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한국의 술
경직된 한국 술 신이 짜릿한 파도에 몸을 실을 준비를 하고 있다.

1 오직 평택에서 난 쌀로 빚은 술을 증류한 뒤 숙성한 술 소호. 우아하게 풍기는 단 향이 일품.
2 술아원에서 여주산 고구마를 직접 손질해 발효시킨 뒤 상압식 증류로 추출한 증류주 필.
3 바닐라와 배, 열대 과일 향에 혀를 포근히 감싸는 크리미한 맛이 매력적인 한강주조의 나루 생 막걸리. 4 맹개술도가의 은은한 밀 향과 그윽한 단맛을 품은 밀로 소주.
5 메밀을 발효해 증류한 술로, 깨끗하고 섬세한 향을 담은 술도가 제주바당의 메밀이슬.
6 막걸리를 유러피언 스타일로 해석한 독 브루어리의 새로운 형태의 가양주. 사과, 레몬 껍질, 홍차 등을 같이 발효해 풍미를 더했다.
양념통닭과 김치볶음밥은 한국 음식인가? 치즈 핫도그는 어떤가?(치즈 핫도그는 관광객 사이에 ‘한국에서 꼭 맛봐야 할 길거리 음식 리스트’에 올랐다) K-팝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세계를 열광시키고 K-패션, K-뷰티가 우리 고유의 것으로 인정받아 또 다른 패러다임을 만드는 시대. 한복을 입지 않고 한옥에 살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한국인이 아니지 않듯, 동시대에 맞게 변모한 다양한 전통이 지금 우리의 정체성을 만들고 있다. 한데 유독 경직된 영역이 있으니, 바로 전통주다.
우선 전통주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는 게 문제다. 기획재정부 주세법에서 제정한 전통주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무형문화재 혹은 식품 명인이 제조한 술이거나 지역 특산술 그리고 민속주. 지역 농산물을 주원료로 사용한 술은 지역 특산술로 분류되어 전통주에 속하고,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막걸리의 대부분은 전통주 범주에서 제외된다(민속주 1호로 지정된 금정산성 막걸리 등 일부 제외). 요즘 인기 높은 화요 또한 전통주로 분류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에서 자라는 포도를 50% 이상 사용했다면 와인도 한국 주세법상 전통주로 분류될 수 있다. 전통주에 속하면 세금을 50% 감면받을 수 있고, 주류 가운데 유일하게 통신판매까지 가능하니 전통이 빠진 전통주도 난무하고 있다. 어디까지 전통으로 볼 것인가도 애매하다. 주세법상 전통주 개념의 문제를 인식하는 최근 업계 관계자는 저마다 우리 술, 한주, 한국 술 등 용어로 바꿔 부르고 있다. 어떤 새로운 용어로 대체하는가에 따라 그들만의 리그에서 파벌이 또다시 갈린다는 건 또 하나의 아이러니.
술은 문화이며, 문화는 시대에 맞게 변한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상에 올라 향유할 수 없고 박물관에 박제할 용도라면 그것이 과연 좋은 전통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음식과 술은 함께 어우러지는 문화고 식문화가 끊임없이 진화해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전통을 고수하라’던 기존 전통주 신은 재킷에 진을 입은 남자에게 검정 고무신을 신으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전통이라는 미명 아래 동시대 문화를 쉬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던 한국 전통주가 동시대 문화로부터 멀어진 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틀에서 벗어나면 금세 비난의 태세를 취하던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해왔으니까.
