위작으로 밝혀지면서 컬렉터들은 결국 갤러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165년의 역사 또한 사라지게 됐다.
마지막으로 경매사는 갤러리의 가장 가까운 벗이자 경쟁자다. 본래 경매는 작품의 2차 시장을 활성화함으로써 컬렉션을 처분한 구매자가 다시금 현금을 들고 갤러리라는 1차 시장으로 돌아오게 하는 역할을 해왔으나, 오늘날 이 순환 구조는 깨져버렸다. 대표적인 예로 데이미언 허스트가 갤러리를 외면하고 2008년 말 전무후무하게도 작가가 직접 신작을 포함한 223점의 작품을 소더비 경매를 통해 판매한 사건을 들 수 있다. 미술계와 이해관계가 없는 회계사 출신 매니저 프랭크 던피의 개입이 한몫했지만( 2호 참고), 결국 허스트는 1억1000만 파운드(약 1900억 원)의 수익을 올림으로써 갤러리 수수료를 절약(?)하고, 1993년 피카소의 작품 88점 경매 기록(1100만 파운드, 약 190억 원)을 무려 10배가 넘는 금액으로 따돌리며 단일 작가 최고가 경매 기록을 경신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경매에서 가장 비싼 작품을 사들인 컬렉터들이 바로 가고시안을 비롯한 갤러리스트였다는 점이다.
자신을 외면하고 직접 경매장에 나간 작가를 대할 때 ‘어디 얼마나 잘되나 보자’며 팔짱 끼고 악담을 내지르는 건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다. 천문학적 액수가 오가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만약 데이미언 허스트의 경매 이벤트가 실패할 경우 정작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것은 그의 작품을 여럿 수장고에 쌓아놓고 하나씩 판매하며 큰 수익을 올리고 있던 갤러리스트 자신이기 때문이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그들은 팔리기 힘든 비싼 작품을 도맡아 구매함으로써 허스트 작품의 시장가치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경매사가 승승장구하는 비결은 그 뒤에 막강한 후원자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패션 비즈니스의 대표 주자, LVMH(루이 비통, 모엣 헤네시 외)와 케링 그룹(Kering Group, 구찌 외)은 각각 대표적 경매사 소더비와 크리스티를 소유하고 있다. 지난 6월 28일, 케링 그룹의 대표 프랑수아 피노 회장은 아편전쟁 당시 프랑스로 유입된 중국의 문화재를 직접 반환하겠다는 뉴스와 함께 미디어를 장식했다. 내용은 이렇다. 문제가 된 조각품은 이브 생 로랑 사후 2009년 2월에 열린 소장품 경매에 나온 것으로, 중국에서는 아편전쟁 당시 프랑스에서 약탈해간 국보급 문화재이므로 반환할 것을 요청했고, 소장자인 이브 생 로랑의 파트너 피에르 베르제는 돈을 주고 구매한 개인 소유물이므로 돌려줄 수 없다며 신경전을 벌였다. 결국 경매에서 3000만 유로(약 470억 원)에 낙찰되었으나, 낙찰자 본인이 중국인임을 밝히며 입금을 거부한 채 작품의 중국 반환을 요구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후 2011년 아이웨이웨이(Ai Weiwei)가 뉴욕 플라자 호텔 광장에 12지신 두상을 전시하고 2012년 성룡이 <차이니즈 조디악>이라는 영화를 통해 중국의 문화재 반환 요청 메시지를 전달하는 등 문화재 반환 압박이 사방에서 들어오자 결국 생 로랑(Saint Laurent)의 사주이자 크리스티의 사주인 프랑수아 피노 회장은 작품을 구입, 중국에 반환하기로 결정했다. 구찌와 푸마를 비롯해 케링 그룹의 중국 내 비즈니스와 크리스티 경매시장의 침투를 염두에 둔 실리적 판단이었지만, 아무튼 중국 문화재 반환을 발표하는 프랑수아 피노 회장의 모습은 일국의 대통령 내지 문화부 장관의 위상 못지않았다. 오늘날 성공한 명품 비즈니스의 CEO가 문화·경제·외교의 실질적 수장 역할을 하고 있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1 소더비 뉴욕 본사 2 전 LA현대미술관(MoCA) 관장 제프리 다이치 3 MoCA의 외관 4 뉴욕 크리스티 빌딩
틈새를 보는 갤러리스트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 빛나는 자리에는 갤러리가 있었다. 큐레이터의 시대가 가고 컬렉터의 시대가 오던 그즈음에 갤러리는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관이었다. 심지어 갤러리스트 출신인 제프리 다이치(Jeffrey Deitch)는 LA 현대미술관 ‘MoCA’의 관장에 취임하기도 했다. 재정 위기에 처한 미술관을 구원하기 위해 백만장자 사업가이자 컬렉터인 엘리 브로드(Eli Broad)가 3억 달러(약 330억 원) 융자를 제안했지만, 미술계 인사 중 누구도 백만장자 이사를 머리 위에 모시고 수렁에 빠진 미술관을 구해내야 하는 어려운 미션에 선뜻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때 엘리 브로드가 내세운 구원투수가 바로 평소 신임하던 갤러리 디렉터 제프리 다이치였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엘리 브로드의 신임과 하버드 MBA 출신에 시티뱅크 컨설턴트로 일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다이치는 5년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최근 사임했고, 미술관 운영은 다시 미궁에 빠졌다).