그런데 요즘 한국 술의 신이 꽤 흥미롭다. 전통을 각자 개성에 맞게 당화(술 빚는 과정 중 하나)해 발효시키는 유쾌한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 뭇매를 맞더라도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발칙한 모험가도 속속 눈에 띈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변화의 세포분열은 마치 술이 어떻게 익을지 모르는 발효 과정과도 같아 더욱 짜릿하다. 대표적으로 전통 있는 양조장의 세대교체로 변화를 꾀하는 곳이 늘고 있다는 점. 맛은 전통을 따르되 패키지를 새롭게 하거나, 전통적 맛을 대량생산 시에도 균일하게, 혹은 균질하게 고수하기 위해 설비를 단단히 무장하거나, 기존 전통주는 그대로 두는 한편 젊은 세대의 입맞에 맞는 세컨드 라인을 런칭하는 등 변화를 보인다(눈여겨볼 만한 세대교체를 이룬 양조장 경영자와의 이야기는 다음 장에 계속된다). 최근 부쩍 늘어난 젊은 양조자를 필두로 사라진 가양주 문화(집집마다 저마다 술을 빚던 한국 풍습)가 미미하게나마 부활의 조짐을 보인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소규모 양조장 중 가장 눈부신 활약을 보이는 곳은 한강주조다. 브랜드 마케터, 인테리어 및 건축 전문가, 자동차 디자이너, 의상 디자이너가 뜻을 모아 결성한 한강주조는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품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새 문화를 만들어가는 성수동에 양조장을 설립한 뒤 무첨가, 무감미료의 고급 막걸리를 만들어 그들만의 언어로 경쾌하게 풀어낸다. 한국 전통 양조 기술을 배워 해외에서 활약하는 이들의 등장도 흥미롭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미국인이 만드는 한국 전통 증류 소주인 토끼 소주(Tokki Soju)가 대표적이다. “우리끼리만 ‘우리 것이 최고야’라고 말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토끼 소주가 좋은 예를 보여줬죠. 아무리 한국 술이라도 외국 사람이 직접 맛보고 양조에 도전해 보고 싶은 술이 된다면 좋겠어요. 그들의 문화나 입맛에 맞게 발전시키면서 ‘이게 한국의 전통주야’ 라고 주변에 소개하면서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전통주갤러리 남선희 관장은 토끼 소주를 창업한 브랜든 힐의 사례를 들었다. 캘리포니아산 친환경 찹쌀로 만든 토끼 소주는 특유의 우아하고 깔끔한 맛으로 뉴욕에서 사야 할 머스트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소문에 따르면, 이들은 현재 한국 시장에 역수출을 준비 중이다. 이렇듯 양조자의 대물림과 태도 변화는 자연스럽게 한국술의 다양한 시도(맛, 양조 방법, 브랜딩, 유통 등)로 이어졌다.

7 문배주양조원의 40도 문배술. 남북정상회담 만찬주로 올라 인기를 끌었다.
8 새로운 패키지를 입은 지평주조의 지평1925.
9, 11 좋은술 양조원의 오양주 천비향과 최근 새롭게 런칭한 택이 막걸리.
10 술샘에서 홍국으로 빚은 붉은 막걸리 술취한 원숭이.
12 밝은세상영농조합의 예술 감각을 패키지에 입힌 호랑이배꼽 막걸리.
사실 에디터가 한국술을 취재하기 전, 한편으로는 걱정도 있었다. 수년 전 전통주 붐이 일면서 전통주 바가 우후죽순 생겨난 시기가 있었지만, 몇몇 곳을 제외하고는 인기가 오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던한 전통 주점이라는 세련된 포장지로 싸인 곳은 한 번쯤 호기심 삼아 가보기는 좋았으나, 오로지 한국 술만 마시기 위해 가기에는 술꾼인 나로서도 무리가 있었다. 오히려 전통 주점이라는 감옥에 한국 술이 갇혀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무리 신토불이가 좋다지만, 애국심을 불태우며 마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좀 달라졌다. 핫하다는 내추럴 와인과 무형문화재가 빚는 삼해소주가 나란히 놓인 힙한 레스토랑, 부르고뉴 와인과 탁주가 한자리에 있는 바나 비스트로가 등장하는 건 다른 술과 나란히 놓아도 충분히 겨룰 수 있다는 우리 자부심의 방증이다. 여기엔 한국 술에 대한 경외와 존경의 시선이 깔려 있다. 더 이상 비 오는 날 두부김치, 파전에 걸치는 촌스러운 술이 아닌, 어떤 상황에 곁들여도 손색없는 ‘힙’한 트렌드의 중심에 선 것이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세계적인 맛의 트렌드에 신속하게 바짝 따라선 점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단맛이 귀하던 옛날에는 단술이 고급 술로 평가받았지만, 너무나 쉽게 단맛을 첨가할 수 있는 지금의 시대에는 맞지 않다. 단맛이 도드라지기보다는 산미를 균형감 있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밸런스 잡힌 술이 귀한 대접을 받는다. “예전의 우리 술이 단맛에 다소 치중했다고 하면, 최근에는 감미료나 아스파프테임 무첨가, 그리고 산미가 돋보이는 술이 다수 보여요. 다양한 소비자가 입맛에 맞는 술을 찾을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 할 수 있겠죠.” 남선희 관장의 말이다. 트렌드에 맞춰 규제도 완화했다. 지난 4월 30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품의 기준 및 규격’에서 탁주, 약주, 청주의 총산 규격(기존 0.5% 이하)을 삭제했다. ‘구연산, 사과산 등 천연 유기산 함량이 높은 과일을 막걸리 원료로 사용할 경우 총산 규격을 충족하기 어려워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는 데 한계가 있어 탁주, 약주, 청주에 대해 총산 규격을 삭제했다’는 내용이다. 맥주병에 담겨 나오는 독 브루어리(Dok Brewery)의 과일 풍미 막걸리를 비롯해 다양한 과일을 이용한 새로운 술은 단맛에 치중하던 기존 술 신에 새바람을 불어넣었다.
양념통닭과 김치볶음밥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양념통닭과 김치볶음밥은 전통 한식이라고 할 순 없지만, 분명히 한식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한국 사람들이 시대를 거치며 완전하게 새로운 것이 아닌 옛 한식과 융합된 새로운 모습의 음식이 발생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전통에 대한 존중과 존경을 바탕으로 시대의 흐름에 맞춰 고민하고 새롭게 도전하는 자세가 동시대 요리사가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닐까요.” 스와니예 출신의 소울 다이닝 오너 셰프 윤대현은 이렇게 말한다. 전통의 파괴라는 단편적 시각보다 전통이 있기에 생겨날 수 있는 계승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자는 입장이다. 막걸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신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경기대학교 주류산업경영학과 조효진 교수는 “미국의 크래프트 비어 정의를 보면 ‘전통을 따르되 혁신한다’라고 쓰여 있어요. 웃기는 말이죠? 그런데 그게 바로 전통이에요. 혁신 없이는 그냥 옛것이죠. 크래프트 맥주가 라거도 에일도 아닌 제3의 맥주를 만들었듯, 우리도 역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어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아티스트 아스거 욘의 말을 덧붙인다. “기억은 간직하되 시대에 맞도록 전환하라. 몇 번의 붓질로 현대적으로 바꿀 수 있다면 어찌 옛것을 버리겠는가? 이것은 낡은 문화에 동시대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을 따르되 차별화하라.”
지금이야말로 경직된 한국 술 신이 짜릿한 파도를 타기 시작하는 때다. 그 물결 위에 띄워 보낸 병 속 편지가 어떤 물결을 타고 언제 어디로 당도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자, 이제 한국 술의 지각변동이 머지않았다.
전통주 제3의 물결
세대교체를 통해 흥미로운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고 있는 양조장 경영자(혹은 승계 후보자)와 대화를 나눴다.

지평주조 , 김기환 대표
지평막걸리를 만드는 지평주조는 대기업이 아닌 탁주 양조장 중 지난 몇 년간 가장 폭발적 성장을 이룬 곳이다. 1925년부터 막걸리를 빚기 시작해 현재 김기환 대표가 3대째 물려받은 뒤 ‘한국의 기네스를 만들겠다’는 포부로 공격적 마케팅을 진행 중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막걸리의 매력 막걸리는 집집마다 전통과 레시피, 손맛이 더해진 가양주였다. 그만큼 맛이 무궁무진했다. 지금은 사라진 문화지만, 어떤 재료를 넣고 어떻게 발효시키는가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맛을 낼 수 있다. 그만큼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고수하고자 한 전통과 과감히 혁신한 부분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고수하고자 한 전통과 혁신 모두 ‘품질’에 있다. 가업을 이어받으려 결심한 순간부터 아버지는 주질(酒質), 곧 품질을 강조했다. 발효, 숙성 과정 중 온도나 환경에 민감한 막걸리 특성상 균일한 품질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예전에는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손맛과 감에 의지해 빚기도 했고 그것이 당연시되기도 했지만, 일정한 맛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웠다. 주질은 곧 균일한 맛을 내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밤낮으로 공정을 살피고 모든 데이터를 기록해 생산 과정을 표준화했다. 지금도 품질은 최우선 과제다. 2018년 제2공장을 준공할 때도 보다 섬세한 온도 조절이 가능한 발효 탱크를 구비해 다른 양조장보다 서너 배 이상 과감히 투자했다.