제프리 다이치가 상업적 갤러리를 운영하면서도 비즈니스맨이 아닌 현대미술의 리더로 평가받은 것은 여느 상업 갤러리에선 수용하기 어려운 실험적인 작품을 ‘다이치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많이 소개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스트리트 아트다. 그가 MoCA의 수장으로 취임해 준비한 첫 전시회도 스트리트 아트 전시였다. 오늘날 JR을 비롯한 여러 스트리트 아트 작가들이 선전하는 것을 보면 그의 선견지명이 탁월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거리에서 갤러리로 장소를 옮긴 작품이 여전히 그 정신적 힘을 유지할 수 있을까? 또 이 작품들을 어떻게 또 어디까지 판매할 수 있을까? 갤러리는 폄하되어온 그라피티(graffiti, 낙서화)가 현대미술의 주요한 영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한편 미학적·철학적·윤리적 질문 또한 남겼다. 이때 혜성같이 등장한 몇몇 갤러리는 상업적 이득을 취할 궁리를 했다. 케즐러 갤러리(Keszler Gallery)는 팔레스타인까지 건너가 뱅크시(Banksy)의 그라피티 벽화를 뜯어다 판매했고, 최근에는 런던 우드그린 거리에 그린 뱅크시의 작품 ‘노예 노동(Slave Labour)’이 홀연히 사라졌다가 마이애미 옥션의 경매 리스트에 올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작품은 영국기 유니언잭이 땅에 떨어져 끌리는 상황을 포착, 어린 소년이 재봉틀로 국기를 제작하는 것처럼 그린 벽화로 노동 착취의 모순을 고발하고 있다. 그림을 그린 벽은 대형 슈퍼마켓의 담으로 더욱 현장감 있게 자본주의의 모순을 드러냈다.
벽을 뜯어간 사람이 누구인지, 판매자는 누구인지 모두 비밀에 부쳐졌다. 그러나 런던 주민은 자본주의의 이기적 욕망을 고발하는 작품이 도리어 자본주의의 재물이 되었다고 통탄하며 지역사회로 작품이 되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마이애미 옥션은 성사되지 못했고 작품은 런던으로 돌아왔지만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지난 6월 초 한 프라이빗 경매에서 추정가의 2배인 110만 달러(약 12억 원)에 판매되었다. 비난이 일자 뱅크시 벽화 판매에 앞장선 케즐러 갤러리의 대표는 천연덕스럽게 뱅크시는 남의 소유물에 허락도 없이 낙서를 하는데 정작 그 주인은 자신의 소유물을 처리할 때 뱅크시의 허락을 받아야 하느냐며 작품 판매의 정당성을 두둔하기도 했다. 작품의 판매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졌기에 경매를 저지할 법적 근거는 없으나 이를 ‘절도’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뜨거운 논란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갤러리는 한가한 사람들이 우아하게 그림이나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곳 같지만, 사실 전쟁터가 따로 없다. 미술 시장이 호황을 맞을수록 밝은 빛만큼이나 그림자도 클 수밖에 없다. 오늘날 갤러리는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갤러리의 미래는 어디에 있는가? 오랫동안 현대미술의 실험을 주도해온 갤러리는 이제 그 자신이 시험대 위에 서 있다. 클라이언트이면서도 갤러리스트의 한정된 정보에 의지해야 한 컬렉터들은 제트셋 컬렉터(jet set collector, 제트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컬렉션을 하는 이들)로 거듭났고, 텀블벅이니 클라우드 펀딩이니 하는 이름으로 개인도 쌈짓돈으로나마 후원자로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누구나 문화에 관여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된 셈이다. 새로운 시대 상황에 맞게 이제는 갤러리가 새 술을 담을 새 부대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제롬 드 누아몽 갤러리는 문을 닫으며 작가 뒤편에서 그림자처럼 기업, 기관, 때로는 다른 갤러리와 협력해 작가의 작품 활동을 후원하는 에이전시 형태로 거듭날 것을 예고했다. 그들은 아마도 MoCA 관장직을 사임한 제프리 다이치가 과거 ‘다이치 프로젝트’를 통해 보여준 것처럼 새로운 형태의 갤러리를 선보이지 않을까? ‘성공한’, ‘대형의’, ‘국제적’이라는 평가 기준에서 눈을 돌려 갤러리를 운영하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고 무엇을 향한 것인지 숙고한다면 의외로 쉽게 답이 나올지도 모른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글 김영애(이안아트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