향후 3년, 5년 내 목표와 전략 수치로 말하면 3년 내 500억 원, 5년 내 700억 원 매출이 목표다. 전통을 이어가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새롭게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술과 접목하고 체계를 갖추기 위해 현재 지평만의 통합지능형 예측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생산은 물론 영업과 마케팅, 조직과 제도까지 체계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현재 모든 활동을 데이터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측하는 기술을 도입하고자 준비 중이다.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전략과 한계 현재의 생막걸리 기반으로는 유통기한이 짧아 수출하기가 쉽지 않다. 수출하는 막걸리가 생막걸리가 아닌 살균 막걸리인 이유다. 유통기한 이슈도 있지만, 우리는 한국에서 팔리는 제품을 그대로 수출하기보다 현지인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새로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품 개발, 유통기한을 기술적으로 보완하는 방법까지 연구한다면 앞으로 2~3년은 걸리지 않을까 싶다.
최근 실감하는 한국 술 트렌드 막걸리는 올드하다는 인식이 점차 희미해지는 느낌이다. 최근 젊은 세대가 운영하는 소규모 양조장이나 전통주 전문점이 다수 눈에 띈다. 프리미엄급 제품이나 뉴트로의 영향을 받은 젊은 소비자가 전통주에 관심을 보이는 건 긍정적 신호다.
문배주양조원, 이승용 전수자
문배주양조원의 시그너처 술 40도 문배술는 2018년 남북정상회담 만찬주로 올랐다. 기존 패키지를 고수하면서 감각적 패키지를 새로 출시하고 저도주를 추가로 선보이면서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이승용은 5대 전수자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문배술의 매력 찰수수, 메조를 누룩과 발효 후 증류해 얻은 순수한 증류주다. 발효 혼합물에 첨가한 곡류 외의 전분 또는 설탕을 배제했고, 가향 과정을 거치지 않아 맑고 깨끗하다.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도전 무언가를 과감히 혁신하기보다는 예로부터 전해온 것을 섣불리 개혁하려 하지 않은 것이다. 처음엔 촌스러워 보여 문배술 로고(현 문배술 BI)를 바꾸려 했는데, 아버지의 반대로 성사되지 않았다. 나중에는 내 짧은 생각이 문배술의 미래를 망칠 뻔했구나 싶어 아찔했다. 그 후 문배술 로고와 상징적 색을 정해 천천히 발전시켰다. 또 15년 전 문배술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는 주변에서 다른 술을 만들 것을 제안했지만, 아버지와 나는 문배술을 더 잘 만드는 것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오로지 문배술을 파고드는 과정에서 23도와 25도의 저도수 제품을 개발하게 됐다.
최근 실감하는 한국 술 트렌드 판매처가 온라인으로 확장하면서 다양한 연령층의 소비자와 만나게 됐다. 문배술을 잘 모르는 소비자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문배술을 마시는 방법이나 어울리는 음식 등을 제안하는 것이다.
최근의 가장 큰 화두 언제나 그렇듯 ‘좋은 술’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 같은 소규모 양조장은 대기업과 달리 시설과 인력 면에서 많이 부족하기에 그 부분을 보완하려고 좋은 술 만드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좋은술, 김담희 팀장
2018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에서 약주・청주 부문 대상을 차지한 천비향을 빚는 양조장. 최근 ‘택이’라는 젊은 감각의 막걸리 브랜드를 선보였다. 김담희 팀장은 승계를 준비 중이다.
가업을 잇겠다고 결심한 이유 처음엔 막걸리가 그저 숙취가 심한 술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직접 담근 술을 마신 뒤 생각이 달라졌다. 이렇게 맛있고 숙취도 없는 술을 젊은 세대는 막연히 고리타분하고 어른들이 마시는 술이라고 인식하는 게 안타까웠다. 그 틀을 깨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 것을 즐기는데, 술을 빚어 나누는 것이야말로 낯선 이와 친해지고 깊이 소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꼭 잇고 싶은 전통과 변화시키고 싶은 부분 우리만의 오양주(다섯 번 빚는 술) 레시피를 지키고 싶다. 우리 양조장의 술은 최소 6개월 이상 발효와 숙성을 거친다. 시간과 정성이 많이 투입되어야 하는 힘든 술이지만 그만큼 노력이 맛으로 보상해주는 술이다. 전통주 특유의 경직된 이미지를 재미있고 트렌디하게 바꾸고 싶다.
‘택이’라는 새로운 술을 런칭하면서 낸 아이디어 네이밍이다. 양조장이 위치한 평택의 ‘택’을 따온 것이지만, <응답하라 1988> 속 박보검의 극 중 이름이기도 해 젊은 세대를 비롯해 남녀노소 누구나 익숙하고 친근하게 부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언제든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밝은세상영농조합, 이계송 대표
호랑이배꼽 막걸리를 비롯해 최근에는 소호라는 프리미엄 증류주를 만드는 라인을 새롭게 런칭했다. 그는 예술적 패키지와 남다른 경영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한국 술의 매력 한국의 반주 문화. 음식과 함께할 때 이질감 없이 어울리며 좋은 시너지를 낸다. 그리고 우리 땅에서 자란 농산물을 사용하기에 가장 신선한 원재료가 담긴 술이라고 할 수 있다.
고수하고자 한 전통과 과감히 혁신한 부분 조부모대의 밝은세상영농조합은 양조장이 아닌 방앗간집이었다. 곡물을 다루고 사람이 붐비는 환경 덕에 가양주 또는 밀주가 있었는데, 양조장이 된 건 그 시절 술의 향수를 생각하며 복원한 10년 전 일이다. 우리의 전통이 있다면 가장 자연스러운 과정에서 자연 재료로 만드는 것. 내 가족이 마실 술, 지인과 즐겁게 나눌 술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기본을 지키기 위해 유통이나 시장의 요구에 이끌리기보다는 늦더라도 소비자를 직접 만나 우리 술을 설명하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도전 양조장의 모든 구성원이 예술에 본업을 두고 있다. 디자인 예술 작품을 전면에 내세운 아트 컬래버레이션과 문화 상품을 만들었고, 귀여운 캐릭터를 적용한 호랑이배꼽 막걸리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담아 20~30대 젊은 소비자의 호응을 얻었다.
최근의 가장 큰 화두 지속 가능한 농촌과 우리 술이다. 우리가 술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이 지역(평택)의 좋은 쌀과 화강암을 뚫고 나오는 자연수가 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지하수 양과 좋은 쌀이 자랄 수 있는 테루아를 이루는 지역이 줄어들고 있다. 올해부터 환경과 원재료를 지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직접 친환경 농사를 시작했다. 술을 빚을 수 있게끔 해준 이 지역을 풍요롭게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전략과 한계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말을 많이 하지만, 무작정 그들에게 낯선 것을 강요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적 정서를 담는 한편 세계시장에서 통용되는 세련미가 담겨야 한다. 카테고리별로 맛과 품질의 확고한 기준이 있는 와인이나 스카치위스키에 맞춰 우리 술을 평가하려는 생각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우리 술만의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최근 실감하는 한국 술 트렌드 가볍고 시원해서 음용성이 좋고 어떤 음식과도 무난하게 어울리는 우리 양조장 제품에 대한 관심과 호감도가 몇 년 전부터 급상승한 걸 보면, 사람들의 취향이 다양해졌고 가벼운 주류를 선호하는 이들이 늘었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술샘, 신인건 대표
2016년 병신년을 맞아 홍국(빨간 곰팡이균)쌀로 만든 붉은색 술취한 원숭이 막걸리를 출시하는 등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이 담긴 술을 선보이고 있다. 증류주 미르, 떠먹는 막걸리 이화주, 약주 감사 등 제품 라인업이 두루 인기 있다. 농식품부 선정 ‘찾아가는 양조장’ 중 서울 강남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한국 술의 매력 입체감과 생동감이 있다.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술을 만들 때 날씨, 환경이 어땠는가에 따라 무궁무진한 술이 나온다. 단, 제품으로 출시한다면 일정한 맛을 유지하는 게 양조장의 역할일 것. 그러나 그 전에 어떤 술을 만들지 의도적으로 환경을 바꾸거나 재료에 변화를 주어 미세한 맛을 찾아가는 과정이 매력적이다.
고수하고자 한 전통과 과감히 혁신한 부분 전통 문헌에 나온 술을 최대한 복원하는 한편, 패키지 등 디자인 부분에서 과감한 변화를 꾀했다. 고루한 이미지의 패키지나 저렴한 페트 소재에서 벗어나 고급스러우면서 모던한 감각의 패키지를 계속 선보이고 있다.
최근 실감하는 한국 술 트렌드 가장 놀라운 건 40~50대보다 20~30대 젊은 층이 전통주와 우리 술에 더 높은 관심을 보이고 투자한다는 사실이다.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변화다. 젊은 층이 주도하는 전통주 관련 박람회와 시음회가 활발해졌다.
향후 몇 년간의 목표 늘어가는 설비에 따른 공간 부족으로 제2공장을 짓고 생산성을 높이려 한다. 좁은 공간에서 모든 공정을 수작업으로 하는 지금은 발전이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불필요한 공정을 최소화해 더 중요한 부분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이다.

한국 술을 즐기는 유쾌한 방법
SNS로 마시기 전통주만 파고들어 리뷰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유튜브 채널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모던 한식 레스토랑 묘미의 소믈리에를 맡고 있는 더스틴 웨사는 한국가양주연구소의 전통주 소믈리에 과정을 통과한 자격증 보유자다. 그의 인스타그램(@sool_sommelier)과 유튜브 채널 ‘전통주마니아 더스틴’에서 ‘외국인 형이 추천하는 한국 술’이란 컨셉의 재미있는 후기를 볼 수 있다. 전통주 알리는 청년 ‘술브로’는 인스타그램(@soolbro)을 통해 신속하고 다양한 한국 술 후기를 올린다.
술 큐레이션, 술 담화 통신판매가 유일하게 허용되는 전통주를 정기 배송할 수 있는 서비스. 월 1회에 3만9000원을 내면 전통주 2병과 안주까지 큐레이션해 보내준다. 다양한 한국 술을 맛보면서 자신의 취향을 찾아볼 수 있는 기회다.
전통주 갤러리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4회, 역삼동에 위치한 전통주갤러리에서는 매월 주제를 가지고 선정한 여러 가지 술을 맛볼 수 있다. 네이버를 통해 예약할 수 있고, 가격은 참여 횟수 제한 없이 무료다. 한 달에 한 번 셋째 주에는 특별주 시음도 가능하다.
찾아가는 양조장 한국 전통주 문화를 담고 있는 우수 양조장을 골라 농식품부에서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해 소개한다. 양조장을 견학하고 시음하면서 한국 술 문화를 보다 밀착해 경험해볼 수 있다. 현재 70여 곳이 등록돼 있다.
막걸리 DIY 홈브루잉 트렌드에 맞춰 막걸리 키트에 물을 넣어 며칠 발효시키면 막걸리가 완성되는 DIY 키트도 주목받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의 한국 술 전문점 우리술방에서 출시한 제품은 물을 넣고 상온에서 이틀 동안 보관하면 완성된다.
에디터 전희란(ran@noblesse.com)
사진 김래영 어시스턴트 장체라